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빈낙도(淸貧樂道)
산기슭 한 퇘기 밭
오조법연(五祖法然) 선사(禪師)는 중국(中國) 송(宋) 나라때 선사다. 임제종(臨濟宗)의 양기파(楊岐派)에 속(屬)하고 사천성(泗川省) 면주(綿州) 출신으로 35세때 출가(出家)해서 유식학(唯識學)을 배우다가 호북성(湖北省) 오조산(五祖山)에서 선풍(禪風)을 진작(振作)시키면서 조주무자(趙州無字) 화두(話頭)를 참구(參究) 할 것을 후참자(後參者)에게 수행할 것을 권하였다. 오조법연(五祖法然) 선사(禪師)의 오도송(悟道頌)으로 전하는 게송(偈頌)은 아래와 같다. 산기슭 묵혀 놓은 작은 뙈기밭이 있기에 두 손 모으고 어르신께 물었더니. 몇 번이나 팔았다가 되사곤 한 것은 솔바람 댓잎 소리 못내 그리워이웃 하려 했다네! (山前一片閑田地 叉手叮嚀問祖翁 幾度賣來還自買 爲憐松竹引淸風 ) 오조법연(五祖法然) 선사(禪師)의 법제자로는 삼불(三佛) 제자가 있다. 그중에 법제자(法弟子)로 그 유명한 원오극근(圓悟克勤) 선사(禪師)가 있다. 원오극근선사는 조고각하(照顧脚下) 선화(禪話)로도 유명하다. 조고각하(照顧脚下)는 오늘날 사찰마다 수행의 지침(指針)으로 활용도(活用度)가 높은 가르침이다. 조고각하는 각자 발밑을 살펴보라는 활구(活句) 법문(法門)이다. 당송(唐宋) 때 선풍(禪風)이 너무 관념적(觀念的)이고 현학적(衒學的)인 구두선(口頭禪)으로 흐르는 것을 생활선(生活禪) 조고각하(照顧脚下)로 되돌려 놓은 것이 오조법연(五祖法然) 선사(禪師)의 법제자(法弟子) 원오극근(圓悟克勤) 선사(禪師)이다. 조고각하(照顧脚下)는 종문무고 (宗門武庫)와 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 등 많은 곳에 설해져 있다.
오조법연선사 밑에는 걸출한 삼불(三佛) 제자가 있다. 불감혜근(佛鑑慧懃)과 불안청원(佛眼靑原)과 불과극근(佛果克勤)이다. 불과극근(佛果克勤)은 원오극근(圓悟克勤)이라고 하는데 그 유명한 벽암록(碧巖錄)을 남긴 선사이고 삼불야화(三佛夜話)로 더 이름을 날렸다. 삼불제자(三佛弟子)는 오조법연선사(五祖法然禪師)를 모시고 산행(山行)을 하다가 밤이 되어서 등불에 의존하고 산을, 내려오는데 바람이 세차게 불자 등불이 꺼져버렸다. 칠흑(漆黑)같이 어두운 밤이라 한치 앞도 보이지 않자. 법연선사께서 대책 방책을 물었다. 각자 한마디씩 일러보라고 했다. 불감(佛鑑)은 아름다운 봉황이 노을 진 하늘에 춤을 춥니다. 말했다. 불안(佛眼)은 무쇠 뱀이 옛길에 비껴 있습니다. 말하자, 불과(佛果)는 발밑을 살펴보십시오, (照顧脚下) 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산길에 등불까지 꺼진 지금 당면문제(當面問題)는 각자 발밑을 살펴보라고 했다. (『五燈會元 卷第十九 五祖法演章 三佛侍師於一亭上夜話, 及歸燈已滅 師於暗中曰; 各人下一轉語 佛鑑曰 彩鳳舞丹霄 佛眼曰 鐵蛇橫古路 佛果曰看腳下 師曰 滅吾宗者 乃克勤爾) 간각하(看腳下)는 조고각하((照顧脚下)를 말한 것이다. 선(禪)의 궁극(窮極)의 목적(目的)은 지금 당장 이곳에서 일어난 당면(當面) 현안문제(懸案問題)를 해결(解決) 풀어내야 한다. 봉황 운운 쇠 뱀 운운하는 것은 현실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관념적인 죽은 말, 사구(死句)다. 발밑을 살펴 가지 않으면 산 절벽에서 발을 잘못 딛고 미끄러져 떨어지면 살아남기 힘이 든다. 한발 한발 살펴서 조심조심 가야 살아남는다. 활보(活步)가 되는 것도 사보(死步)가 되는 것도 각자(各自) 걸음 당면(當面) 문제(問)다. 선(禪)은 이런 난제(難題)를 해결(解決)하는 것이다.
발밑을 살펴보라는 말이 살아 있는 활구(活句) 법문(法門)이다. 그래서 삼불중(三佛中)에 불과(佛果)가 나의 종지(宗)를 멸할 자라고 극찬(極讚)했다는 선화(禪話)다. 법연선사는 무문관에도 공안화두(公案話頭)가 사칙(四則)이 더 나온다. 삼십육칙(三十六則)은 노봉달도(路逢達道)다. 길을 가다가 도를 통달한 사람을 만나면 말이나 침묵으로 대하지 말라다. 자~ 그러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일러보라.(五祖曰 路逢達道人 不將語默對 且道 將甚麽對)이다. 무문선사(無門禪師) 평창(評唱)은 만약 여기서 절실하게 대응할수 있다면 즐겁고 기쁘지 않는가? 혹 그렇지 못하다면 반드시 모든 곳에 주의를 기울여라, 고했다.(無門曰 若向者裏對得親切 不妨慶快 基或未然 也須一切處著眼 頌曰) 길에서 깨달은 사람을 만나거든 말이나 침묵으로 대하지 말라. 뺨을 갈기고 얼굴을 내질러 곧 나를 알아보게 하라. (路逢達道人 不將語默對 欄腮劈面拳 直下會便會) 법거량(法擧量) 선문답(禪問答)은 자내증(自內證) 소리다. 자오(自悟) 자증(自證)이 없는 말은 다 죽은 말, 사구(死句)다. 깨달음이 있고 나서야 입을 떼야 한다. 깨닫지도 못하고 함부로 지껄이는 말은 불기자심(不欺自心)이라 했다. 남은 속여도 자기가 자기는 못 속인다는 말이다. 불자 수행자들은 이점을 유념해야 한다. 자기 살림살이가 되어있지 않으면 입도 뻥끗 말라(開口卽錯)다. 오조법연선사의 오도송이 청빈낙도 너무 좋아서 옮겨 보았다. 삼십육칙(三十六則)은 노봉달도(路逢達道)는 선방(禪房) 수행자(修行者)는 언제 어디서나 자기 살림살이가 되어서 달도자(達道者)를 만나거든 당당하게 맞서라는 말씀이다. 법(法) 앞에서는 밥그릇 수자(數字) 법랍(法臘)으로는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겨볼 공안화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