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적인 것은 상보적이다
안녕하세요. Red nation 적나라입니다.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두 학자,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의 만남을 다룬 연극 코펜하겐을 보고 왔습니다.
이 연극은 약간의 배경지식을 알고 있으면 더욱 재미가 있는데요:)
위 그림 가운데 태극마크가 보이시나요?
1922년 노벨상을 받은 덴마크의 물리학자 보어의 가문 문장입니다.
보어는 전자가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둘다 갖는다는 상보성을 설명하면서,
주역의 태극과 음양이론으로 이를 설명하려 했는데요.
현대물리학을 양자역학으로 이끈 보어가 태극을 가문의 상징으로 넣은 이유가 흥미롭습니다.
보어의 연구소가 위치한 덴마크 코펜하겐은 1920년대 양자역학의 메카였습니다.
보어는 자신을 찾아온 많은 제자들과 토론하는 것을 즐겼고,
코펜하겐 해석 등 많은 연구성과를 거둡니다.
당시 아인슈타인은 보어의 이론을 반박하며, 둘의 논쟁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습니다.
보어와 아인슈타인
1924년 9월, 이러한 보어에게 독일의 천재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찾아오고,
아버지와 아들처럼 죽이 잘 맞았던 둘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서로의 연구에 도움을 줍니다.
하이젠베르크는 1927년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표하게 되고, 1932년엔 노벨상을 받습니다.
승승장구하던 하이젠베르크...
그러나, 1933년 독일에서 나치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에게도 위기가 찾아옵니다.
당시 양자역학은 유태인의 학문이라는 인식이 독일에 팽배했기 때문입니다.
2차 대전이 시작되자, 수많은 유태계 물리학자들이 미국으로 망명을 시도했지만,
하이젠베르크는 끝까지 고국 독일의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덴마크가 독일에 점령당하자, 보어는 게슈타포(독일 비밀경찰)에 감시당하며 살게 됩니다.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자, 미국과 독일은 양자역학의 핵분열을 활용하여 폭탄을 만들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학자들은 연속적인 핵폭발을 야기할 플루토늄을 자연상태에서 얻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또한, 뛰어난 유태인 물리학자들이 미국으로 망명했기에 독일은 원자폭탄을 만들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연극 코펜하겐 무대@동숭아트홀 5층
그런데, 1941년 2차대전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하이젠베르크는 덴마크를 방문합니다.
무슨 이유에서 방문을 했을까요?
1) 스파이, 미국의 원자탄 개발현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2) 과학윤리, 인류를 파괴할 수 있는 원자탄 개발을 양국 모두 하지 말자고 설득하기 위해서?
3) 고해성사, 살생무기인 원자탄을 개발하고 있는 양심의 가책을 옛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보어에게 털어 놓기 위해서?
이 연극은 이러한 의문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전자가 입자인지 파동인지 알 수 없고,
그것을 관찰하려고 하는 순간, 본질에 다가갈 수 없듯이(불확정성의 원리)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것도 불확정하다는 메세지를 던져줍니다.
물론, 하이젠베르크의 방문 이유 역시, 절대로 알 수 없다는 것도 함께...
물질을 이루는 전자가 불확정 하다면,
그러한 전자로 이루어진 이 세상 만물이 불확정, 불확실하다는 것.
단, 이를 그대로 받아드리고 사는 것이 현명한 삶의 자세라는 메세지를 연극이었습니다.
과학과 철학 그리고 예술(연극)의 접점을 경험했네요^^
[출처] 연극 코펜하겐 관람후기|작성자 적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