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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10:1-36절) 나팔 소리 200 옛날 군인들이 전쟁(戰爭)할 때는 나팔아 아주 중요했습니다. 군인들은 갑자기 다른 군대의 습격을 받을 때도 있고, 또 자신들이 다른 군대를 공격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때 모든 것을 나팔 소리를 듣고 결정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적(敵)이 습격을 했을 때, 급하게 나팔 소리를 울리면, 병사들은 모든 하던 일을 중단하고, 자신들의 위치로 가서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진격(進擊)할 때에도 진격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전쟁(戰爭)은 실패하게 됩니다. 분명하게 공격나팔이 울려 퍼지면, 그때에는 일제히 소리를 지르면서 공격을 해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공격만이 최선은 아닐 때가 있습니다. 즉 작전상 후퇴(後退)를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퇴각(退却)하는 나팔을 불어야하고, 그 소리를 듣고 군인들은 후퇴(後退)를 해야만 그다음 작전을 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민수기는 하나님의 신병 훈련소 일지와 같은 것입디다. 즉 지금까지 애굽의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군대(軍隊)로 훈련을 받고 있는 내용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본격적인 훈련은 하나님의 나팔소리를 듣고, 움직이는 훈련을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마치 온실(溫室)안과 같이 보호가 되어 있는 사회입니다. 온실 안은 언제나 따뜻하고, 언제나 바람을 막아주는 비닐이나 유리가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싹을 낼 수 있고, 꽃을 피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온실이 아닌 자연은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대단히 불안하고, 두려운 세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을 받은 곳은 온실과 같은 가나안 땅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훈련을 받았던 곳은 그야말로 전갈과 방울뱀과 독사들이 득실거리고, 밤낮의 기온의 차이가 20도, 30도가 넘는 최악의 광야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상황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나팔소리를 듣고, 모이고, 행진하는 훈련을 받게 하셨습니다.
사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의 개념은 온실안의 성공입니다. 즉 이미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사회에서 시험이나, 학벌을 통해서 인정을 받는 식의 성공으로서 이것은 온실안의 성공입니다. 즉 머리만 좋고, 돈의 뒷받침이 있으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온실 밖에서 강(强)한 훈련받고, 가나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십니다. 즉 광야에서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훈련받은 후에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성공하는 방식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광야에서 철저하게 훈련을 받은 사람은 가나안 땅이 아니라, 어디로 가든지 성공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너무나 빨리 이 사회에서 성공을 하려고 대단히 조급해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I.Q의 싸움이고, 기억력(記憶力)의 싸움이지, 진정한 성공이 아닌 것입니다. 토인비의<역사연구>라는 책을 읽어보면, 이 세상에서 진정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한번 도태(淘汰)가 되어 광야 생활을 해 봐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예(例)로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방랑자 생활을 한 것을 예(例)로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33세가 될 때까지 예루살렘이 아닌, 변두리 갈릴리에서 이름 없는 목수로 지낸 것을 예(例)를 들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같은 사람도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난 후, 무려 30년 동안이나 자기 집인 다소에 가서 이름도 없이 파묻혀 있다가 안디옥 교회에 부름을 받아서 말씀 봉사를 하면서 위대한 선교사로 쓰여 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젊은 크리스천들도 그야말로 광야와 같은 상태에서 지금 자신의 첫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미래에 대하여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방향을 결정하고,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위대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 진짜 훈련(訓練)을 받는 것입니다.
