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시편 56:8 개역성경]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 부분의 번역 중에서 가장 詩적인 번역을 개역성경의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주님의 가죽부대', '주님의 두루마리'(새번역), '주님의 장부'(메시지), '주님의 병'(오경웅) 등의 번역보다는,
'나의 눈물을 주님의 병에 담으소서'라는 은유(metaphor)의 언어는 투명하고 작은 유리병에 담긴 눈물을 떠오르게한다.
하나님께서
나의 아픔과 눈물을
그의 두루마리에 적으신다는 말씀,
주님의 가죽부대에 채우신다는 말씀,
주의 병에 담으신다는 말씀은 큰 위로가 된다.
하지만,
내가 당하는 아픔과 눈물이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 인한 것이라면,
그러면서도 이런 기도를 드린다면,
그 기도는 허위일 것이다.
시인은 지금 사면초가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리하여 두렵지만 그는 두려움이 자기를 삼키도록 허락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함으로 두려움을 삼켜버린다.
이런 과정 속에서 시인은 아파서 울지만, 주님께서는 그의 아픔과 눈물을 두루마리에 빠짐없이 기록하신다.
이것이 시인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근거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병에 담을만한 눈물과 주의 두루마리에 기록할만한 아픔을 지니고 사는가?이 시대의 불의함과 핍박으로 인해 아파 눈물을 흘리는가?
종교개혁의 달 시월을 맞이하여 대형교회를 중심으로한 보수근본주의자들이 10월 27일 서울광장에서 무슨 기도회를 한다고 한다.거기에 아무개 목사도 참여한다며 홍보를 한다.제법 건강한 신앙을 견지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결국 하나님의 이름으로 소수자들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대오에 합류한다.이런 사악한 이들이 한국교회의 지도자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악한 짓들을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행한다.
그들은 시편 56편의 기도를 어떻게 받아들일까?"하나님만 의지하니 두려움없이 그 일을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그 일을 할 것이다.나단 예언자와 같이 그들을 향하여 "아니오!"하는 이들을 비웃으며 그 일을 할 것이다.
그 기도회로 인해
누가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고,
주님은 누구의 눈물을 그의 병에 담으시고 두루마리에 기록하실까?
주님,악한 자들을 용서하지 마시고 벌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