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석주論
정효구(문학평론가)
오르내림의 언어, 드나듦의 自在함
장석주가 ‘서울시대’를 마감하고 ‘안성시대’를 열며 ‘수졸재(守拙齋)’라는 그의 내적인 집이자 외적인 처소를 짓고 방하착 하듯 ‘내려간’ 것은 2000년 여름의 일이다. 이것은 그의 시와 삶에서 하나의 고딕체로 쓰여질 만한 ‘큰사건’이다. 수졸재의 함의처럼 그는 거기서 ‘졸함을 지키는 삶을 지향하였고, ‘내려간’ 자의 생존방식과 윤리를 창조하였으며, 서울시대를 지배했던 ‘불의 세계’를 다스려 물의 세계를 심화, 고양시키기 시작하였다.
불은 올라가고 물은 내려간다. 물과 불은 존재와 우주를 이루는 핵심요소이자 작용원리의 핵이다. 그러나 올라가기만 하는 불과 내려가기만 하는 물은 불구(不具)이다. 그것은 존재를 활구(活句)로 만들지 못하고 사구(死句)로 경직시킨다. 주지하다시피 이들은 수승화강(水昇火降)의 작용 속에 있을 때 생태론적, 우주론적, 존재론적 건강성을 창조한다. 여기서의 건강성은 평화와 생명감을 내재시킨 동적 조화와 균형의 상태이다.
장석주의 이번 시집 『몽해항로』는 그가 서울에서의 확장하고 상승하는 불의 시대를 거쳐 안성에서의 응축하고 하강하는 물의 시대를 통과하고, 마침내 서울의 불과 안성의 물이 서로 포용하고 화해하며 질적 전변을 이룩한, 이른바 수승화강의 속 깊은 작용과 그 심오한 원리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기 시작하는 의미 있는 시집이다. 물이 올라가고 불이 내려옴으로써 물과 불이 서로를 살려내는 수승화강의 세계는 주역의 괘로 볼 때 지천태(地天泰) 괘이다. 그것은 올라감 속에서 내려감을, 내려감 속에서 올라감을 보며, 올라감과 내려감이 서로 우로보로스의 원처럼 꼬리를 물고 상대를 받아 안는, 그리하여 마침내 올라감과 내려감이 자재해지는 그런 최고의 상태이다.
지금 장석주는 안성의 ‘수졸재’와 서울의 ‘서향재(西向齋)’를 오고간다. ‘오고간다’는 것은 올라감과 내려감이 갈등 없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올라가고,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내려가며, 그런 올라감과 내려감 속에서 그만의 무애한 속길을 스스로 창조하며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이다.
올라감과 내려감이 자재로운 상태 속에서 장석주는 『몽해항로』속의 맨 앞에 수록된 작품,「시 1」과 같은 세계를 창조한다. 맨 앞에 실린 이 작품은 이번 시집에서 시인이 보여주고자 한 대표작이라 여겨지거니와 거기서 그는 ‘즉(卽)’ 한 삶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를 드러낸다. 방금 말한 ‘즉(卽)’하다고 하는 것은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에서와 같은 ‘즉(卽)’, 바다의 밀물과 썰물이 ‘일심(一心)’의 상태로 모양을 바꾸면서 하나가 되는 것과 같은 그런 ‘즉(卽)’의 상태이다.
이런 ‘즉(卽)’한 삶이 가능해질 때 삶은 단절과 대립을 극복한다. 단절과 대립을 극복한다는 것은 주체와 대상 사이의 간극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주체의 소멸이 대상의 소멸을 가져오고, 주체의 초월이 대상의 초월을 가져오며, 무아의 상태가 자유를 창조하며, 초아의 상태가 경계를 해체시키는 것이다.
허나 몸은 사상누각(砂上樓閣)이니
그 집이 영원하다고 착각하지 마라
낙타를 만나거든 낙타가 되고
모래바람이 이는 사막이 되라.
순례자를 만나거든 옛길이 되고
오래된 성전(聖殿)이 되라.
비를 만나거든 피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천둥으로 울고 번개로 화답하라.
강을 만나거든 바람으로 건너고
산을 만나거든 묵은 소나무 곁 바위로 살라
고아를 만나면 푼돈을 쥐여 주지 말고
그의 작은 주먹이라도 되라
거지를 만나면 불우를 연민하지 말고
그의 옷솔기에 붙은 이라도 되라
부처를 만나면 보리수가 되고
보리수 아래 푸른 그늘이 되어 누워라.
