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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樂行, <織席說>(직석설), <<九思堂集>> 권8
김낙행, <자리 짜기>
“織席”(직석)은 “자리 짜기”이다.
원문:
俚謔云 村措大 少習科文 不成名 爲風月 又稍衰 則業織席 而遂老死 蓋賤侮之言也 而遠於儒雅 損於風致 織席其甚者也 故尤鄙下之 爲窮老者之終事 人如是而終 誠可哀已 然亦循其分而已矣 不必遽非笑之也 今余 科文風月 皆非所事 寓居山中 其窮益甚 耕耘樵採 乃其分也 况織席之不甚費筋力者哉
家人悶余之徒食 而無所用心 乞席材 於其兄弟家 強要之 且請隣翁 授其法 余不獲已 抑而爲之 始也手澁 而心不入 甚艱以遲 終日而得寸焉 旣日久稍熟 措手自便捷 心與法涵 往往顧語傍人 而經緯錯綜 皆順其勢 而不差 於是乎 忘其苦 而耽好之 非飮食便旋及尊客來 則不輟焉 計自朝至暮 可得尺 自能者視之 猶鈍矣 而在余可謂大進矣 天下之短於才 而拙於謀者 莫如余學之旬月 能至於是 是技也 爲天下之賤也 可知也 余業之固 其宜哉 雖以是終吾身 亦不辭焉 分所當也
爲之有益於余 者五 不徒食一也 簡閒出入二也 盛暑忘蒸汗 當晝不困睡三也 心不一於憂愁 言不暇於支蔓四也 旣成而精者 將以安老母 粗者將以藉吾身與妻兒 而使小婢輩亦免於寢土 有餘將以分人之如余窮者五也
읽기:
俚謔(이학)에서 云(운)한다. 村措大(촌조대)는 少習科文(소습과문)하고 不成名(불성명)이면 爲風月(위풍월)이라. 又(우) 稍衰(초쇠)면 則(즉) 業織席(업직석)이다가 而(이) 遂老死(수노사)라. 蓋(개) 賤侮之言也(천모지언야)라. 而(이) 遠於儒雅(원어유아)하고 損於風致(손어풍치)에 織席(직석)이 其(기) 甚者也(심자야)니라. 故(고)로 尤鄙下之(우비하지)하여 爲窮老者之終事(위궁노자지종사)하고 人(인) 如是而終(여시이종)이 誠(성) 可哀已(가애이)니라. 然(연)이나 亦(역) 循其分而已矣(순기분이이의)이니 不必遽非笑之也(불필거비소지야)니라. 今(금) 余(여)는 科文風月(과문풍월)이 皆(개) 非所事(비소사)이고, 寓居山中(우거산중)하여 其(기) 窮益甚(궁익심)하여 耕耘樵採(경운초채)가 乃(내) 其分也(기분야)니라. 况(황) 織席之不甚費筋力者哉(직석지불심비근력자재)로다.
家人(가인)이 悶余之徒食(민여지도식) 而(이) 無所用心(무소용심)하고, 乞席材(걸석재) 於其兄弟家(어기형제가)하여 強要之(강요지)하니라. 且(차) 請隣翁(청인옹)하여 授其法(수기법)하니라. 余(여)는 不獲已(불획이)니 “抑而爲之”(억이위지)라. 始也(시야)에 手澁(수삽)하고 而(이) 心不入(심불입)하여 甚艱以遲(심간이지)라. 終日(종일) 而(이) “得寸焉”(득촌언)이니라. 旣日久(기일구)에 稍熟”(초숙)하여 措手自便捷(조수자편첩)하고 心與法涵(심여법함)이라 往往(왕왕) 顧語傍人(고어방인)하고 而(이) 經緯錯綜(경위착종)이라도 皆(개) 順其勢(순기세) 而(이) 不差(불차)니라. 於是乎(어시호)에 忘其苦(망기고)하고 而(이) 耽好之(탐호지)하니라. 非飮食便旋及尊客來(비음식변선급존객래)면 則(즉) 不輟焉(불철언)이라. 計自朝至暮(계자조지모)한즉 可得尺(가득척)이라. 自能者視之(자능자시지)면 猶鈍矣(유둔의)나 而(이) 在余(재여) 可謂大進矣(가위대진의)라. 天下之短於才(천하지단어재) 而(이) 拙於謀者(졸어모자) 莫如余(막여여)한데, 學之旬月(학지순월)에 “能至於是”(능지어시)로다. 是技也(시기야)를 爲天下之賤也(위천하지천야)를 可知也(가지야)나 余業之固(여업지고) 其宜哉(기의재)니라. 雖(수) 以是終吾身(이시종오신)이라도 亦(역) 不辭焉(불사언)하니 分所當也(분소당야)니라.
