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35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 기업은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13:14-15)그러나 여기서 발붙일 만한 땅도 유업으로 주지 아니하시고(행 7:5)
가나안 땅은 흔히 '약속의 땅'이라고 불린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그 땅을 그와 그의 자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에서 기인한다. 창세기에는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반복되어 있다. 여호와는 아브람에게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창 12:1)으로 가라고 했다. 그가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 때,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 12:7)고 하였고, 롯이 소돔 성을 포함하여 요단을 선택한 후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 13:15)고 약속하였으며, 아브람이 준비한 제물 사이로 자나가시며 언약을 체결한 이후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창 15:18)리라고 약속하였다. 그리고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개명한 이후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8)고 하였다.
이렇게 반복된 야훼의 약속이 과연 아브라함에게 성취되었는가? 그렇지 않다. 스데반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에서 "발붙일 만한 땅"(행 7:5)도 주지 않았다고 하였다. 아브라함이 소유한 가나안 땅은 아내 사라의 장례를 위해 매입한 막벨라 굴이 전부이다(창 23장). 그것도 '충분한 대가'(창 239)를 주고 산 땅이다. 그러면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되었는가? 아니 그 약속을 믿은 아브라함은 그 약속의 성취를 어떻게 이해하였을까? 그 약속을 믿었기에 어떻게 살았을까? 그것을 설명하는 구절이 히브리서 11장 9~10절이다.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이 구절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을 자기 소유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아들 손자와 함께 '장막에 거하였다.
창세기를 살펴보면 히브리서 11장의 설명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장막에서 살았다. 아브라함은 하란을 떠난 후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12:8) 쳤고, 롯이 떠난 이후 "장막을 옮겨・・・마므레 상수리 수풀에"(13:18) 거하였으며, 천사들을 맞을 때 “장막 문에 (182) 있었다. 이삭은 리브가를 "모친 사라의 장막으로 들 (24:67)였고, 그랄에서도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였다(창 26:17, 25). 야곱은 성장기에도 (25:27), 라반의 집에서 떠나올 때에도(31:25; 33~34),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에도(33:18~19), 아버지가 거하는 헤브론으로 갈 때에도(35:21)항상 장막을 치며 다녔다.
그러나 베두인들이 지금도 장막에서 사는 것처럼 유목민이 장막에서 사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경우를 살펴보면 꼭 그렇지 않다. 롯이 아브라함과 함께 있을 때는 '장막에 있었다(창 13:5 참조). 소돔에 이를 때까지도 '장막에서 살았다(13:12). 그러나 저 유명한 소돔성 사건의 기사에서 롯의 거처는 더 이상 장막이 아니다. 천사들이 방문하여 초대를 받은 롯의 거처는 '집'이었다(19:3). 그 '집’은 식탁도 있고(4절), 대문도 있었다(6절). 더군다나 롯은 천사들이 소돔을 방문하였을 때 '성문'에 앉아 있었다(1절). 구약 시대에 성문에 앉았다는 말은 그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창세기 19장에 나타난 롯의 삶과 창세기 18장에 묘사된 아브라함의 삶을 비교하면 현격한 차이가 있다. 두 경우 모두 '손님 대접'이다. 그러나 '주거 양식'에 따라 양상은 완전히 다르다. 아브라함은 '장막 문에 앉았다가(18:1), 롯은 '성문에 앉았다가(191) 손님을 맞는다. 아브라함은 장막에 들어가 요리하지만(186), 롯은 집으로 들어가 식탁을 베푼다(102) 아브라함은 나무 아래 쉬라고 하지만(18:4), 롯은 집으로 손님을 끌어들인다(193) 아브라함도 롯처럼 터가 있는 '집'에 살 수가 있었다. 그러나 장막에 거하며 이방인처럼 살았다. 이유는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히 11:10)이다 이 말은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한 가나안 땅의 성취가 지상의 땅이 아니라 “곧 하늘에 있는 것"(히 11:16)임을 깨닫고 그렇게 살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