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伴侶犬) 멍돌이
송 훈
시대적 흐름이랄까 반려견 5백만 시대라는데 전국민 열명의 한마리 시대에 살고 있다. 길거리마다 견공들이 보인다. 유모차에 싣고 업는 띠에 업고 안고 끌고, 차에서 내리면서 며느리가 반려견 안고 내리면서 몸이 불편한 시어머니 한테 빨리 내리라고 소리 친다는 씁쓸한 자조 섞인 풍자가 있기도 하다. 애완견 산업이 시장의 틈새가 아닌 대세 산업이란다. 전용 스마트 목걸이 전용 런닝머신 수제 간식 여기에 사료, 의류 전용 썬글라스 세게 최초 자동샤워 드라이 등등 일일이 열거 하기도 힘들만큼 큰 시장을 형성 하며 팻쇼 가 열린다고 한다.
참 기이한 현상 아닐까?
중소기업 대기업도 애완견 시장에 앞다퉈 뛰어 든다니 새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 그야말로 애완견 천지 이고 천국 같다. 건물마다 견공들 시끄럽게 짖는 소리에 이제는 익숙한듯 그러려니 하고 산다. 공원으로 산책나온 견공들은 나이드신 어른신보다도 특급대우를 받는듯 한 느낌을 받는다. 동네마다 애완견 용품점 먹거리점이 수없이 늘어나고 무인 점포도 많아진다. 그야말로 애완견 반려견 천국 같다. 동물 병원도 즐비하게 생겨서 주변에 어렵지않게 보인다.
동물병원 가면 사람과 거의 똑같은 진료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듯 하다. 피 빼고 엑스레이 촬영에 내시경 수술 치아교정 등등
이쯤되면 대형 대학병원 같은 느낌을 받는다. 개 입원실도 있고 중환자 실도 있다. 이제는 개 화장장까지 등장하고 개 납골당까지 생겨서 이쯤되면 사람보다 낫다는 자조섞인 말도 나올법 하다.
화장하면 수의도 있고 목관함 도자기함, 관도 가격에 따라서 종류가 다양하다. 사람 화장장 하고 별 다를바가 없는듯 하다. 필자가 아는 지인도 기르던 견공이 새벽에 죽어서 딸이 인터넷 검색해서 개 장례식장 겸 화장장 찾아가서 몇백을 들여서 보내 주었다고 한다.
우스게 소리로 직장상사 개가 죽어서 문상 갔다는 이야기를 웃으면서 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예전같으면 상상하기도 힘든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고 사는것이 많지만 이 또한 우리들의 현실이다.
혐오식품으로 내몰린 보신탕집은 이제 거의 사라진듯 하다. 바람직한 현상인듯 하기도 하지면 연세드신 옛날분들은 기가 찰 노릇 이다는 어른들도 계시다. 나에게도 17년전 조용히 다가와 가족과 함께하며 기르던 반려견을 얼마전 떠나 보내면서 많은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어느 학자에 의하면 아기때는 하루 사오백번씩 웃는데 어른이 되고 중년이 될수록 웃는 횟수가 줄어 하루 20~30번 밖에 안 웃는다 한다.
걱정이 많아서 겠지요. 동물도 같은것 같다.
애들 때문에 기르기 시작한 일이었지만 기르다보면 정이들어 가족같다. 개는 사람에게(가족)는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한다. 사람 못되고 나쁜 사람들은 개만도 못하다고 하지 않던가?
집에 들어가면 발자욱 소리만 들어도 꼬리치며 문앞으로 달려와 현관문을 열면 쉬운말로 좋아서 오줌 싸며, ‘자지러진다’ 라는 표현이 맞을정도로 반겨준다. 어쩌다 저리가 하고 발로 살짝 밀치며 아는척을 안하면 삐져서 거실 구석에 쳐박혀 슬픈 표정을 짓는다. 얼마나 귀엽고 앙증 맞나요.
반겨주는것은 아들딸 보다도 몇배 더 반겨 주니 이또한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런데 사람도 건강할 때가 있고 아플 때가 있듯이, 젊은 시절엔 날아다닐듯 씩씩하지만 노년이 되면 누구도 피해갈수 없는 자연현상, 누구나 죽음을 향하여 뚜벅뚜벅 한 걸음씩 걸어간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나이들고 늙으면 병들고 나약해지면서 힘없어 비실비실 못먹으면서 하늘로 가는것이 똑같다는 이치를 깨달았다.
아기 강아지 때부터 기르면서 건강하게 뛰어놀며 가족과 동거동락 할 때 느끼는 재미도 정서적으로 좋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반려견 을 케어 하면서 공(功) 들이고 힘들어도 그 아이가 주는것도 많다 라고 결론 내리고 싶다.
그러나 반려견이 나이들고 병약해지면서 지켜보는 가족들도 힘들다.