- 「시1」부분
여기서 보듯이 시인은 자재롭다. 그는 대상 앞에서 그 자신을 무한으로 변주시키고 연출한다. 그는 세상의 어떤 공도 받아서 살려낼 수 있는 일류 탁구 코치처럼 그에게 다가오는 공을 어떤 것이든 멋지게 받아낸다. 그 받아냄 속엔 자신을 내려놓는 ‘살심(殺心)’이 있고 그 살심은 ‘생심(生心)’의 원천이 된다. 대상은 언제나 장애이다. 범인들은 장애인 대상 앞에서 갈등과 대립의 춤을 추다 한 세상을 마감한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이전의 누적물과 그 죽음이라는 대상을 맞대면하며 그와 갈등하고 대립하는 가운데 자신을 누추하게 속박한다.
대상을 해방시킨, 대상을 자재롭게 다룰 수 있는 경지로 나아간 장석주의 이번 시집 『몽해항로』 속에는 또 하나의 돋보이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들어감으로써만이 진정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은자의 역설적 세계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은거, 은둔 등은 그것이 포즈나 자기도취 및 자기기만이 아니라면 들어감으로써만이 제대로 나아갈 수 있고, 더 나아가 나올 수 있다는 삶의 비밀을 알려주는 일이다. 들어가지 않고 나오는 것은 나옴이 아니라 그냥 그곳에 저도 모르게 머무는 동어반복의 타성적인 일상이다. 그 일상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일상 속엔 진부한 시선과 평범한 나날이 있을 뿐이다.
들어갔던 자가 들려주는 언어는 신선하다. 그리고 절실하다. 들어감으로써 길고 새로운 시선이 확보되고, 들어감으로써 넓고 새로운 공간이 확보되며, 들어감으로써 실존과 맞대면할 수 있는 현장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장석주가 들려주는 들어간 자의 언어는 다음과 같다.
가을이 오면
어제 굶은 자를 하루 더 굶게 하고
오래된 연인들은 헤어지게 하고
슬픈 자에겐 더 큰 슬픔을 얹어주소서.
부자에게선 재물을 빼앗고
학자에게는 치매를 내리소서.
재물 없이도 행복할 수 있음을 알게 하고
닳도록 써먹은 뇌를 쉬게 하소서
육상 선수의 정강이뼈를 부러뜨려
그 뼈와 근육에 긴 휴식을 내리소서.
수도자들과 사제들에게는
금욕의 덧없음을 알게 하소서.
- 「가을의 시」부분
그의 어조는 강력하고, 그의 언어는 단호하며, 그의 사유는 일상 너머를 거침없이 가리킨다. 그 강력함과 단호함과 일탈성 속에는 그가 들어감으로써 쌓은 내공이 깃들어 있다. 오랫동안 홀로 뿌리를 키우듯 스스로의 시선과 시공간을 단련시키지 않으면 쉽게 내놓을 수 없는 세계이다.
흥미로운 것은 들어간 자로서의 그의 언어가 자폐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의 들어감은 나옴의 추동력이었고, 나옴은 나아감이라는 발전을 낳았던 것이다.
나는 가끔 생각해본다. 장석주가 안성시대, 그 ‘수졸재’로의 들어감이라는 대사건을 거치지 않았다면 그의 시와 삶은 어찌되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에게 수졸재로의 들어감은 현실적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고, 피할 수 없는 한계지점에서의 과격한 선택이었지만, 왕소금에 절여지는 것 같은 그 고통의 시간을 거침으로써 그의 시와 삶은 질적 전변을 이룩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곳은 불가(佛家)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장석주의 시집 제목처럼 ‘몽해항로’이다. 수많은 상(相)과 관념(觀念)의 뒤범벅 속에서 삶은 아수라장과 같이 시끄럽다. 그런 소란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진실인 실상을 보고 맞이할 수 있을까. 장석주의 시집『몽해항로』의 또 다른 특징은 이 현실을 잊지 않는 가운데 실상에의 그리움을 간절하게 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그의 시작품뿐만 아니라 특별히 인상적인 그의 시집의 「자서」란에서 확인한다.「자서」의 내용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시란 무지몽매의 미욱함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기적이라는 것과, 그것은 단 한 줄로 압축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지몽매는 몽해항로이다. 우리의 삶은 거의가 무지몽매의 몽해항로 위에 있다. 그러나 거기에도 섬광처럼 ‘기적’이라는 실상의 빛이 깃든다. 장석주는 그것을 시에서 기대하였고, 그 기적을 찾는 배밀이의 과정이 자신의 시쓰기 과정이라 고백하였다.
