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가 셋인 동요 이야기, 이연실의 ‘찔레꽃’은 원래 동요였다
월간조선 글 : 장원재 (주)戰後70년 ‘생생현대사TV’ 대표
⊙ 동요 ‘기러기’, 작사자 윤복진 월북 후 이태선의 ‘가을밤’, 이연실의 ‘찔레꽃’으로 바뀌어
⊙ 윤석중의 동요 ‘하모니카’도 원곡은 윤복진 작품을 개사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과 학사, 런던대 로열헐러웨이 컬리지 박사(비교연극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경기영어마을 사무총장,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 MBC 라디오 앵커, 現 배나TV·(주)戰後70년 ‘생생현대사TV’ 대표 / 저서 《북한요지경;배나TV 장원재입니다》 《끝나지 않는 축구 이야기》 《논어를 축구로 풀다》 《장원재의 배우열전》
마지막에 ‘찔레꽃’ 노래가 나오는 영화 〈하모니〉.
한 곡에 세 제목, 세 편의 다른 가사가 있는 노래가 있다. ‘기러기’ 혹은 ‘가을밤’ 혹은 ‘찔레꽃’으로 알려진 노래다. 1920년에 나온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동요로, 최초의 동요라고 알려진 윤극영(尹克榮·1903~1988년) 작사 작곡 ‘반달’(1924)보다 4년 먼저 불렸다. 노래에도 운명이 있다면, 이 곡만큼 기구한 생애를 산 노래도 드물 것이다. 동요 한 곡에 한국 근현대사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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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박태준(왼쪽)과 시인 윤복진. 사진=대구시 |
작곡자는 박태준(朴泰俊·1900~ 1986년). 박태준은 대구 출생으로 기독교계 계성학교를 거쳐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숭실전문학교 재학 시절 서양 선교사들에게서 성악과 작곡의 기초를 배웠다. ‘뜸북뜸북 뜸북새~’로 시작하는 최순애 작사의 ‘오빠 생각’,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의 첫 선율이 감미로운 이은상 작사의 ‘동무 생각’ 등이 박태준의 작품이다.
박태준은 대구 계성과 평양 숭실 동창인 친구 윤복진(尹福鎭·1907~ 1991년) 시인의 가사에 곡을 붙여 50여 곡을 만들었다. 배경이 있다. 1920년대 중반부터 30년대까지, 소년문예운동(少年文藝運動)이 전 조선반도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다. 미래 세대를 근대인으로 육성한다는 민족운동의 일환이었다.
당시 10대 중반부터 20대 초반까지 분포한 소년소녀 문사(文士)들은 개화기 신문물과 근대적 신교육을 접한 첫 세대였다. 그들의 글에는 신선하고 감각적이었으며 구태(舊態)와는 확연히 다른 근대적 감성이 깃들어 있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그리고 《어린이》 《신소년》 《별나라》 같은 잡지들이 이들 소년소녀 문사들의 활동 무대였다. 윤석중, 이원수, 신고송, 최순애 등이 당시 전 조선에서 문명(文名)을 떨치던 소년 작가다. 문맹률이 높던 시절, 읽을 수는 없어도 들을 수는 있었기에, 수많은 작곡가들은 소년 문사들의 시(詩)에 곡을 붙여 수많은 동요를 지었다. 동요 보급은 근대정신의 보급과 동의어였다. 그들은 여러 단체를 만들어 전국 방방곡곡에 노래를 보급했다.
‘기러기’에서 ‘가을밤’으로
동요 ‘기러기’는 1920년에 나왔다. 가사를 보자.
울 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 길을 잃은 기러기 날아갑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넓은 하늘로/ 엄마 엄마 찾으며 흘러갑니다/
오동잎이 우수수 지는 달밤에/ 아들 찾는 기러기 울며 갑니다/
엄마 엄마 울고 간 잠든 하늘로/ 기럭기럭 부르며 찾아갑니다/
1절은 아들 기러기, 2절은 엄마 기러기 관점에서 부르는 노래다. 윤복진은 이 시를 지은 9년 후인 192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에 당선했다.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던 이 천재 시인은 6·25동란 때 월북(越北)했다. 그러고 북으로 가서 다수의 선전문학 작품을 발표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교과서에 실린 ‘기러기’의 제목과 가사가 바뀌었다. 1950~1960년대까지는 윤복진 가사본으로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는데, 필자가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이후 ‘기러기’는 ‘가을밤’으로 제목이 바뀌어 교과서에 실렸다. 작사자는 이태선(1914~2002년)이다. 다음은 이태선 작사의 ‘가을밤’이다.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초가집 뒷 산길 어두워질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가을밤 고요한 밤 잠 안 오는 밤/ 기러기 울음소리 높고 낮을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이정구와 이태선
이태선 시인은 종교인이기도 하다. 황해도 사리원 출생으로, 목회자로 활동하던 중 월남(越南)했다. 해방 후였다. 공산당의 박해에 생명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월남 후 수원, 서산 등지에서 사역하며 노래를 만들었다. ‘펄펄 눈이 옵니다~ 하늘에서 눈이 옵니다~’의 ‘눈’, ‘숲속의 매미가 노래를 하면~’의 ‘매미’, ‘시냇물은 졸졸졸졸~ 고기들은 왔다 갔다~ 버들가지 한들한들~ 꾀꼬리는 꾀꼴꾀꼴~’의 ‘여름냇가’가 이태선의 작품이다.
