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김한수(金漢洙) - 개척자의 고난과 영광
7. 남원 교회의 인도자로
1 또다시 1961년 3월 19일 남원지역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아직 어린 식구들이기 때문에 3개월만 더 교육하고 떠나고 싶었으나 명령에 순종하고자 이날 식구들의 아쉬운 전송을 받으며 임지를 향해 떠났다.
2 남원지역은, 남원, 순창, 임실, 삼례군으로 이루어졌으며 지역 본부라고는 하나 방 한 칸 없는 그야말로 황무지였다. 식구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여섯 명이 있었을 뿐이다. 당장 짐을 풀 곳도 없거니와 잠자리도 문제였다. 짐은 이집 저집 식구에게 맡겨 놓았으나 식사를 해결하기가 막막했다.
3 그러면서 자전거로 임실, 순창지역을 순회하게 됐다. 궁하면 통하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음을 믿고 자전거에 가방 하나 냄비 하나를 싣고 닥치는 곳, 머무는 곳을 교회로 삼고 방으로 삼았다. 이렇게 6개월 동안 어린 식구들이 개척 나와 있는 곳을 순회했다.
4 송동면의 정문자 씨 (72가정, 엄기섭 씨 부인)가 전도 나가 있는 부락에 강의를 해 달라는 부탁이 있어 순회를 가보니 부락민 전체가 호응하면서 칭찬이 대단했다. 주어진 조건에 온갖 정성을 다하여 얻어진 결과는 그곳에서 수련생 경비를 다 부담하기로 하여 남원지역 제1회 수련회를 개최하니 그때 받은 회비로 남원 교회 방 한 칸을 마련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5 그때부터 본격적인 수련회를 하여 그야말로 그 당시 발전하는 남원 교회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때 대원들이 나가 있는 곳이면 어디나 그곳에서 수련회, 부흥회를 겸하고 같이 나가 봉사활동까지 하게 되니 자연 부락민의 호응을 얻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지역 수련회를 8회까지 하자 좀 더 큰 교회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6 순회 도중 잊을 수 없는 일은 남원군 대강면을 순회하고 순창군 유동면을 향해 갈 때 섬진강을 나룻배로 건너게 된 것이다. 자전거를 가지고 내리다 배가 후퇴하는 바람에 자전거와 같이 섬진강 물속으로 빠졌다가 간신히 살아나오니 순회 시의 양식인 가방 속의 미숫가루가 흠뻑 젖었고, 옷과 더불어 온몸도 물에 젖어 할 수없이 강가에 앉아 옷을 말려 입고 순회했던 일들은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7 그때가 하기 전도 기간이라 남원군 17개면, 임실 12개면, 순창 11개면을 합하여 40개면을 40일 동안 3번씩 순회했으니 하루 평균 60km를 자전거로 달린 셈이다. 각 구역마다 인도자를 파견하고 식구들이 늘어나니 황무지였던 남원지역이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의욕에 찬 하루하루의 일과였다.
첫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