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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10-57절
10. 『여덟째 날에 그는 흠 없는 어린 숫양 두 마리와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한 마리와 또 고운 가루 십분의 삼 에바에 기름 섞은 소제물과 기름 한 록을 취할 것이요』
“여덟째 날에” 치유된 문둥병자는 언약의 벡성으로서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를 회복하기 위해 여호와께 희생 제사를 드려야만 했다. 이 제사는 제 1차 정결 예식을 가진 후 8일만에 회막문 앞 여호와의 번제단에서 행하여졌다. 여기서 8은 부활을 상징하는 숫자로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제 1차 정결 예식을 행한 후 8일만에 드리는 이 제사는 그 문둥병자로 하여금 과거의 부정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동시에,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와도 사랑의 친교를 나눌 수 있도록 성결케 한다는 영적 의미가 있다. 한편 이날에 그 문둥병자가 드렸던 제사는 소제를 곁들인 속건제, 속죄제. 번제였다. 그래서 회막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이 날은 여덟번째 날이다.
에바는 고체의 부피 단위로 한 에바는 약 23리터이다. 록은 주전자 같은 그릇으로 액체의 부피 단위로 한 록은 0.32리터(1.65홉) 정도이다
11-13.『정결하게 하는 제사장은 정결함을 받을 자와 그 물건들을 회막 문 여호와 앞에 두고 어린 숫양 한 마리를 가져다가 기름 한 록과 아울러 속건제로 드리되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그 어린 숫양은 거룩한 장소 곧 속죄제와 번제물 잡는 곳에서 잡을 것이며 속건제물은 속죄제물과 마찬가지로 제사장에게 돌릴지니 이는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그 물건들을” 치유된 문둥병자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바친 희생 제물을 총칭하는 말이다. “회막문 여호와 앞에” 성소앞 번제단이 있는 성막 뜰을 가리킨다. 이처럼 완치된 문둥병자에게 성막 뜰에 서도록 허락된 것은, 그도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나눌 수 있는 특권이 회복된 것을 의미한다.
속건제는 문둥병자가 이스라엘 진 밖으로 축출당하기 전에 문둥병으로 잠시나마 거룩한 공동체 이스라엘을 부정케 했던 허물을 용서받기 위한 제사이며, 아울러 이제는 그도 하나님의 언약 백성 중 하나로 다시 회복되어 자신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의미로 드렸다. 따라서 그 문둥병자는 이러한 속건제 희생제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격을 회복했던 것이다.
요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누파는 제물의 가슴 부분을 두 손으로 들고 앞 뒤로 흔들어 하나님께 바친 후, 그 고기를 제사장들의 공동 몫으로 돌리는 제사방법을 가리킨다. 요제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이다.
거룩한 장소는 성막 안 번제단 북쪽으로 곧 여호와께 바쳐진 희생제물의 짐승을 잡는 장소를 가리킨다. 속건제나 속죄제에 있어 공히 기름과 콩팥부분을 제외한 모든 고기 부분은 제사장의 몫으로 돌려졌다. 제사장 몫은 부활을 상징하며, 지극히 거룩한 자로 표현된다. 하나님께 바쳐졌던 고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받는 것으로 하늘로부터 태어남을 상징하는 것이다.
14.『제사장은 그 속건제물의 피를 취하여 정결함을 받을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 바를 것이요』
제사장은 문둥병자의 정결례를 위한 속건제를 드릴 때, 그 희생 동물의 피를 취하여 제물을 드린 문둥병자의 우편 귓부리와 우편 손 엄지가락, 우편 발 엄지 가락에 발라야 했다. 이것은 제사장의 위임식 제사 때 드리는 속건제의 양식과 동일하기 때문에 일명 위임제로 드리는 속건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귀와 손과 발에 희생 제물의 피를 바른 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경청하는데 있어서 뿐만 아니라, 행하고 실천하는데 있어서도 성결하며 흠이 없어야 함을 의미한다.
