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에 처음 땅을 갖게 된 우리는 나무부터 심었다. 막대기처럼 길쭉하기만 한 4~5년생 나무들이었다. 손바닥만한 빈틈이라도 보이면 그곳에 나무를 심었다. 비어있는 땅이 아까웠다. 윗집과 아랫집과 경계선에도 나무를 촘촘하게 심었다. 벚꽃이 좋다고 벚나무를, 목련꽃이 구름처럼 피어나기를 바라면서 목련나무를, 노랗게 물든 은행잎과 쫄깃한 은행알이 탐이나서 은행나무도 심었다. 봄이면 싹이 돋았다고, 여름이면 푸른 그늘이 한뼘 더 넓어졌다고, 꽃이피면 피었다고 환호하였다. 열매가 열리고 하루하루 자라나는 모양새에 질리지도 않고 감탄하였다. 아기를 기르는 엄마처럼 호들갑스럽게 사진을 찍었다.
나무는 잘 자라났다. 손님이 찾아오면 자랑하였다. 남들이 못하는 일을 해낸것처럼 의기양양하였다. 이곳 나무들 모두 남편이 심었지요 가느다란 막대기처럼 생긴 나무를 심었는데 저렇게 자라났어요. 땡볕으로 쉴 자리가 없었던 텃밭에 나무들의 그늘은 서늘하고 아름다웠다.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기분좋은 간지럼이었다. 그러한 날들 중에 손님 한 분이 날벼락 같은 말씀을 하셨다. 아랫집과 경계면에서 1m 안쪽으로 간격을 두고 나무를 심어야 해요. 나무가 자라나면 나중에 아랫집과 마찰이 일어날 수 있어요. 이곳은 지나치게 경계에 가까이 나무를 심은거 같은데요. 어릴 적 읽은 우화가 생각났다. 감나무가 자라나 옆집으로 가지를 펼쳤는데 주렁주렁 열렸던 감이 말랑하게 익어가자 옆집 사람이 감을 당당하게 따 먹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두집 사이에 분명 다툼이 있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분의 말씀과 우화를 남의 일처럼 지나쳐 버렸다. 푸르고 아름다운 나무 때문에 아랫집과 마찰이 생기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남도 좋아할 것이라는 착각을 버리지 못하였다.
십여 년이 흘러가는 동안 나무들은 높게 자라났다. 우리의 환호성도 높아갔다. 언제나처럼 종자골 텃밭에 룰루랄라 도착했을 때 아랫집 할머니는 뒤뜰에 풀을 뽑고 계셨다. 여든 여덟살이셨다. 노래방기기를 틀어놓고 목소리를 높여 오십여곡 노래를 부르실 만큼 건강하셨다. 부지런하셨다. 고구마라든가 자두 등을 나눠 먹기도 하면서 그런대로 부드러운 관계였는데, 그날은 분위기가 냉냉하고 딱딱했다. 인사를 드렸는데 할머니의 얼굴이 경직되어 보였다. 나무가 저렇게 크게 자랐으니 원 참. 우리 뒤뜰에 그늘을 드리우는 것도 그렇고 아침 햇살을 막는 것도 그렇고 낙엽을 떨구는 것도 그렇고 나뭇가지를 잘라주면 좋겠네. 맞는 말씀이셨지만 나무를 자식처럼 애지중지 바라보던 그때의 우리에게는 청천병력같은 말씀이었다. 자식의 팔을 자르라고? 라는 소리로 들렸다. 울며 겨자 먹기로 아랫집으로 향하던 굵은 서너개 가지를 잘라냈다. 오며 가며 짓물이 흐르던 그 상처를 들여다 봐주었다.
나무는 계속 자라났다. 특히 목련나무와 벚나무는 하늘에 닿을 듯 자라났다. 뒤뜰 쪽 뽕나무 역시도 한없이 자라났다. 나무들 가지가 무성해지는만큼 아랫집 땅에 드리운 그늘도 넓어졌다. 아랫사람의 논과 밭에 아침 햇살을 막을 뿐만 아니라 그늘까지 만드는 나무는 환영받을 수 없는 불청객이었다. 그러지않아도 아랫집 아들도 말한 적이 있었다. 큰나무들을 베어냈으면 좋겠어요. 남편은 애지중지 기른 나무를 잘라내기가 싫었고 그 말을 흘려보냈다. 아랫집 아들은 더 이상 참고 기다릴 수 없었나보다. 우리가 서울에 있는 동안 뽕나무부터 싹뚝 잘라버렸다. 뒤이어 벚나무며 단풍나무며 목련나무 가지를 아무렇게나 찢어놓고 잘라버렸다. 보기 좋았던 수형은 사라졌다. 잘린 나뭇가지에 아랫집 남자의 화가 잔뜩 남아있었다. 거기다가 굵은 나무 서너개가 시름시름 말라 갔다. 제초제를 나무 밑둥에 뿌리면 죽어간다는 말을 들어왔으므로 그것 역시도 아랫집 남자의 소행이라 지레 짐작하였다.