그러나 그도 말했듯이 기적은 아무렇게나 오지 않는다. 또한 아무에게나 오는 것도 아니다. 들어감으로써 희미하게나마 상과 관념의 폭력을 벗어난 자, ‘수졸재’의 함의처럼 졸함을 지키고자 한 자, 또한 ‘서향재’의 함의처럼 ‘서쪽’의 금성(金性)이 가리키는 안쪽으로의 성찰과 성숙된 시간을 가진 자에게만 그것은 온다. 그것도 아주 조심스러우면서도 인색하게 말이다.
장석주의 이번 시집 『몽해항로』 속엔 이런 ‘기적’이 이곳저곳에 번뜩이며 나타난다. 그러나 그렇다 하여도 한 시인의 상상세계 역시 그가 이전에 걸어온 길과 한 시대의 문화적 상상체계 속을 온전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이기에 그의 이번 시집 역시 이 시대의 큰 시적 영역 안에 들어 있다.
장석주는 또한 ‘결국 시는 한 줄이다’라는 파격적인 말에서 보이듯이 넓게는 언어의 수사학, 좁게는 정신의 수사학에 집중한다. 이번 시집뿐만 아니라 그의 시집과 그의 글들은 ‘미문(美文)’을 지향한다. 때로 그 미문에의 지향이 그의 시와 글을 무겁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가 미문에 바치는 정성과 미문에 대해 느끼는 매력은 그의 글쓰기의 원천이다. 결국 미문이란 언어와 정신의 수사가 고도로 이루어진 하나의 미적 세계인데, 그런 까닭에 그의 글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잠언과도 같은 집약과 집중, 응결과 응축의 힘에서 온다. 이런 언어는 그 충천도가 높다. 결코 방전을 허락하지 않는 언어의 생기(生氣)이자 기운생동(氣運生動)이다. 장석주의 시와 글이 젊은 것은 이런 탄력과 긴장이 빚어낸 충전력에서 온다.
①가을 아침에는
깊이를 거부한다
이미 투명한 표면들이
깊이를 이루었다.
- 「가을 아침에」부분
②욕망과 어리석음이 만드는 게
얼룩이라면
꿈과 고요는 무늬를 낳는다.
- 「얼룩과 무늬」부분
두 작품의 언어와 내용 역시 상당한 시간의 숙성이 빚어낸 발효물이다. 발효된 언어와 내용엔 자생적인 충전력이 있다. 그들은 숙성되는 시간 동안 내적 에너지를 키우고, 그 힘의 끝지점에서 한 줄로 압축된 활구를 내놓는다. 그런 활구 속엔 기적 같은 실상의 빛이 들어 있다.
장석주는 이제 긴 여정을 거쳐 물과 불을 아우를 수 있는 지점까지 왔다. 이것을 ‘포괄의 세계’라 부를 수 있다면 그는 물과 불이 표상하는 올라감과 내려감, 들어감과 나감의 음양적인 원리와 중도적인 유연한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한 시인이다. 이런 시인에게 앞으로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 그의 시를 애정어린 눈으로 처음부터 지금까지 지켜보면서 그와 동행해 온 나로서는 그의 물과 불이 각각 순백과 순청의 물길과 불길을 최고의 상태로 창조하며 보다 절제된, 그러나 역동적인 드라마를 생성해내는 일이라 생각한다.
장석주 시인의 수상을 축하한다. 그의 언어가 몽해항로를 비춰주는 ‘기적의 불빛’이 되기를 바란다.
■장석주 연보
1955년 1월 8일(음력)에 충청남도 논산에서 태어났다. 한때 그림에 뜻을 두었으나 꿈을 접 고 이십대 초반을 시립도서관과 음악감상실 등지에서 책읽기와 음악을 벗삼으며 떠 돌다가 1975년 『월간문학』신인상에 시「심야」가 당선하며 문단에 나왔다. 1979 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날아라 시간의 포충망에 붙잡힌 우울한 몽상이여」가 당선하고, 같은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 「존재와 초월 ― 정현종론」이 입 선하며 시와 평론을 겸업하게 됨.
1979년 고려원 편집부에 입사해서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하다. 편집장을 거친 뒤 1981년에 도서출판 청하를 설립해 13년 동안 계간 『현대시세계』『현대예술비평』등을 포함 하여 5백여 종의 단행본을 펴내다. 1992년에 뜻하지 필화사건을 겪은 뒤 출판사를 정리하고 지금까지 전업작가로 살아오다. 그 뒤로 계간 『시인세계』·『애지』등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함.