Ⅰ.하나님은 길을 아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훈련(訓練)을 받았던 광야는 길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우물도 하나도 없고, 가계도 하나도 없고, 식당이나, 호텔은 상상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불모의 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극한적인 상황에서 훈련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이 모든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즉‘하나님은 네 생명을 책임지시며 하나님은 네가 나아갈 길을 다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나아갈 길을 모르시거나, 혹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명을 책임질 수 없었다면, 훈련 자체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즉 민수기라는 것 자체가 성립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계셨고, 나아갈 길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훈련을 받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바로 하나님을 신뢰(信賴)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현실적인 상황만 보면, 꼭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광야로 데리고 오셔서 굶겨서 죽이려고 하는 것 같았고, 모세야말로 미친 사람같이 보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첫 이동하자말자 터져 나왔던 것이 곧 이 부분에 대한 불신(不信)이었습니다. 즉‘하나님은 우리를 이 광야에 죽이실 것이다’라는 불신(不信)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에서 죽이려고 애굽에서 구출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시켜서 영적(靈的)인 거인(巨人)을 만들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거룩한 용사(勇士)로 만드시기 위해 그들을 광야로 데려와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은(銀)나팔 두 개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10:1-2절)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은 나팔 둘을 만들되 두들겨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영을 출발하게 할 것이라”여기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두 가지 방법을 보게 됩니다. 하나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방법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전체적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즉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체적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구름이 성막 위에서 올라가느냐, 가지 않느냐, 에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물러야 할지, 아니면 이동을 해야 할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군대에서 기상나팔이나, 취침나팔과 같은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정상적인 상태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군대(軍隊)라고 하는 것은 기상나팔과 취침나팔만 가지고 일이 되지 않습니다. 군인(軍人)들은 집합을 잘 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부대(部隊)마다 이동을 잘 해야 하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공격(攻擊)이나, 방어(防禦)를 잘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나팔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이 나팔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을 지시하는 나팔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로 이 나팔이 사용되는 경우는 소집(召集)과 이동(移動)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2절에도‘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영을 출발하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하는 것은 소집(召集)을 하거나, 진행(進行)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들이 언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며, 언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느냐? 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전혀 말씀을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팔 소리를 듣고 모이라고 하면 모이고, 움직이라고 하면, 움직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보물(寶物)천지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잘만 노력하면,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공부도 잘해서 성공할 수 있고, 또 출세도 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너무나도 많이 널려 있습니다. 사람들이 못살고 가난하게 지내는 이유는 그런 기회를 제대로 잡을 수 없었기 때문에 못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그야말로 보물(寶物)덩어리입니다.
즉 어떤 사람은 부동산 투기를 해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옷 장사를 잘해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템을 개발해서 벼락부자가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즘은 자녀들의 진학 문제로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자녀들을 명문 고등학교를 어디로 보낼 것인가? 즉 서울고를 보낼 것인가? 경기고를 보낼 것인가? 예술고를 보낼 것인가? 국제고를 보낼 것인가? 아니면 알파고? 를 보낼 것인가? 혼란에 빠져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그런 지혜나 훈련은 하나도 시켜주시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팔 소리를 듣고‘오라’고 하면 모이고,‘가라’고 하면 짐을 챙겨서 이사를 하는 훈련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아직까지‘전쟁(戰爭)’하는 나팔소리는 가르쳐 주시지도 아니하셨습니다. 전쟁하는 나팔 소리를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나 가르쳐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런 식으로 훈련을 시키실까? 그것은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 진짜 보물(寶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짜 보물(寶物)은 전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있고, 우리 자신이 그 말씀으로 변화되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을 다 떼어버리게 하시고,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오직 하나님의 나팔 소리만 듣고, 움직이는 훈련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팔소리를 분별하는 요령을 이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10:3-5절)나팔 두 개를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 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 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의 천부장 된 지휘관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 너희가 그것을 크게 울려 불 때에는 동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요한 것은 나팔소리를 잘 분별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먼저 나팔이 하나가 부는지, 두개가 부는지를 구별을 해야 했습니다. 왜냐면 하나를 부느냐, 두개를 부느냐, 에 따라서 성막 앞에 나아갈 대상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즉 나팔 두개를 불면,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회막(會幕)앞에 다 모였습니다. 이것은 큰 집회(集會)가 되는 것입니다. 즉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대신에 나팔이 한개만 불면, 천부장 이상의 족장들만 성막에 모여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모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중요한 보물(寶物)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나팔 하나를 크게 불면, 순서에 따라서 진이 이동을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10:5-7절)너희가 그것을 크게 불 때에는 동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며, 두 번째로 크게 불 때에는 남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라. 떠나려 할 때에는 나팔 소리를 크게 불 것이며, 또 회중을 모을 때에도 나팔을 불 것이나 소리를 크게 내지 말며”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본적인 행동 지침을 보게 됩니다. 하나는 하나님 앞으로 모이는 구조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구조입니다. 즉 하나님의 가장 기본적인 훈련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팔 소리를 듣고 하나님 앞에 모이는 것과 또 나팔 소리를 듣고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모일 때도 자기 마음대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나팔 소리를 듣고, 모든 백성들이 다 모이는 것입니다. 또 세상으로 나아갈 때도 아무렇게나 가고 싶다고 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나팔 소리를 듣고, 동쪽부터 시작해서 남쪽 서쪽 북쪽 이런 식으로 나팔을 불 때, 이동을 해야 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기본적인 생활은 무조건 하나님 앞에 죽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서 돌아다니기만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역시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과 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적절하게 훈련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은 한 가지만 합니다. 즉 오직 세상만 파고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휠씬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성공은 세상 안에서의 성공이지, 하나님의 성공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성공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변화된 모습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가지고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변화된 모습으로 세상 속으로 들어갈 때, 세상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문제를 보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세성에서 많은 부(富)와 높은 지위(地位)를 차지하려고 노력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떻게 해야 모든 것이 아름다울 수 있으며, 어떻게 해야 여기에 하나님의 축복(祝福)이 임하여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福)을 받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는 이 나팔을 아무나 불지 못하게 했습니다. 오직 제사장만이 불게 하셨습니다.
