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한 해 동안 나의 독서노트에는 78권의 기록이 남았다.
예년에 비해 전체적으로 책을 덜 읽었고, 독서 노트 기록에도 조금 게을렀던 것 같다. 어쨌든 독서노트의 힘은 대단하다. 대단치 않은 내용이더라도 일단 정리를 해놓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일년 동안 수많은 책을 읽고, 미처 기록으로 다 남기지 못한 것들도 많지만 어쨌든 강렬한 느낌을 준 책들은 이 목록 안에 포함되어 있기때문에 다시 한 번 나의 독서를 정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예전에 읽었지만 독서모임 등 어떤 계기로 인해 다시 읽은 책들도 여럿 있는데 분야별로 대표적인 책들을 소개해 본다.
인문사회 및 에세이 / "저자"에 집중하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우리의 상처가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김승섭 지음
김승섭 교수의 글은 언제나 깊은 각성을 준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이후 여러 권의 저작을 냈지만 한 번도 실망스럽지 않고, 이런 학자 혹은 이런 저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스해지는 그런 느낌. 연초에 그의 책 두 권을 나란히 읽고, 긴 게으름과 좌절감에 빠져있던 나를 채찍질하며 일으켜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희망은 없다'고 말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라는 그의 비판 앞에 고개 숙이며 새해를 시작했었다.
<나의 미국 인문 기행> (서경식) <평행과 역설> (에드워드 사이드/다니엘 바렌보임)
내 전작주의 작가 중의 한 명인 서경식 선생님. 2023년에 작고한 후, 신문에 연재 중이었던 글은 중단되었고 완결되지 않은 기행문이 유고집으로 묶여 나왔다. 미국을 방문했던 일이 이미 오래 전 옛일이어서 지금의 미국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들을 수 없었던 점이 아쉬웠다. 이 책에서 베르나르 뷔페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고 이어서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뷔페 전시까지 볼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또한 서경식 선생님과 연관해 빼놓을 수 없는 사상가인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을 읽으며, 두 분의 만남이 성사되지 못했던 아쉬움과 동시에 둘의 사상이 교차되는 지점을 생각해볼 수 있었던 건 좋았다. 김승섭과 서경식,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을 모두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은 바로 이런 질문이었다.
우리는 타인에 대해 어쩌면 이다지도 무지할 수 있을까?
<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 슈테판 츠바이크
역시 내 전작주의 작가인 츠바이크의 책을 북클럽에서 같이 읽게 되었다. 시대를 뛰어넘어, 언제 다시 읽어도 그의 글은 새롭고 지금을 살고 있는 내게 각성과 울림을 준다. 개인 한 사람의 삶과 운명을 서술하는데 그것이 고스란히 한 세대 전체의 운명이 되어버린 이런 역사적 인간을 읽는 일은 감동이고 감탄이다.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은 생의 마지막에 절망의 시대를 마감하며 써내려간 그의 성찰을 모은 짧은 모음글인데 얄팍한 기획이지만 저자의 글이 지닌 무게감이 워낙 커서 책이 나쁘게 여겨지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과거의 것은 모두 사라지고 성취된 것은 모두 멸망해버렸다는 것을.
뭔가 다른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시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지옥과 연옥을
지나가야 한단 말인가....그러나 모든 그림자는 궁극적으로 빛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벽과 황혼, 전쟁과 평화, 상승과 몰락을 경험한 자만이, 그러한 인간만이
진정으로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제의 세계
위에 읽었던 책들과 비슷한 인문사회 에세이로 두 권의 책을 소개한다. <비바레비뇽 고원-선함의 뿌리를 찾아서>(매기 팩슨)는 나치 기간 중에 마을 전체가 힘을 합해 집단적으로 유태인을 보호하고 숨겨주었던 선한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춤추고 싶은데 집이 너무 좁아서>(로힝야 난민활동가 공동 집필)는 간헐적으로 미디어에 등장하는 미얀마 난민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알게 해준 책이다. 불교국가인 미얀마에서 이슬람계 소수 민족인 로힝야족은 20세기 들어 미얀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집권한 정부와 이후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극우 민족주의자들로부터 엄청난 차별과 학대를 받았다. 시민권을 박탈하고 교육받을 권리와 국경을 이동할 권리, 토지소유 권리, 취업의 권리 등을 빼앗았다. 급기야 2017년 8월25일부터 9월24일까지 1만명 이상의 로힝야인들을 학살했고 2천명 이상의 여성이 강간당했으며 이들은 학살을 피해 방글라데시 국경 마을로 이주해 난민이 되었다. 현재 이곳 난민캠프에는 약 백만명의 로힝야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그중 절반이 여성이다. 책은 난민 캠프에서 자원활동하는 한국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기록이다.
그러나 로힝야 난민에 대한 시각은 두 가지가 공존하고 있다.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라는. 18-19세기 영국이 말레이반도를 식민지화하면서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내세워 미얀마 식민통치를 했기때문에 이들은 제국주의 앞잡이 기득권 세력이 되었고 그 시기에 미얀마인들에게 씻지못할 과오를 저지르고 폭력적 지배를 했다. 독립 후 미얀마인들이 로힝야족에게 반감을 갖고 이들을 축출하려 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과거 청산이었을 수 있다. 그 반목과 갈등이 극대화되면 잔혹한 학살로 이어진 것이다. 결국 원죄는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 식민주의에 있고 역사의 사슬에 매인 부족들간의 대립과 폭력은 외부자가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현실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폭력과 학살은 옳지 않지만 대물림되는 역사란, 이처럼 잔혹한 것이다.
첫댓글 역시...!!!저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ㅎㅎ 예전에 어머니랑 스테이하러 갔던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