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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오늘은 ‘왕의 교만과 하나님의 주권’1)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교만”이라는 말은 ‘내가 최고야’라고 마음이 높아진 상황을 뜻합니다. “주권(主權)”은 “주(主)의 권력(權力)”을 뜻합니다.
다니엘 4장과 5장은 왕들의 교만과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내용으로서 4장은 네부카드네자르에 관한 것이며, 5장은 그 자손에 관한 것입니다.
1. 네부카드네자르 왕이 하나님의 왕국과 지배를 칭송합니다.
다니엘 4장 1~3절에 “너희의 평화(peace)가 증가하겠노라.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표적들과 그 경이들을 설명하기에 나에 좋았노라. 그의 표적들은 무엇과 같이 크고, 그의 경이들은 무엇과 같이 강력한가, 그의 왕정은 영원의 왕정이고 그의 지배는 세세 대대와 함께하노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단 4:1~3).
4장 1~3절은 ‘서론(序論)’, 즉 ‘차례를 말하는’ 내용입니다. 4장은 왕이 체험한 사건을 편지로 써서 주민들에게 보낸 것입니다. 발신자는 네부카드네자르 왕이고 수신자는 모든 사람입니다. 그에게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적과 기사를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적과 기사를 행하신 분의 이름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십니다.2)
이 고백은 이방인을 통한 고백입니다(출 18:10~11, 수 2:10). 본문에는 이미 사건을 통하여 변화된 왕의 고백이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적과 놀라운 일을 바벨론의 왕이 알렸습니다.3)
그의 고백의 절정은 3절에 있는 영원한 왕정에 대한 찬양에 있습니다. 이것은 다니엘에 강조되는 영원한 하나님의 왕정에 대한 찬양입니다.4)
‘발신자부터 수신자에게’는 아람어로 기록된 편지에 흔한 것입니다.5)
“너희의 평화가 증가할 것이라”라는 표현은 표준적인 인사말입니다.6)
2~3절은 ‘고백의 서두’입니다.7)
2. 네부카드네자르 왕이 그의 집 안에서 꿈을 응시하였습니다.
다니엘 4장 4~5절에 “나 네부카드네자르가 편하게 내 집에 있었으며. 내가 꿈을 응시하였고(saw) 그것이 나를 두려워하게 만들었고. 나의 침대 위에 생각들과 나의 머리의 환상들이 불안하게 하였노라”라고 네부카드네자르 왕이 말하였습니다.
4장 4~18절은 ‘꿈의 진술’입니다.8)
왕은 강력한 권세를 누림으로 자족하고 자만한 상태에 있었습니다.9) 그때는 그가 편하게 그의 집 안에 있었던 때입니다(단 4:4).
세상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이렇게 공평하지 않게 보이는 것입니다. 욥과 같은 의인의 인생에서는 평안하지 않은 때가 있었습니다(욥 3:26).
반면 약탈자에 천막이 형통합니다(욥 12:6). 어찌 불성실한 모든 자가 형통하였습니까(렘 12:1). 바벨론의 왕 네부카드네자르도 마찬가지인데, 그는 약탈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평안하게 그의 집에 있었습니다(단 4:4).
세상이라는 것이 이렇고 이 세상이 전부라면 정말 불공평한 것입니다. 악인이 편하게 살고 죽을 때도 편하게 죽고 100살까지 살다가 죽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며 하나님의 심판 때가 반드시 있으므로 하나님의 정의는 반드시 세워지는 것입니다.
네부카드네자르 세상을 정복할 때 얼마나 많은 군인을 죽였겠습니까? 사람들을 피눈물 흘리게 만들고 자기는 편안하게 자기 집에 있었습니다.
