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한시감상
곽장(㰌場) /김극기(金克己)
어젯밤에 거센 바람 땅을 찢더니 / 昨夜凌凌風裂地
오늘 아침에 아득한 눈이 하늘에 연해 내린다 / 今朝漠漠雪連天
지게문 밖의 모진 추위에 몸에 병이 생겨 / 戶外頑寒體生軫
창을 닫고 한종일 자는 척하네 / 塡窓擬作終日眠
어떻게 사화(사신(使臣))가 먼저 새벽에 올 줄 알았으랴 / 豈料使華先犯曉
군악 소리가 압록강 가를 뒤흔드는구나 / 鐃笳雷動鴨江邊
놀라 일어나 옷을 입고 허둥거리며 / 驚起衣裳自顚倒
자연(말의 이름)을 급히 불러 이내 채찍질 한다 / 急呼紫燕連着鞭
물결처럼 달려 비로소 침수관에 이르러 / 奔波始及枕水館
휘당 앞에 몸을 굽혀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다 / 屈體拜叩麾幢前
한 떼 군사는 홀로 서쪽 강을 건너 / 一隊刀鎗獨西渡
반 리의 규벽전을 가로 뚫었다 / 橫穿半里圭璧田
문득 보니 전려가 들 저자에 있는데 / 忽見氈廬臨野市
높은 깃발 펄럭이고 북소리 일어난다 / 高旗獵獵鼓闐闐
큰 상인의 돈피 갖옷은 손을 지질 것 같고 / 豪商貂裘手可炙
거친 콧김은 바로 올라와 구름과 연기를 이룬다 / 鼻息直上成雲煙
한 푼을 서로 다투면서 재물을 거두고 / 奔竸毫芒收貨貝
수레에 실으니 굴대가 부러져 어깨에 멘다 / 載車折軸擔赬肩
촌뜨기는 얼굴이 추하고 입이 어눌해 / 野人貌古口喑啞
달콤한 데에 속아 넘어 가는 것 참으로 가련하다 / 甘被欺謾良可憐
연민을 형박으로 속아 사나니 / 買得燕珉作荆璞
어느새 주머니의 삼만 량이 다 흩어졌다 / 囊中散盡三萬錢
어진 이나 어리석은 이 모두 이익을 다투는데 / 滿眼賢愚摠爭利
때로 나는 오뚝히 앉아 멍청해지는구나 / 時予兀坐猶塊然
숙인 얼굴 어떠한가, 목을 움츠린 자라 같고 / 俛面何如縮頭鼇
창자가 쭈루룩 하는 것은 도리어 매미 소리 같다 / 回膓却似鳴膀蟬
낮이 되어 공주에서 심심풀이 보내주니 / 日午公廚忽破寂
향기로운 술을 기울여 온 술잔에 가득 따르다 / 銀觥蘸甲傾香泉
두 귀 밑의 주름살 갑자기 펴지면서 / 鬢湏纓絡頓消釋
따뜻한 기운은 늙은 마음 다 떨어 준다 / 暄暖解扶衰朽年
되놈 아이가 왁자지껄 장막 밖을 지나는데 / 胡兒咻咻過帳外
몇 걸음 떨어져서 벌써 누린내 나는구나 / 未到數步聞臊羶
알겠구나 그의 구렁같은 욕심을 채우지 못했거니 / 也知溪谷滿不得
내 음식 먹으며 움직이는 턱을 보고 침을 질질 흘리겠구나 / 觀我朶頤流饞涎
[주D-001]전려(氈廬) : 오랑캐가 털담요로 집을 지은 것.
[주D-002]큰 상인의 …… 같고 : 세력이 불꽃 같아서 손에 닿으면 손을 지질만큼 뜨겁다는 뜻이다.
[주D-003]연민(燕珉)을 …… 사나니 : 연석(燕石)과 민(珉)은 옥(玉)과 비슷하나 옥이 아니며, 초(楚)나라 변화(卞和)가 형산(荊山)에서 얻은 박옥(돌 가운데 옥이 든 것)은 천하의 보옥(寶玉)이다. 송(宋)나라 어느 사람이 연민(燕珉)을 박옥으로 알고 속은 일이 있었다.