『오른쪽』의 의미는 보좌 우편이라는 말이 있듯이, 오른편은 주인과 함께 있다는 말이다. 마태복음 26장 64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15-16.『제사장은 또 그 한 록의 기름을 취하여 자기 왼쪽 손바닥에 따르고 오른쪽 손가락으로 왼쪽 손의 기름을 찍어 그 손가락으로 그것을 여호와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요』
제사장은 또한 기름 한 록을 취하여 앞서 속건제 희생의 피를 발랐던 문둥병자의 신체 부위에 다시 발라야만 했다. 여기에 사용된 기름은 제사장 위임식때 바르던 거룩한 관유와는 다른 것으로, 그 문둥병자가 제물로 하나님께 바친 단순한 기름이다. 이 기름은 하나님 앞에 일곱번 뿌려 성결케 한 후 사용했는데, 곧 문둥병자를 성결케 하는 성령의 역사를 상징한다.
“우편 손가락으로 좌편 손의 기름을 찍어 그 손가락으로 그것을 여호와 앞에 일곱번 뿌릴 것이요” 이는 문둥병자가 바친 기름을 하나님 앞에서 뿌려드려 성결케 하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이 기름은 하나님께서 거룩히 구별하신 관유라는 다른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사용될수 없는 부정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17.『손에 남은 기름은 제사장이 정결함을 받을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오른쪽 엄지 발가락 곧 속건제물의 피 위에 바를 것이며』
기름은 성령의 사역을 상징하고 피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을 상징한다. 따라서 피 위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성령의 은총과 성령의 모 든 역사가 속죄하는 피의 능력에 근거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처럼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는 속죄와 회개의 역사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수가 없는 것이다.
18.『아직도 그 손에 남은 기름은 제사장이 그 정결함을 받는 자의 머리에 바르고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하고』
머리는 한 인간 전체를 대표한다. 따라서 제사장이 치유된 문둥병자의 머리에 기름을 바른 것은, 그 사람의 몸 전체와 온 인격이 하나님 앞에서 정결케 되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을 의미한다.
19-20.『또 제사장은 속죄제를 드려 그 부정함으로 말미암아 정결함을 받을 자를 위하여 속죄하고 그 후에 번제물을 잡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번제와 소제를 제단에 드려 그를 위하여 속죄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정결하리라』
속건제를 드린 후 제사장은 곧이어 문둥병자를 위한 속죄제를 드려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 속죄제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난 원죄와 세상죄에 대한 속죄이다. 속죄제는 바로 이러한 죄를 속함받기 위해 드려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속죄제를 드림으로써 모든 부정으로부터 정결케 되어 비로소 성회(하나님 공동체)나 식사(성도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었다.
“그 후에 번제 희생을 잡을 것이요” 그런 연후에 제사장은 비로소 헌신과 충성을 상징하는 번제를 드릴 수 있었다. 이것은 죄인이었던 자가 하나님께 헌신하고 충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징한다. 제사장은 치유된 문둥병자를 위해 속죄제를 드려 그 죄를 속한 다음, 번제와 소제릍 드렸다. 이처럼 속죄제를 먼저 드린 후 번제와 소제를 드린 것은 이제 죄의 부패성을 청산한 자로서. 자신의 모든 영육을 하나님께 드려 영광돌리는 삶을 살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21.『만일 그가 가난하여 그의 힘이 미치지 못하면 그는 흔들어 자기를 속죄할 속건제를 위하여 어린 숫양 한 마리와 소제를 위하여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에 기름 섞은 것과 기름 한 록을 취하고』
가난으로 인해 하나님께 정결 제사를 드리지 못하는 일이 발생치 않도록 특별히 배려하신 규례이다. 이와 같은 규례 속에서 가난한 자라 할지라도 부유한 자와 마찬가지로 죄를 속할 수 있는 평등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22-23.『그의 힘이 미치는 대로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가져다가 하나는 속죄제물로, 하나는 번제물로 삼아 여덟째 날에 그 결례를 위하여 그것들을 회막 문 여호와 앞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산비둘기는 몸집이 큰 새이고, 집비둘기는 산비둘기에 비해 비교적 몸집이 작은 새로 집에서 기르기도 하지만 주로 야생한다. 이 비둘기들은 고기 대용으로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이 많이 먹었으며 경제적인 사정이 어려워 하나님께 소나 양, 염소등의 짐승을 바칠 수 없는 자들이 속죄제와 번제의 제물로 여호와께 많이 바쳤다. 이처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할 수 있는 비둘기로써 제사 제물을 바칠 수 있도록 허용한 이 사실은 곧 구속의 은혜에는 빈부 귀천의 차별이 결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결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토호라는 정결, 순수, 정결케하는 일 등의 뜻으로, 종교 의식상 부정한 자를 정결케 하기 위해 드리는 제반 종교 및 제사의식을 지칭하는 말이다.