爲之(위지) 有益於余者(유익어여자)가 五(오)니다. 不徒食(불도식) 一也(일야)라. 簡閒出入(간한출입) 二也(이야)라. 盛暑忘蒸汗(성서망증한)하고 當晝不困睡(당주불곤수)가 三也(삼야)라. 心不一於憂愁(심불일어우수)하고 言不暇於支蔓(언불가어지만)이 四也(사야)라. 旣成(기성)에 而(이) 精者(정자) 將以安老母(장이안노모)하고, 粗者(조자) 將以藉吾身與妻兒(장이자오신여처아) 而(이) 使小婢輩亦免於寢土(사소배비역면어침토)하고 有餘(유여)면 將以分人之如余窮者(장이분인지여여궁자)가 五也(오야)라.
풀이:
“俚謔”(이학)은 “항간의 우스개”이다. “云”(운)은 “말하다”이다. “村措大”(촌조대)는 “시골 가난한 선비”이다. “少習科文”(소습과문)은 “젊어서 과거 글을 익히다”이다. “不成名"(불성명)은 “이름을 얻지 못하다”이다. “爲風月”(위풍월)은 “풍월을 일삼다”이다. “又”(우)는 “또한”이다. “稍衰”(초쇠)는 “점차 쇠약해지다”이다. “則”(즉)은 “곧”이다. “業織席”(업직석)은 “자리 짜는 일을 업으로 삼다”이다. “而”(이)는 “그리고”이다. “遂老死”(수노사)는 “마침내 늙어 죽다”이다. “蓋”(개)는 “대개”이다. “賤侮之言也”(천모지언야)는 “천하게 여기고 모욕하는 말이다”이다. 而(이) “遠於儒雅”(원어유아)는 “우아한 선비와 거리가 멀다”이다. “損於風致”(손어풍치)는 “품격을 손상시키다”이다 “織席”(직석)은 “자리 짜기”이다. “其”(기)는 “그것”이다. “甚者也”(심자야)는 “심한 것이다”이다. “故”(고)는 “그러므로”이다. “尤鄙下之”(우비하지)는 “더욱 이것을 비루하게 여기고 낮추다”이다. “爲窮老者之終事”(위궁노자지종사)는 “궁한 늙은이가 마지막으로 하는 일이라고 하다”이다. “人”(인)은 “사람”이다. “如是而終”(여시이종)은 “이렇게 마치다”이다. “誠”(성)은 “참으로”이다. “可哀已”(가애이)는 “슬프다고 하리라”이다. “然”(연)은 “그러나”이다. “亦”(역)은 “또한”이다. “循其分而已矣”(순기분이이의)는 “그 분수를 따를 따름이다”이다. “不必遽非笑之也”(불필거비소지야)는 “느닷없이 비웃을 필요가 없다”이다. “今”(금)은 “이제”이다. “余”(여)는 “나”이다. “科文風月”(과문풍월)은 “과거 글과 풍월”이다. “皆”(개)는 “모두”이다. “非所事”(비소사)는 “하는 일이 아니다”이다. “寓居山中”(우거산중)은 “산중에 숨어 살다”이다. “其”(기)는 “그”이다. “窮益甚”(궁익심)은 “가난이 더욱 심하다”이다. “耕耘樵採”(경운초채)는 “밭 갈고 김매고 나무하고 나물 캐다”이다. “乃”(내)는 “곧”이다. “其分也”(기분야)는 “그것이 분수이다”이다. “况”(황)은 “하물며”이다. “織席之不甚費筋力者哉”(직석지불심비근력자재)는 “자리 짜기는 근력을 심하게 소모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이다.
