易地思之(역지사지)
‘상대편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한다’는 뜻으로 잘 알려진 이 말은
맹자(孟子)의 이루편(離婁篇)에 나오는 말이다.
하우(夏禹)와 후직(后稷)은 태평한 시대의 현자(賢者)였고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는 난세를 만나 가난했던 현자였다.
맹자가 이들에 대하여 ‘하우는 천하에 물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마치 자기가 빠뜨린 것
같이 생각했고, 후직은 천하에 굶주린 사람이 있으면 마치 자기가 굶긴 것같이 생각했다.
하우와 우직과 안회가 처지를 바꾼다 해도 바로 다 그렇게 할 것이다
(禹稷顔子易地則皆然/우직안자역지즉개연)’라고 말한데서 역지사지라는 말이
유래하게 되었으며 좋은 대인관계를 위해 가장 심오한 조언 중의 하나로 꼽힌다.
또한 이 말은 논어 위령공(衛靈公)편에서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평생 실천할 수 있는 한마디의 말이 무엇입니까?’ 라고 공자에게 묻자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기소불욕 물시어인)’
라고 대답한 것과 같은 말인데 예수님도 이와 똑같은 말씀을 하신 바 있다.
‘자신이 굶주리고 자신이 물에 빠진 듯 여긴다’는 기기기익(己飢己溺),
나를 미루어 상대를 헤아린다는 추기급인(推己及人)도 역지사지와 같은 취지의 말이다.
역지사지는 슬기로운 학교생활, 사회생활, 인간관계의 비결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학생이 시험공부 할 때 ‘내가 만일 출제자라면 어떤 문제를 낼까?’,
장사하는 사람은 ‘내가 고객이라면 주인이 고객에게 어떻게 해야 만족할 수 있을까?’,
부부지간에는 ‘내가 어떻게 하면 아내나 남편에게서 더 사랑받을 수 있을까?’,
강연할 때도 강연자가 ‘내가 청중이라면 어떤 강연을 듣기를 원할까?’,
남에게 어떤 힘든 부탁을 할 때 ‘내가 그런 부탁을 받는다면 어떨까?’
라고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봄으로써 지혜로운 해답을 구할 수 있다.
역지사지의 원리는 더 나아가 국가적 차원에서
정치, 경제, 외교, 국방 등 모든 분야에서도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시집살이 호되게 한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면 오히려 더 호되게 자기 며느리를
들볶는 일이 흔했던 것은 역지사지의 이해심과 자비심을 갖기 보다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국가적으로도 당리당략에 몰두하느라 사실에 근거한 공정무사(公正無私)한 논리보다는
상대방을 무조건 비판하고 헐뜯는 위정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자신이 만일 그렇게 헐뜯음 당하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본다면
보다 겸손하고 신중한 마음으로 신뢰받는 말과 행동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자기 자신에 관대하고 남에게는 비판적인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은 순자가 주장한
성악설의 연장선 상에서 볼 때 인간관계의 모든 갈등과 대립이 대부분
모든 것을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는데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고 정의로운 일이지만
다른 사람이 나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은 불공평하고 인격모욕이며
명예훼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순자는 이를 교정하기 위하여
사람은 교육을 통하여 예(禮)를 배우고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좋건 나쁘건 남에게 베푼 만큼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출이반이(出爾反爾)의 의미를 생각하고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한다면 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