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4장 6-13절. 너희는 배부르며 왕노릇 하는구나. 요약설교
6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1. ‘이 일’이란 ‘그리스도의 일군인 청지기 사역’(4:1-5)을 가리킵니다.
2. ‘본을 보였노니’란 한글 번역은 ‘모범을 보였다’는 뜻으로 오해될 여지가 많습니다.
그러나, 원문의 뜻은 ‘예증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이 모든 일을 아볼로와 나의 경우를 들어서 설명했노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3.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의 분쟁 사태는 역사상 많고 많은 교회 분쟁 사건에 대한 표준적인 해결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해결책이란 한 마디로 직분자들을 하나님의 종으로 생각하고, 각자가 주님 앞에 판단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사람들의 판단에 따라 교만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오직 주님 앞에서 충성하라는 말씀입니다.
4.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앞서 기록한 교훈의 한계를 넘지 말고 분수 지키는 것을 배우라’는 뜻입니다.
5.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1) ‘서로 대적하여’ 란 말씀은 ‘자기는 추켜세우고 다른 사람은 깔본다’는 뜻입니다.
(2) 고린도 교회 내에서 바울파와 아볼로파는 서로 상대편은 무식쟁이나 마귀처럼 깎아내리고, 자기 편은 지혜자나 천사처럼 높였던 것입니다.
(3) 교회 역사를 볼 때, 이처럼 서로 대적하는 일은 유명한 지도자들 사이에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같은 종교 개혁자들끼리도 루터는 쯔빙글리를 불신자라고 욕했고, 쯔빙글리는 루터를 카톨릭의 에크보다도 나쁜 사람이라고 욕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처럼 교회에서 서로 상대방을 깎아 내리는 교만한 자세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7절.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1. ‘누가 너를 상대방보다 더 우수한 사람으로 구별시켜 주었느냐’는 뜻입니다.
이것은 당파를 짓는 인간들 자신이 스스로 교만한 자세를 가지고 자신을 높이는 것이고 상대편을 멸시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고 했습니다( 벧전 5:5, 약 4:6)
2.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1) “혹시 네게 자랑할 만한 점 예컨대, 아볼로파처럼 성경적 지식이나 우수한 웅변술 등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도 너희가 하나님께 선물로 받은 것이 아니냐?”라는 뜻입니다.
(2) 우리의 가진 건강, 우리의 가진 두뇌, 우리의 가진 재물 얻을 능력, 우리의 가진 가정, 우리의 가진 생명, 우리의 가진 구원, 하나님 자녀된 특권, 천국 구원에 대한 보장, 성령님의 은혜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3) 신앙이 좋은 사람이란 이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아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어서,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라고 감격하였습니다(삼하 7장 18절)
시편 116편에서는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7장의 죄 많은 여인은 죄 용서함을 받고서, 생명과도 같은 향유를 주님 발에 부어드렸습니다.
3.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1) 아볼로파가 성경 지식과 뛰어난 웅변술을 자랑하는 것을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2) 우리도 교회에서 직분을 감당할 때, 사람들이 칭찬하더라도, 주님이 주신 은혜라고 말하면서 겸손하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공로라고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8절.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 하며, 우리 없이 왕 노릇 하였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1. 고린도 교회의 분쟁자들은 벌써 ‘종말론적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한 것처럼 이미 배부르고, 부요 하며, 남을 지배하는 왕처럼 행세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1) 여기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쟁자들을 신랄하게 비꼬고 있는데, 이처럼 비꼬는 투의 말과 역설( sarcasm and irony)은 바울 서신의 다른 곳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사도 바울의 마음이 격한 가운데 놓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왕 노릇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선조들처럼 이 세상은 나그네 인생인 줄로 알고, 그날이 가까울수록 하늘에 있는 본향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2.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 노릇 하기를 원하노라
(1) 성도들이 참으로 왕 노릇 할 때는 종말에 주님이 재림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의 분쟁자들이 지금 왕 노릇 하는 태도를 갖는 것은 잘못된 태도라는 것입니다.
9절.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끝으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 고대 헬라 시대에 가장 악한 죄수들은 사형을 시킬 때, 원형극장에서 사람들에게 구경시킨 다음에 처형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위대한 사도였지만, 아직 이 세상은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므로, 이 세상에서는 가장 천한 죄수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바울 사도의 비천한 모습은 왕인 것처럼 교만한 자세를 가지고 있는 고린도 교회 분쟁자들의 모습과 극적인 대조를 보여주면서, 왕처럼 2.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여기서 사도 바울은 전 우주를 하나의 원형극장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10절.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1. 역시 가혹한 풍자적인 표현(sarcasm)입니다.