“家人”(가인)은 “집사람”이다. “悶余之徒食”(민여지도식)은 “내가 놀고먹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다”이다. 而(이) “無所用心”(무소용심)은 “마음 쓰는 데가 없다”이다. “乞席材”(걸석재)는 “자리 짜는 재료를 빌다”이다. “於其兄弟家”(어기형제가)는 “그 형제의 집에서”이다. “強要之”(강요지)는 “이것을 강제로 하게 하다”이다. “且”(차)는 “또한”이다. “請隣翁”(청인옹)은 “이웃 노인을 청하다”이다. “授其法”(수기법)은 “그 법을 전수하다”이다. “余”(여)는 “나”이다. 不獲已(불획이)는 “부적당하다”이다. “抑而爲之”(억이위지)는 “억지로 그 일을 하다”이다. “始也”(시야)는 “시작하다”이다. “手澁”(수삽)은 “손이 서툴다”이다. 而(이) “心不入”(심불입)은 “마음에 들지 않다”이다. “甚艱以遲”(심간이지)는 “아주 어려워 더디다”이다, 終日(종일) 而(이) “得寸焉”(득촌언)은 “한 마디만 얻다”이다. “旣日久”(기일구)는 “이미 날이 오래 되다”이다. “稍熟”(초숙)은 “점차 익숙해지다”이다. “措手自便捷”(조수자편첩)은 “손놀림이 저절로 편하고 빠르다”이다. “心與法涵”(심여법함)은 “마음이나 기법이 익숙하다”이다. “往往”(왕왕)은 “이따금”이다. “顧語傍人”(고어방인)은 “곁에 있는 사람을 돌아보고 말하다”이다. 而(이) “經緯錯綜”(경위착종)은 “씨줄과 날줄이 얽히다”이다. “皆”(개)는 “모두”이다. “順其勢”(순기세)는 “그 형세를 따르다” 而(이) “不差”(불차)는 “차질이 생기지 않는다”이다. “於是乎”(어시호)는 “이제야”이다. “忘其苦”(망기고)는 “그 고통을 잊다”이다. 而(이) “耽好之”(탐호지)는 “그것을 탐내고 좋아하다”이다. “非飮食便旋及尊客來”(비음식변선급존객래)는 “음식을 먹고 용변을 보고, 귀한 손님이 온 경우가 아니라면”이다. 則(즉) “不輟焉”(불철언)은 “그치지 않다”이다. “計自朝至暮”(계자조지모)는 “아침부터 저물 때까지를 헤아리다”이다. “可得尺”(가득척)은 “자가 되는 분량을 얻다”이다. “自能者視之”(자능자시지)는 “능한 사람의 견지에서 보다”이다. “猶鈍矣”(유둔의)는 “오히려 둔하다”이다. 而(이) “在余”(재여)는 “나로서는”이다. “可謂大進矣”(가위대진의)는 “대단한 진보라고 말할 수 있다”이다. “天下之短於才”(천하지단어재)는 “천하에서 재주가 짧다” 而(이) “拙於謀者”(졸어모자)는 “헤아림이 졸열한 사람”이다. “莫如余”(막여여)는 “나와 같은 사람이 없다”이다. “學之旬月”(학지순월)은 “그것을 열흘이나 한 달 배우다”이다. “能至於是”(능지어시)는 “이처럼 능숙한 데 이르다”이다. “是技也”(시기야)는 “이 기술은”이다. “爲天下之賤也”(위천하지천야)는 “천하의 천한 것이라고 하다”이다. “可知也”(가지야)는 “알 만하다”이다. “余業之固”(여업지고)는 “내가 하는 일이 굳다”이다. “其宜哉”(기의재)는 “그것이 마땅하구나”이다. “雖”(수)는 “비록”이다. “以是終吾身”(이시종오신)은 “이것으로 생을 마치다”이다. “亦”(역)은 “또한”이다. “不辭焉”(불사언)은 “사양하지 않는다”이다. “分所當也”(분소당야)는 “분수에 합당하다”이다.
“爲之”(위지)는 “그것을 하다”이다. “有益於余者”(유익어여자)는 “내게 이로운 것”이다. “五”(오)는 “다섯”이다. “不徒食”(불도식)은 “놀고먹지 않는다”이다. “一也”(일야)는 “하나이다”이다. “簡閒出入”(간한출입)은 “드나드는 것을 줄이다”이다. “二也”(이야)는 “둘이다”이다. “盛暑忘蒸汗”(성서망증한)은 “한여름에 땀을 잊다”이다. “當晝不困睡”(당주불곤수)는 “낮에 졸린다고 자지 않다”이다. “三也”(삼야)는 “셋이다”이다. “心不一於憂愁”(심불일어우수)는 “마음은 근심이 하나도 없다”이다. “言不暇於支蔓”(언불가어지만)은 “말은 지루하게 할 겨를이 없다”이다. “四也”(사야)는 “넷이다”이다. “旣成”(기성)은 “이미 이루어지다”이다. “而”(이)는 “그리고”이다. “精者”(정자)는 “정교한 것”이다. “將以安老母”(장이안노모)는 “장차 그것으로 노모를 편안하게 하다”이다. “粗者”(조자)는 “조잡한 것”이다. “將以藉吾身與妻兒”(장이자오신여처아)는 “장차 그것을 내 몸과 처자식이 깔다”이다. “而”(이) “使小婢輩亦免於寢土”(사소비배역면어침토)는 “작은 여종이 흙에서 자는 것을 면할 수 있게 하다”이다. “有餘”(유여)는 “남는 것이 있다”이다. “將以分人之如余窮者(장이분인여여궁자)는 ”장차 그것을 나처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五也”(오야)는 “다섯이다”이다.