그런데 ‘가을밤’의 원작자는 이태선 시인이 아니다. 원산 출신으로, 윤석중(尹石重·1911~2003년) 선생과 동요 운동을 함께 하고 빅타레코드 소속 대중가요 작사가로도 일했던 이정구(李貞求·1911~1976년) 시인이 원작자다. ‘가을밤’은 이정구가 《조선일보》 1929년 11월 6일 자에 발표한 동시(童詩)다. 똑같은 시가 《동아일보》 1929년 12월 7일 자에도 실려 있다. ‘한 곳만이라도 실려다오’라는 심정으로, 두 곳에 동시 투고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불리는 가사는 원작과 2절 마지막 연만 다르다. 원작은 ‘누나 정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달만 봅니다’로 끝난다. 1절은 어머니, 2절은 누나를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가을밤’의 작사가가 왜, 어떤 과정을 거쳐 이태선 시인으로 바뀌었는지는 모른다. 단서는 있다. 이정구 시인도 월북했다는 사실이다. 이정구 시인은 해방 공간에서는 여운형(呂運亨)이 주도한 근로인민당에 입당, 문화분과에서 활동하다 6·25 때 월북했다. 그는 북에서도 작품을 발표했다. 그래서 고운 노래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에, 작곡가/작사가를 모두 아는 이태선 시인이 기꺼이 이름을 빌려준 것일 수도 있다.
‘찔레꽃’ 원작사자는 이원수
이 곡에 얹힌 세 번째 가사는 ‘찔레꽃’이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 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꾸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1975년 아시아음반에서 나온 〈이연실 고운노래 모음집 1〉에 실려 있는 노래다. B면 세 번째 곡이다. 타이틀곡은 ‘조용한 여자’, B면에는 ‘수양버들 춤추는 길에 꽃가마 타고 가네’로 유명한 ‘새색시 시집가네’도 들어 있다.
그런데 이 가사도 이연실의 100% 창작이 아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의 ‘고향의 봄’을 쓴 이원수(李元壽·1912~1981년) 시인이 1930년 11월 《신소년》 잡지에 발표한 시가 바탕이다.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오/ 언니 일 가는 광산 길에 피었다오/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있지/ 배고픈 날 따 먹는 꽃이라오/
광산에서 돌 깨는 언니 보려고/ 해가 저문 산길에 나왔다가/
찔레꽃 한잎 두잎 따 먹었다오/ 저녁 굶고 찔레꽃을 따 먹었다오/
‘기러기’ ‘가을밤’ ‘찔레꽃’은 모두 국민 애창곡이다. 한 노래가 완전히 다른 세 가사로 불리며 모두 사랑받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물 터이다.
‘하모니카’도 가사가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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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가 윤석중(뒤). 앞은 작곡가 김동진 선생. 사진=조선DB |
‘기러기’를 쓴 윤복진 시인의 대표작으로 ‘하모니카’도 있다. 작곡자는 홍난파(洪蘭坡·1898~1941년)다.
‘욕심쟁이 작은 오빠 하모니카는/ 큰 아저씨 서울 가서 사 보낸 선물/ 작은 오빠 학교 갔다 집에 오면요/ 하모니카 소리 맞춰 노래 불러요’가 원래 가사인데 친구 윤석중 시인이 해방 후 ‘우리 아기 불고 노는 하모니카는/ 옥수수를 가지고서 만들었어요/ 옥수수알 길게 두 줄 엮어가지고/ 우리 아기 하모니카 불고 있어요’로 개사했다. 이 노래도 역시 교과서에 실렸다.
실제로 결성해 대외 공연까지 했던, 청주 여자 교도소 수용자합창단 이야기는 영화로도 나왔다. 〈하모니〉(2010·감독 강대규)다. 영화 마지막에 ‘찔레꽃’ 노래가 나온다. 합창을 지도한 전직 음대 교수, 제자와 남편이 불륜 관계에 있음을 알고 둘 다 살해한 사형수 김문옥(나문희 분)이 사형장으로 갈 때 등 뒤에서 단원들이 울면서 이 노래를 부른다.
‘가을밤’은 상업적으로도 쓰였다. 감기약 판피린의 광고에 1절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이 나오고 ‘감기 조심하세요’라는 멘트가 이어졌다.
이정구의 ‘가을밤’이 처음 실린 지면은 앞서 얘기한 것처럼 《조선일보》 1929년 11월 6일 자 5면이다. 6면에는 김수향(金水鄕) 작시 민요 ‘이 땅 이 거리’가 실려 있다. 김수향은 ‘기러기’의 작사가 윤복진의 필명이다. 한 노래를 두고 각기 다른 노랫말을 지은 두 시인의 작품이 같은 날짜 같은 신문에 나란히 실려 있다는 것. 두 사람 사이의 기막힌 인연은 이미 이때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