취시가(醉時歌) /김극기(金克己)
낚으면 반드시 바다 속 여섯 자라를 한꺼번에 낚을 것이고 / 鈞必連海上之六鼇
쏘면 반드시 해 속의 아홉 마리 까마귀를 떨어뜨린다 / 射必落日中之九烏
여섯 자라가 움직이매 어룡이 떨고 / 六鼇動兮魚龍震蕩
아홉 까마귀 나오매 초목이 마르고 탄다 / 九烏出兮草木焦枯
사내는 스스로 기특한 절개를 세워야 하나니 / 男兒要自立奇節
약한 새와 가늘은 물고기야 잡을 것 있으랴 / 弱羽纖鱗安足誅
붉은 갓끈의 운손(먼 손자(孫子))이 처음으로 땅에 떨어지니 / 紫纓雲孫始墮地
스스로 장하고 큰 계획을 베푼다고 일렀네 / 自謂壯大陳雄圖
돌을 다루어 하늘 동남 무너지는 것 막으려 하고 / 鍊石欲補東南缺
돌을 파서 하늘 막힌 서북의 길 트려 하네 / 鑿石將通西北迂
슬프다 큰 계획을 쉬이 풀지 못하니 / 嗟哉計大未易報
반 평생 불행한 신세가 썩은 선비되었구나 / 半世飄零爲腐儒
풍이가 농서에 오름을 따르지 못하였고 / 不隨馮異西登隴
공명이 노수를 건넘을 본받지 못하였다 / 不逐孔明南渡攎
쓰러진 집 아래서 시를 논하고 부를 말하며 / 論詩說賦破屋下
짧은 포대기로 처자를 안아 준다 / 却把短布抱妻孥
때때로 일어나는 울분을 누를 수 없어 / 時時壯憤掩不得
칼을 빼어 땅을 치고 하염없이 탄식하네 / 拔劍斫地空長吁
어느 때나 바람을 타고 큰 물결 부수고 / 何時乘風破巨浪
앉아서 이 천하를 당우가 되게 할까 / 坐令四海如唐虞
그대는 능연각 위에 그린 얼굴을 보지 못했는가 / 君不見凌煙閣上圖形容
그 반은 서생이요 반은 무부이니라 / 半是書生半武夫
[주D-001]여섯 자라 : 동해(東海)에 자라 여섯 마리가 산을 머리에 이고 있다고 한다.
[주D-002]쏘면 …… 떨어뜨린다 : 요(堯) 시대에 해[日]가 열개나 생겨나니 초목이 타고 마르므로 활 잘 쏘는 예(羿)를 시켜서 아홉 해를 쏘아서 떨어뜨렸는데, 해 가운데 세발 까마귀[三足鳥]가 들어 있었다 한다.
[주D-003]붉은 갓끈 : 봉(鳳)의 종류인 완추(鵷雛)가 푸른 목털이며, 붉은 갓끈이 달렸다[翠鬛紫櫻] 한다.
[주D-004]풍이(馮異)가 …… 오름 : 한(漢)나라 장수 풍이(馮異)가 농서(隴西)의 외호(隗囂)를 치러 갔다.
[주D-005]공명(孔明)이 …… 건넘 : 제갈량(諸葛亮)이 노수(瀘水)를 건너서 남만(南蠻)의 반란을 평정하였다.
칠석우(七夕雨) /이규보(李奎報)
푸른 하늘 밖에 은하가 아득한데 / 銀河杳杳碧天外
하늘나라 신선들이 오늘 밤에 모인다 / 天上神仙今夕會
용북 소리 끊어지매 밤 베틀이 비었고 / 龍梭聲斷夜機空
오작교가로 수레 빨리 가자고 재촉하네 / 烏鵲橋邊促飛蓋
서로 만나 이야기하세 이별하기 괴로워 / 相逢才說別離苦
내일 아침에 머물기 어려움을 도리어 걱정하네 / 還導明朝又難駐
두 줄기 옥 같은 눈물을 샘물처럼 뿌리니 / 雙行玉捩洒如泉
한바탕 가을 바람 일어 이내 비를 만든다 / 一陣金風吹作雨
광한전의 선녀는 비단 수건이 서늘한데 / 廣寒仙女練帨涼
쓸쓸한 계수 그림자 곁에 홀로 자나니 / 獨宿婆娑桂影傍
남의 신령스러운 배필 하룻밤 즐거움을 시기하여 / 妬他靈匹一宵歡
두꺼비 집을 굳게 닫고 빛을 놓지 않는다 / 深閉蟾宮不放光
붉은 용이 내려오나 미끄러워 타기 어렵고 / 赤龍下濕滑難騎
푸른 새는 날개 젖어 날지 못하네 / 靑鳥低霑凝不飛
하늘은 바야흐로 밝아와 새벽이 되려는데 / 天方向曉訖可霽
천손(직녀(織女))의 구름 비단옷이 물들까 두려워라 / 恐染天孫雲錦衣
[주D-001]광한전(廣寒殿)의 …… 않는다 : 달을 옥두꺼비[玉蟾]이라 하며, 월궁(月宮)을 광한전(廣寒殿)이라 하는데 항아(姮娥)가 거처하는 곳이다. 그녀는 본시 예(羿)의 아내인데 예(羿)가 구해둔 불사약(不死藥)을 훔쳐 먹고 월궁에 도망가서 혼자 살았다.