번역:
항간에서는 우스개소리로 말한다. “시골 가난한 선비는 젊어서 과거 글을 익히다가 이름을 얻지 못하면 풍월을 일삼고, 또한 점차 쇠약해지면 자리 짜는 일을 업으로 하다가 마침내 늙어 죽는다.” 이것은 천하게 여기고 모욕하는 말이다. 우아한 선비와 거리가 멀고, 품격을 손상시키는 것이 자리 짜기이니, 심한 말을 해서 궁한 늙은이가 마지막으로 하는 일을 아주 비루하게 여기고 낮추자는 것이다. 사람이 삶을 이렇게 마치는 것은 참으로 슬프다고 하리라. 그러나 이 또한 분수를 따를 따름이므로, 느닷없이 비웃을 필요는 없다. 지금 나는 과거 글이나 풍월을 모두 일삼지 않으며, 산중에 숨어서 지낸다. 가난이 더욱 심해, 밭 갈고 김매고 나무하고 나물 캔다. 이것이 분수이다. 자리 짜기는 근력을 심하게 소모하지 않아도 되니 더 좋지 않은가.
집사람이 내가 놀고먹고 마음 쓰는 데가 없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고, 자리 짜는 재료를 형제의 집에서 빌려와, 강제로 하라고 한다. 또한 이웃 노인을 청해 수법을 전수받으라고 한다. 나는 부적당하다고 여기지만,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작하니 손이 서툴고, 마음에 들지 않아, 고생만 하고 더디다. 온 종일 한 마디만 얻는다. 여러 날이 되자 점차 익숙해지고, 손놀림이 저절로 편해지고 빨라지고, 마음과 기법이 익숙해진다. 이따금 곁에 있는 사람을 돌아보고 말을 하기도 한다. 씨줄과 날줄이 얽혔어도 모두 형세를 따르니 차질이 생기지 않는다. 이제야 고통을 잊고, 일을 탐내고 좋아하게 되었다.음식을 먹고 용변을 보거나 귀한 손님이 찾아온 경우가 아니면 그치지 않는다. 아침부터 저물 때까지 짠 분량을 헤아리니, 자[尺]가 되는 분량을 얻었다. 능한 사람의 견지에서 보면 오히려 둔하지만, 나로서는 대단한 진보라고 말할 수 있다. 천하에 재주가 짧고, 헤아림이 졸렬하기가 나와 같은 사람이 없는데, 열흘이나 한 달만에 배워 이처럼 능숙한 데 이르렀으니, 이 기술을 얕은 것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만하다. 내가 하는 일로 굳히는 것이 마땅하다. 비록 이것으로 생을 마친다고 해도 또한 사양하지 않을 만큼 분수에 합당하다.
이 일을 해서 내게 이로운 것이 다섯이다. 놀고먹지 않는 것이 하나이다. 드나드는 거동을 줄이는 것이 둘이다. 한여름에 땀을 잊으며 낮에 졸린다고 자지 않는 것이 셋이다. 마음에는 근심이 하나도 없으며, 말을 지루하게 할 겨를이 없는 것이 넷이다. 다 만들어 정교한 제품으로는 노모를 편안하게 하도록 하고, 조잡한 물건은 나와 처자가 깔거나 어린 여종이 흙에서 자지 않게 해주고, 나머지가 있으면 나처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다섯이다.
논의:
옆에 앉아 말을 술술 하듯이 써서, 긴장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이다. 늙은 선비가 자리를 짜면서 사람이 달라지는 모습을 담담하게 술회하기만 한 대수롭지 않은 내용인데 잔잔한 감동을 준다. 자리 짜는 것에 다섯 가지 유익함이 있다고 한 말을 본떠서 이 글이 다섯 가지로 훌륭하다고 하겠다.
불리한 처지를 유리하게 만드는 전환을 이룩한 것이 하나이다. 할 일을 찾아 일하는 즐거움과 보람을 체험한 것이 둘이다. 어떤 일이라도 부지런히 하면 잘 될 수 있다고 알려준 것이 셋이다. 여러 사람과 평등한 관계를 가지면서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고 한 것이 넷이다. 귀천이나 고하의 구분을 타파해야 한다고 암시한 것이 다섯이다.
경상도 안동 시골 선비가 이런 글을 쓴 것은 놀라운 일이다. 노동이 소중한 것을 체험하고, 복고적이고 보수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새사람이 되는 과정을 진솔하게 말했다. 세상이 달라져 어둠이 걷히고 광명한 천지가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역사의 전환을 말해주는 소중한 증언이다.
*<수우진정(樹友眞情)>
*<불망고원(不忘故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