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수업80 수행자의 먹고 사는 문제 #축생의고통 #삶의질 #음식의변화
"수행자의 삶에서 건강한 식습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음식을 통해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이는 핵심 요소이다."
10:16 잡아먹힐까봐 움츠리며 떨고 있는
모든 축생들이 두려움에서 해방되게 하시고
굶주린 아귀 귀신들은
북구로주에 사는 이들처럼 행복해지게 하소서!
#축생의고통
붓다는 의식의 특징을 기준으로 심리적 윤회인 찰라윤회를 구분합니다. 항상 공포와 어리석음에 시달리는 마음은 축생입니다. 마음이 결핍과 탐욕으로 가득하다면 이는 아귀입니다. 불만과 분노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 순간은 아수라입니다. 일상의 마음을 탐진치의 순환으로 가득 채운다면 지옥입니다. 정신의 흐름이 선악 반반 정도 되면 인간이라고 하고, 선이 우세하지만 교만하다면 천상이라고 합니다.
천상을 제외한 모든 윤회 세계에 해당되는 공통의 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입니다. 왜 '먹고 산다'는 표현을 쓸까요? 먹어야 살기 때문이겠죠? 다른 윤회의 고통과 달리 축생은 인간이 직접 목격할 수 있습니다. 가축을 통해서 또는 야생의 동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직접적으로 관찰이 가능합니다.
축생을 어리석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대뇌피질이 이성 활동의 도구이고, 이를 잘 활용하면 지혜가 생깁니다. 그런데 축생 대부분은 이 기간 자체가 부족합니다. 지혜가 샘솟을 수가 없죠. 더불어 공포에 시달립니다. 축생이 겪는 공포라는 것은 약자와 강자 모두에게 생존하지 못할 것에 대한 공포입니다. 약자는 언제 잡아 먹힐지 몰라서, 강자는 언제 잡아 먹지 못하게 될지 몰라서 공포에 떱니다. 먹어야 사니까요.
인간은 축생인가요? 붓다의 기준에서 본다면 NO! 아닙니다! 이유는 위의 기준을 근거로 합니다. 첫째, 성능 좋은 대뇌피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서로 잡아 먹는 공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습니다. 단어를 조금 바꿔보겠습니다. 인간은 동물인가요? 이에 대해서는 YES!와 NO!가 공존합니다. 분명히 동물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동물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죠. 동시에 그 특징을 살리지 못해 동물성을 버리지 못한 부분도 또한 존재합니다. 이 애매한 부분이 바로 먹고 사는 문제입니다.
10:17 관세음보살의 자비로운 손에서
흘러나오는 감로의 물줄기로
아귀들이 굶주린 배를 채우고 목욕하며
항상 상쾌하고 청량함을 얻게 하소서!
#삶의질
현대인들은 축생 그리고 동물의 삶에 비해 훨씬 더 안전하게 생존이 보장됩니다. 물론 같은 인간끼리 비교한다면 결론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 한국사회의 인간은 분명히 현 시대의 세계 어느 나라의 인간들보다 더 안전하게 생존을 보장 받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를 통해 보더라도 가장 생존이 용이한 상황입니다. 동물을 비롯한 윤회계의 지옥, 아귀, 아수라와 비교한다면 정말 좋은 조건입니다. 사실상 동족을 잡아 먹지 않아도 되는 상황, 이것 자체가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입니다.
생존을 확보하기 위해서 분명히 노력해야 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의무이니까요. 하지만 생존이 확보된다면 이후에는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목적과 초점이 변화해야 합니다. 생존이 육체를 섬기는 삶이라면, 경험의 질을 높이는 것은 지혜를 섬기는 삶입니다. 지혜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통해 생존을 넘어서 건강과 활력 그리고 안심을 증득하여 가족과 지인 그리고 사회에 책임을 다하는 과정입니다.