‘내가 다 이루었어, 내가 금 다이아몬드 다 가졌어.’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고 그는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꿈을 그가 응시하였고 그것이 그를 두려워하게 만들었습니다(단 4:5). 그의 침대 위에 생각들과 그의 머리의 환상들이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꿈의 해석을 알게 할 바벨론의 모든 현자를 그의 앞에 오게 하려고 그로부터 명령이 둠을 받았습니다(단 4:6).
그 마술사들 그 마법사들 그 칼데아인들과 결정하는 자들이 들어왔고, 그 꿈을 그가 그들 앞에 말하고, 그것의 해석을 알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마술사 마법사와 결정하는 자들이 그 꿈의 해석을 알게 하지 못하는데 그들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었던 것입니다(단 4:7).
바벨론 안에 다니엘의 이름은 벨트샤찰(Belteshazzar)입니다(단 4:8).
왕은 다니엘 안에 신성한 신(神)들의 영(spirit)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왕은 다니엘 앞에 꿈을 말하였습니다(단 4:8).
다니엘이 왕의 앞에 들어간 때, 그 왕이 다니엘에게 말한 내용입니다. 왕은 다니엘 안에 신성한 신(神)들의 영(spirit)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신(god)들”이라고 했으니 네부카드네자르 왕은 다신론자였습니다.10) “다신론(多神論, Polytheism)”은 “다수의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입니다. 유대교와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는 유일신(唯一神)을 믿고 있는 종교나, 많은 종교가 다신론을 믿고 있는데 힌두교에는 많은 신(神)이 있습니다. ‘그리스신화’라는 책을 보더라도 신화에 많은 신(神)이 나오고 있습니다. 네부카드네자르는 야훼 하나님만을 믿지 아니하였고 다신론자였습니다.
왕은 다니엘에게 “그 마술사들의 위대한 자”라고 불렀습니다(단 4:9).
“위대한(great)”(라브)은 본문에 “장(長)”(chief)으로 번역되는데, 그는 “그 마술사(magician)들의 우두머리(chief)”가 되었었던 것입니다.
그 왕은 신성한 신(神)들의 영(spirit)이 다니엘 안에 있는 사실을 알고, 그 왕은 어떤 신비도 다니엘에게 어렵지 아니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왕은 그의 꿈의 해석을 그에게 말하라고 다니엘에게 요청하였습니다.
왕이 그의 침대 위에 그의 머리의 환상(vision)들을 응시하였고(look) 떡갈나무가 땅의 중앙에 있고 그것의 높이가 컸습니다(단 4:10).
사람이 꿈을 꿀 때는 눈뜨고 꿈을 꾸지 않고 눈감고 꿈을 꾸는 것인데 꿈은 눈으로 보지 아니하고 눈감고 머릿속으로 동영상을 보는 것입니다.
볼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 이러한 사람을 ‘시각 장애인’이라고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시각 장애인으로 태어나서 보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볼 수 없는 시각 장애인들도 꿈꾸는데, 우리의 꿈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어쨌든 색깔도 모르고 눈으로 보지도 못하나 머릿속으로는 꿈을 꿉니다. 그 이유는 꿈은 눈으로 바라보지 아니하고 머리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보는 것이 “환상(vision)”인 것인데, “꿈”과 “환상”의 공통점은 눈으로 보지 않고 머리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꿈”과 “환상”의 차이점은 꿈은 잠자며 보고 환상을 깨어 보는 것입니다.
“떡갈나무”(일란), 우리 성경에 “나무”라고 나오는데, 떡갈나무입니다. 영어 성경들에도 그냥 “나무”(tree)라고 번역되었습니다(사 1:29).
그 나무가 성장하고 그것이 강해졌고 그것의 높이는 하늘에 도달하고 그것의 광경이 모든 그 땅의 끝에 그러하였습니다(단 4:11).
그 나무가 처음에 크지 않았는데 성장하였고 크게 자랐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작았는데 지금은 중학생이 되어서 이만큼 크게 된 것입니다. 이 떡갈나무가 처음에 작게 시작했는데 크게 되고 강해졌다는 것입니다.
