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중국에서 유명한 상인은 晋商(산서 상인),徽商(안휘 상인),浙商(절강 상인) 등이 있다.
산서 상인은 중국 최초의 은행이라 할수 있는 山西票号를 만든 사람들로 중국 고대와 중세에서는 최고 상인의 위치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명나라 청나라 시기에 산서성은 북경과 화중지역을 연결하는 거점에 위치하여 활발한 교역이 진행되었다.
안휘 상인도 한때는 중국 최고의 상인 반열에 올라 있었으며 극성기에는 안휘성 남성의 70%가 상업에 종사했다고 한다. 특히 안휘 상인은 학문과 문화를 중시하는 ‘선비이면서도 상인이고 상인이면서도 선비였던’ 유상(儒商)이었다. 많은 서원을 지어 주희와 같은 대유학자를 배출하였으며 자식은 꼭 공부를 시켰다고 한다.
절강 상인은 황해(黃海)에 접한 긴 해안선으로 인해 남송(南宋) 때인 12세기부터 무역 활동이 번성하였던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돈을 많이 벌었으며 또한 그곳 사람들은 모험심이 강해 돈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고 외지로 진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질을 갖고 있다.
절강 상인 중에서도 원저우 상인들은 “중국의 유대인”으로 불리고 있을 정도로 장사 수완이 뛰어난데, 원저우 사람들은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도전하며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사람들과의 마찰이나 갈등을 겁내지 않으며, 항상 웃는 낙천적인 기질을 지니고 있다.
또한 예로부터 시장의 흐름을 읽는 예리한 안목을 갖고 민첩한 실행력으로 남들보다 앞서 시장을 선점하였고, 스스로에게 엄격하며 신용을 지킬 줄 알았으며 조직 응집력이 강하다.
이런 조직 결속력 덕분에 원저우 상인들은 개미군단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
현재 원저우에 남아 있는 원저우 상인은 거의 드물며 오히려 중국 전역과 세계 각국에서 이들을 만날 수 있다.세계 각국에서 돈만 되는 곳이면 어디에든 다 원저우 상인들이 있음. (天下没有不敢去的地方)
큰 돈을 벌고 싶으면 먼저 큰 뜻을 품어야 하고, 큰 돈은 작은 돈에서 시작된다는 원저우 상인들의 경영철학에서 배울점은 작은 돈을 버는 과정에서도 경험과 지식, 경력, 인맥을 쌓을 수 있다는 것.
이러한 철학이 창업을 두려워하지 않는 원저우 상인으로 거듭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