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산 항일투쟁유적지 기념비
2009년10월 17일 북만주의 밀산시 조선족 마을 십리와 뒷동산 소나무 숲 언덕에 세워졌다.기념비 둘레삭은 산동성에서 대리석을 가져오고 기념비는 사천성에서 백옥돌을 높이 2미터, 너비 1미터로 깎아 한글비문과 중국어비문을 함께 새겨넣었다.
서일총재항일투쟁유적비
광복70주년을기념하여 서일총재의 나라독립과 민족해방을 위해 싸운 업적을 기리기위해 위해 2015년 8월 2일, 서일총재 순국지인 밀산시 당벽진에 서일총재항일투쟁유적비가 제막 2000여평방미터의 부지에 길이 6.5미터, 높이 2.5미터, 두께 1미터, 무게가 40여톤에 달하는 화강암으로 구성되였다
밀산 한흥동
문헌상 밀산현 한흥동
흑룡강성 밀산시 백포자향 봉밀산 일대
黑龙江省 密山市 白泡子乡 蜂蜜山 一带
1910년대 북만주 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 기지가 되었던 곳
밀산 한흥동은 1909년 여름부터 항카호 북쪽의 중국령 밀산부 봉밀산 일대에 한인들을 집단이주시켜 만든 마을이다. 특히 이승희는 봉밀산 아래 45만 평의 토지를 사들여 한흥동 마을의 기조를 만들었다. 한인자제 교육을 위해 한민학교가 설치되기도 하였다.
대한독립군단 결성지
문헌상 흑룡강성 밀산현 당벽진
흑룡강성 밀산시 당벽진 봉밀산
黑龙江省 密山市 当壁镇 蜂蜜山
1920년 일본군의 간도출병 이후 한국독립운동 단체들이 대한독립군단을 결성했던 곳 1920년 10월 일본군의 간도출병 이후 만주의 독립군들이 러시아로 이동하기 전에 독립운동단체를 통합하여 대한독립군단을 결성하였다. 대한독립군단의 총재는 서일, 부총재 홍범도와 김좌진, 총사령 김규식, 참모총장 이장녕,지청천 등이 임무를 담당하였다. 대한독립군단에 속하는 독립군은 3,500명으로써 3개 대대로 편성되었다. 대한독립군단은 봉밀산 마을에서 결성되었으나, 정확한 지점을 확인되지 않는다.
십리와농장
문헌상 밀산시 십리와
흑룡강성 밀산시 흥개진 흥농 육대
黑龙江省 密山市 兴凯镇 兴农六带
1910년대 홍범도가 군인을 이끌고 밀산으로 들어와 봉밀산 아래에서 개척했던 농장 1910년대 이승희를 비롯하여 안창호의 권유를 받은 김성무 등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새로운 독립운동기지를 개척하기 위해 밀산으로 들어왔다. 이때 홍범도도 군인을 이끌고 봉밀산으로 들어왔다. 봉밀산 주민들의 생활을 걱정하여 군인들을 각 호마다 분배하여 그 주인집에서 일을 하게 하고, 백포자 등지에 학교를 세웠다. 또한 '우리 동무회'라는 청년단체를 조직하여 청년 교육과 독립군의 양성에 주력하였다. 이때 홍범도와 함께 활동했던 인물로는 이중집ㆍ정태ㆍ김용ㆍ문덕빈 등이었으며, 홍범도는 군인들을 동원하여 십리와에 농장을 개척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홍범도와 그의 의병부대원들이 개척했다는 십리와 농장은 정확한 위치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다만 이전에는 십리와에 늪지대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인근 마을에 거주하는 수동진(조선족, 조사 당시 68세)노인의 증언을 토대로 십리와농장의 실체를 추측해 보면, 오래 전에 마을 사람들로부터 홍범도가 경영했던 농장과 관련하여 ‘홍범도 도랑’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십리와는 특정 지명이 아닌 부근의 늪지 지역을 아우르는 명칭이었으며, 이 지역은 상습침수구역이었다고 한다. 십리와를 가로지르는 하천은 斐德江이며, 십리와 일대는 완달산맥의 줄기, 봉밀산은 장백산맥의 여맥이라고 한다.
밀산 무관학교 터
문헌상 밀산현 봉밀산자
흑룡강성 밀산시 당벽진 봉밀산
黑龙江省 密山市 当壁镇 蜂蜜山
1920년대 독립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밀산지역에 설립되었던 무관학교 터 봉밀산은 밀산벌 동남쪽 흥개호 연안에 위치한 해발 574m의 산으로, 1913년 이승희와 이상설의 후원으로 밀산무관학교가 설립되었다. 1914년에는 홍범도가 이곳에서 교관으로 활동하였다. 무관학교는 봉밀산 뒷산으로 이 근처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밀산 백포자
문헌상 밀산현 백포자
흑룡강성 밀산시 백포자향 백포자 5대
黑龙江省 密山市 白泡子乡 白泡子 5队
현천묵이 대종교 신도들을 중심으로 대한군정서를 재정비하여 신민부의 탄생을 이끌어 냈던 곳 현천묵은 대종교 신도들을 중심으로 밀산 백포자에서 대한군정서를 재정비하였다. 이 대한군정서가 신민부 창출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백포자에는 과거에 늪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과거의 백포자는 현재 백포자향 백포자 5대이다.
당벽진 대종교 총본사 터
문헌상 밀산 당벽진
흑룡강성 밀산시 당벽진 黑龙江省 密山市 当壁镇
1928년부터 1934년까지 민족종교인 대종교 총본사가 있었던 곳
1926년 장작림은 일본의 압력을 받고 '대종교포교금지령'이 내렸다. 이에 따라 동ㆍ서ㆍ북 3개의 도본사가 해체되었고, 서울의 남도본사마저 폐쇄되었다. 대종교는 이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1928년 총본사를 밀산현 당벽진으로 옮기고, 1934년 영양현 동경성으로 이전할 때까지 6년 동안 이곳에서 활동하였다. 당시 대종교 총본사가 있었던 곳은 밭으로 변하여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