[주D-002]붉은 용이 …… 못하네 : 신선이 적용(赤龍)을 타고, 청조(靑鳥)는 선녀(仙女)의 소식을 전한다.
흥왕사 팽공 방이 이미수 내한의 아들을 보니 나이 열두 살이라 /이규보(李奎報)
흥왕사 팽공 방이 이미수 내한의 아들을 보니 나이 열두 살이라, 시를 짓게 하여 보고 칭찬해 마지 아니하면서 이 글을 준다[興王寺彭公房見李眉叟內翰子年十二使之賦詩歎賞不已贈之]
조각 구름 검푸른 머리가 이마 덮어 새로운데 / 片雲紺髮覆額新
번쩍이는 두 눈빛이 차디차게 쏘아 본다 / 雙電光寒猛射人
팽공의 밝은 지식은 참으로 하늘 눈이어서 / 彭公鑑識眞天眼
정수리 어루만지며 이것은 하늘 기린이다 하였다 / 撫頂云是天騏驎
한 편의 새로운 시는 풍우처럼 빠른데 / 一篇新詩風雨快
만 길의 웅장한 기운은 강과 바다처럼 넘친다 / 萬丈雄氣江海溢
봉 새끼와 난새 새끼는 이상한 털이 있고 / 鳳子鸞雛有異毛
요천과 옥수에 보통 흐름이 없나니 / 瑤泉玉水無凡派
어찌 꼭 왕가에만 세 그루 구슬나무 있으랴 / 何必王家珠樹三
이 첨지 아기 낳으매 쪽보다 더 푸르다 / 迺翁生兒靑出藍
은근히 이미수에게 말하자니 / 殷勤寄謝李眉叟
아융과 이야기하는 것보다 도리어 못하구나 / 不如還與阿戎談
[주D-001]왕가(王家)에만 …… 있으랴 : 당나라 왕발(王勃)의 삼형제(三兄弟)가 모두 글을 잘하므로 두이간(杜易簡)이, “왕씨 집의 세 구슬나무라[王家三珠樹].”고 칭찬하였다.
금명전 석창포(金明殿石菖蒲) /진화(陳澕)
꽃 항아리의 부숴진 옥은 가늘은 물방울 머금었는데 / 花甆碎玉含微涓
그 잎은 푸르고 고우며 뿌리는 용처럼 서리었도다 / 溪毛翠嫰根龍纏
여윈 모습 참으로 사랑할 만하거니 / 風姿癯瘦甚可愛
그것은 풀 중에서 산과 늪의 신선임을 알리라 / 知是草中山澤仙
스스로 영액을 가져 찬 기운 적시니 / 自將靈液侵寒碧
새벽 되자 잎사귀마다 맑은 물방울 떨어뜨린다 / 曉來葉葉垂淸滴
가을 기운이 방에 가득 찬 데 한 번 놀라고는 / 已驚秋意滿房櫳
문득 시정이 수석에 동함을 깨닫겠네 / 忽覺詩魂迷水石
연꽃의 맑고 깨끗함은 진흙탕에서 나왔고 / 蓮花淸淨出淤泥
백지의 꽃다운 향기는 바다 가에서 나왔다 / 白芷芳馨生海隅
누가 알리 창연히 책상 위에서 / 誰識蒼然几案上
한 치 줄기 오래 되면 도리어 수염나는 것을 / 寸莖歲久還生鬚
선창에 해가 향 연기에 나부끼는데 / 禪窓日永香煙裊
한 베개에는 바람을 따라 대나무 그늘이 좋다 / 一枕隨風竹陰好
잠이 족한 상인의 눈에는 물결이 찬데 / 上人睡足眼波寒
편히 앉아 마주 보면 늙는 줄을 모르리 / 宴坐相看不知老
[주D-001]여윈 …… 알리라 : 한무제(漢武帝)가 사마상여(司馬相如)의 〈대인부(大人賦)〉를 읽었는데, 대인부는 구름을 타고 하늘 위에 노는 신선을 쓴 글이었다. 무제는, “신선이 되면 이런 신선이 되지 산택(山澤)에서 여윈 신선이 되지는 않겠다.” 하였다.