10:8절)그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지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나팔은 아무나 불고 싶다고 해서 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나팔은 오직 하나님 앞에 헌신된 제사장만이 불 수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말씀을 증거하고 심지어 광고를 하는 것도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이 나팔을 아무나 자기 편리를 위해서 불게 해서는 안 됩니다. 10:9절)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의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전쟁(戰爭)을 위해 적(敵)과 싸우러 나갈 때, 나팔을 크게 불면, 그들을 구원해 주시겠다고 약속(約束)해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가 세상으로 나가는 것도 곧 영적인 전쟁을 하러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세상 모든 일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탄과의 신경전(神經戰)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왜냐면 나팔을 불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이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사용해달라고 담대하게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제사를 드릴 때도 제물 위에 나팔을 불게 했습니다. 10:10절)또 너희의 희락의 날과 너희가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는 번제물의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이미 죽은 제물 위에 나팔을 분다고 해서 제물들이 살아서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물위에 나팔을 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제물들에게‘정신 차리라’는 뜻이 아니라,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신 차리게 하는 나팔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제사를 반복해서 드리다 보면, 자꾸 타성에 젖게 되어 나중에는 제사를 드리면서도 멍청하게 엉뚱한 생각을 하고, 기도 시간이나, 설교 시간에도 잡념(雜念)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때 찬송이나,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나팔소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하시는 순간인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 올라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만 들은 것이 아니라, 나팔 소리도 함께 듣게 되었습니다. 이 나팔소리는 잠든 영혼을 깨우고, 병든 양심을 깨우는 아주 날카로운 소리인 것입니다. 헨델의〖메시야〗를 들어보면, 몇몇 곡에서 날카로운 트럼펫 소리와 팀파니 소리가 납니다. 즉 44번 할렐루야와 53번 죽임 당하신 어린양에서는 트럼펫과 팀파니가 없으면, 연주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48번 남자 베이스의‘나팔 소리가 날 때’는 그야말로 베이스도 나팔 소리요, 반주로 나오는 나팔도 아주 크고 날카로운 소리인데, 그야말로 잠자는 자들을 다 깨우는 웅장한 소리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 한 번씩은 이런 나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찬양을 부르거나, 기도를 하거나, 특히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갑자기 자고 있던 내 영혼을 완전히 흔들어 깨우는 나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Ⅱ.이스라엘 백성들의 훈련 시작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동하는 요령을 가르쳐 주신 후에 실제로 이동을 하게 하셨습니다. 10:11-12절)둘째 해 2월 20일에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떠오르매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가더니 바란 광야에 구름이 머무니라.”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디어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대로 이동을 해보았습니다.
그 거리는 시내 산 광야에서 바란 광야까지인데, 약 45마일 정도, 가나안 땅에 상당히 가까운 지점까지 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식으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방법대로 다 해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체적으로 이동하는 표시는 구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나 구름을 쳐다 보이야 하는 것입니다. 즉 구름이 올라가면 누가 뭐라고 말하지 않아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다 이동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즉 개인 장막을 걷고, 빨래를 걷고, 짐들을 묶어서 이동할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으면, 나팔 한 개가 울리는데, 첫 번째 울리면, 동쪽의 유다 지파기 먼저 움직이고, 그리고 곧바로 성막을 해체해서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이 천막과 널빤지를 거두어서 이동을 했습니다.
