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77
군대는 탁아소가 아니다
21대 마지막 국회 본회의에서 ‘채상병 특검법’이 부결되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여 재표결한 결과다. 민주당은 22대 국회가 개원하면 채상병 특검법을 재추진하겠다고 벼른다. 범야권이 192석으로 늘어나 국민의힘 의원 중 8명만 이탈해도 대통령 거부권이 무력화되는 구조다.
채상병 특검법의 정식 명칭은 ‘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 특별 검사 임명법률안’이다. 작년 경북 예천에 폭우가 쏟아져 실종자가 생기자, 군이 나서 수색작전 중 채상병이 희생되었다. 특검법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때 대통령이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특검 발의의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은 “채상병 특검법 거부 시 탄핵 사유”라고 못 박은 바 있다. 대통령이 정당한 수사를 방해하였으므로 탄핵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채상병은 시험관시술로 어렵게 얻은 외아들이라고 한다. 애석하지 않은 젊은 죽음이 없겠지만 안타까움이 더하다. 애통한 주검 앞에 당황스러운 것은 어김없이 영구차에 편승하는 정치 세력들의 등장이다. 순직한 군인에 대한 애도는 진즉 이전투구의 탁류에 쓸려 떠내려갔고 장대 같은 아들을 잃은 부모의 비통한 심정은 위로의 가식조차 정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말았다.
채상병 특검만이 아니다. 여의도 원형경기장엔 검투사들의 특별무대가 줄줄이 예고되어 있다. 김건희 여사 핸드백 사건을 비롯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들을 재입법하겠다는 홍보물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열광하는 관중들이 다퉈 표를 사고 300명의 검투사는 칼을 간다. 상대의 팔다리를 단숨에 베어내면 박수를 받을 것이다. 설사 붉은 피가 흐르지 않더라도 식물 대통령의 무능을 지켜보는 건 어렵지 않게 됐다. 부러진 칼자루를 쥐고 있는 대통령이라면 당당히 특검을 수용하길 권면한다.
군대는 특수한 무력집단이다. 그것도 살상을 목적으로 하는 합법적이고 위계적인 폭력조직이다. 선사 시대부터 있었던 폭력조직이 더욱 강해지는 건 역설적이게도 폭력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다. 물론 군대가 폭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무력 사용의 명분과 힘과 기술과 전략이 있어야 하고 일정한 규율과 질서가 필요하다. 강압적 규율과 질서는 필연 명령계급을 만들어 낸다.
군의 명령은 해석의 여지가 있어서는 안 된다. 군인의 행동은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해야 하며 토론과 숙의가 생략되어야만 반응이 빨라진다. 그렇다고 자신의 목숨을 지키고 적을 죽이기 위한 반응이 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조직 구성원들이 같은 상황을 두고 서로 다른 반사행동을 해서도 안 된다. 집단을 모아 놓고 지겹도록 같은 훈련을 반복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군인의 정의는 적을 죽이는 것이다. 적과 마주쳐 살인 행동의 적법성을 따지는 일은 자살과 같다. 하지만 군인도 감정을 가진 인간이다. 아무리 훈련된 군인이라고 하더라도 도덕적 규범 속에 양육되었으며 사람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짓은 끔찍한 일이다. 망나니조차 술에 취하지 않고서는 칼을 휘두르지 못했거늘 사람 죽이는 일을 즐길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작전 중인 군인에게 선악을 묻거나 역사적 심판을 내리는 건 평화의 안녕에 도취한 호사가의 경솔이다.
병역은 말대로 군사의무다. 대가 없는 의무의 구속은 참기 어렵다. 더구나 살인 기술을 배우고 싶어 군대에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한 사례가 있다. 미 육군의 마셜이란 장교가 2차대전 당시 전투경험이 있는 400개 중대 병사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했다. 결과가 놀라웠다. 생사의 갈림길에서조차 적을 조준하여 사격한 병사는 전체의 15~20%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80% 이상의 군인이 적의 머리 위로 공포탄을 쐈다는 것이다. 살상은 전투 중인 군인에게도 피하고 싶은 임무다.
병사들의 행위에 대해 선악을 따지는 건 쉽지 않다. 지휘관의 전략과 전술, 명령의 타당성도 마찬가지다. 군인에 대한 책임론은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현장의 긴박성·정보의 양과 질·부대 역량·임무 수준·지휘체계 등의 변수가 존재하기 마련이고 이를 종합하여 작전을 수행하는 것은 지휘자의 권한이다. 이번 채상병 사건도 마찬가지다. 지휘관의 명령이 결과적으로 부적절했다고 하여 처벌로 일관한다면 남아날 부대장이 없을 거라는 대통령의 인식이 있었음 직하다.
통계를 보면 매년 90명 안팎의 군인이 사망하고 있다. 그중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가 70%를 넘는다. 다른 나라 군대와 민간인에 비해 낮은 수치라고는 하지만 유독 간부들의 자살률이 높다고 하는 점은 유념할 문제다. 낮은 급여에 따른 경제적 문제, 사건 사고의 압박감, 과도한 업무로 인한 고충이 대표적인 자살 원인이라고 한다.
지난 5월 25일에는 군기훈련 중인 병사가 숨졌다. 해당 중대장은 살인죄로 고발되었다. 얼마 전에는 신병교육대에서 수류탄 투척 훈련을 하던 중 수류탄이 폭발해 훈련병 1명이 숨지고 소대장이 다쳤다. 이 사건 때문에 모의 수류탄으로 훈련한다는 소식이다. 관련하여 군 내부에서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온다. 지금과 같은 사회 분위기에서는 사병들에 대한 강도 있는 훈련이 어렵다는 것이다. 군 조직까지 무사안일의 관료제 문화가 정착될 거라는 우려다.
국제정치에서 평화를 지키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은 금언이다. 전투력을 상실한 군대라면 존재가치가 없다. 군대란 한 국가의 안보를 책임질 뿐만 아니라, 국가의 위상을 상징하기도 한다. 예가 있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 주치의는 군의관들이 맡으며 질병 치료도 군 병원에서 한다. 우리는 국가라고 하는 공동체에 머물며 국경이라는 선을 긋고 산다. 국가가 존재하는 동안 군인을 존경하고 우대하는 사회가 정상일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일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수류탄 폭발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글이 코끝을 찡하게 한다. ‘아들이 보고 싶어 따라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 비통함을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같이 훈련받던 어린 훈련병들이 부디 트라우마 없이 자대로 갈 수 있도록 조치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 마지막까지 잘 보내겠습니다. 깊은 애도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