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정말 복 있는 자입니까? 눅11:27-28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에 고정관념을 내려놓아야 한다. 고정관념을 내려놓지 않으면 성경을 읽어도 주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지 않으면 아무리 성경을 읽을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다. 같은 성경을 읽어도 각종 이단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본문 27절은 “이 말씀을 하실 때에”로 시작하고 있다. ‘이 말씀을 하실 때’란 예수께서 바리새인들과 귀신을 쫓은 일로 논쟁을 하실 때를 가리킨다. 이때에 한 여인이 음성을 높여서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라고 했다. 왜 이 여인이 하필이면 예수께서 바리새인들과 논쟁하시는 것을 듣던 중 이렇게 질문을 했을까? 그것은 예수께서 그들의 비난에 논리적으로 대처하시는 것을 보고서 그분이 아주 대단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 예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신 일로 바리새인들과 논쟁하실 때에 감정적으로 대처하시지 않고 크게 두 가지로 그들의 주장에 반박하셨다. 하나는, 귀신들은 서로 다투면 서로 망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서로 쫓아내지를 않기 때문에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것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서 좇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당시 바리새인들도 귀신을 쫓아내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왜 예수님께만 비난을 퍼붓느냐는 것이다. 즉 축사사건을 인하여 예수님을 비난하는 것은 편파적이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바리새인들에게 대답하신 것은 정말 지혜롭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중 가운데 한 여인이 감동을 받고 예수님께 질문을 던진 것이다.
한 여인이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논리적으로 답변하시는 것을 듣고서 벌떡 일어나 뭐라고 외쳤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예수님과 혈연관계가 있기 때문에 마리아가 복이 있다는 것이다. 즉 마리아가 위대한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복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말은 맞는 말이다.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가 복이 있는 여인이라고 말하지 않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 우리도 자식이 훌륭하면 그를 낳은 부모가 영광스럽게 되지 않는가? 요즘에 무슨 방송인지는 모르지만 김건모, 박수홍, 허지웅 등 몇몇 연예인 모친이 나와서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분들이 다 70세가 넘는데 어떻게 방송에 나올 수 있나? 단지 그분들의 아들이 유명연예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그 누구보다도 복 있는 여인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여인의 말을 듣고 뭐라고 말씀하셨나?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28절). 이 말씀은 예수님을 낳고 젖먹인 마리아는 복이 없는 여인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만 복이 있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씀은 마리아도 복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는 더 복이 있는 자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복과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복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다섯 가지를 오복이라고 하며 이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 오복은 수, 부, 강령, 유호덕, 고종명이다. ‘수’는 오래 사는 것, ‘부’는 재산이 많은 것, ‘강령’은 건강하게 사는 것, ‘유호덕’은 덕을 좋아하여 선을 행하려고 하는 것, ‘고종명’은 하늘이 부여한 천명을 다 살고 죽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복이다.
본문에서 ‘듣다’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야 한다. 단지 귀에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고 마음을 집중해서 듣는다는 뜻이다. 이렇게 듣는 실례가 눅 10:39에 나온다.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리아는 말씀을 듣기 위해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들었다. 이처럼 말씀을 듣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라는 것이다.
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복이 있다고 할까?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한다. 여러분도 누구의 이야기를 사모하나?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는 돈을 주고 들으라고 해도 듣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을 다해 듣는다는 것은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듣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건성으로 듣는 사람은 결코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 그런데 말씀대로 살기 위해 듣는 사람은 그 말씀대로 살아간다.
여기서 우리가 말씀을 자주 듣지만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말씀을 듣는 태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말씀을 듣는 태도와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우리가 설교를 단지 예배의 일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말씀을 듣는다면 그 말씀대로 살아갈 것이다. 여러분은 어떤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나?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듣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
성경을 보면 솔로몬 왕의 아들 르호보암이 정사를 논의하기 위해 늙은 원로들을 초청했다. 원로들은 르호보암에게 솔로몬 왕이 세금을 많이 거둬서 백성들의 짐이 무거우니 적게 거둘 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젊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서 더욱 솔로몬 왕 때보다 더 세금을 거두라고 했다. 왜 르호보암이 원로들을 초청해서 의견을 들었지만 그들의 뜻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을까? 그가 정말 원로들의 말을 듣기 위해서 그들을 초청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왜 박근혜 대통령이 2차로 대국민담화를 통하여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지만 야당과 국민들은 더 반발을 했는가?(촛불집회) 진정성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즉 진짜 잘못을 인정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독단적으로 총리를 임명하고 계속해서 불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복된 일이지만 순종하기 위해 듣지 않는다면 이는 진짜 복된 것이 아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복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열심히 들어도 지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라고 말한 것이다. 아무리 말씀을 많이 들어도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이는 헛된 일이다. 오히려 말씀을 많이 들음으로 지식이 생기게 되어 교만하여 멸망에 이를 뿐이다(고전 8:1). 마태복음 21장에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포도원 비유’ 가 나온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하자 그렇게 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가서 일하지 않았다. 그런데 둘째 아들에게 똑 같이 가서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하자 처음에는 싫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뉘우치고 가서 일을 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서 “그 둘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였느냐”라고 이렇게 물으셨다. 예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유대인들이 택한 백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지만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아 그 복이 이방인에게로 넘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어도 순종하지 않으면 그것은 복이 아니라 화가 된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복이 있는 것이다.
디도서 3:8-15에서 바울은 디도에게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9절)고 하였다. 즉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선한 일을 하게 하는데 힘을 써야지, 그것은 하지 않고 다른 일에 집중하는 것은 어리석고 헛된 일이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결론은 무엇인가? 우리가 해야 할 선한 일, 즉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그가 어떤 일을 하는 것은 헛된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명령에 불순정하면서 다른 것을 열심히 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야고보는 우리에게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행함이 없다는 게 무슨 뜻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은 헛된 것이다. 그래서 야고보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고 말한 것이다. 성경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는 성공한 자이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실패한 자라고 힘주어 말씀하고 있다. 왜 에덴동산에 살고 있던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추방을 당했는가? 마귀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사탄의 말에 순종한 결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정말 큰 복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복은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복이 아니다. 이제 복의 개념을 바꿔야 한다. 세상 사람들처럼 돈이 많고 권력이 많고 명예를 얻은 것을 복을 받았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는 실패한 삶같이 보였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자가 진정으로 복 있는 자이다. 우리는 받은 복에 만족하며 안주하며 멈추지 말고 더욱 더 삶 속에서 말씀대로 살아가므로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최고의 복된 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