두 번째 나팔이 불면, 남쪽의 세 지파가 움직이고, 그 뒤에 고핫 자손이 하나님의 궤를 젊어지고 이동을 했습니다. 그 뒤에 서쪽과 북쪽 지파도 이동을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사(移徙)를 하는데, 가장 중요한 재산이 무엇이냐? 는 것입니다. 아마 살던 집에서 이사를 할 때, 가장 중요한 패물(貝物)이나. 귀중품들은 따로 보자기 같은데에 싸서 소중하게 가지고 이동을 할 것입니다. 광야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광야에서 무려 40년 동안이나 돌아다녔어야만 했을까? 입니다. 그것은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기 때문에 그 벌(罰)로 하나님께서 40년 동안 뺑뺑이 돌리신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보물(寶物)의 가치(價値)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 가치를 깨닫는데 무려 40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보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자기 자신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보물을 담고 있는 그릇입니다. 이 그릇 안에는 원자폭탄보다 더 강력한 하나님의 능력(能力)이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가치를 모르고, 자꾸만 애굽이나, 가나안 땅에서 잘 사는 것만 집착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계속 광야에서 뺑뺑이 돌리신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최고의 보물(寶物)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되고 있는 우리 성도들이 보물(寶物)입니다. 정말 우리는 어마어마한 보물(寶物)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에 있는 것들을 자랑하고, 그것에 집착하며,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도 그것을 끌고 들어와서 자랑을 해서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즉‘우리가 아무리 보물이라고 해도 세상에서 알아주지도 않고 팔아먹지도 못하는데 그것이 무슨 보물의 가치가 있느냐? 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진짜 보물은 절대로 팔지 않습니다. 보물은 가지고 있는 그 자체가 보물입니다. 특히 이 보물은 하나님께서 인정을 해주시는 보물입니다. 이 보물은 인간을 치료하는 보물이요, 인간들의 망쳐버린 삶을 고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하는 보물입니다. 그리고 기도의 응답을 가져오게 하고, 부흥을 일으키는 보물입니다. 그러므로 이 보물이 있어야 세상의 보물도 제대로 쓰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예(例)를 들지만, 세상의 보물들은 모두 모래와 같습니다. 모래만으로는 집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고층 빌딩을 세울 수 없고, 댐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즉 고층 빌딩을 세우고, 댐을 만들려면, 철근과 콘크리트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영적(靈的)으로 비유하면, 곧 하나님의 말씀과 성도들이 진정한 철근이요, 시멘트 콘크리트입니다. 이 세상 어느 곳이든지 신실한 크리스천들이 있어야 그 직장과 사회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 동안 우리 사회가 곳곳이 무너지고 사고가 터진 것은 부실공사였기 때문입니다. 부실 공사로 지어진 건물이나, 다리는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듭니다.
부실 공사를 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면, 하고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빌4:13절)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우리는 이것이 훈련되어져야 합니다. 특히 최고의 보물(寶物)은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물로 바꾸는 이것입니다. 이것은 영원히 남는 장사입니다. 최고의 수익은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이것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성장해서 올바른 믿음을 가지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들을 다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두는 훈련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정하는 훈련을 받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다른 성도들을 안다면, 세상을 아는 것은 비교적 쉬울 것입니다. 왜냐면 이것이 작은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원만하게 잘 지내는 사람은 이 세상 어느 곳에 갖다 놓아도 모든 것을 잘 해냅니다. 왜냐면 그만큼 지혜와 믿음이 생겼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나 원하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잘 알기 때문에 절대로 속지 않습니다. 남에게 속는 사람은 자기 안에도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속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좋은 미끼가 나타나더라도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면 절대로 덥석 물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원수 마귀의 밥이 되고 말 것입니다.