케어 하기가 힘들고 어려워도 아파하는 모습을 볼수가 없으니 동물병원엘 자주 데리고 다니게 된다. 약 값도 사람보다 더 비싸다. 진료 받는데 80만원 60만원 이렇게 드는데 아들이 다 비용처리 하면서 데리고 다닌다. 부모 몰래 훨씬 더많은 치료비가 들어간듯 하다.
하늘나라 가기 보름전에는 공원에서 열걸음 걸으면 힘들어 걷지도 못하고 멈춰서있는다. 참 안쓰럽다. 늙은 개의 얼굴도 사람 요양시설의 마지막 모습 비슷하다. 떠나가기 5일전에는 서있지도 못하고 누워서 대소변 배출해서 급기야 아들이 동물병원 긴급 응급실에 입원시키고 와서 경과를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입원 이틀이 지나자 아들이 산소방을 설치 해 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24시간 곁에 있어야 한다니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닐수 없다.
가족회의에서 의견 대립이 되었다.
나와 아내는 사람도 호스피스 병동에서 품위있는 죽음을 맞이 하려고 하고 일부에서는 요즘 건강할때 연명치료 거부 의사 동의서까지 서약하는 추세인데 일어서지도, 먹지도 못하는데 안타깝지만 무슨 산소방 설치까지 해서 연명치료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해도 그렇게 해서라도 하루라도 더 살게 하고싶다는 아들의 고집을 꺾지 못해 의견 존중을 해서 그렇게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날 새벽 아들은 동물병원에 전화해서 가서 볼수 있느냐고 하니 당직 수의사가 안된다고 했던 모양이다. 죽은 다음에 수의사한테 작은 목소리로 어젯밤에 보고싶다 할 때 면회를 거부한것을 원망해본다.
다음날 오전 9시쯤 동물병원 에서 급한 목소리로 다급하게 전화가 왔다. 멍돌이가(우리집 애견명) 위중하다고 빨리 오라는 전화였다. 다급하게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수의사가 심폐소생술을 하는데 이미 늦은 듯해 보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이별의 순간을 맞이 하고 있었다.
잠시후 수의사가 ‘숨이 멎었다’ 하는데 ...
참 슬프게 아내랑 아들이 운다.
아들은 끌어안고 엉엉 소리내어 울고 있다.
애견을 기르지 않는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 못 할 광경이지만 ~~~
자동차도 정들면 팔려 갈 때 우는사람도 있다니까, 어찌보면 당연한듯 하다. 17년간 같은 집에서 추억이 깃들었으니 왜 안그렇겠는가?
병원에서 마음 가라앉히고 데리고 가라고 하면서 종이 박스에 흰종이 깔아 그위에 눕혀주며 인계해준다.
그래도 주인 잘 만나서 편하게 자연사 했으니 다행이라며 위로 해준다. 평상시 멍돌이가 죽으면 본가 시골 임야에 좋은 터 찾아서 묻어 주기로 약속한 바에 따라서 차에 싣고 그곳으로 향해서 가는중에도 슬퍼서 울기에,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할아버지 돌아가셔도 이렇게 안 울겠다’ 했더니 ‘할아버지는 떨어져 살아서 멍돌이 만큼 잔정이 없지 않느냐’ 는 이야기다. 이것이 핵가족이 가져온 우리의 시대적 슬픈 자화상 이다.
서울에서 멀지않은 본가(本家) 임야에 도착하여 좋은자리 물색하여주목나무 아래에 열심히 묻을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파내어 묻힐곳을 잘 파서 마무리 하고나니 그 시간동안 별 생각으로 상념에 잠겼던듯 하다. 아들이 한참 있더니 엄마 아빠는 먼저 가라고 한다.
자기가 잘 묻어주고 천천히 오겠다 하기에 좀더 있고 싶은가 하여 뜻을 들어주며 그렇게 하라 하고 왔는데,
결과는? 매장 했을때 벌레들이 파먹거나 모이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어서 급기야 반려견 사후 화장장(火葬場)데리고 가서 화장해 주었다 고 한다.
한줌이 아닌 반 줌도 안되는 유해를 봉투에 담아 자그마한 유골함에 넣어 작은상자에 포장해서 주었단다. 반줌도 안되는 작은 유해(遺骸)는 며칠간 멍돌이 집 안에 넣어두고 아내와 아들은 틈 날 때마다 불러보고 만져본다. 그놈의 정이 뭔지.
10여일을 집에 보관 하고 드디어 애초에 묻어 주려던 본가(本家) 나무아래 뿌려주고 왔다. 하늘에 어디에선가는 영혼이 있으리라 믿고,
행복하여라~~
기를때는 좋지만 늙어서 약해지면서 케어하고 정들었던 반려견들과 이별의 과정을 지켜보며 너무 힘들어하는 가족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다시는 기르면 안되겠다는 생각도 하는데, 어떤 것이 정답인지 모르겠다.
“멍돌아 부디 하늘에서 별이 되고, 더 좋은 주인 만나서 행복하여라.
추억이 많았기에 보고 싶구나.”
“네가 있어서 즐거웠고 행복했다. 꿈속에서 또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