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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함이 생명인 초등학생 딸은 벌떡 일어나 두 눈을 비비며 식탁에 앉고 중3 큰아들은 꽈배기처럼 몸을 비틀며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나를 멍하니 바라본다. 여느 집과 다름없이 이렇게 우리 집의 평범한 하루가 시작된다. 남편과 아이들이 식탁에 둘러앉으면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수다가 시작되고 요즘 시험기간이라 힘들어하는 아들을 위해 밥 한 수저라도 더 먹여 보낼 욕심에 나의 손은 분주하기만 하다. 이렇듯 가족과 웃으며 식사를 할 때 하루 중 가장 큰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다. 5분 정도 지날 쯤 아들이 말문을 연다. "어제 역사 시험을 한 문제 실수한 것 같아요. 100점 맞을 수 있었는데........." "그래서 표정이 안 좋았구나 괜찮아. 어제의 실수도 살아가는데 필요한 공부였으니까." 어제부터 시작된 1학기 기말고사를 보고 조금 실망한 눈치다. 아니 여린 마음에 부모님께 따듯한 위로와 격려가 받고 싶었나보다. 아마 몇 년 전부터 꿈꿔 왔던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은데 어제의 시험점수가 걸림돌이 될 까봐 밤새 몸부림쳤다 생각하니 안쓰럽기만 하다.
항상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공부보다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공부를 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아들이 였는 데 선의의 경쟁에서 승리하고픈 씁쓸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첩첩산중 시골에서 딸 부잣집 막내딸로 자란 나는 봄이면 동네 친구들과 바구니 들고 나물 캐고, 여름이면 해가 질 때까지 냇가에서 다슬기 잡고 물장난 치며 놀았다. 가을이면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기 바빴고 겨울에는 손이 부르트도록 썰매를 타며 놀았다. 자연과 하나가 되어 보고 듣고 느끼며 그 속에서 꿈을 키우고 궁금증을 해소하고 성적 또한 인정받으며 학교생활을 했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개천에서 용은 사라졌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요즘 아이들은 많은 꿈을 접어둔 채 유치원부터 사교육에 매달리며 딱딱한 의자에 앉아 책과 씨름하며 오로지 시험성적과의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른다.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메고 등굣길에 나서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문 듯 꿈을 품고 살아가야 할 학창시절에 아이들이 어깨에 맨 하루에는 어떤 생각들이 자리 잡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단지 너도나도 하기에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월등한 성적을 받아야 꿈을 꿀 수 있고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는 건 아닌지, 기대만큼의 점수가 아니면 꿈조차 꾸는건 사치라고 여기는 건 아닌지 복잡한 생각이 잠시 뇌리를 스친다.
예전 TV광고에 "당신은 부모입니까, 학부모입니까."라는 문구가 있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문득 내 자신에게 던진 말이 였는데......... 나 역시 엄마이기 전에 학부모로서 성적이 중심이 되어 은근슬쩍 내 아이들에게 명문 학교를 고집하며 진정 하고 싶은 꿈을 향해 쏟는 두 아이의 열정을 배려하지 않는 나쁜 엄마였다. 지금도 다수의 부모님들이 예전의 나처럼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성적의 기준이 되는 잣대를 과감히 버리고 경쟁을 떠나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할 수 있다'는 의지를 심어 주고 꿈을 꾸며 아이가 가능성의 길을 마음껏 펼치며 걸어갈 수 있도록 손잡고 동행해주는 부모님이 되어 보는 건 어떨까? 머리보다는 가슴이 따뜻한 행복지수가 높은 아이들로 자라나면 분명 성적도 좋아지리라 생각된다.
칭기즈 칸은 이런 말을 했다. '혼자 꾸는 꿈은 꿈으로 끝날 수 있지만, 함께 하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한 사람 한 사람의 꿈은 위대하다 그 꿈들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가정에서는 부모님과 함께, 학교에서는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더불어 실현해 나간다면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부와 명예를 누리는 수단이 아닌 꿈을 꾸며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고 자신이 만든 좁은 공간에서 벗어나 자아를 찾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 과정이 되길 바래본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있으랴마는 살아가면서 힘든 시간이 곁에 머물지라도 꿈이 있다면 좌절하지 않고 극복하리라 믿는다.
오늘도 세상에 행복한 향기를 퍼트리고 묵묵히 값진 꿈을 향해 전진하는 모든 아이들을 응원해본다. 그 꿈이 혹여 실현 불가능할지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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