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를 떠나는 날이다. 날은 맑아 여행하기 딱 좋은 날이다. 이른 아침 집 앞으로 택시를 불렀다. 택시는 송도 신도시를 빠져나오자 이내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올랐다. 주변으로 송도신도시의 빌딩들이 우후준순처럼 솟아오르고 있었다. 송도신도시는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변화를 보이는 곳이다.
간척이라는 이름으로 바다가 흙더미로 채워지자 한반도의 지형은 대동여지도를 어색하게 했다. 국토가 일그러지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개발이라는 말로 미화한다. 그러나 송도신도시에서 보는 개발은 매우 그 의미가 제한적인 듯싶다. 바다가 매워진 그 땅위에 고층 아파트를 짓는 것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애초의 국제 업무 단지라는 이름은 겨우 전철역 이름으로만 남았다.
택시는 인천대교를 빠르게 달린다. 대교의 끝을 조금 더 지나면 인천국제공항이다. 한해에 몇 번씩 찾는 공항이지만 갈 때마다 낯설다. 짐을 붙이고 긴 줄을 서서 검색대와 심사대를 차례로 지나는 일은 당연한 일인데도 무척 성가시다. 어떻든 그런 과정이 모두 여행이므로 긴 줄에도 푸념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세 해 전인가? 터키 여행을 계획했다가 출발하기 사흘 전에 여행을 포기한 일이 있었다.
이스탄불에서 테러가 발생했다는 뉴스 때문이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여행을 할 수야 없는 일이 아닌가. 그때도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은 매우 순조로웠다. 터키에 대한 기대에 나는 조금 들떠 있기까지 했다. 그런 여행이 무산된 때문인지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는 지난번과 같은 그런 들뜸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가게 되면 가겠지 하는 다소 심드렁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출발하기 사흘 전. 이스탄불 근처에서 제법 강도가 센 지진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이번에도 또 여행이 불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약간의 불안감이 생겼다. 마침 여행사에서 전화가 오고 이스탄불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일단은 여행 코스와 지진 발생 지역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으므로 별 일이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곁들였다.
그러나 지진은 여진을 감안할 때 그리 편안하게 받아들일 형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이 아니면 아예 터키 여행은 내 머리 속에서 지워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웬만하면 여행을 강행하기로 했다. 그런 내게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이 걱정을 하면서 전화너머로 넌지시 한 마디 한다.
“아빠, 터키하고는 인연이 없는 것 같은데?”
오래전부터 나는 백령도를 가보려고 했고 실제로 배표를 산 것만도 몇 차례가 된다. 어떤 날은 하루 전날 밤에 갑작스레 전화가 울려서 내일은 해무가 많아서 출항을 못한다는 연락을 받기도 했고, 또 어떤 대는 연안부두까지 가서도 해무로 인해 배가 출항을 하지 못한다는 안내 방송을 듣고 돌아서기도 했다.
어디 그 뿐인가 모든 것들이 순조로워 탑승한 배가 출항을 했는데도 배가 내해를 빠져나가 너른 바다로 들어서자 파도가 4m 이상 거세게 치는 바람에 다시 연안부두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때 아들이 내게 백령도와는 인연이 없는 모양이라고 했었다. 이번에 터키 지진이 나자 걱정이 된 아들이 통화 중에 터키 여행을 백령도 여행에 빗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여행을 강행할 참이라고 아들에게 의지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