24-25.『제사장은 속건제의 어린 양과 기름 한 록을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속건제의 어린 양을 잡아서 제사장은 그 속건제물의 피를 가져다가 정결함을 받을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 바를 것이요』
속죄제나 번제 등은 경제적인 여건에 따라 양을 비둘기로 대체하여 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속건 제물은 가난한 자나 부유한 자나 동등하게 어린 수양만을 여호와께 바쳐야 했다. 그 이유인즉 여기서의 속건제는 문둥병자가 백성으로서 하나님과 맺은 계약에로 완전히 원상 복귀하기 위해 위임제로 드리는 제사였기 때문이다.
요제는 흔들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드렸다가 다시 받는 화목의 상격을 가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한다.
26-29.『제사장은 그 기름을 자기 왼쪽 손바닥에 따르고 오른쪽 손가락으로 왼쪽 손의 기름을 조금 찍어 여호와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요 그 손의 기름은 제사장이 정결함을 받을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오른쪽 엄지 발가락 곧 속건제물의 피를 바른 곳에 바를 것이며 또 그 손에 남은 기름은 제사장이 그 정결함을 받는 자의 머리에 발라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할 것이며』
기름은 성령의 사역을 상징하고 피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을 상징한다. 따라서 피 위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성령의 은총과 성령의 모 든 역사가 속죄하는 피의 능력에 근거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일곱은 완성을 의미한다. 오른쪽은 구원이 이루어지는 자를 상징한다.
30-32.『그는 힘이 미치는 대로 산비둘기 한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한 마리를 드리되 곧 그의 힘이 미치는 대로 한 마리는 속죄제로, 한 마리는 소제와 함께 번제로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정결함을 받을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죄할지니 나병 환자로서 그 정결예식에 그의 힘이 미치지 못한 자의 규례가 그러하니라』
문둥병자를 위한 정결 예식시, 집안 형편상 양 대신 비둘기를 바친 가난한자들의 정결례를 위한 구체적인 제사 방법에 대한 언급이다. 이것은 이미 앞에 언급된 일반 정결 예식과 동일하다.
33-35.『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에 너희가 이를 때에 너희 기업의 땅에서 어떤 집에 나병 색점을 발생하게 하거든 그 집 주인은 제사장에게 가서 말하여 알리기를 무슨 색점이 집에 생겼다 할 것이요』
기업의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주기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가리킨다. 이 땅은 하나님께서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업으로 주신 상속의 땅이요, 특별히 성별하신 거룩한 약속 의 땅으로서 장차 실현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예표였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가나안 땅이라 할지라도 문둥병과 같은 부정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땅은 지상에 속한 땅으로서 죄악 투성이의 인간이 사는 곳이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불완전한 예표이기 때문이다.
“집에 문둥병 색점을 발하게 하거든 “ 이러한 곰팡이류에 의한 부식은 당시 팔레스틴지역에서 흔히 발생했던 일종의 풍토병이었다. 따라서 어떤 가옥에 문둥병, 곧 곰팡이 부식이 발생하는 것이 반드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나 도덕적 부정의 결과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이것은 곰팡이 부식이라는 자연 현상을 통해서, 영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서, 그것이 발생할 때마다 영적으로 깨어있으라는 것이다.