#음식의변화
생존을 위한 식사법은 미식, 폭식과 대식입니다. 미식은 좋은 것을 먹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근본은 먹는 것을 좋아하는 습성입니다. 먹는 것을 좋아해야만 먹고 이를 통해 살았기 때문에 필요했던 본능이죠. 폭식과 대식은 안정적으로 음식을 구하지 못했던 상황이 반영된 것입니다. 먹을 수 있을 때 먹어 놓는 능력이 생존 확률을 높여주기에 필요했던 본능입니다. 그래서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일수록 통통하고 뚱뚱한 것이 부와 미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현대에는 생존이 아니라 삶의 질을 중시합니다. 그렇기에 비만은 사실 가난의 상징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영양가가 좋지 않은 음식을 먹는다는 지표이고, 식습관이 정제되어 있지 못하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식습관을 갈고 닦는 것이 중요합니다.
논전에서 보살은 공덕을 회향하여 중생이 먹고 살 수 있도록 발원합니다. 더불어 중생이 먹고 살 수 있도록 돕겠다고 다짐하고 실제로 봉사하기도 합니다. 수행을 시작하는 초심보살에게 이 회향은 타인보다는 자신의 식습관을 교정하는데 활용되어야 합니다. 먹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사념처 수행이고, 더불어 수행의 근간을 이루는 육체를 유지 관리하는 비결이며, 좋은 컨디션을 회복하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입니다. 수행도 결국 먹고 사는 문제의 하나이고, 먹고 살만 해야만 할 수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먹는 것을 조절하지 못하는 자는 비구가 아니다."
붓다는 수행자들에게 이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는 온 삶을 바쳐 목숨 걸고 수행하는 비구들에게 가장 모욕적인 말입니다. 비구로써의 특정 행위가 아니라 정체성을 부정 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붓다는 먹는 문제를 자주 체크하셨습니다. 먹어야 할 때 먹는 것, 폭식을 피해 필요한만큼 먹는 것, 맛있는 것을 쫓아다니는 미식이 아니라 주어진 것을 평등하게 먹는 것까지 모두 체크하셨습니다. <우울을 지우는 마법의 식사>의 저자는 먹는 문제가 삶의 질의 중심인 마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렇게 말합니다.
"사소한 일로 기분이 나빠진다, 무슨 일을 하려고 해도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짜증이 나서 주위에 화풀이를 한다, 아침에 개운한 컨디션으로 일어날 수 없다...식사하는 방법이나 영양의 섭취 방법은 당신이 기대하는 이상으로 마음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생존이 어느 정도 확보되었다면 이제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식사를 위빠사나 주제로 삼아 관찰하고 배우며 교정해나가는게 어떨까요? 원보리심도 올바로 먹어야 진심으로 발심되는 것이고, 행보리심을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힘도 잘 먹을 때 생겨나는 것이니 말입니다.
"이제 먹고 살지 말고, 잘 먹고 잘 살죠."
"당신은 일상에서 어떻게 음식을 통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수행의 질을 높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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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혼자 끼니를 먹는 경우가 많아 지다 보니 귀찮다는 생각에 대충 먹게 되었습니다.
간식으로 이거 저거 먹다 보니 먹은 것도 아닌 그렇다고 안먹은 것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식의 식습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건강하게 먹으려고 많이 노력중입니다. 과일을 먹고 (과일은 몸에 좋다 하신 책을 소개해 주신 적이 있어서요) 저지방 우유를 마시려 하고 저탄수화물 식사와 식물성 단백질이 많은 음식을 먹으려고 합니다. 영양제도 빼먹지 않고 먹고 있습니다.
운동을 꾸준히 하다 보니 전에 비해 체력도 좋아지고 .. 특히 오후에 많이 피곤해 하는것이 줄었습니다.
아들이 가면서 한마디 하더군요
"엄마 좀 변하신거 같아요. "
그냥 멋대로 좋게 해석했습니다^^. 몸도 마음도 변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입니다
항상 과식하지 않고 적당히 먹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소식하게 되면 정신도 맑아짐을 느낍니다.
그리고 육식을 아직 하고 있으나 좀 줄이도록 노력 해야할것 같습니다.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