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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태시인의음악사랑이야기 (72)
《길 위의 나그네여, 어디로 가고 있는가? '돈데 보이(Donde voy)'》
“나는 어디로, 어디로 가야 하나요. 희망을 찾아 헤매고 있어요.
나 혼자, 나 혼자 외로이. 사막을 떠도는 도망자가 되었네요”
“Donde voy, Donde voy. Esperanza es mi destinacion.
Solo estoy, solo estoy. Por el monte profugo me voy”
온천천 변으로 노을이 지는 저녁, 문득 낡은 LP판을 꺼내 듯 티샤 잉(Tish Hinojosa)의 목소리를 소환한다. 나직하게 읊조리는 스페인어 한마디, "Donde voy(돈데보이)."
우리말로 옮기면 "나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이 짧은 질문은, 단순히 방향을 묻는 물음이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삶의 파도에 떠밀려 정처 없이 부유하는 모든 존재를 향한, 가슴 저미는 탄식이다.
‘돈데 보이’의 영어 버전은 ‘티어스’(Tears)다. 불법 이민자들에게 사면령을 허락했었던 빌 클린턴이 대통령 재임시절, 백악관 콘서트에서 돈데 보이가 불려진 적도 있었다. 타이완의 ‘조안 바에즈’로 불리는 ‘치유’(Chyi Yu)가 불러 아시아권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했다. 한국에선 TV 드라마 ‘배반의 장미’ 주제곡으로 사용되면서 대표적인 스페니쉬 번안곡으로 사랑받았다.
묘하게 1920년대 김동환(시인)이 발표한 시 '국경의 밤'과 작중 분위기가 비슷하다.
티샤잉(티시 히노조사)의 'Donde voy'는 어쿠스틱한 기타 선율과 애절한 목소리가 어우러져, 굳이 스페인어를 다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곡이 가진 슬픔과 그리움의 정서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특유의 서정적인 멜로디 때문에 한국에서도 라디오 등에서 자주 소개되었고, 특히 '방랑하는 영혼의 고독'을 노래하는 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 속에서 '돈데보이'를 묻고 산다. 물리적인 이민자가 아닐지라도, 세월이라는 징검다리를 건너오며 우리는 무수히 많은 소중한 것들을 두고 왔다. 열정 가득했던 청춘의 뒷모습, 함께 웃고 울던 사람들, 그리고 한때는 내 세상의 전부였던 꿈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 질문은 더욱 묵직해진다. 쉼 없이 달려온 길 위에서 나는 과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지금 내가 딛고 있는 이 곳은 나를 온전히 받아주고 있는지, 아니면 나 또한 이 노래에서 처럼 길 위에 멈춰 선 이방인일 뿐인지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삶이라는 낯선 타국에 던져진 이방인이다. 티샤 잉(Tish Hinojosa)의 애잔한 선율, ‘돈데보이(Donde voy)’는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의 내면을 정조준한다. 스페인어로 “나는 어디로 가는가”라고 묻는 이 짧은 문장은, 단순한 언어적 질문을 넘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실존적 고뇌를 관통하는 명제다.
앞에서도 말했 듯 ‘돈데보이’는 본래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넘어야 했던 이민자들의 처절한 애환을 담은 곡이다. 고향을 등지고 생존을 위해 위험한 길을 선택해야 했던 이들에게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은 생사가 걸린 문제이자, 동시에 뿌리 뽑힌 존재의 근원적 슬픔이었다.
그러나 이 곡이 국경을 넘어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이 메시지가 이민자라는 특수한 계층을 넘어 ‘현대인의 보편적 상태’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고도로 연결된 디지털 사회라 할지라도, 우리는 저마다의 고립된 섬에서 살아간다. 직업적 성취, 사회적 지위, 관계의 복잡성 속에서 우리는 매일 ‘나라는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분투 속에서 문득 멈춰 섰을 때, 우리는 거울 속의 낯선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과연 나는 내가 원하던 곳으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타인이 규정한 길을 맹목적으로 걷고 있는 것일까.
음악 속 “어디로 가는가”라는 물음은 포기의 탄식이 아니라, 오히려 길을 찾으려는 간절한 의지다.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방향을 재설정하려는 의식(儀式)인 것이다. 우리 삶 역시 마찬가지다. 매번 완벽한 목적지를 정해두고 직선으로 달릴 수는 없다. 때로는 안개 낀 길 위에서 헤매기도 하고, 지나온 길을 다시 되돌아보기도 해야 한다. 그 흔들림의 시간들이 모여 비로소 나만의 서사(書詞)가 완성된다.
현대인은 모두 길 위에 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변화를 강요받는 시대, 우리는 모두 어딘가로부터 떠나왔고, 또 어딘가로 가고 있다.
결국 ‘돈데보이’는 비극적인 이민자의 노래가 아니라, 삶이라는 긴 여정을 걸어가는 모든 인간을 위한 찬가다. 목적지를 향해 질주하는 것이 미덕인 세상에서, 잠시 멈춰 서서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되묻는 용기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행위일지 모른다. 길을 걷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삶의 의미이자 목적지이기 때문이다.
티샤 잉의 목소리는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그 슬픔을 노래로 안아줄 뿐이다. 그 담담한 위로 덕분에 우리는 다시 한번 길을 나설 힘을 얻는다.
결국 '돈데보이'는 길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찬가(讚歌)다. 비록 목적지가 보이지 않고, 돌아갈 곳이 아득해 보일지라도 노래는 말한다. 길을 걷는 것 자체가 삶이라고, 그 방황 또한 당신의 아름다운 생애라고.
낯선 길 위에서 길을 묻는 나에게, 그리고 세상 모든 길 위의 나그네들에게, 이 노래가 따뜻한 등불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문화칼럼니스트 최진태
*Tish Hinojosa - Donde Voy
https://youtube.com/watch?v=lZKJ1MiZ0Yw&si=gUK_YTHUhQd6JGiO
**Donde Voy 어디로 가야 하나 /티시 이노호사 Tish Hinojosa/ 트레몰로 하모니카 Am.C
https://youtube.com/watch?v=RjRh7WHNwCE&si=6chtwyLjkx_gDAtZ
첫댓글 어디로가고있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