우리도 화가 났다. 아무렇게나 잘려진 나무를 쳐다볼 때마다 아랫집과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할 말은 없었다. 아랫집으로 그늘이 지지 않도록 나무를 잘라냈어야 했다.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아예 나무를 우리 땅 1-2미터 안쪽에 심어야 했다. 성장속도가 빠른 나무들을 되도록 심지 않아야 했다. 지금 당장 아랫집으로 내려가 사과를 하던가 화를 내며 따지든가 해야 했지만, 남편과 나 둘 다 큰소리를 내기는 싫었다. 고개를 숙이기도 싫었다. 이렇다저렇다 말도 못한 채 아랫집에 대한 화만 가슴에 앙금처럼 품었다. 아랫집 사람들을 마주하기가 싫어졌고 인사를 나누는 일도 차츰 줄어들었다. 아랫집 개가 가끔 우리 땅으로 올라오기도 하고, 사납게 짓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는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팔을 휘두르며 호통을 쳤다. 그 호통에는 아랫사람을 향한 화가 섞여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텃밭에 들르는 우리는 아랫집 사람을 만날 일이 거의 없었으니 그렇게 시간은 어영부영 지나갔다.
며칠 전 잔디밭에 풀을 뽑고 있는데 가까이서 꼬꼬꼬꼬 닭들 소리가 났다. 네 마리의 암탉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랫집에서 우리 땅으로 올라와 뒤뚱뒤뚱 다니면서 연신 고개를 숙여 무엇인가를 쪼아먹는 것이 아닌가. 아랫집 닭들이었다. 봄부터 닭장에서 자라던 병아리들이 어느 정도 커지니 닭장 문을 열어놓은 모양이었다. 닭들을 쫒아낼 이유는 없었다. 벌레를 잡아먹을 뿐만 아니라 꼬꼬꼬꼬 소리는 고향집 뒤뜰을 생각나게 하였다. 그 뒤로 닭들은 우리집 바깥뜰 잔디밭이며 낙엽이 두껍게 싸여 지렁이들이 손가락 굵기로 자라나는 단풍나무밭을 돌아다니며 먹이를 쪼아먹었다.
아랫집 닭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남편이 옛날 이야기를 꺼냈다. 먹을거리가 궁했고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팠던 청춘시절이었단다. 참외밭이건 수박밭이건 과수원이건 젊은이들이 서리를 일삼던 때였단다. 지금이야 서리를 하다 발각되면 엄청난 벌금을 내야 한다지만 그 당시 어른들은 범인을 찾아내려 애쓰지 않았단다. 배고픔을 인정하였단다. 바로 그 시절 방학이었는데 서너명이 옆 동네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단다. 어느집 울타리 밖에서 먹이를 쪼아먹던 실한 암탉을 발견하였단다. 친구 중 한명이 잽싸게 닭을 낚아채서 소리가 나지않게 닭모가지를 세게 비틀었단다. 산으로 올라가 나무를 태워 닭을 구워 게눈 감추듯 먹었단다. 저 닭들 중 한 마리 잡아볼까? 남편이 장난스런 말투로 내뱉었다. 나도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한번 잡아보시지 닭 모가지를 비틀줄은 아셔? 그럼 못할게 뭐 있어. 남자들이란 아내 앞에서 큰소리 치는 걸 좋아한다.
우리의 텃밭은 양자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어 고라니가 수시로 드나든다.가끔 멧돼지도 다녀간다. 보드랍고 연한 순들을 싹쓸이해간다. 도라지 싹은 물론 고구마순과 더덕순 뿐만 아니라 울타리를 넘어서 가을 배추 고갱이를 갉아 먹은 적도 있었다. 마지막 해결책으로 고라니 덫을 놓으려고 했다. 문제는 덫에 걸린 고라니를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었다. 덫에 걸려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가끔 덫에 걸린 동물들 울음소리가 숲에서 밤새 들려오는 적도 있다. 잠이 달아났었다. 혹 살아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도 두려운 문제였다. 남편에게 질문을 했다. 고라니가 살아있으면 어떻게 할건데? 또 죽었다면 어떻게 할건데? 한참을 꾸물거리던 남편이 실실거리며 대답했다. 사냥꾼을 불러야지 뭐. 닭 한 마리 손아귀에 쥐었다 한들 그 다음을 진행시킬 위인이 못된다는 것은 이미 그때 들통이 났었다.
종자골 텃밭에 있는 그에게서 카톡으로 사진이 날아왔다. 진달래나무 아래 풀들이 잔뜩 눌려있고 그 안에 다섯 개의 뽀얀 알이 들어 있었다. 남편이 말했다. 이거 새알이야 달걀이야? 사진으로 봐서는 잘 알 수가 없었다. 달걀 같기도 하고 산비둘기 알 같기도 하였다. 풀들을 뭉개어 만들어진 둥근 둥지로 봐서도 잘 알 수가 없었지만, 지금은 10월이었다. 새는 봄에 알을 낳는다. 그렇다면 알이 작은 것으로 보아 아랫집 닭이 우리 땅을 들락거리다가 초란을 낳은 게 분명하였다. 우리 나무를 함부로 베어낸 아랫집에 대한 불만이 가시지 않은 중에 아랫집 닭이 우리집으로 올라와 낳아놓은 달걀이었다. 먹어치우기기는 찜찜하고 아랫집에 가져다 주기는 싫었던 그는 계란을 냉장고에 넣었단다.
그 다음 주에 종자골 텃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서둘러 둥지부터 들여다보았다. 은근히 달걀이 또 들어있기를 기대하였다. 얼씨구 또 뽀얀 알 두 개가 얌전하게 나란히 있었다. 우리가 먹어야 하나? 아랫집에 돌려줘야 하나? 아랫집 땅으로 그늘을 드리운 우리 나무들을 아랫집 사람이 마음대로 잘라냈으니, 아랫집 닭이 우리 땅으로 올라와 알을 낳았다면 당연히 우리것?. 그렇다면 피장파장? 이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