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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신자와 초보 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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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신자 신학공부 이신칭의
노베 추천 4 조회 297 23.11.29 09:17 댓글 2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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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3.11.29 09:47

    첫댓글 좋은 내용이고 교과서적인 설명입니다.

  • 작성자 23.11.29 11:42

    공감과 댓글 감사합니다.

  • 23.11.29 11:32

    본문 4번째 문단에서 "로마 가톨릭 신학은 세례가 칭의를 위한 근본적인 도구적 원인이라고 가르친다."는 천주교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재세례파와 재세례파의 후예를 자처하는 강경한 침례교회와, 그리스도의 교회 등에서도 나타납니다.

    재세례파와 그의 후예들이 천주교와 극한 대립을 하는 듯이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종교개혁의 칭의론을 부정하고 천주교의 칭의론과 유사하다는 사실은 마이클 호튼 등의 학자들이 이미 거론한 바 있습니다.

  • 작성자 23.11.29 11:46

    극좌와 극우가 과격함의 태도에서 유사하듯이 재세례파와 천주교는 다르지만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특히 칭의론에서요.

  • 23.11.29 09:57

    5번째 문단에서 "의롭다하심을 얻게 하는 믿음은 무의미한 믿음의 고백이 아니라 살아 있는 믿음이다."는 구원파를 연상시킵니다.

    구원파는 주관적 신앙고백은 하지만 구원의 서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칭의의 결과인 성화를 모릅니다. 살아있는 믿음에는 성화, 성도의 견인, 믿음의 진실성을 증명하는 행함이 나타납니다.

    야고보서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서 2: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야고보서 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야고보서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 작성자 23.11.29 11:43

    네,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 23.11.29 11:02

    게시글 아래부분에 갈 3:26절,

    [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NIV You are all sons of God through faith in Christ Jesus] 을 소개해 주셨는데


    갈 3:26절은 갈 3:27절과 함께 이해해야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갈 3:27절은, 3:26절을 설명해 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곧 우리가 어떻게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인지 설명해 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NIV 성경:27절은 for all of you who were baptized into Christ have clothed yourselves with Christ. 인데

    누구든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께 속하게 된 사람은 그리스도로 옷 입었기 때문이니라 라는 의미입니다.


  • 23.11.29 10:57

    곧 3 :27절은 중간과정을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26절 사이에 27절을 넣어 두 절을 한 절로 만들 수 있습니다.

    곧 [26절a] [27절] [26절 b] 로 쓰면 한 절로 만들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께 속하게 된 너희는 그리스도로 옷 입고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세례를 통해 우리를 그리스도께 속하게 하여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의롭다함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새번역]
    여러분은 모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 작성자 23.11.29 11:44

    @이지끼을 방문 및 댓글 감사합니다.

  • 23.11.29 14:24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되어 의롭다 함을 받게 되었다는 설명에 아주 공감합니다.
    우리가 의롭게 된 것에는 어떠한 행위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속주라고 믿고 영접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임을 먼저 잘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믿고 영접하여 의롭다함을 받은 자는 이후에 자기 의도 필요합니다. 마음으로 믿은 것을 세상에 공표하고 자기의 믿음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세례도 있고, 의로운 행실도 있습니다. 심판 때 공력이 불에 타버리고 없어지면 벌거벗은 채 겨우 구원만 받게 되는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것이고, 공력이 불에 타 없어지지 않으면 영광스러운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믿는 자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시는 그리스도의 의는 단지 믿을 때에 우리에게 전가됨으로써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구원 받은 강도와 같이 정말 아무 공로 없이 바로 구원받는 것이 이신칭의입니다.
    믿는 자라면 당연히 따르는 의의 행실이 있어야 하고, 이것이 없으면 야고보서와 같이 죽은 믿음이 되며, 이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믿음이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 되겠지요.

  • 23.11.30 08:05

    네, 공감합니다.

  • 23.11.30 07:38


    루터가 말한 “이신칭의”에 대해 이해가 다른 것 같아, 저의 이해를 말씀드립니다.

    루터의 Large Catechism을 보면
    92-97 page가 세례에 대한 글입니다.

    https://www.lutheranlibrary.org/pdf/194-jacobs-luther-large-catechism.pdf


    92 page를 보면

    마 28:19절과 막 16:16절(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을 언급한 후
    and that it is most solemnly and rigidly commanded that we must be baptized or we cannot be saved.

    [세례는 꼭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엄하고 엄숙하게 명령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 23.11.30 07:59

    95 page를 보면

    For no one is baptized in order that he may become a prince, but, as the words declare, that he be saved.
    But to be saved, we know, is nothing else than to be delivered from sin, death and the devil,
    and to enter into the kingdom of Christ, and to live with him for ever.

    [누구든지 왕자가 되려고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구원을 받으려고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는 것은 죄와 사망과 마귀로부터 구원을 받아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가 영원히 그와 함께 사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구글번역)] 라고 말합니다.