도원가(桃源歌) /진화(陳澕)
동해의 검푸른 연기에 동남동녀 아득하고 / 丱角森森東海之蒼煙
상산의 푸른 봉우리에는 붉은 지초 빛난다 / 紫芝曄曄南山之翠巓
바로 그 때 진 나라를 피할 만한 곳은 / 等是當時避秦處
도원이 가장 좋아 신선이라 하였네 / 桃源最號爲神仙
시냇물이 다한 곳에 산에 굴이 뚫렸으니 / 溪流盡處山作口
땅이 기름지고 물도 부드러워 좋은 밭이 많았다 / 土膏水軟多良田
저문 날에 붉은 삽살개 구름 보고 짖고 / 紅厖吠雲白日晩
봄바람에 떨어진 꽃 땅에 가득하여라 / 落花滿地春風顚
복숭아나무 심은 뒤에 고향 생각 끊어졌고 / 鄕心斗斷種桃後
책을 사르기[진시황(秦始皇)이 모든 책을 불태움] 이전 세상의 일들만 말하였다 / 世事只說焚書前
풀과 나무를 보아 추위와 더위 알고 / 坐看草樹知寒暑
웃으며 어린아이 데리고 앞뒤를 잊었네 / 笑領童孩忘後先
어부가 한 번 보고 곧 배를 돌리니 / 漁人一見卽回棹
속절없이 안개 낀 물결만 만고에 아득하여라 / 煙波萬古空蒼然
그대 저 강남촌에는 / 君不見江南村
대나무가 지게문 되고 꽃이 울타리 된 것을 보았는가 / 竹作戶花作藩
실개울 맑은 물에는 찬 달이 어지럽고 / 淸流涓涓寒月漫
고요한 푸른 나무에는 그윽한 새가 지저귄다 / 碧樹寂寂幽禽喧
다만 한되는 것을 백성들 생활이 날로 피폐해 가는데 / 所恨居民産業日零落
고을 아전들은 세미 받으러 항상 문을 두드린다 / 縣吏索米長敲門
다만 와서 핍박하는 바깥 일만 없다면 / 但無外事來相逼
산촌의 가는 곳마다 모두 다 도원일세 / 山村處處皆桃源
이 시는 뜻이 있거니 그대는 버리지 말고 / 此詩有味君莫棄
고을 기록에 적어 두었다가 자손들에게 전하라 / 寫入郡譜傳兒孫
[주C-001]도원가(桃源歌) : 도연명(陶淵明)이 지은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무릉(武陵)의 어부(漁父)가 길을 잃고 배를 타고 물을 따라 올라가니, 산에 구멍이 뚫려져 있어 들어간즉 전부가 복숭아꽃이요, 촌락이 있는데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진(秦)나라 때에 모진 정치를 피하여 들어온 사람들로 6백 년이 되도록 바깥 세상과 교통하지 않고 평안하게 살고 있었다.” 하였다.
[주D-001]동해의 …… 아득하고 : 진시황(秦始皇)이 삼신산(三神山)에 불로초(不老草)를 캐러 서시를 시켜서 처녀 총각 5백 명을 데리고 바다에 배를 태워 보내었더니 서시는 바다섬에서 살고 돌아오지 않았다.
[주D-002]상산(商山)의 …… 빛난다 : 하 황공(夏黃公) 등 네 사람이 진(秦)나라를 피하여 상산(商山)에 숨어 살면서 노래를 짓기를, “빛나는 붉은 지초(芝草)는 요기할 만하도다[燁燁紫芝可以療飢].” 하였는데, 그들을 곧 상산사호(商山四晧)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