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 공부
학생시절에 마주하는 여러 과목이 있지만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분야는 단연 영어 공부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까지는 전혀 생소하던 영어가 학생들의 성적을 좌우하는 중요한 과목이 된다. 다른 과목은 그나마 어느 정도 연계가 되지만 영어는 생소하여 알파벳을 읽고 쓰는 기초부터 배우게 된다.
마침 중학교에 입학 후 동년배인 이종(姨從)이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면서 고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선배로부터 영어 과외를 받는 자리에 동석하였다. 비교적 순조롭게 진도를 나가 학교에서도 재미를 느꼈다. 중 3 시절에는 친구를 따라 처음으로 영어 학원에 다녔는데 다분히 입시위주의 문제풀이 중심이었다. 고교 2학년 시절에는 당시 평화봉사단이던 미국인 선생님과 가까이 지내면서 나름대로 영어를 익히기도 하였다. 여하튼 이런 덕에 영어로는 고생을 덜하였다.
따지고 보면 주로 영어 실력이란 것이 문법과 독해 위주의 공부라 실무에서는 거의 무용지물이나 다름이 없었다. 원서를 읽기에는 다소 보탬이 되었지만 한 마디로 듣고 말하는 실력이 미흡하니 실생활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야말로 투자한 시간에 비해 효용성이 적은 비효율적인 교육을 받은 셈이다.
여하튼 모든 시험에 영어는 필수 과목인지라 수많은 각양각색의 수험생들을 힘들게 만들었다. 중, 고 시절에 종종 우리 집에 머무시던 영문학자이며 평론가인 「이 보영」교수님은 틈내어 선친의 영어 학습을 도와주셨다. 대학 교수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역시 요구되는 상당한 수준의 영어 실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자식 세대만해도 다소 학습여건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우리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주로 학원 혹은 과외 수업이 주를 이루면서 역시 수험위주의 학습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기업의 외국어에 대한 실무수요가 폭발하면서 해외 연수의 붐이 일었다. 그러다보니 아예 대학 졸업을 연기하면서까지 해외에서 수학하게 되었다. 그 영향으로 주변에는 상당한 어학 실력을 구비한 젊은이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최근에는 해외에서 조기유학을 한 젊은이들이 도처에 줄을 서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최근의 초(超) 신세대의 영어구사 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의 능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원어민의 교육을 받은 탓에 거리낌 없이 말하고 읽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고등학교 학생 시절을 훨씬 능가하는 실력이다. 물론 문법실력은 미미하나 대화를 나누는 정도는 이미 원어민의 수준에 준한다. 겨우 유치원생도 유명인사의 연설문을 암기하고, 두꺼운 원서를 마치 한글로 된 책을 읽듯이 독파한다.
이미 30여 년 전에 목도한 사연이 있다. 친구의 집을 방문하니 당시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그의 딸이 영어원서를 줄줄 읽고 있는 모습을 보고 놀랐었다. 세월이 흘러 그 손녀 딸 역시 초등학교 학생임에도 원서를 소설 읽듯이 하여 감탄하였다. 친구가 세월이 가면 요즘 아이들은 그런 능력을 발휘한다기에 그러려니 했었다. 몇 해가 지나지 않아 손녀/자에게서 동일한 모습을 목격하면서 교육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실감하게 되었다.
지나고 보니 가장 부러운 사람들이 젊은 시절에 해외로 유학을 하거나 외국의 공관에서 근무했던 동료들이었다. 어쨌거나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게 되니 영어에 관한 한 불편 없이 생활하고 지낸다. 또한 적어도 2~3개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니 비교적 쉽게 선호하는 직장을 구하는 데도 매우 유리하였다. 더구나 엄청난 유학비용과 시간까지 절감 할 수 있었으니 일석이조의 큰 혜택을 받은 셈이다.
요즘 부모들은 가능하면 아이들을 영어유치원에 넣으려 한다. 지금 초등학교 3학년인 손녀가 한글유치원을 들어가려는데 경쟁이 심해서 밤 세워 기다린 끝에 등록을 했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만에 그 유치원은 문을 닫고 영어유치원으로 변신하였다. 그만큼 사회풍조가 예민하게 변화하여 사교육 분야에 그야말로 부익부빈익빈의 보이지 않는 격차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과거 서양의 어린이들이 매우 어린 시절부터 「라틴어」 혹은 「희랍어」를 배웠다는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이다. 그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만한 여건이 주어졌거나 부모의 남다른 관심의 결과라고 간주하면 될 일이다. 그만큼 요즘 세대는 소수의 자녀 교육에 적극적으로 집중하여 미리미리 필수적인 분야의 부족함을 채우는 분위기다.
더구나 교육환경에 따라 어학을 배우는 과정도 상이하기 마련이다. 오래 전에 딸이 휴학을 하고 해외연수를 가겠다는 말을 듣고 정상적으로 졸업하여 취업을 할 것을 당부했었다. 그럴만한 여유도 없을뿐더러 여자아이를 밖으로 내보내는 것도 선뜻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본인의 노력으로 유학을 갔는데 영어공부에 매우 고생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어차피 거쳐야 할 과정인데 제 때에 청을 들어주지 못한 미안함을 지금도 간직하고 지내고 있다.
외손 둘은 미국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 연 2년 째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종로에 있는 한글학원을 다녔다. 그나마 한글을 익히게 되니 훨씬 대화도 부드럽고 우리 문화에 대한 인식도 많이 향상되었다. 반면에 역으로 미국에 들어가 영어를 배우고 오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어학을 배우는 필요를 느끼면서 여러 방안을 찾고 있는 것이다. 친손들도 아들의 해외연수를 이용하여 1년을 뉴욕에서 보내고 오니 훨씬 효과가 있음을 실감하였다.
하지만 어떤 이유를 들어 변명을 할지라도 이런 현상은 우리 교육의 큰 맹점이다. 원래 모국어에 능통해야 제대로 된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특히 자국문화에 대한 이해는 실 체험으로 축적되는 심연의 정수(精髓)로 채워지는 것이라서 때를 놓치고 나면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나아가 시험 위주의 문법 교육에서 벗어나 말하고 듣기 위주로 방법을 전환해야 할 것이다. 많은 시간을 쏟아 붓고도 유창한 영어를 할 수 없는 기성세대로서는 잘못된 교육을 과감하게 개선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아니면 그 방법이라도 찾아 다수가 공감하는 방안을 찾기를 원한다. 오죽하면 아예 영어를 제2의 모국어로 지정하는 방안까지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고 본다.
한편 주변의 많은 성인들도 각 종 언어공부에 매진하면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특히 방송통신대학에 등록하여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경외감이 든다. 촌음을 아껴 자신이 원하는 어학공부에 정진하는 그 마음 자체가 실로 보람 있고 아름다운 일이다.
어학 외에도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배우고, 서예, 미술, 음악 등에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는 정성이 알게 모르게 주변을 감화시키고 심신의 건강을 크게 증진시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도전자분들이 소정의 성과를 거두길 소망한다.
(2024.1.13.작성/1.17.발표)
첫댓글 남당, 항상 소중한 추억과 지식을 보내주어서 고마우이 삶이 질을 높이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듯하이 항상 건강하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