본 절에는 이와 같은 풍자적 대조가 세 번 나옴으로써, 의미가 아주 강조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도만 전하고 겸손했기 때문에, 세상적으로는 미련하고 천한 사람 같이 되었고, 아볼로파 신자들은 십자가의 도(道)마저도 철학적으로 이해하면서 지혜자로 자처했던 것입니다.
2.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바울의 처신법(處身法)은 대적자에게 마주 대항하지 않고, 차라리 참고 수모를 당하는 처세법이었기 때문에, 세상적으로는 나약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의 분쟁자들은 상대방과 대항하여 이기기 위해서 세속적으로 강한 모습을 나타내었던 것입니다.
3.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고린도 교회 분쟁자들은 자신이 왕인 것처럼 처신했으나, 바울은 만물의 찌끼처럼 비천한 대접을 받아가면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11절.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1. 사도와 다른 교인을 판단하고 있는 고린도 교인들의 교만을 질책하는 바울의 비꼬는 투의 말씀(sarcasm)은 이제 한 단계 더욱 강화되고 있습니다.
즉, 고린도 교인들은 왕처럼 처신하면서, 세상에서 육신적으로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바울은 이 고린도전서를 쓰고 있는 바로 이 시간까지도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 없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본서를 AD 55년경 에베소에서 쓰고 있었는데,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당시에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전도하면서, 아데미 숭배자들의 폭동으로 말미암아 죽을 뻔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12절.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3절.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1.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바울이 천막 장사를 하면서 전도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행 18:3 등).
그런데, 당시에 헬라인들은(고린도교인들도 헬라인이었음) 육체노동을 천시했으므로, 손으로 천막을 만들어 판매하며 전도하는 사도 바울도 천시했을 것입니다.
2.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여기에 나오는 동사들은 모두 현재분사형으로서, “모욕을 당하면서 축복하고, 핍박을 당하면서 참고, 비방을 당하면서 권면한다”는 뜻입니다.
즉, 의미가 더욱 실감이 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인종(忍從)적인 처신법은 고린도 교인들의 왕자처럼 군림하는 처신법과 대조됩니다.
그런데, 고린도인들을 포함한 헬라인들은 기가 충만하고, 호연지기가 있는 태도를 좋아하고, 사도 바울 같은 굴종적 처신법을 멸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장 23절에서는, ‘십자가의 도가 헬라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0장 25-28절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을 지배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러 오셨다”고 했습니다.
3.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
여기서 ‘더러운 것’(페리-카타르마타, περικαθαρματα)은 실내를 청소해서 모은 ‘쓰레기’를 뜻하고, ‘찌끼’( 페립쎄마, περιψημα)는 사람의 몸이나 물건에서 밀어내는 ‘때’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고대 로마 사회에서는 남에게 주는 최대의 모욕을 ‘페리-카타르마타’(περικαθαρματα), 즉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했답니다.
또한, 고대 헬라 사회에서는 천재지변을 당했을 때 신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해 바다에 집어 던지는 극악한 사형수를 ‘페립쎄마’(περιψημα), 즉 ‘만물의 찌끼’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서 우리는 바울 사도가 얼마나 헌신적으로 섬기면서 복음 사역을 했는가를 여실히 엿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남을 지배하려는 자세로 살지 말고,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처럼, 섬기는 자세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4. 결론
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세속적인 처세법과,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섬기려는 처세법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갈 때, 섬기는 자세만 가지면, 바보 취급을 받고, 손해만 보는 것 같이 생각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 말씀과 같이,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하는 구경거리가 되고, 세상의 쓰레기와 같고 만물의 찌끼 같은 성도들을 우리 하나님만은 알아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만 바라보지 말고, 늘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주님처럼, 바울처럼 아름답게 섬겨가는 진실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오히려 주님이 여러분들과 여러분의 후손들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온유한 자가 잘 된다고 했고, 늘 꾸어주고 베푸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시편 37:11, 26)
5.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말씀대로 저희들은 주의 몸 된 교회에서 왕자처럼 군림하는 사람이 되지 않고, 사도 바울처럼 섬기는 성도들이 다 되게 해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의 봉사로 말미암아 몸 된 교회가 부흥되게 하시고, 우리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가 한층 더 살기 좋은 곳이 되게 해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