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인은 의정부를 경유하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타고 빠른 속도로 달렸다.
그의 수중에 있는 변종바이러스는 여간 골치 덩어리가 아니었다. 변종바이러스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그나마 한 숨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TSS로부터 제 2차 테러 징후가 있음을 전달받은 그는 더욱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2차 테러 역시 바이러스에 의한 공격일 것이라는 슈퍼 컴퓨터 '타키온'의 예측이 있었다.
그는 옆 좌석에 위에 놓여있는 등산용 가방을 기민하게 확인할 만큼 조바심이 일어나고 있었다. 가방 안에는 미지로부터 전달 받은 변종바이러스가 내장된 케이스가 들어있었다.
의정부 경계선을 지난 지프는 도봉산역을 지나치기 전 도봉산 입구로 향하는 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했다. 그의 지프는 빠른 속도로 입구를 통과했다. 등산로와 연결된 도로는 한정된 지점까지는 차량 통행이 가능했다.
차량 진입이 가능한 마지막 구역에서 멈춘 그는 한쪽에 차를 주차 시킨 뒤 변종바이러스가 든 가방을 양쪽 어깨에 둘러맸다. 차에서 나온 그는 초소에 직원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의 신분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는 신분증을 펼치며 초소로 다가갔다. 초소 안에서 열 시까지만 근무를 하는 야간 담당 직원이 문밖으로 나왔다. 그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산인을 쳐다보았다.
"입산 시간이 지났습니다. 다음에 오세요."
산인은 TSS로부터 부여 받은 행정 안전부 인증 도장이 날인되어 있는 공무원 신분증을 직원 앞에서 펼쳐 보였다.
"저는 국가에서 나왔습니다. 대통령의 명령을 수행하기 당장 입산해야합니다."
그는 한참 신분증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의문스런 눈초리로 물어보았다.
"TSS가 도대체 뭐요?"
"대통령 직할 비밀정보국입니다. 저는 대통령의 직속 명령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처음 듣는 내용이지만 신분증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네요.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대신 위험하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무슨 일이 생기시면 이곳으로 연락 주십시오. 제 휴대폰 번호입니다."
산인은 초소 창문에 붙어 있는 경비직원의 휴대폰 번호를 외웠다.
"감사합니다. 그럼."
간단히 목례를 한 산인은 경비직원과 헤어져 산길을 걸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손전등을 켜서 어두운 산길을 비추었다.
2시간가량 산행을 하던 산인은 수풀이 상당히 많이 우거진 지점을 발견했다. 수풀 안으로 진입하는 주변에는 대나무들이 마치 울타리를 치듯 무성하게 뻗어 있었다.
그는 무성한 대나무들을 제기며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대나무를 벗어나자 숲 안에는 또 다른 수풀이 있었다. 마치 액자 속의 액자, TV 속의 TV와 같은 기분이 들어서 묘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몇 걸음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그는 스마트 휴대폰에 저장된 지도를 확인 한 뒤 가지가 무성한데다가 몸통이 두 개로 나뉘어져 ‘ㄴ’ 모양으로 뻗어 있는 소나무 옆에 섰다.
그는 등산용 가방의 오른 쪽 주머니에 끼워진 야전 삽을 꺼내서 낙엽이 무성한 땅의 흙을 파기 시작했다. 땅은 적어도 10cm도 채 안 되어서 바닥을 보였으며, 땅을 팔 때마다 야전 삽과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름 돋는 마찰음은 바닥이 합판으로 되어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역시나 그가 폭을 넓게 잡고 땅을 모두 파자 가로세로 직경 3미터 가량의 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손전등을 비추며 철문의 손잡이를 찾아보았다. 손잡이는 중간 부분에 옴폭 파인 홈 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 옆에는 둥그런 커버 같은 것이 있었고, 커버를 옆으로 제기자 열쇠 구멍이 나타났다.
그는 오른 쪽 바지주머니에서 열쇠 하나를 꺼내었다. 굵직한 열쇠를 한번 들여다 본 산인은 열쇠구멍에 끼워 넣고 힘차게 돌렸다.
기계장치 소음이 발생하며 철문이 양 옆으로 펼쳐지며 열렸다.
문이 열리자 안쪽 벽에 설치된 등에서 불이 켜지며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이 시야로 들어왔다. 그는 예상대로 일이 진행된다는 생각을 하며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쪽에 또 다른 문이 있었지만 잠금 장치는 없었다. 이미 열쇠로 열면서 모든 보안시스템이 해제된 상태였던 것이다.
그는 바닥 아래에서 두 번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적어도 17평 정도는 되어 보이는 텅 빈 공간이 있었다. 자동 센서가 작동하며 불이 켜지며 안은 환해졌다. 실내의 중앙에는 가로 1.5cm, 세로 2cm, 폭은 사람 몸통의 골반까지 이르는 직사각 모양의 철재 선반이 놓여 있었다. 뭔가 중요한 물건을 보관하는 장치로 보였으며, 기계식으로 제조된 넓은 철제 컨테이너 모양의 선반이었다.
산인은 익숙한 행동을 취하며 사각 선반의 테두리 부위에 부착된 버튼을 눌렀다. 가스 압력 방식 개폐장치에서 공기를 뿜어내는 소리가 일어나며 지붕 부분의 커버가 자동으로 열렸다.