그 떡갈나무가 얼마나 높은지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다고 말합니다. 이런 표현으로 무엇이 생각나느냐 무엇이 연상되어 생각나는 것입니까? 바벨탑이 생각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땅의 중앙에서 넓은 평지의 중앙에서 탑을 짓자고 했습니다. 그 탑의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만들자고 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바벨탑은 실패하고 말았는데 바벨론 왕의 꿈에는 그 시도가 성공합니다.
그 나무가 크게 되고 강해져서 하늘의 구름까지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무 모습을 모든 땅의 끝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땅의 끝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그 나무게 크게 자랐다는 것입니다.
그것의 잎은 아름답고 그것의 열매는 크고 그 안에 모두에게 음식이고 그것 아래에 들짐승이 그늘지게 하고 가지들 안에 새들이 거주할 것이고 그것 안에 모든 그 살이 먹임을 받습니다(단 4:12).
소, 양, 돼지, 닭처럼 사람이 “집에서 기르는 짐승”을 “가축”이라 하고 사람 손에 기름을 받지 않고 “들에서 사는 짐승”을 “들짐승”이라 합니다. “들짐승”에는 토끼, 사슴, 고라니 등이 있습니다.
큰 나무 그늘에 들짐승이 쉬고 있고 새들이 그 가지에 살고 있습니다. 여름에 해가 쨍쨍 내리쬐면, 짐승들이 큰 나무 그늘에서 쉬는 것입니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집, 둥지를 짓는데 그 둥지를 촘촘하게 잘 짓습니다.
이 나무가 모든 들짐승과 새들에게 음식과 은신처를 제공한 것입니다. 이 나무는 모두에게 음식과 보호를 제공하는 왕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고대 왕의 역할이 바로 백성에게 음식과 보호를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우주적 나무’ 이미지는 왕의 꿈의 나무 이미지의 적절한 배경이 되나, 그와 동시에, 에스겔에 있는 몇몇 나무 이미지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에스겔 31장에 파라오는 레바논 삼나무 한 그루에 비유되었습니다. 삼나무는 ‘키가 크고 구름에 닿았고’라고 기록되었습니다(겔 31:3). 하나님께서 마음이 교만한 이 나무를 찍어 베십니다(겔 31:10~12).11)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마음을 제일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왕이 그의 침대 위에 그의 머리의 환상(vision)들 안에(in) 응시하였고 보라 지키는 자와 신성한 자가 하늘로부터 내려왔습니다(단 4:13).
13~17절은 ‘순찰자의 말들’입니다.12)
“꿈”은 뇌에 입력된 시각 정보들을 통해 뇌가 광경을 바라보는 것인데 심상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뇌로 바라보는 “환상”과 그 맥락이 같습니다.
바벨론의 종교에서 천사는 돌며 살피는 “순찰자”라고 불렸습니다.13) “순찰자”는 “지키는 자”(watcher)를 뜻합니다. “지키는 자”는 불침번의(wakeful) 임무를 수행하는 자인데, “천사”는 마음을 놓지 아니하고 경계를 게을리하지 아니하는 순찰자인데 이 순찰자가 “천사”를 가리키니 “메신저(messenger)”로 번역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감시인(guardian)의 또 하나의 특징은 신성한(holy) 자인 점입니다.