『그 집 주인은 제사장에게 와서 고하기를 무슨 색점이 집에 생겼다 할 것이요』이 부분은 가옥에 발생한 문등병에 관한 규례이다. 그러나 이 규례가 제정될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장막 생활을 했기 때문에 고정된 가옥이 없었다. 따라서 본 규례는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 그곳에 정착했을 때 가옥에 문둥병(곰팡이 부식)이 생길 것을 대비하여 주어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가옥에 발생한 곰팡이에 이르기까지 세부적으로 정결 의식법을 제정한 것은 가옥에 발생한 곰팡이가 인체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쳐서가 아니라,오직 이러한 가옥의 정결례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든 죄악과 부정으로부터 분리된 거룩한 삶을 살아나가길 진정으로 원하셨기 때문이다.
“자기 집에 문둥병 색점이 발생했을 경우”, 그 집 주인이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우선 제사장에게 그 사실을 신속히 알리는 일이다. 그 이유는 집주인은 그 문둥병 색점을 자기 마음대로 판별하거나 임의로 제거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범죄에 관한 문제는 사람이 임의로 처리하거나 제거할 수 없으며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제거되는 것이다.
36-42.『제사장은 그 색점을 살펴보러 가기 전에 그 집안에 있는 모든 것이 부정을 면하게 하기 위하여 그 집을 비우도록 명령한 후에 들어가서 그 집을 볼지니 그 색점을 볼 때에 그 집 벽에 푸르거나 붉은 무늬의 색점이 있어 벽보다 우묵하면 제사장은 그 집 문으로 나와 그 집을 이레 동안 폐쇄하였다가 이레 만에 또 가서 살펴볼 것이요 그 색점이 벽에 퍼졌으면 그는 명령하여 색점 있는 돌을 빼내어 성 밖 부정한 곳에 버리게 하고 또 집 안 사방을 긁게 하고 그 긁은 흙을 성 밖 부정한 곳에 쏟아버리게 할 것이요 그들은 다른 돌로 그 돌을 대신하며 다른 흙으로 집에 바를지니라』
집안의 모든 가구를 밖으로 끌어낸 것은 문둥병의 전염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이는 곧 죄악에 대해 성도들이 취해야 할 태도를 암시해 준다. “그 색점을 볼 때에 그 집 벽에 푸르거나 붉은 무늬의 색점이 있어 벽보다 우묵하면” 죄의 성격을 나타내며, 인간의 내면에 깊히 뿌리내려져 있음을 말해준다. 율법에서 곰팡이 부식이 문둥병과 동일시되었던 것은 바로 그것의 색점 부위가 약간 우묵해지는 것과 점점 퍼져 나가는 속성 때문이었다.
제사장이 어떤 집에서 색점을 발견한 경우, 일단 그 집을 7일 동안 폐쇄해 사람의 출입을 막아야만 했다. 여기서 본래 사람이 살도록 지어진 가옥에 문둥병이 발생하여 그 집을 폐쇄시키는 것은 마치 사람이 범죄에 빠지게 되면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단절되어 전혀 무익한 존재가 되고 만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한편 성경에서 7은 '충만수, 완전수의 상징인 바, 여기서 색점이 발견된 집을 7일 동안 폐쇄한 것은 곰팡이 부식의 확산 여부를 확실하고 충분하게 파악하기 위한 조치였다. 결국 조;의 확산을 막기 위함이다.
“칠일만에 또 와서 살펴 볼 것이요 그 색점이 벽에 퍼졌으면” 이것은 가옥이 곰팡이 균에 의해 점차, 잠식되어 가고 있는 상태를 암시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가옥은 일대 수술을 통해 다시 재건시켜야 했다. 수술은 이전의 것은 허물고 새 집으로 되어야 하는 것이다.
