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먼저 천시당하고 나중에 존경받다
요세란(姚世蘭)은 1939년생 여성으로, 안휘성(安徽省) 선성(宣城) 출신이다. 말이 많고, 앞뒤 맥락 없이 이 말 저 말을 마구 내뱉는 데다, 그 말투가 마치 흔들리는 장난감 북(搖搖鼓)처럼 왔다 갔다 하여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했기에, 별명도 ‘요요자(搖搖子)’라 불렸다. 한때 여러 사람을 따라 중국의 사대 명산(四大名山)을 순례하였으며, 사천(四川)에서는 팔계(八戒)를 받고 장기채식을 발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은 이에 강하게 반대하여, 이 일로 부부 싸움이 잦고 가정 내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1997년, 처음으로 아미타불의 본원을 듣게 된 그녀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게 바로 내가 닦을 수 있는 법문이로구나! 나는 오직 아미타불만 의지하고, 오직 염불만 하겠어요. 다른 건 도저히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이니까요.” 그때부터 강의가 있을 때마다 빠짐없이 참석하며 전수염불을 하였고, 가정과의 관계를 고려해 완전 채식을 중단하고, 고기와 함께 조리된 채소는 먹는 정도로 식단을 바꾸었다.
남편은 성격이 다소 급하고 까칠한 편이라, 때때로 아내에게 욕을 퍼붓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남편의 욕 한마디에 “나무아미타불!”로 맞받았다. 남편이 욕을 오래 할수록, 그녀도 그만큼 오랫동안 염불을 이어갔다.
1998년, 몇몇 연우들과 함께 황산을 올랐을 때의 일이다. 그날 밤, 요 거사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이불 속에서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미타불, 제발 잠 좀 오게 해 주세요. 아미타불, 잠 좀 오게 해 주세요…” 그 중얼거림에 옆방에 있던 연우는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화가 나면서도 우습기도 했다. 이 일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그녀는 일상 속 사소한 일까지도 모두 아미타불께 기도하며 의지하던 사람이었다.
1998년부터 요 거사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내년이면 난 갈 거야. 9월이 아니면 10월일 거야.”
또 이렇게도 말했다.
“아미타불께서 내가 살 집을 마련해 주셨어. 내가 배정받은 집은 아주 크고, 매우 장엄해.”
이를 들은 왕수진(汪秀珍) 거사는 처음엔 그녀의 집이 재개발되면서 새로 이사하게 되었다는 말로 오해하기도 했다. 또 요 거사는 연우들에게 자주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나무아미타불’만 있으면 돼. 바로 곁에 계셔. 향을 피우기만 하면 내 눈앞에 큰 흰 연꽃이 보여.” “아미타불은 당신 바로 옆에 계셔. 큰 연꽃도 당신 자리 옆에 있어.” 그녀가 이런 말을 할 때, 믿어주는 사람도 없었고, 귀 기울여주는 이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정신이 조금 이상한 게 아닐까 여겼다.
1999년 음력 9월 17일, 요 거사는 두영금(杜永琴) 거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저, 아미타불을 뵈었어요. 그런데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제가 갈 때, 그 꽃무늬 옷을 입어도 될까요?”
두 거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정말로 아미타불을 따라 극락에 가게 된다면, 그때는 육신은 남은 사람들이 알아서 처리하게 될 테니, 무슨 옷을 입는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러자 요 거사는 벌떡 일어나며 기뻐서 외쳤다.
“아, 잘됐네요! 저는 정말 이번 9월 아니면 10월에 갈 거예요!”
비록 그 말이 나온 때는 이미 9월이었지만, 두 거사는 여전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이렇게 말해 주었다.
“당신이 알고, 부처님이 아시면 된 거죠. 괜히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지 마세요.”
요 거사는 평소에도 이런 말을 너무 자주 해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이상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고, 오히려 반감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음력 9월 25일, 왕수진 거사가 요 거사의 집에 놀러 갔을 때, 요 거사는 이렇게 말했다.
“나, 이제 곧 가게 될 거예요.”
왕 거사가 물었다.
“어디 가시는데요? 손가부(孫家埠)에 가시려는 건가요?”
요 거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영국(甯國)에 가시나요?”
(이 두 곳 모두 그녀의 친척들이 사는 곳이었다.)
요 거사는 다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그곳이 아니에요.”
‘설마 서방정토에 간다는 말인가?’ 왕수진 거사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잠시 후, 요 거사가 다시 말했다.
“날씨만 개면, 난 곧 떠나게 될 거예요. 며칠 전 꿈속에서, 내가 대원선(大願船) 위에 있었는데, 나는 뱃머리에 있었고, 당신은 뱃꼬리에서 타려는 듯 말려는 듯 망설이며, 내가 몇 번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더군요. 나는 이미 피안(彼岸)에 도착했으니, 이제 당신도 수행을 잘 하셔야 해요.”
하지만 왕 거사는 그 말을 여전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9월 28일, 며칠 동안 이어지던 흐리고 비 내리던 날씨가 마침내 완전히 개었다. 이날 요 거사는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걸어서 큰아들 집에 다녀왔다. 무언가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듯했지만, 끝내 아들을 만나지는 못했다. 오후 4시경, 요 거사는 세수를 한 뒤 자택 불단 앞에서 예불을 올리다가, 절을 하며 머리를 숙인 채 옆으로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가족들은 급히 병원으로 옮겼고, 소식을 들은 두영금 등 연우들이 찾아와 염불을 해주자, 요 거사는 기쁜 듯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그리고 9월 29일 오후 2시, 그동안 사람들의 존중도 신뢰도 받지 못했던, ‘요요자(搖搖子)’라 불리던 이가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평온히 극락정토로 왕생하였다. 향년 61세였다.
요 거사가 왕생한 뒤, 연우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한편, 깊은 후회를 느꼈다. 돌이켜보면, 그녀는 이미 1년 전부터 자신이 갈 날이 가까웠음을 여러 차례 말해 왔지만, 아무도 그것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어떤 이는 그녀를 얕잡아보고, 면전에서 조롱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요요자(搖搖子)’가 아니라, 극락정토에 태어난 한 분의 보살이 되었다.
(2001년 7월 21일, 정종(淨宗) 스님 기록)
첫댓글 감사드립니다 ()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수희찬탄합니다.
수승하고 감동적인 왕생 사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수희찬탄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수희찬탄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합장
“아미타불께서 내가 살집을
마련해 주셨어.
내가 배정받은 집은 아주
크고, 매우 장엄해.”
“아미타불은 당신 바로 옆에 계셔.
큰 연꽃도 당신 자리 옆에 있어.”
나는 이미 피안(彼岸)에
도착했으니, 이제 당신도
수행을 잘 하셔야 해요.”
감동으로 듣고 보고 배워갑니다
수승하고 아름다운 사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나무아미타불 ❤️
나무아미타불 ❤️
법사스님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