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광석라디오에 안테나 달다
이영백
어린 날 우리 집에는 라디오가 없었다. 서당 다니면서 강의록 몰래 사 보는데 넷째 형이 나에게 물었다. “강의록 책 보네. 어디 라디오기술 가르쳐 주는 뭐 그런 곳 없을까?” “예. 서점에 가보니 광고지가 붙었어요. RㆍTV 기술 강의록이 나왔어요. 사 올까요.” “그래. 사 와봐라. 그것 참 좋겠다.”그렇게 난 중학교 강의록, 형은 RㆍTV기술 강의록에 푹 빠졌다.
형은 RㆍTV기술 강의록에 진도가 제법 나갔다. 실습용 “광석라디오 만들기”키트를 구입하였다. 불국사역전의 “현대소리사”에서 축전지에 꽂아 쓰는 전기인두도 빌려 왔다. 집에서 라디오를 직접 만들려는 작정이다.
가장 중요한 네 가지 준비물이 있다. 동조바리콘, 광석검파기, 리시버, 안테나 코일 등을 차례로 모두 직렬로 연결하는 작업이다. 라디오 회로구조를 십습하니 간편하게 알게 되었다. 물론 라디오 케이스가 없어서 나무상자 위에다 고정하였다. 바리콘 손잡이(놉)로 방송국의 주파수에 맞추어 선국(選局)도 되었다. 처음엔 잡음이 많이 들렸는데 조정을 잘하면 잡음은 사라진다. 방송국에서 발사한 전파가 소리로 변하여 제법 잘 들린다. 광석라디오로는 겨우 모기소리만한 빼∼빼∼빼하는 소리로 귀에 리시버를 꽂고서야 혼자 듣는 정도이다.
이 광석라디오도 그냥 듣기는 참 어려웠다. 이제 가는 철사를 구하여 잠자리채처럼 뱅뱅 돌려서 야외 안테나를 만들었다. 철사안테나 들고 집 앞 버드나무에 올라가서 방향 돌려가며 잘 들리는 방향으로 맞추어 소리를 잡아 고정하여 달았다. 물론 안테나는 집 앞 감나무에서부터 밭을 지나 밭 둘레에 서 있는 버드나무까지 갔다. 이의 끝은 처마를 거쳐 큰방 광석라디오에 부착하였다. 갑자기 광석라디오에서 “오후의 국악 한마당”을 개최하는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이런 일련의 작업을 아버지는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다. 한 마디로 참 신기해하는 눈치이다. 평소 창을 좋아하던 아버지로서는 날아다니는 공중의 전파를 잡아서 희한한 상자조립으로 소리가 들렸으니 이상도 할 것이다. 1899년(고종 광무3년) 왕조시대 사람으로서는 정말로 신기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이후 아버지는 작은 소리가 나는 광석라디오의 애청자가 되었다.
넷째 형은 그 해 농사가 끝나고 아버지 몰래 벼 열두 가마니를 돌려내어서 현금으로 바꾸고 부산 RㆍTV학원으로 잠적하고 말았다. 나도 그 다음 해 다시 중학교 공부하러 출사표 던지고 집에서 사라졌다. 바야흐로 공부시대이다.
“광석”에서 “트랜지스터”로 바뀌고, “흑백 TV”에서 “컬러텔레비전” 그것도 LED-HD급 굽은 화면까지 발전하여 왔다. 이제 라디오시절은 잊고 사는가?
첫댓글 엽서수필 시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