1984년 1986년까지 KBS 제2라디오 라디오독서실의 고정패널로 활동하고, 1992년에 EBS 라디오「문학의향기」를 진행했다. 1998년에서 2001년까지 KBS 제1라디오 이주향 의 문화포커스에 고정패널로, 2001년에서 2003년까지 MBC 라디오 라디오책세상에 서「장석주의 책읽기」를 진행했다. 2004년에는 CBS 라디오의 「김현주의 상쾌한오 후」에서「책 읽어 주는 남자」, 2005년에는 MBC TV의 「즐거운 문화읽기」의 고 정패널로, 2006년에서 2007년까지 불교방송 라디오에서「장석주의 책과 삶」이라는 코너를 맡아 진행함.
2002년 동덕여대 인문학부 문예창작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소설창작과 소설이론에 대한 강 의를, 명지전문대와 경희사이버대학교에서 시창작연구와 문예편집론등의 강의를 시작 함.
2004년 사단법인 한국시인협회 사무총장으로 2년 동안 일함.
2007년~2008년 KBS 1TV에서 ‘TV-책을 말하다’의 자문위원.
2007년~2009년 국악방송(FM99.1MHz)에서 ‘문화사랑방’ 및 ‘행복한문학’ 등의 진행자로 활동, 조선일보의 ‘이달의책’ 선정위원으로,『출판저널』에서 ‘이달의책’을 뽑는 일 을 거들면서, 월간『출판저널』·『신동아』, 주간 『위클리경향』 등에 북리뷰를 고 정으로 기고하게 됨.
2000년 여름에 서울 살림을 접고 경기도 안성에 ‘守拙齋’라는 집을 짓고 내려가 삽살개를 키우며 책읽기와 글쓰기, 명상과 산책 등을 하며 살고 있음.
■시집
1979년『햇빛사냥』(고려원)
1981년『완전주의자의 꿈』(청하)
1984년『그리운 나라』(평민사)
1985년『어둠에 바친다』(청하)
1987년『새들은 황혼 속에 집을 짓는다』(나남)
1989년『어떤 길에 관한 기억』(청하)
1991년『붕붕거리는 추억의 한때』(문학과지성사)
1996년『크고 헐렁헐렁한 바지』(문학과지성사)
1998년『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세계사)
2001년『간장 달이는 냄새가 진동하는 저녁』(세계사)
2002년『물은 천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그림같은세상)
2005년『붉디붉은 호랑이』(애지)
2007년『절벽』(세계사)
2010년『몽해항로』(민음사)
■시선집
1998년『애인』(좋은날)1998
2007년『꿈으로 씻긴 눈썹』(종려나무)
■산문집
1979년『언어의 마을을 찾아서』(조형)
1989년『내 스무 살 푸른 영혼』(청하)
1990년『11월』(해냄)
1991년『가을』(생각하는백성)
1992년『물고기에게 헤엄가르치기』(청하)
1997년『절망에 관해 우아하게 말하는 방법』(프리미엄북스)
2001년『추억의 속도』(그림같은세상)
2002년『마음의 황금정원』(그림같은세상)
2004년『달과 물안개』(찬우물)
2005년『느림과 비움』(뿌리와이파리)
2005년『비주류 본능』(영림카디널)
2007년『새벽예찬』(예담)
2008년『그 많은 느림은 다 어디로 갔을까』(뿌리와이파리)
2009년『느림과 비움의 미학』(푸르메)
■인물기행
199년『이 사람을 보라』(해냄)
2001년『지금 그 사람 이름은』(아세아미디어)
장편소설
1991년『낯선 별에서의 청춘』(청하)
1993년『길이 끝나자 여행은 시작되었다』(청하)
1996년『이산의 사랑』(청하)
1997년『세도나 가는 길』(단)
■소설창작론
2002년『소설』(들녘)
2003년『강철로 된 책들』(바움)
2005년『책은 밥이다』(이마고)
2007년『만보객, 책 속을 거닐다』(예담)
2009년『취서만필』(평단문화사)
2009년『지금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문학의문학)
■문학사
2000년『20세기 한국문학의 탐험』(전 5권-시공사)
2009년『나는 문학이다』(나무이야기)
■문학평론집
1986년『한 완전주의자의 책읽기』(청하)
1989년『비극적 상상력』(청하)
1993년『세기말의 글쓰기』(청하)
1995년『문학의 죽음』(한국문연)
1997년『문학, 인공정원』(프리미엄북스)
2005년『풍경의 탄생』(인디북)
2006년『들뢰즈, 카프카, 김훈』(작가정신)
2006년『장소의 탄생』(작가정신)
2007년『장소의 기억을 꺼내다 - 경기도의 문학지리』(사회평론)
2009년『상처입은 용들의 노래 - 노자시화』(뿌리와이파리)
*정효구
1985년 《한국문학》으로 등단
평론집『우주공동체와 문학의 길』,『몽상의 시학』등
이메일: siron@chungbuk.ac.kr
출처: 계간 미네르바 2010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