문둥병은 제사장이 걸리게 했거나 제사장에 의해 확산된 것이 아니다. 단지 제사장 앞에서 그 정체가 드러났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인간들의 죄도 하나님께서 짓게 하시거나 죄로 유도해서 지어진 것이 아니라, 단지 죄를 지은 상태가 하나님 앞에서 드러났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죄는 아낌없는 제거 작업을 통해 더 이상 신체의 다른 부위까지 잠식해 들어가지 않도륵 신속히 조처해야 하는 것이다. 그 조치가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성밖 부정한 곳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루살렘 성 밖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신앙공동체로부터 단절된 곳으로 곧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은 장소를 가리킨다. 따라서 색점으로 인해 부정하게 된 돌과 흙을 진 밖으로 버린것은, 범죄한 자는 하나님과 거룩한 언약의 백성들로부터 분리되어 사망 가운데 처할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죄는 아낌없이, 과감히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버리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솰라크는 매우 싫은물건을 내버리듯 집어 멀리 내던지다란 의미이다.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하며, 죽은 자를 던져버리는 것이다. “ 그들은 다른 돌로 그 돌을 대신하며 다른 흙으로 집에 바를찌니라” 이전의 돌은 십자가에서 죽어야 할 돌이다. 그러나 다른 돌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돌이다. “다른 돌로 그 돌을 대신하며” 영적으로 이것은 하나님 나라라는 집을 성도의 심령 속에 건설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43-47.『돌을 빼내며 집을 긁고 고쳐 바른 후에 색점이 집에 재발하면 제사장은 또 가서 살펴볼 것이요 그 색점이 만일 집에 퍼졌으면 악성 나병인즉 이는 부정하니 그는 그 집을 헐고 돌과 그 재목과 그 집의 모든 흙을 성 밖 부정한 곳으로 내어 갈 것이며 그 집을 폐쇄한 날 동안에 들어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 그 집에서 자는 자는 그의 옷을 빨 것이요 그 집에서 먹는 자도 그의 옷을 빨 것이니라』
“색점이 집에 재발하거든” 곰팡이 균에 의한 부식이 발생해 부분적으로 개수한 집에 다시금 문둥병 색점이 재발한 경우를 가리킨다. 영적으로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출발한 자가 또다시 동일한 범죄에 빠져 타락하는 것을 의미하는 바 성경은 이에 대해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자 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라고 경고하고 있다. 복음을 따랐으나, 다시 율법주의로 돌아가는 자를 상징한다.
“제사장은 또 와서 살펴 볼 것이요 그 색점이 만일 집에 퍼졌으면 악성 문둥병인즉 이는 부정하니” 가옥에 생기는 곰팡이균을 사람에게 생기는 나병균과 동일시 취급한 것은 이처럼 그 균의 퍼지는 속성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모두 죄악의 균을 상징했던 것이다. 악성 문둥병은 그 뿌리가 깊게 박혀 부분적인 개수를 통해서는 도저히 발본색원하거나 완전히 치유할 수 없는 심한 문둥병이다. 이는 곧 곰팡이 균에 의한 부식을 의미한다.
“그는 그 집을 헐고 돌과 그 재목과 그 집의 모든 흙을 성밖 부정한곳으로 내어갈 것이며” 새로운 돌과 흙으로 대체하여 개수한 집에 문둥병이 재발할 경우, 제사장은 아예 그 집을 헐어버리고 그 흙과 돌과 나무를 모두 진 밖에 내다 버림으로써 이스라엘 가운데서 부정의 요인을 제거해야만 했다. 물론 이러한 조처 속에는 가옥의 청결을 통한 병의 예방이라는 위생학적인 측면도 고려했겠지만. 보다 분명히 이것은 영적인 교훈을 주고자 한 것으로, 곧 죄를 미워하시되 끝까지 용납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절대 거룩성을 보여 주는 동시에, 인간도 하나님의 대속적 은혜를 거절하고 끝내 회개하지 않을 때는 하나님의 영원한 형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그 집을 폐쇄한 날 동안에 들어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문둥병 색점이 벽에 발생하면 부정한 것으로 판명된 집에 대해서 제사장은 7일 동안 폐쇄 조치를 하였다. 따라서 이 폐쇄된 7일 동안 그 집은 여전히 부정했기 때문에, 이 기간 중에 그 집에 들어가는 자는 누구든지 해질 때까지 부정하였다. 그 이유인즉, 이 집은 부정한 집으로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접근하거나 들어가서는 안될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 집에서 자는 자는 그 옷을 빨 것이요 그 집에서 먹는 자도 그옷을 빨 것이니라” 자는 것과 먹는 것은 인간 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최소 단위로서, 곧 문둥병이 발한 집에서 먹고 자는 것은 부정한 것에 직접 참여하여 그것과 밀접한 교제를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자들은 특별히 부정한 자로 취급되어 정결케 되기 위해서는 그 옷을 빨아야했다. 여기서 우리는 죄의 파괴적 속성을 여실히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죄는 주위의 다른 존재에도 악영향을 미쳐 환경 자체를 오염시킨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옷을 빨것이요” 이전 것이 죽고 새롭게 태어남의 물세례를 상징한다.
