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회 세미나를 마쳤다. 오전에 비오고 우려되는 날씨였고 또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초청영화인 송길한 작가의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제자들도 참석하고 즐겁고 유익한 세미나는 이상앖이 치루어졌다. 앞으로 남은 15회 세미나에는 15명의 꼭 필요한 분들만 모실 예정이다.
12시부터 한국스포츠통신의 유준호 편집국장의 인터뷰가 있었다. 우리 세미나에 대한 취재이다. 우리 세미나는 8년을 이어오며 이제 인터뷰가 서서히 요청되고 있다.
1부에선 지난 2017년에 있었던 이소룡기념사업회의 세미나 및 행사 보고가 있었다. 올 한 해도 끊임업시 달려온 한 해ㅏ 아닐 수 없다 특히 7월의 이소룡영화제 및 브루스리데이는 전무후무한 행사엿고 향후 또 있을지가 궁금한 큰 행사였다. 7월 한 달 내내 롯데월드 극장에서 하루에 6편씩 이소룡 영화를 상영하였는데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행사이다.
12월까지 모두 84회의 세미나가 올해 계속되어 여러 유명 배우나 감독들이 초청되었다.
송길한 작가는 성룡이 주연한 <권정>을 윤색하였는데 그 영화는 한국에서는 <금강혈인>으로 개봉되었다. 위장합작영화인 이 영화의 번역본이 송길한 작가에게 전달되어 윤색되어 전북 김제의 금산사에서 재촬영되었고 위장합작되었다. 그는 삼영필름 기획실에서 잠시 근무하기도 했지만 오로지 작가로서 외길을 걸어왔다. 북한산 자락의 평창동에서 30년 넘게 집필활동을 하며 그만의 작가세계를 펼쳐온 것이다. 그리고 영상원과 서강대에서 오랜 기간 후학들을 지도하고 지금은 시나리오작가협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전주국제영화제 초대 부집행위원장을 역임하였고 2009년 이후 고문을 맡고 있다. 2009년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했다. <넘버 3>의 송능한 감독의 친형이기도 하다.
2018년 한 해에는 일본영화와 배우, 감독으 소개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그 첫번째 이물은 리키로 알려진 역도산이다. 그의 스토리는 방학기 화백에 의해 <피와 꽃>이라는 제목으로 20년전에 만화화 되었다.
오늘 화두는 "1984년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이다. 그 해에는 외압에 의해 영화 촬영이 중단 된 <비구니>가 제작된 해이다. <비구니>는 임권택 감독, 송길한 작가 시나리오의 영화이다. 처음 시작은 김지미 배우가 송길한 작가에게 일엽스님의 수기를 전달하면서부터 였다. <비구니>는 수덕사에서 열반하신 김일엽 스님의 일생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송 작가는 내용에 국한 하지 않고 한 비구니의 삶을 통한 구도의 세계를 그리고자 했다.
당시 문공부에서 사전심의까지 마친 시나리오가 갑자기 외설작, 도색설에 휘말려 도마위에 올랐다. 그것은 5.17법란 이후 전국의 사찰이 수난을 당하며 불거진 일이다. 영화인들은 창작 자유 수호 궐기대회를 열어 제작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지만 결국 태흥영화사의 이태원 사장은 제작 중단 결정을 내린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스태프와 김지미 배우는 울분을 머금고 물러서야 했다. 김지미 배우는 끼고 있던 반지가 얼마나 화가 났으면 두 동강 날 정도였는데 너무나 화가 치밀어 벽을 쳐대어 반지가 두 토막이 났다. 다른 스태프도 마찬가지였고 모두가 가슴이 뭉그러질 정도였고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 절망하고 참담해졌었다. 김지미 배우는 그렇게 한국을 떠났는데 미국에 도착해서는 실신해 앰블런스에 실려갈 정도였다.
그렇게 가슴아픈 일들이 1984년 한국에서 있었다.
