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미로 듣는 비는
- 오태환
처마 맡에 널어 말린 동지(冬至)께 무청처럼 간조롱히 뿌리는 비
한 치 두 치 나비 재며 한 냥쭝 두 냥쭝 저울에 달며 는실난실 날리는 비는
일껏 발품이나 팔며 그늘마다 구름 기슭 볕뉘처럼 움트는 비는
전당포(典當鋪)도 못 가 본 백통(白銅) 비녀 때깔로 새들새들 저무는 비는
꺼병아 꺼병아 애꾸눈서껀 엿장수서껀 칠삭둥이서껀
안다미로 눈칫밥만 멕이다가 나무거울로 낯짝 가리고 내리는 비는
- <시안> 2011년 가을호 / 시집 『복사꽃, 천지간의 우수리』(시로여는세상, 2013)
* 오태환 : 1960년 서울 출생. 고려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동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84년 <조선일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동시 당선 등단. 시집 『북한산』 『수화』 『별빛들을 쓰다』와 시론집 『미당 시의 산경표 안에서 길을 찾다』 등이 있다. 시전문지 <시안> 편집주간.

'께'는 '그때쯤'이라는 뜻이고, '무청'은 당연히 알겠고, '간조롱히'는 '가지런히'라는 말이다. '쭝'은 '무게'라는 의미의 접사고, '는실난실'은 사전에는 '성적 충동으로 인해 야릇하고 잡스럽게 구는 모양'이라고 적혀 있긴 한데 그보다는 앞서 자리 잡고 있는 '나비'를 따라 읽어 보면 어떨까 싶다. '볕뉘'는 '작은 틈이나 그늘진 곳에 잠시 비치는 볕'이고, '새들새들'은 '조금 시들어 힘이 없는 모양'을 그린 말이다. '꺼병이'는 원래 '꿩의 어린 새끼'를 가리키는 단어인데, '옷차림 따위의 겉모습이 잘 어울리지 않고 거칠게 생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서껀'은 '무엇이랑 함께'라는 뜻을 지닌 조사이고, '안다미로'는 '담은 것이 그릇에 넘치도록 많이'라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나무거울'은 '겉모양은 그럴듯하나 실제로는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이나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 그냥 '나무로 만든 거울'이나 '나무'로 여겨도 재미있겠다 싶다. 이렇게 찾아 놓고 읽어 보니까 어떤가. 저 봄비가 그저 주룩주룩 내리지 않고 "간조롱히" "는실난실" "새들새들" "안다미로" 내리지 않는가. 가끔 조금만 수고를 보태면 환해지는 시가 있다. 이 시가 그렇다.
채상우 시인

순우리말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시입니다. 우리말에 이토록 다채로운 의태어들이 있었구나 싶습니다. “안다미로”는 “담은 것이 그릇에 넘치도록 많이”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이 시는 비오는 날의 풍경을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듯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는 그냥 아무렇게나 내리는 게 아닙니다. 한 치 두 치 나비 재고, 한 냥쭝 두 냥쭝 저울에 달아서 발품을 팔고 다니며 내립니다. 그늘마다 내리고, 나뭇잎마다 내립니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어린 새나 엿장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립니다. 안다미로 내리던 비가 그치면 모락모락 밥하는 연기가 비에 젖은 하늘을 말려줘야 할 것 같네요.
최형심 시인

비는 는실난실 날리고, 달빛은 개밥그릇이나 살강살강 부시고, 별빛은 새금새금 아삭한 맛으로 익어갑니다. 오태환은 의태어와 의성어들을 반짝반짝 하도록 닦아내어 찰랑거리는 빛 속에 가지런히 내놓는 솜씨가 일품입니다. 그것들을 소리 내어 읽으며 말과 말이 부딪치며 내는 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모국어의 황홀경에 가 닿습니다. 때는 동지(冬至), 비는 두 손을 놓고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는 게 아니죠. 제 잣대로 한 치 두 치 나비를 재고, 제 저울로 한 냥쭝 두 냥쭝 무게를 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여기저기 발품을 팔고 다니느라 분주합니다. 간조롱히 뿌리고 새들새들 저무는 동지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날들은 꽤 괜찮은 시절이었지요. 안다미로 내리던 비 그친 저녁 노모가 달그락거리며 저녁상을 차리고 있는데요. 김 오르는 이밥에 호박전과 호박젓국, 구운 김과 가자미 구운 것을 올린 저녁상 받을 생각에 군침을 삼키던 그 시절이 호시절이 아니면 무엇이겠어요.
장석주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