48-53.『그 집을 고쳐 바른 후에 제사장이 들어가 살펴보아서 색점이 집에 퍼지지 아니하였으면 이는 색점이 나은 것이니 제사장은 그 집을 정하다 하고 그는 그 집을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를 가져다가 그 새 하나를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고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과 살아 있는 새를 가져다가 잡은 새의 피와 흐르는 물을 찍어 그 집에 일곱 번 뿌릴 것이요 그는 새의 피와 흐르는 물과 살아 있는 새와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로 집을 정결하게 하고 그 살아 있는 새는 성 밖 들에 놓아 주고 그 집을 위하여 속죄할 것이라 그러면 정결하리라』
죄악과 죽음을 상징하는 문둥병으로부터 깨끗케 된 가옥의 정결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물들은 '새 두마리와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 및 질그릇에 담긴 신선한 물'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준비물들은 구속사적으로, 문둥병보다 더 추한 병에 걸린 우리 죄인들을 깨끗케 해주신 예수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부활, 그리고 그에 따라 거룩하게 된 성도들에게 새롭게 부여된 새 생명과 영생 등을 상징하고 예표하는 것들이다.
정한 산새 두마리,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와 흐르는 물, 질그릇의 의미를 알아야만 한다. 새는 사람(이방인)들을 의미한다. 백향목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방주의 재료가 되었다. 홍색실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가 입고 있었던 옷이 자색옷이었고, 자색옷이 홍색실로 되어 있었다. 성막과 휘장, 제사장 옷을 만드는 재료가 된다. 홍색실은 제사장을 상징한다. 우슬초는 다윗이 죄를 범했을 때, 우슬초로 죄를 정결케 해 달라고 하는 내용이 있다. 우슬초는 양의 피를 바르던 붓이다.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실과 산 새를 가져다가 잡은 새의 피와 흐르는 물을 찍어 그 집에 일곱번 뿌릴 것이요” 여기서 피는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물'은 그 결과로 주어진 영생을, 그리고 그것을 '일곱번' 뿌렸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그로 말미암아 성도에게 주어진 영생이 완전하고 또한 변치 않을 것임을 각각 상징한다.
“그는 새의 피와 흐르는 물과 산 새와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실로 집을 정결케 하고” 문둥병으로부터 깨끗케 된 집이 있을 경우, 그 집은 반드시 정결의식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비록 문둥병으로부터는 깨끗케 되었더라도, 만일 집을 정결하게 하는 정결 의식을 치르지 않을 경우, 그 집은 완전히 청산되지 못한 부정의 잔재로 인해 거룩히 구별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부정하게 하며, 나아가 그러한 집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거룩한 땅을 욕되게 하기 때문에 언약 백성의 가옥으로서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 가옥은 성도의 심령 속에 지어진 성전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바로 의식에 참여하는자가 되는 것이다.
