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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9 시즌 동행(同幸), 북한산둘레길은 도심과 자연 그리고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가는 공간을 아름다운 서울의 풍경과 함께 조망할 수 있는 길이다. 지난해 서울둘레길을 걸으면서 만난 북한산둘레길을 8구간 구름정원길의 선림사 입구에서 멈쳤었는데 초록의 숲 여름의 한가운데에 다시 구름정원길을 시작으로 발걸음을 이어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본다.
8구간 구름정원길 ~ 9구간 마실길 ~ 10구간 내시묘역길 ~ 11구간 효자길 ~ 12구간 충의길 ~ 13구간 송추마을길
북한산둘레길 8구간 구름정원길은 도심과 자연 그리고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가는 공간을 아름다운 서울의 풍경과 함께 조망할 수 있는 길이다. 스타이워크느 은평구 구기터널 상단 지역의 계곡을 횡당하는 길이 60m의 하늘을 걷는 느낌이 들도록 공중에 조성이 되어 상쾌한 소나무향을 맡으며, 산책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아래로 보이는 나무들과 하늘과 맞닿아 있는 이 스카이워크를 걸으면서 소나무 침엽수림에서 많이 분비되는 방향성 물질인 피톤치드를 마시며 장과 심폐기능을 강화할 수 있는 길이다.
서울둘레길 8코스 스탬프거치대가 있는 선림사 입구에서 지난 가을 멈쳤던 구름정원길을 이어간다.
북한산둘레길은 초록의 숲길이 너무나 아름다운 산길이다.
향로봉능선이 시선을 끈다.
기자촌 전망대다.
기자촌 지킴터를 만날 수 있는 기자촌능선 들머리다. 기자촌능선을 생각할 때면 민내머리봉에서 보는 아름다운 북한산의 연봉들이 생각 난다.
내시부 상약 신공 묘역이다. 내시부에 속한 종3품 상약을 지낸 신공의 묘역이다. 상약은 궁중에서 쓰는 약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리이다.
구름정원길에 이어 9코스 마실길이 시작된다.
잠시 화의군 이역 묘역을 찾아간다. 이 묘역은 조선 제 4대 왕인 세종의 아들로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하여 세조로부터 정치적 탄압을 받았던 화의군 이영(1425년∼1489년 이후)의 분묘가 자리한 곳이다
화의군 이영은 1425년(세종 7년)조선 제 4대왕 세종의 여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영빈 강씨이다. 후에 박중손의 사위가 되었다. 사육신인 박팽년의 매부이기도 하다. 1433년(세종 15년) 화의군에 봉해졌다.
화이군 이영은 1455년 세조가 즉위하면서 대간으로부터 금성대군・혜빈양씨 등과 결탁하여 국기를 어지럽혔다는 탄핵을 받고 외방에 부처되었다가 1456년 사면되고, 같은 해 상왕(단종)복위사건에 참가한 뒤에 가산을 적몰당하고 회수당한 뒤 전라도 금산에 안치되었다. 1457년 순흥에 유배되어 있던 금성대군이 순흥부사 이보흠과 단종 복위운동을 도모하였다가 사사)되고 영월에 방출된 노산군(단종)이 교살되자 화의군도 이에 연루되어 한남군 이어・영풍군 이전・정종 등과 함께 금방되었다. 문화재 지정 신청서류에는 1460년(세조 5년) 금산에서 사약을 받고 향년 36세를 일기로 순절하였다고 적혀있으나 성종대왕실록에는 화의군 이영이 1482년(성종 13)특전을 받아 외방종편되었고, 1484년(성종 15년) 정희왕후의 유교에 따라 경외종편되었으며 1489년(성종 20년)에는 65세가 된 화의군이 자신의 죄에 연루되어 서민으로 살고 있는 자신의 서자를 종실의 일원으로 거두어 달라고 상서하자 성종이 조정의 논의를 거쳐 이영의 자손을 천역에서 면해 준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바 그가 후손들의 주장처럼 사약을 받고 순절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북한산둘레길 9구간 마실길은 진관생태다리(코스모스다리)에서 시작된다. 이웃에 놀러 간다는 '마실길' 구간은 은평 뉴타운과 인접한 구간으로 생태적, 역사 문화적 가치가 있는 명소들을 만나는 구간이다.
느티나무 보호수 군락이다. 수령은 200년 전후, 수고는 16m쯤, 둘레는 3.m쯤, 1981년 지정되었다.은평구 보호수인 느티나무, 은행나무앞에 선다. 특히 마을을 지키는 5그루가 아름드리 가지를 뻗고 그 높이가 15m, 둘레가 3.6m나 된다고 한다. 그리고 진관야생동ㆍ식물 보호구역이다. 토석재취, 수면매립, 불을 놓는 행위, 토지형질변경 등 생태계를 훼손하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는 곳이다.
한옥마을이다.