  • 23.11.30 08:00

    96 page를 보면

    But if they say, as they are accustomed, Baptism also is itself a work, and you say works are of no avail for
    salvation, what then would remain of faith?
    Answer: Yes, our works avail nothing for salvation, but baptism is not our work, but the work of God
    (for you must make a great distinction between the baptism of Christ and a bathkeeper’s baptism).
    God’s works are saving and necessary for salvation, and do not exclude faith, but demand it;
    for without faith they cannot be apprehended.

  • 23.11.30 07:40

    [그러나 만일 그들이 습관대로 세례도 행위라 하고 행위가 구원에 무익하다고 말한다면 믿음에 무엇이 남겠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우리의 행위는 구원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례는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세례와 목욕하는 사람의 세례를 크게 구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구원이며 구원을 위해 필요하며 믿음을 배제하지 않고 요구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그들을 붙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구글번역) ] 라고 말합니다.,

  • 23.11.30 08:12

    97 page에는
    제가 의미있게 생각하는 글이 있는데
    세례는 일생에 한 번 받고 전 생애에 걸쳐 죄사함의 효력이 있다고
    루터가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글이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We must so regard baptism and avail ourselves of its blessings, that when our sins and conscience
    oppress us we strengthen ourselves and take comfort and say: I am baptized, and if baptized it is
    promised me that I shall be saved and have eternal life, both in soul and body.

    [우리는 세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축복을 활용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죄와 양심이 우리를 압박할 때 우리는 힘을 얻고 위로를 얻어, 나는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그리고 세례를 받으면 영혼과 육체 모두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을 것이라 약속되어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세례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중세 카톨릭의 이해와 다릅니다.

  • 23.11.30 07:50

    중세 카톨릭은 세례에 대해 두 가지 오해를 했던 것으로 저는 이해합니다.

    하나는 사효론으로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막 16:16절)라는 말씀에서
    믿음을 제외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세례받기 전의 죄만 사함을 받는다는 오해를 했던 것입니다.

    이 두번째 오해로 인해,
    세례받은 후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교리와 제도가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중세 카톨릭의 잘못된 교리와 제도는 고해제도, 면죄부 판매, 연옥, 그리고 교황권강화 등 인데,
    이 모든 것이 세례받은 후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교리와 제도가 루터의 종교개혁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 23.11.30 07:53

    그러니까
    루터는 한번의 세례로 죄사함을 받는데, 전생애의 죄가 해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중세 카톨릭은 세례로 죄사함을 받지만, 세례받기 전까지 지은 죄만 죄사함을 받는다고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 대부분은 세례로 죄사함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노베님께서 루터의 “이신칭의”를 소개해 주셨는데
    루터는 세례와 무관한 “이신칭의”를 말했던 것이 아니라
    세례를 포함하는 “이신칭의”를 말했던 것입니다.


    루터의 “Large Catechism” 92-97 page를 읽어 보시고
    루터의 “이신칭의”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작성자 23.11.30 11:01

    @이지끼을 제가 타자 쳐 붙인 글은 루터 1인의 글이 아니라 루터를 조금 언급한 <""개혁주의"" 스터디 바이블>의 내용입니다.

    루터의 대교리문답 인용을 해주셨는데, 그 수고하심에 존중을 표합니다.

  • 23.12.01 07:47

    @노베
    제가 어제 쓴 댓글 끝 부분에 잘 못 말씀 드린 부분이 있습니다.

    [노베님께서 루터의 “이신칭의”를 소개해 주셨는데]가 아니라

    [노베님께서 루터의 “이신칭의”를 언급한 글을 소개해 주셨는데] 라고 썼어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노베님께서 소개해 주신 위의 글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은
    루터의 “이신칭의”를 루터의 신학과는 다르게 사용하여
    루터가 말한 믿음이 아닌 다른 믿음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 23.12.01 07:48

    @노베
    그래서 위의 글은 갈 3:26절만으로 믿음을 이해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갈 3:26절만 읽고 믿음을 이해하면
    이 믿음은 (세례없이)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합니다.
    곧 이 믿음은 (세례없이) 의롭다함을 얻게 합니다.


    반면에 갈 3:26절을 27절과 함께 읽고 믿음을 이해하면
    이 믿음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합니다.
    곧 이 믿음은 세례를 통해 의롭다함을 얻게 합니다.


    제가 보기에
    갈 3:26절만으로 이해한 믿음과
    갈 3:26-27절을 통해 이해한 믿음은 같지 않습니다.

    어떤 믿음이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인지요?
    그리고 어떤 믿음이 루터가 이신칭의를 말할 때 의미한 믿음인지요?

  • 23.12.01 07:49

    @노베
    제가 쉽게 설명드려 보겠습니다.
    우리는지붕에 올라 갈때 사다리를 이용하는데
    사다리가 안전하다, 또는 우리의 몸무게를 지탱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두 가지 믿음을 말씀드립니다.

    믿음(1) 사다리를 믿음으로 (사다리를 밟고 올라 가지 않아도) 지붕위에 있게 됩니다.
    믿음(2) 사다리를 믿음으로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서 지붕위에 있게 됩니다.

    이 두 믿음 중, 믿음(1)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을
    사다리에 대한 믿음(1)과 같다고 생각해 왔던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 잘 생각해 주시고 판단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의 긴 댓글들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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