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적으로 생각하기>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산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먹고 잠자고 움직이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 즉 사회 속에 존재하는 인간으로서 어떤 태도나 관점 그리고 행동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실천적 선택을 결정하는 과정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어떤 음식을 먹는가에는 그 사람의 취향과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드러나며, 육체적 단련이나 다이어트는 사회적 시선에 반응하려는 욕망이 잠재되어 있다. 사람들의 행위는 결코 진공의 공간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어떤 판단의 근거가 없다고 할지라도 그를 지배하는 것은 습관적이며 생물학적 욕구에 따른 결과이다. 즉 모든 행동은 어떤 관점 또는 힘의 영향력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된다. 습관적이고 욕망적인 한계를 넘어 세상에 대한 지혜를 넓히기 위해서는 특정한 영역의 시선에 대한 습득이 필요하다고 권장되기도 한다. 과학적인 사고는 혼란스러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명백하고 분명한 증거와 증명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고, 예술적인 사고는 인간의 행위가 단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 아닌 내면에 담긴 감성적 요인의 표출로 보완되며 이러한 것들이 삶의 균형을 잡아준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종교적 사고 또한 알 수 없는 신비에 대한 겸손과 함께 구체적인 현실을 넘어서는 정신적 영역에 대한 관심을 확장시킨다. 어떤 관점이든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할 때 우리의 삶은 풍부해지고 깊은 통찰의 영역으로 확장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관점은 ‘사회학적 관점’이다. 모든 관점의 장점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지만, 하나의 관점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습득은 더욱 중요하다. 하나의 영역에 대한 습득은 다른 영역에 대한 이해로 확산되며 다른 것들에 대한 비교를 가능하게 하는 준거기준을 만들어낸다. ‘사회학적’인 것에 대한 관심은 철학적인 것에서 시작되었다.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최고의 관점은 수학적-과학적 관점이다. ‘디지털 문명’은 바로 그러한 관점이 구현된 세계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수학적으로 현상화시켜 그것을 통해 세상의 질서를 파악하는 이러한 관점은 효율성과 정확성 그리고 보편성이라는 힘을 통해 모든 영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철학적 관점’은 이러한 힘에 일정한 제동을 가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각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수나 현상을 통해 설명할 수 있을지라도 결국 인간을 지배하는 사고나 결정은 인간의 의지와 자유에서 파생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수많은 진실이 경쟁할 때 그것에 대한 판단은 인간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사실을 통합하고 재구성하여 올바른 판단의 기초를 제공하는 철학적 관점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철학적 관점은 보편적인 인식과 윤리적 행동의 방향을 제시하기 보다는 ‘회의주의적 시각’의 늪에 빠져버렸다. 특히 20세기 이후 철학을 지배한 논리주의와 해체론은 보편적 인식의 불가능성과 존재의 불투명성 그런 사유의 결과로 인간에 대한 회의와 불신을 만들어냈다. 어쩌면 철학은 인간을 부정하면서 존재하고 사유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런 시각이 인간의 오만을 경계하고 인간의 한계를 반성하는 계기를 제공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인간이 나아갈 방향과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지침은 사라진 것이다. 또한 철학의 논리는 지극히 추상적이어서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이러한 개념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어려움을 부가시켰다. 어쩌면 내가 가진 사고의 부족이며 인식의 한계에 따른 결과일지 모른다.