진관사 입구다. 진관사은 천 년을 넘긴 고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직찰로서 서울 4대 명찰 중 한 곳이라 한다. 고려 현종이 1011년(현종2년)에 진관대사를 위해 창건, 6.25 때 폭격으로 폐허 되었다가 다시 복구된 것으로 전해진다. 진관사 태극기는 문화재청 등록 문화재 제458호로 진관사 칠성각에서 발견되어 독립신문 제30호에 실린 태극기라고 한다. 그리고 시 일부가 소개되어 있다. '삼각산 마루에 새벽빗 비췰세, 네 보앗냐 보아 그리던 태극기를, 네가 보앗나냐 죽온줄 알앗던, 우리 태극기를 오늘 다시 보앗네, 자유의 바람에 태극기 날니데 이천만 동포야 만세를 불러라, 다시산 태극기를 위해 만세만세, 다시산 대한민국'
은평구 명품 은행나무숲이다.포토포인트가 설치되어 있다.
마실길 소공원이다 보호수 150년 느티마무와 돌탑들이 둘레꾼들을 기다리고 있다.
북한산둘레길은 이제 10구간 내시묘역길로 접어든다. 북한산둘레길 내시묘역길엔 국내 최대의 내시묘역이 위치했던 곳이라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았던 왕을 그림자처럼 보좌하던 내시들의 역할과 삶을 생각해 보며 걷는 길이다.
제왕의 그림자가 되어 살아야 했던 구중궁궐의 내시, 내시 묘역은 현재 은평구 진관내동의 중골마을에 있는 북한산 내시 묘역으로 불리는 '이사문공파 묘역 45기를 비롯해, 양주 효촌리 연양군파 묘역, 쌍문동 곱산 내시 묘역, 진관외동 이말산의 상선 노윤선, 상세 정여소, 상다 김경량 묘, 신사동의 김새신 묘, 용인시 덕송리의 강석호 묘, 중랑구 신내동의 판내시부사 전균묘, 강북구 우이동의 김극윤 묘, 월계동 매봉산의 승극철 묘 등이 남아 있다고 한다. 북한산둘레길 내시묘역길에서는 내시묘역을 볼 수가 없다.
북한산성 축성 당시 동원되었던 연인을 기다리다 만나지 못하고 연못에 빠져 죽은 기생의 흔적인 '여기소터' 다.
북한산 의상봉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한다.
북한산둘레길에서 만나는 느티나무 보호수다.
백화사다. 백화사는 일법스님이 은평구 진관동 318-2번지 일천 평 남짓의 대지 와 함께 쓰러져가는 백화사를 인수하여 不檄書夜(불격서야)부처님의 道場(도장)을 제대로 만드는데 師(사)가 지닌 모든 源力(원력)과 智慧(지혜)와 力量(역량)을 다 쏟아 부었다고 한다.
의상능선 들머리다.
경천군 송금물침비다. 1614년(광해 6)에 광해군이 경천군 이해룡(李海龍; 1546-1618)에게 하사한 토지의 경계를 표시하고, 지역 내 소나무를 무단으로 벌목하는 행위를 금지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송금(松禁)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목재를 확보하기 위하여 소나무의 생장에 적당한 곳을 선정하여 보호하고 벌목하지 못하게 하는 일로, 고려시대부터 시행되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금산(禁山)과 봉산(封山)의 제도를 두어 소나무 벌목을 엄하게 다스렸다. 비석 전면에는 ‘慶川君 賜牌定界內 松禁勿侵碑(경천군 사패정계내 송금물침비)’ 즉, ‘경천군에게 하사한 경계 내의 소나무를 베는 것을 금하니 들어가지 말라’라는 명문이 있다. 후면에는 ‘萬曆四十二年 甲寅十月(만력 42년 갑인 10월)’라는 기록이 새겨져 있어 1614년에 세워진 비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임업정책의 실례를 방증하는 유물로서, 이 비를 통해 태조 때부터 고종 때까지 일관되게 시행해 온 조선시대 송금 정책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다. 비교적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송금비로서는 전국적으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사례라는 점에서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다. 2014년 2월 20일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5호로 지정받았다
북한산초등학교다.
북한산국립공원 산성탐방센터에 들어선다.
북한산 둘레교다. 둘레교는 8m 높이의 투명 발판이 설치되어 아찔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전주이씨 서흥군, 위성군 묘역을 지난다. 이 묘역은 조선조 제 11대 임금이신 중종대화의 제 2왕자 해안군의 차남이신 서흥군의 묘소이며 서흥군의 아드님 이시 위성군 묘소 및 그 자손들의 묘역이다.
북한산둘레길 11구간 효자길은 효자 박태성과 인왕산 호랑이에 대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효자비와 밤골로 향하는 아기자기한 산길을 지나면서 만나는 나무 한그루도 소중하게 여기며 조심조심 놓은 목재 테크와 다리, 능선과 오솔길로 구성된 아름다운 길이다.
박태성 정려비다. 박태성은 자 경숙, 본관은 밀양이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이곳에 묘를 쓰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무덤을 찾아와 돌보아 ‘인왕산 호랑이와 박효자’전설의 주인공이 되었다. 봉분 옆에는 전설에 나오는 호랑이의 묘로 불리는 민무덤이 있다. 이 사진은 204년 봄에 촬영한 사진이다.
밤골계곡에서 만나는 국사당이다.
