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해전”Northern Limit Line
한국영화, 장르:전쟁드라마, 개봉:2015.06.24
감독,각본:김학순, 제작:로제타시네마,
주연:김무열,진구,이현우, 관객:6,044,956명(2017.08.01.현재)
1. 연평해전(延坪海戰)
1951년11월, 남북간 군사분계선 설정 당시 육상경계선에 치중한 양측은 육상합의는 일괄처리 되었으나 동서해안의 해상경계선은 명시적인 합의없이 종결되었다. UN은 통상적인 국제법에 따라 영해 3해리를 기준으로 연평도, 백령도 등 5개도서와 북한지역과 중간선을 기준으로 북방 한계선을 설정하였다. 그러나 UN협정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은 그 효력을 부인하고 12해리를 주장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해상 긴장은 지속되었고, 자신들의 유리한 측면을 확보할 목적으로 NLL침범을 습관적으로 하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➀ 제1연평해전
1999년 6월7일,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서북방향 10km해상에서 북한은 꽃게잡이 어선 보호명목으로 경비정 1척의 북방한계선(NLL)을 3.5km침범하였다. 8일까지 북한어선 15척이 NLL 4~7km까지 침범하였고 북한 경비정 또한 3~4회 침범과 철수를 반복하며 자국 어선을 보호하고 있었다. 9일부터 북한은 경비정을 10척으로 대폭 증강하고, 어뢰정까지 합류하며 NLL 7~13km까지 침범하는 불법을 반복하였다. 11일에는 북한경비정 4척이 NLL 13.9km까지 침범하여 고속정에 충돌을 시도하는 범죄 행위를 시작하였다.
이에 우리 해군이 국제법을 근거로 고속정 2개 편대의 신호로 철수를 요구했으나 의도성이 있다는 판단하에 진입차단 기동작전을 수행하였다. 9일 이후 북한 경비정이 10대로 증강하자 우리 해군은 초계함 2척과 고속정 5개 편대를 현장에 즉각 투입하였다. 11일, 북한경비정 4척이 NLL 13.9km까지 침범하여 고속정에 충돌을 시도하였을 때 우리 해군은 피하지 않고 선체를 충돌시키는 함미충돌작전을 실시하며 밀어내는 공격을 가하였다. 이로 인해 북한은 중형 경비정 2척이 대파 당하고 2척은 손상의 피해를 입고 후퇴하였다.
6월15일 오전8시45분, 북한경비정 4척이 다시 NLL을 침범해 왔다. 다시 재충돌을 시도함과 동시에 오전 9시4분에는 어뢰정 3척이 추가로 합류하며 NLL을 침범하였다. 이에 대해 우리 고속정 6척이 역충돌을 시도하며 대응하자 북한함정에서 수류탄4~5발을 투척하였고 인근 경비정 3척까지 추가 투입된 가운데 소총사격과 함께 25mm 기관포 발사를 하였다.
이에 대한 우리 해군의 대응은 40mm와 76mm 기관포로 응사하여 교전 14분만에 북한 어뢰정 1척을 침몰시키고 대형 경비정을 대파하였으며, 중형 경비정 2척 반파, 소형 경비정 2척 파손이라는 승전을 기록했다. 북한군의 인명피해는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았으나 30여명이 사망하고 70여명이 부상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에 대한 우리군의 피해 상황은 4척의 고속정과 1척의 초계함 기관실과 선체 일부가 파손되었고 군인 9명이 경상을 입었다. 북한은 NLL을 무력화 시키고 12해리 영해를 주장하려는 불순한 의도에 의한 침범으로 해석한다.
➁ 제2연평해전
1999년 6월의 제1 연평해전에 이어 2002년 6월29일 오전 9시54분, 북한경비정이 연평도 서쪽 7마일 해상에서 NLL을 침범하였다. 이에 우리 해군은 참수리357호와 358호 등 고속정 2대가 출동하여 대응기동과 함께 경고방송을 하였다. 오전10시25분, 아무런 징후가 없었던 북한 경비정에서 기습적으로 참수리357호에 85mm포를 중심으로 집중 포사격을 가해왔다. 이로 인하여 우리 측 해군 고속정과 인근 경비 초계함과 참수리급 경비정 4척이 교전에 합류하여 대응사격을 가하였다. 북한 경비정이 퇴각한 10시56분까지 31분간 계속된 양측의 교전으로 북한 경비정 초계정 등산곶 684호 외부갑판이 대부분 파괴되어 반파되었다. 또한 북측 인명 피해로는 13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측도 윤영하 대위(소령)를 비롯하여 한상국 상사, 조천형, 황도현,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등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당하였으며 참수리357고속정은 침몰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해군 교전규칙은 신속한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기존 ➀경고방송-➁시위기동-➂차단기동(밀어내기작전)-➃경고사격-➄조준격파사격의 5단계 소극적 방어적 대응에서 ➀시위기동-➁경고사격-➂조준격파의 3단계 적극적 대응개념으로 절차를 최소화 한 것이다.