철학에 한계 앞에서 힘들어 할 때, 만난 것이 ‘사회학’이다. 사회학의 장점은 그것이 다루고 있는 주제가 구체적인 현실에 대한 것이라는 점이다. 비록 어렵고 복잡한 논의가 진행된다고 할지라도 내용에 대한 경험적 이해를 바탕으로 좀 더 손쉬운 접근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복잡한 개념과 만들어진 용어를 통해 관념적으로 진행되는 철학적 진술과는 다른, 생생한 표현을 만난 것이다. 사회학이 다루고 있는 것은 인간과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이다. 비록 삶을 결정짓는 내면의 매커니즘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핵심적인 관점은 인간의 구체적인 행위와 실천에 포커스가 맞쳐져 있는 것이다. 인간과 사회라는 영역 속에는 우리가 만나게 되는 다양한 영역이 논의 주제로 등장하게 된다. ‘나’라는 인간이 ‘타인’과 만나면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갈등과 그러한 갈등 속에서 이루어지는 선택과 자유 그리고 연대가 다루어지며, 나와 타자를 경계짓는 실제적 상황 속에서 형성되거나 파괴되는 관계의 형태를 파악한다. 그러한 접근을 통해 실제로 살아가는 인간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 팀 베이는 『사회학적으로 생각하기』에서 사회학을 “이해와 설명의 과정을 통한 경험의 해석”이라고 말했다. 핵심은 인간의 경험이다. 그것도 구체적 현실에 나타난 경험이다. 경험에 대한 접근은 우선 과학적인 방법을 요구한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자료와 정보를 획득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팩트’에 기초한 왜곡과 변조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론이 이때 중요하다. 사회학의 장점은 이러한 과학적 기초 위에서 철학적 사유를 전개한다는 것이다. 획득한 자료와 정보는 사실적인 판단을 넘어, ‘통찰’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즉 ‘철학적 사유’가 전개되는 것이다. 철학책을 읽을 때와 사회학 책을 읽을 때, 발견하는 극명한 차이는 해석적 전개의 논리가 다르다는 것이다. 철학책의 내용은 명확하게 잡히지 않는다. 그것은 추상적인 영역이 많은 부분을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사회학책은 현실의 자료를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하기 때문에 최소한 논의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 사회학은 이러한 논의를 통해 경험을 이해하고 설명한다. 거기에서 끝나는 것일까? 사회학의 중요한 과제는 이러한 연구를 통해 실용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논의에 그치는 철학적 접근과는 달리 구체적인 실천의 방법을 구현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이론이 실천으로 변환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현실은 실제적인 변화 속에서 재구성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어떤 특정한 관점을 가진다면 ‘사회학적 관점’이 가장 효과적인 접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과학과 철학을 종합하고 그것을 통해 구체적 실천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관념성을 극복하고 현실의 변혁을 위한 접근을 가능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합’이라는 성격이 사회학 공부를 어렵게 한다. 사회학에 필요한 자료를 얻기 위한 방법론과 해석법 그리고 이해와 통찰을 위한 철학적 훈련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회학적 관점’은 철학책이나 과학책(통계학, 방법론)을 읽는 이유를 명백하게 제공해주는 장점이 있다. 최근 세미나 활동을 통해 난해한 철학책을 읽는 모임이 많다. 철학책의 핵심적 개념을 파악하고 의미를 추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임을 보면 책의 무게에 짖눌리다 보니 사회적 실천에 대한 시각을 점점 잃어버리게 되는 현상을 가져오지 않는가 싶다. 사회학적 문제 연구를 위한 기초로서 철학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 그 자체에 대한 이해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어쩌면 폐쇄된 지적만족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되는 것이다.
바우만은 책 속에서 타인을 배제하고 경계를 짓는 인간의 행동을 사회학적으로 접근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스스로 인간임을 인식하는 한 도덕적 존재가 된다.” 이러한 결론이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사회적 경험이 철학적 주장이나 방향과 일치할 때만이 인간의 선택과 결정은 좀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명백한 증거나 구체적 경험에 대한 이해를 통한 철학적 통찰을 추구하는 ‘사회학적 관점’이 어렵지만 따라 가야할 연구태도인지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사회학책’이 ‘철학책’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사실이다.
첫댓글 -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사회 속에 존재하는 인간으로서 어떤 태도나 관점 그리고 행동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실천적 선택을 결정하는 과정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 사회학적으로 생각해서 현실을 이해하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공부하는 삶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