이제 북한산둘레길은 12구간 충의길로 접어든다. 북한산둘레길 12구간 충의길은 사기막계곡을 뒤로 데크길로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만나는 충의길 전망대에서 보는 북한산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등 북한산의 봉우리들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솔고개로 이어지는 숲 속 길과 솔고개에서 교현리까지 이어지는 보도는 지루한 감을 느낄 수있지만 대광농원을 지나면서 보는 노송과 조형물이 조금은 달래준다. 이 길은 우리나라의 산줄길 한북정맥을 잠시나마 밟을 수 있는 길이다.
사리막골전망대에서 보는 북한산이다. 북한산은 주봉인 백운대를 중심으로, 남쪽의 만경대 북쪽으로 인수봉을 거느리고 있다. 북한산은 예로부터 명산으로 일명 한산, 삼각산 또는 화산이라 불렀으며 신라 때에는 부아악이라고도 하였다. 옛날 개성의 송도에서 한양으로 오다가 이 산을 바라보면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의 세 봉우리가 삼각으로 나란히 우뚝 솟아 있어 삼각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비류와 온조가 이곳 부아악에 올라 살 만한 땅을 찾았다고 한다. 또한 무학대사는 이성계를 위해 도읍지를 정할 때 백운대에서 맥을 찾아 만경대에 올랐다가 서남쪽으로 가서 비봉에 이르렀다고 하여 만경대를 일명 ‘국망봉’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의 산줄기 한남정맥 상장능선 들머리다. '물은 산을 넘지 못하고 산은 물을 범하지 못한다' 는 것이 우리 선조들의 지리 이다. 백두산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은 남으로 내리 닫으면서 여러개의 산줄기를 흘리며 지리산으로 이어진다. 선조 들은 우리의 산줄기를 1대간(大幹) 1정간(正幹) 13정맥(正脈)으로 구분했다. 그러나 일제는 땅속의 지질 구조선을 따라 산줄기를 구분하고 산맥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우리는 90년 간 민족 고유의 산줄기 개념을 잊고 지내 왔다. 한북정맥은 백두대간의 추가령에서 가지를 쳐 황해로 이어지는 한강 북쪽의 산줄기다. 적근산에 이르러 남한 땅으로 넘어온 한북정맥은 대성산, 복계산, 복주산(1,152m), 광덕산(1,046.3m), 백운산(904.4m), 국망봉(1,168.1m), 청계산(849.1m), 운악산(935.5m) 같은 천m 내외의 산들을 빚은 뒤, 죽엽산(600.6m)을 지나고 양주에 불곡산(470m)을 세우고, 이후 이삼백m의 높이로 몸을 낮춘 한북정맥은 서울과의 경계를 이루면서 도봉산(740m),북한산(836,5m)같은 세계적인 명산을 빚은 뒤, 다시 고도를 낮춰 장흥 노고산(495.7m), 파주 교하의 장명산(102m)자락에 평야를 풀어놓고 황해로 빠진다. 길동무들이 지금 우리에 산줄기 잠시지만 한북정맥 능선에 서있다.
솔고개다.
대광농원의 아름다운 소나무들을 보며 걷는다.
교현우이령 입구다. 북한산둘레길 오늘의 마지막 구간인 13구간 송추마을길이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북한산국립공원의 도봉산 자락에 있는 송추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송추마을길을 통과하는 구간이다. 송추계곡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 일원으로, 이곳 마을의 이름이자 계곡의 이름이기도 한 ‘송추’는 소나무(松)와 가래나무(楸)가 많다 하여 지어졌으며 사계절 내내 계곡에 맑은 물이 흐르기 때문에 못(湫)자로 바꿔 쓰기도 한다. 주변의 아름다운 산들과 신비로운 물줄기가 조화를 이루어 예로부터 신선들이 노는 곳으로 알려져 왔다.
오봉의 아름다운 모습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오봉탐방지원센터 야외무대다. 여성봉을 거쳐 오봉으로 오르는 길목이다.
예전과는 달리 깨끗한 송추마을이 마중나온다. 송추계곡은 국립공원 지정 이전인 1963년 서울 교외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유원지로 개발되어 수영장, 음식점 등 영업시설 증가로 계곡 점유, 자릿세 징수 등 불법ㆍ무질서 행위가 여름철마다 반복되어 왔다. 또한 계곡 내 인위적 교란으로 인한 생물서식처 위협, 영업시설 난립으로 인한 경관 훼손, 불법행위 단속으로 지역주민과의 갈등 심화 등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야기되었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송추계곡 환경개선, 불법 영업행위 근절, 재해 위험지구 정비 등 송추이주사업을 통해 국립공원의 생태계 건강성 유지와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한 2001년 이주사업 조사연구를 시작으로 2011년 이주단지 조성사업 시행계획 결정고시 등 사업을 진행해 2014년 철거지 보상 및 철거 정비 완료되여 깨끗한 송추마을을 만날 수 있다.
오늘은 송추마을길 헤세의 정원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북한산둘레길 네 번째 발걸음을 예약하며 또 하나의 추억거리를 남기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