“신성한 자”는 하나님께 종속된 천상의 존재입니다.14) 그는 초자연적 세계에 속하여 있기에, “신성하게 구별된 자”입니다.15) 그는 신성하게 구별되었으며 초자연적인 영역에 속하는 자입니다.16)
그가 이렇게 말하기를, “그 나무를 베어 넘기고 그 가지들을 베어내며 너희는 그것의 잎사귀를 없애 버리고 그것의 열매를 흩뿌려라, 그 짐승이 그것 아래로부터, 그 새들이 그 큰 가지들로부터 떠나게 하나. 뿌리 그루터기를 남기고 철과 청동 결박에 들의 연한 풀 안에 있게 하라, 하늘의 이슬로 그것이 젖고 짐승과 함께 그것의 몫이 땅의 풀 안에 있고. 그의 마음은 그 인간으로부터 변할 것이고 짐승의 마음이 주어질 것이고 일곱 시간이 그의 위에 지나갈 것이라(let). 그 판결은 지키는 자들의 법령에 따라 그 요청은 신성한 자들의 말이니,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인간의 왕정(kingdom) 안에 통치하시고 원하실 누구에게 그것을 주시고 비천한 인간들을 그것 위에 세우실 것을 살아 있는 것들이 알기가 목적이노라.”라고 말하였습니다(단 4:14~17).
이것은 네부카드네자르 왕이 꾼 꿈에 바라본 순찰자가 말한 것입니다. 왕은 그가 꿈에 바라본 순찰자가 말한 내용을 다니엘에게 말하였습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뿌리 그루터기를 남기고 철 청동 결박에 들의 연한 풀 안에 있게 하며 이슬로 그것이 젖고 짐승과 함께 몫이 땅의 풀 안에 있습니다(단 4:15).
“몫”은 본문에서 사람의 음식 정량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신 10:8). “풀”은 너무 좁은 뜻의 번역이고 “식물”로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17)
그 마음은 그 인간으로부터 변할 것이고 짐승의 마음이 주어질 것이고 “일곱 시간이 그의 위에 지나게 하라(let)”고 명령한 것입니다(단 4:16).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람의 마음을 주셨으므로 그가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마음과 지혜와 능력과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주셔서 그가 세상의 왕국들을 점령하고 제국을 만들어서 통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진 것 나의 힘으로 했어’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능력으로 돈 벌었어.’, 그것 아니라는 것입니다.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을 누가 주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돈을 벌 수 있는 건강함을 누가 주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지 않으셔서 손가락 아프고 걸어 다닐 수 없으면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열심히 노력하여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필요한 것들을 주셨다는 것을 왕은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꿈의 해석은 살피지 못했으나 이 꿈은 바로 이러한 꿈입니다. 우리는 내가 잘났다는 마음을 버리고 모두 다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이런 마음을 가지고서 살아가는 복된 구원영생교회 성도가 모두 됩시다!
1) David A. Dorsey, 『구약의 문학적 구조』, 류근상 역 (고양: 크리스챤출판사, 2003), 412.
2) 배정훈, 『다니엘』, 한국장로교총회창립 100주년 기념 표준주석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16), 99.
3) 배정훈, 『다니엘』, 한국장로교총회창립 100주년 기념 표준주석, 100.
4) 배정훈, 『다니엘』, 한국장로교총회창립 100주년 기념 표준주석, 100.
5) Ernest Lucas, 『다니엘』, AOTC 성경주석, 김대웅 역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17), 145.
6) Lucas, 『다니엘』, AOTC 성경주석, 134.
7) Lucas, 『다니엘』, AOTC 성경주석, 137.
8) 배정훈, 『다니엘』, 한국장로교총회창립 100주년 기념 표준주석, 100.
9) 배정훈, 『다니엘』, 한국장로교총회창립 100주년 기념 표준주석, 100.
10) Lucas, 『다니엘』, AOTC 성경주석, 134.
11) Lucas, 『다니엘』, AOTC 성경주석, 147.
12) Lucas, 『다니엘』, AOTC 성경주석, 137.
13) Edward J. Young, 『다니엘서 주석』, 정일오 옮김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9), 143.
14) John E. Goldingay, 『다니엘』, WBC 성경주석 30, 채천석 역 (서울: 솔로몬, 2008), 191.
15) Lucas, 『다니엘』, AOTC 성경주석, 135.
16) Goldingay, 『다니엘』, WBC 성경주석, 191.
17) Lucas, 『다니엘』, AOTC 성경주석, 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