2. 영화 “연평해전”
영화 연평해전은 대한민국 청년, 남편이며 아들이고 형이거나 동생인 청춘세대의 실화다.이것은 제2 연평해전에 참전한 대한민국 해군의 가치와 위상과 신념을 전한다. 윤영하 대위(소령), 한상국 하사(상사), 조천형 하사(중사), 황도현 하사(중사), 서후원 하사(중사), 박동혁 상병(병장) 등 전사자들을 위로하고 이들에 대한 한없는 존경심을 표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참수리357호 정장 윤영하 대위, 조타장 한상국 하사, 21포 사수 조천형 하사, 22포 사수 황도현 하사, 62포 부사수 서후원 하사, 의무병 박동혁 상병이 참전한 연평해전은 2002년 월드컵 열기가 한창인 6월의 마지막에 일어난 전투다. 6월29일은 한국과 터키의 3,4위전 경기가 열리던 날이었다. 월드컵의 열기는 대한민국을 온통 정지시켰다. 월드컵“응원녀”(정예지역)가 찬란한 무대를 띄우며 청년 희망의 날개를 펼치고 있다.
해군의 일상은 언제나 복잡하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생명선인 배의 건강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 보다 더 정밀하게 관찰하고 세심하게 살핀다. “갑판장”(김하균역)은 언제나 고참역이다. 자신의 분신과 같은 배에 대한 향수가 강하다. 그들은 지금 북한이 보이는 지역에 서 있다. 또한 그들이 지켜야 할 대한민국 국민들도 바로 눈앞에서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국민의 일상생활의 평화로움은 바로 이들을 지키는 대한민국 해군이 있기 때문이다. 참수리357호 장병들에게도 2002년 월드컵은 군생활에 있어서 즐거운 낙이다. 친구들은 지금 사회 곳곳에서 월드컵 열기에 취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사회에 남아서 일을 해야 하고 누군가는 나라를 지켜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실제상황이다.
6월29일 오전10시경, 서해 연평도 해안에서 NLL을 침범한 북한의 등산곶 684호가 대한민국 참수리 357호 고속정을 향하고 있다. 북한 “고위간부”(최종환역)는 처절하게 대패한 제1연평해전의 트라우마를 상기하며 반드시 승리할 것을 전한다. 서로의 경계는 눈빛부터 다르다. 북으로 되돌아 갈 것을 경고하는 방송을 무시하는 듯한 북의 상황은 늘 그렇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기습함포공격이 시작되었다. 우리에게는 교전규칙이 있다. 경고방송과 시위기동과 차단기동을 해야 경고사격이 가능하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전투의 현장에서 “윤영하” 대위(김우열역)는 전열을 가다듬고 사격명령을 감행한다. 한치의 후퇴가 없는 접전은 30분동안 치열하게 일어났다. 1년같은 30분이 지난후 참수리 357호는 침몰하고 윤영하 대위마져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한상국” 하사(진구역)와 “박동혁” 상병(이현우역) 또한 전투와 의무활동으로 목숨을 잃어야 했다. 21포와 22포 사수, 그리고 62포 부사수를 담당했던 “조천형” 하사(김지훈역)와 “황도현”하사(장준학역), 그리고 “서후원” 하사(주희중역)도 전투의 주력 부대원으로서 결사항전을 거듭했지만 자신들의 목숨을 끝내 지키지는 못했다.
군인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아들이고 친구이며 가족이었던 사람들이다.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면회온 “여친‘(정주리역)과 행복한 일상을 이야기 했었다. 홀로 계신 어머니를 그리워 하며 제대 후에는 더 잘해 드리고 싶었던 간절함이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사투를 벌이는 현장에서 보여주는 끈끈한 전우애는 휴머니즘의 극치를 보여준다. 나라를 지킨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목숨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그러나 나라를 지키고 옆에서 함께 싸우고 있는 전우를 지킨다는 ”사랑“이 목숨을 헌신하게 하는 것이다.
영화는 끝이나고 세월은 흘렀다. 사람들은 2002년 하면 월드컵을 먼저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잊을 수 없는 평생의 상처가 되었다. 물론 그들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해군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연평해전에서 무엇을 생각해 보아야 할까? 나라를 위해 헌신한 장병들을 통해 복음과 신앙을 위해 헌신하며 목숨을 다하여야 하는 우리의 사명을 기억한다. 또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다한 분들의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그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 2002년에는 월드컵도 있었지만 나라를 지킨 연평해전도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기억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