기계식 선반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여기에 보관하면 되겠군."
산인은 혼잣말을 되뇌며 등에 짊어지고 있던 등산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는 가방의 지퍼를 열어 변종바이러스가 든 티타늄 합성 가방을 꺼냈다.
그는 양손으로 변종바이러스가 든 가방을 거머쥐고 조심스럽게 선반 내부 바닥에 내려놓았다.
문을 닫는 스위치를 누른 그는 가방을 들고 지하 창고를 빠져나갔다.
그가 문을 닫기 위해 열쇠를 넣고 돌리자 처음과 같은 소음을 일으키며 가스 개폐 장치가 작동되었다.
문을 완전히 잠근 후 돌아서는 순간 그의 옆구리에 차갑고 묵직한 물체가 그의 신경을 자극했다.
산인은 나뭇가지라도 걸린 것인가 해서 의구심에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구리를 찌르는 둔탁한 물건의 정체를 확인해 보았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완전 다르게 시커멓고 긴 총구가 그의 옆구리를 찌르고 있었다.
괴한은 완전전투군장과 특전사 군복, 군모를 착용한 군인으로 보이는 덩치 큰 남자였다. 그는 시커먼 위장 숯을 얼굴에 칠하고 있었고, 키가 크고 몸집이 산만했다. 그는 산인의 앞을 가로 막은 채 코너샷이라 불리는 첨단 자동소총을 들어 올리며 총구를 산인의 가슴을 향하도록 다시 조준을 했다.
산인은 기겁하며 양손을 들어올렸다. 순간 입 밖으로 말이 막혀 나오질 않았다.
"앞장서라."
"워, 원하는 게 뭐지?"
"네 차로 가자"
산인은 양손을 목 뒤로 올린 채 앞장서서 상당한 거리를 내려갔다.
차량 앞에 다다르자 괴한이 그에게 말했다.
"천천히 돌아!"
산인은 괴한의 지시대로 몸을 돌려 소총의 총구와 마주했다.
녹색과 흑색으로 위장을 얼굴이었다.
그는 아시아와 유럽인을 합쳐놓은 듯한 이목구비에 일반 군인이기 보다는 용병의 자유로운 스타일의 군복을 입고 있었다.
그의 냉담한 눈빛은 전혀 흔들림조차 없었다.
"대체 왜 그러는지 이유라도 알려 줄 수 없겠습니까?"
"트렁크 열어!"
질문을 무시당한 산인은 주머니에서 키를 꺼내어 트렁크 앞에 서서 리모트 키의 트렁크 버튼을 꾹 눌렀다.
문이 덜컥하면서 열렸다.
괴한은 기다렸다는듯 코너샷의 방아쇠를 당겼다.
소음기를 달구는 소리가 들렸다. 짧고 강렬하게 총구에서 불꽃을 일어났다. 그리고 단발의 총알이 총구 밖으로 뱉어냈다.
퉁!
짧고 굵은 소음과 동시에 산인의 명치에서 피가 튀었다.
산인은 자신의 명치 중앙이 구멍이 났다는 사실을 바로 깨우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떨리는 손으로 가슴을 더듬으며 흥건한 피를 만지고서야 알게되었다.
그는 충격 받은 표정으로 그대로 서있었다.
괴한이 갑자기 총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산인은 그가 무슨 의도로 자신에게 다가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괴한의 손에 들려 있던 M8기관총이 갑자기 회색 파이프 모양으로 바뀌었다.
산인에게는 마치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CGI기법으로 밖에는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회색 파이프의 끝은 날카로운 칼날이 집게로 변형되며 길게 늘어지다가 빠르게 앞으로 뻗었다.
집게는 산인의 왼쪽 가슴을 파고 들며 빠르게 심장을 뽑아냈다.
"컥!"
산인은 정신과 육신을 끊기는 통증을 느꼈다.
죽음 직전에 느낄 수 있는 마지막 아픔이었다.
그는 마지막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눈빛을 남기며 바닥으로 스르르 미끌어졌다.
괴한은 집게에 피가 흥건하게 묻은 심장을 들고 있다가 가슴에 사과 크가 만한 구멍이 열리자 그 안에 심장을 집어넣었다.
심장이 들어간 가슴의 구멍이 다시 닫혀지자 괴한은 다시 집게를 들어 쓰러져 있는 이산인의 머리로 향했다.
날카로운 칼날 형태인 집게의 끝은 다시 산인의 뇌를 정교하게 칼질을 한 뒤 뇌를 감싸는 두개골을 통째로 도려냈다.
집게가 든 두개골 앞에서 괴한의 머리가 두 쪽으로 갈리며 그 속에 뇌를 집어 넣었다.
괴한은 뇌와 심장을 탈취당하고 사망한 산인의 몸을 들어 트렁크 속에 넣은 뒤 문을 닫았다.
그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차키를 집어 지프의 운전석 위로 올라탔다. 백미러에 비친 그의 얼굴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더니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고 있었다. 매우 짧은 사이에 그자의 얼굴은 이산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시동소리가 시끄럽게 울리면서 지프는 곧이어 주차장을 떠났다.
산새나 벌레의 소리조차 없는 고요한 도봉산의 주차장에는 주변에 단 두 개의 가로등이 불빛을 뿜고 있었다. 가로등 바로 밑 목 부위에 검정색 카메라가 매달린 채 작동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