“그 산 새는 성밖 들에 놓아 그 집을 위하여 속할 것이라 그리하면 정결하리라” 곰팡이 균에 의한 부식이 더 이상 퍼지지 않아 정결케 된 집에 대해 행해야 할 구체적인 정결 의식에 관한 규례이다. 즉 제사장은 문둥병 색점이 발한 집의 돌과 흙을 새로이 대체시킨 후, 7일만에 다시 살펴 만일 색점이 더 이상 번져 나가지 않았을 경우에는, 그 집이 문둥병으로부터 치료된 것으로 판명하고, 그 집을 정하다고 선언해야 했다. 그리고 이 때의 정결 의식은 치유된 문둥병자를 이스라엘 진내로 복귀시킬 때 행하였던 정결 의식과 동일하였다.
54-57.『이는 각종 나병 환부에 대한 규례니 곧 옴과 의복과 가옥의 나병과 돋는 것과 뾰루지와 색점이 어느 때는 부정하고 어느 때는 정함을 가르치는 것이니 나병의 규례가 이러하니라』
이 부분은 13장과 14장에 걸쳐 길게 언급된 문둥병에 관한 제 규례, 곧 그 병의 진단법과 정결법 등을 총 마감하는 결론 부분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문둥병은 오늘날의 나병 곧 한센씨 병에만 국한되지 않고 각종 피부병 및 가옥의 곰팡이 부식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병을 가리킨다.
한편 문둥병에 관한 이 모든 규례는 단순히 병 자체의 진단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거룩의 상태로 나아가도록 하는데 그 진정한 목적이 있다. 거룩은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합되는 자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 주시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는 것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인체나 가옥을 추하게 만들고, 파괴시키는 불결한 제 현상들의 제거와 청결 작업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외적 정결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명하셨는데, 이것은 구약 시대의 특징대로 외적인 정결을 요구함으로써 내적인 정결을 이루려 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외적인 정결은 죽음이다. 그러나 내적인 정결은 부활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복잡하고도 철저한 정결예식을 통해 그 예식 속에 담긴 심오한 영적 진리를 계시하시고자 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구약 시대 모든 의식법들을 단순히 피상적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며, 그 법을 통해 하나님께서 계시하시고자 하셨던 영적 진리를 올바로 깨달아 그 진리를 오늘의 우리 삶 속에 구현시키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그 핵심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정결의식을 하게하는 이유는 육체의 질병이 다 나앗지만, 이것을 통해서 장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나병(죄악)을 낫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율법에서 지키도록 정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라는 것을 말해주신다. 하나님을 떠난 나병환자들아 너희들은 이것을 보고 영원히 질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레위기에서 정하고 있는 의식을 행해서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1500여년 동안 율법을 지켜왔다. 그들은 레위기에서 하나님이 의도하신 내용을 깨달았어야만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예수님이 열 명의 나병환자(하나님을 떠난 모든 천하만민)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병을 고친 후에 제사장에게 가서 보여주어라 라고 하지 않고, 먼저 제사장에게 보여주라고 했다. 네 몸이 곧 깨끗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나병환자들은 모두 제사장에게 갔다. 아홉 명의 나병환자는 율법이 정하는 제사장에게 갔다는 말이다. 그러나 한 명(사마리아인)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하신 대제사장에게 갔다는 말이다. 아홉 명의 나병환자는 율법에 정한 정결의식을 행했을 것이다. 한 명의 사마리아인은 예수님께로 돌아왔다. 그래서 율법에서 정하는 정결의식을 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정결의식을 해 주셨다.『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아홉 명의 나병환자는 율법으로 가버렸으며, 사마리아 나병환자(이방인)만 복음으로 돌아온 것이다. 예수님은 열명(천하만민)의 모든 죄를 지고 가셨지만,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온 자는 한 명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노아 시대에서도 노아가 120년을 회개하라고 외쳤지만 7명만 방주에 들어갔으며, 가나안 땅 앞에서 약속의 땅을 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은 사람은 두명(여호수아와 갈렙) 뿐이었다. 오늘날도 율법적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해마다 제사를 드려야만 한다. 그래서 날마다 회개해서 예수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제사를 드림으로 모든 죄에서 벗어난 것을 믿는 것이다. 성령이 증거하신다. 히브리서 10장 15-18절에서『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은 자는 매일 죄가 생각난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매일 회개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는 매일 악과 싸운다. 사탄과 싸워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성령이 인도하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