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李種禹(1899-1981) -- 한국현대미술 100년의 역사 상
최초로 파리에 유학한 서양화가이다. 1918년, 18세 때 동경미술학교에 유학하여 1923년에 졸업하고, 귀국하였다. 1925년에 다시 파리로 유학하였다. 당시에 일본을 거쳐서 서양화를 익혔는데 그는 직접 서양화의 본 고장에서 서양화를 직접 만나 보았다. 3회 선전(1924)에 참여하여 3등 상을 받은 이후로는 한 번도 선전에 참여하지 않았다.
파리에서 공부할 때가 그의 미술 경력에서 최고의 성숙기라고 한다. 이후로는 이때 만큼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
그의 화려한 학력과 경력(파리 도톤느 전에서 입상하였다.) 때문에 20대에 벌써 원로가 되어 있었다. 그의 미술은 사실주의 화풍을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
그는 평양의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미대를 다니면서도 집에는 법대를 다닌다고 속였다고 한다. 서울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 무절제하게 생활을 하다보니 100원짜리 월급쟁이가 기생집인 명월관에 다니면서 800원의 외상이 있었다. 외상을 피하려 파리로 유학을 같다는 일화도 있다.
당시의 유명 서화가인 이상범, 노수현, 이용우, 최우석 등은 신문사에 일하면서 겨우 선술집을 다녔지만 이종우는 이들과는 아예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죽을 때까지 미술계에서 원로로, 지도적 위치에서 있었지만 미술은 20대를 최고봉으로 더 이상 성취하지 못 하였다고 한다.
첫댓글 귀한 자료 고맙습니다. ^^
잘 읽었습니다
귀한 자료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