그들의 결국 심기일전(心機一轉)하여 <길소뜸>, <티켓> 등의 영화를 만들어 낸다. <티켓>은 사회가 개인의 삶을 타락시키는 가혹성을 다루고 있다. 다큐적안 영화는가장 이상적인 극영화였다. 관객들의 사랑은 이후 <아낌없이 주련다>, <아메리카 아메리카>로 이어지며 지미 필름은 돈방석에 앉는다. 그리고 그들은 <명자 아키코 소냐>의 제작에 착수한다. 이 영화는 지미필름의 영광을 한 수간에 무너뜨렸다. 지미필름이 제작했던 8편의 수익을 한 순간에 불태운 대작이었다. 오히려 대표였던 김지미 배우가 모두를 다독였다고 한다.
송길한 작가는 1940년 7월 30일 전주 출생으로 이소룡과 갑장이다. 이강천 감독의 1955년작 <피아골> 현장에 놀러가 시나리오라는 것을 처음 읽었다. 그는 소설가를 꿈꾸었는데 서울대 법학과를 다녔고 군 전역 후 1970년에 시나리오 <흑조>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영화계에 데뷔하였다. <흑조>는 1973년 이상언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다. 1974년에는 후배 조관수의 감독에 의해 <마지막 날의 언약>이 영화화되었다.
이후 1976년 동두천 용주골 양색씨 이야기를 다룬 <과거는 왜물어>, 1977년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1978년 위장합작영화 <금강혈인>, 1979년 <독신녀>, <순자야> 등을 집필했다.
송 작가는 그외 김응천, 설태호 감독의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임권택 감독의 영화 12편의 시나리오를 집필하였다. 천성이 우직하고 올곧아 타협할 줄 모르는 그가 40여 편이 넘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며 영화계에서 살아남은 건 그가 실력이 있는 작가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도 많지만 그는 1980년 <짝코>, 1981년 <만다라>로 대종상영화제 각색상을 연이어 수상한다. 그무렵이 그의 전성기의 기점이다. 임권택 감독과 콤비가 되어 그의 대표작이 양산된 것이다. 임권택 감독의 <우상의 눈물>, <안개마을>, <불의 딸>, <비구니>, <나비 품에서 울었다>, <안개마을>, <길소뜸>, <티켓>, <씨받이>, 정진우 감독의 <백구야 훨훨 날지마라>, 유영진 감독의 <깜동>, 노세한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 장길수 감독의 <아메리카 아메리카>, 이장호 감독의 <명자 아키코 쏘냐>까지 쉼없이 걸작을 탄생시켰다. 제작중단된 <서울 만신>은 아까운 시나리오이다.
<길소뜸>은 백상대상, 영평상 각본상을 수상했고 <티켓>으로 대종상 각본상을 수상했다. 2010년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의 각색에 참여했다.
나와는 <비구니> 제작 때 만나 충무로에서 맥주잔을 기울이며 영화이야기를 나누었던 오랜 지기이고 시나리오작가협회 선배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그를 기려 작가로는 최초로 회고전을 가졌고 미완성영화 <비구니>를 복원상영하였다.
미완의 걸작 <비구니> 발굴의 숨은 공로자인데 <비구니>를 목잊어 하던 그는 태흥영화사를 찾아가 필름을 수배했다. 그러나 이미 30년이 지났기에 원본필름(네가 및 사운드 필름)은 소실되어 찾을 길 없었고 영화진흥위원화의 창고에 있던 <비구니>의 편집용 워크 프린트만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전주국제영화제 팀이 나서 복원 결정을 하여 영상자료원이 한 컷 한 컷을 복원하여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로서는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그만큼 그로서는 <비구니>가 다른 어느 작품보다 애착이 가는 소중한 유산이었다. 그러나 <비구니>는 그만에게만 소중한 유산이 아니고 참여했던 스태프 모두에게 소중한 유산일 것이다.
그는 삼영필름 기획실에서 잠시 근무하기도 했지만 오로지 작가로서 외길을 걸어왔다. 북한산 자락의 평창동에서 30년 넘게 집필활동을 하며 그만의 작가세계를 펼쳐온 것이다. 그리고 영상원과 서강대에서 오랜 기간 후학들을 지도하고 지금은 시나리오작가협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전주국제영화제 초대 부집행위원장을 역임하였고 2009년 이후 고문을 맡고 있다. 2009년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했다. <넘버 3>의 송능한 감독의 친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