Ⅲ.호밥의 도움을 청함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구름이 있고, 나팔이 있다 해서 모든 것이 다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구름이 있고, 나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디안 사람 호밥을 붙잡아서 도와달다고 했습니다. 10:29절)모세가 모세의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주마 하신 곳으로 우리가 행진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여기에 보면‘모세의 장인 르우엘의 아들 호밥’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우리는 여기서 모세의 장인은 이드로 라고 알고 있는데, 여기에는 르우엘이 나오고 또 호밥이 나옵니다. 도대체 이드로는 누구이며, 르우엘은 누구이며, 호밥은 누구냐? 는 혼동이 생깁니다.
그런데 대개의 통설(通說)로는 이드로와 르우엘은 모세의 장인이고, 여기 나오는 호밥은 모세의 처남(妻男)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당시 이 사람들은 유목민(遊牧民)인데, 언제나 텐트를 치고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호밥은 모세에게 왔다가 자기 동족에게로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왜냐면 이 호밥 자손들은 가나안에 정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이 사람들을 겐 족속이라고도 불렀는데, 예레미야 때까지도 집을 짓지 않고, 농사를 짓지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평안한 생활에 빠져들면, 나태해지고, 사람이 부패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유다가 바벨론에 공격을 받으니까 예루살렘 안으로 피하는데도 집에서 자지를 않고 광장에 텐트를 쳤고, 예레미야가 포도주를 한 사발을 갖다 주면서 더운데 마시라고 해도 절대로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겐 족속을 사랑하셔서 멸망당하지 않도록 지켜주셨습니다. 즉 호밥의 자손들은 순수한 것을 좋아했고, 기회주의적으로 잘 사는 것을 아주 경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정말 이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오염되지 않은‘순수 무공해 족속’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호밥은 모세는 만났지만, 가나안 땅으로는 가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도로 광야로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호밥을 붙잡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복(福)이었습니다.
10:30-32절)호밥이 그에게 이르되 나는 가지 아니하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리라. 모세가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 칠지를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 우리와 동행하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대로 우리도 당신에게 행하리이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호밥은 광야의 체질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호밥은 성경 지식은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훨씬 못했지만, 광야의 경험이 풍부했습니다.
모세는 자기들에게 그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호밥에게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솔로몬 성전을 지을 때, 성전을 지었던 기술자들로도 모두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일반은총의 필요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공부해야 하고, 직장도 다녀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경험이나, 지식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祝福)이 있습니다. 이것을 나누어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호밥은 하나님의 말씀의 부스러기라도 먹기를 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호밥은 가나안 땅이라고 하면, 가지를 않지만, 하나님의 축복(祝福)의 부스러기라고 하니까 다음이 동(動)해서 결국 끝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바다에서 고깃배가 지나가면, 갈매기들이 배에서 던지는 고기를 주위 먹으려고 계속 따라갑니다. 외로운 고깃배는 이 갈매기들이 길동무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호밥 자손들은 가나안 땅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따라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었는데 하나님은 이들을 아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드보라 때에는 이스라엘을 쳤던 시스라가 도망치는데, 시스라의 머리를 말뚝으로 박아 죽인 여자가 겐 사람 야일 이라는 부인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그들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두로 땅에 가셨을 때,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께 와서 자기 딸이 귀신들렸는데,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냉정하게 거절하면서‘자녀의 떡을 개에게 주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자는 실망하지 않고‘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라고 하면서‘부수러기 은혜를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너무나 기뻐하시면서 막7:29절)...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떡(말씀)을 가진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부스러기 떡을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 중에는 이 말씀의 부스러기라도 먹으려고 애를 쓰는 분들이 있는데, 하나님은 그들을 더욱 사랑하시고, 축복(祝福)하시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궤가 움직일 때,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10:35절)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우리가 올바른 신앙으로 움직이면, 이미 원수는 도망을 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일이 쉽게 풀리게 됩니다. 그리고 궤가 멈출 때는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10:36절)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그러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중에 오셔서 평강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궤가 보물 중의 보물이었습니다.
즉 나갈 때는 적(敵)을 쳐주시고, 마귀를 이기고, 전쟁(戰爭)과 재앙(災殃)을 이기지만, 이스라엘 중에 있을 때는 말할 수 없는 은혜(恩惠)와 축복(祝福)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풀 한포기 없는 광야가 천국(天國)으로 변하고, 축복(祝福)의 도시로 변하는 것입니다. 정직과 성실로 진리의 복음을 전하는 다음카페 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카톡선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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