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그렇게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이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을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이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만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 이문재, <오래된 기도>
시인이 옳다. 무릎 꿇고, 두 손 모으고, 고개를 조아리고, 눈을 감지 않아도 모든 것에 기도가 있다. 그러고 보면 기독교만큼 기도를 획일적으로 만든 종교도 없다. 특히나 속상한 것은, 기도조차 효율성의 논리에 의거해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 많은 것을 쏟아내야 ‘은혜로웠다’는 맘이 들게 했다는 거다. 단 10-20분도 침묵하지 못하는 이들이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고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는 기도를 생각할 수나 있을까.
정홍규 신부가 번역한 <지구를 위한 할아버지의 기도>에도 ‘오래된 기도’가 나온다. 이문재 시인은 아마도 여기에 영감을 받아 위 시를 썼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께서는 웃으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사람들은 가장 아름다운 기도를 하지.. 고개를 숙여 꽃의 향기를 맡는 것도 기도가 될 수 있단다."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조용히 해돋이를 바라보거나, 지구가 돌아가고 있음을 느껴보거나, 새로이 시작되는 날에게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은 오래된 기도 중 하나란다. 겨울날 눈 덮힌 숲 속에 서서 너의 숨결이 세상의 일부분이 되는 것을 느껴보는 것도 기도 중 하나란다. 음악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도 기도 중 하나이다. 저녁 식탁에서 가족들의 손과 친구들의 손을 잡고 우리들을 함께 있게 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는 것도 가장 좋은 기도 중에 하나이지."
그러던 어느 날, 나의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열심히 기도했지만 할아버지는 돌아오시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돌아올 수가 없었다. 나는 기도하고, 기도하고, 내가 기도할 수 없을 때까지 또 기도했다. 그리고 나는 아주 오랫동안 기도를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안 계신 이 세상은 어둡고 쓸쓸해 보였다.
어느 날 내가 산책을 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키가 큰 나무 아래에 있는 바위를 찾아 그 위에 앉았다. 가지들은 머리 위에서 흔들거렸고 미풍은 나뭇잎 사이에서 속삭였다. 나는 가까이서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를, 울새가 인동덩굴 사이에서 노래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또 다른 어떤 것을 들었다 ㅡ 산들바람과 새의 노래와 물소리 사이에 있는 무언가를. 나는 기도 소리를 들었다. 지구는 기도하고 있었다. 바로 내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래서 나도 같이 기도했다.
"고마워요"라고 나는 기도했다. "이 나무들과 향긋한 꽃, 단단한 바위들과 노래하는 새, 특히...우리 할아버지에 대해."
그리고 나는 기도를 하면서 무언가 바뀐 것을 느꼈다. 할아버지가 어쩐지 가까이 계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처음으로 세상이 제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진정한 기도란 지구의 기도를 들을 줄 아는 이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박총, <내 삶을 바꾼 한 구절> 중에서
첫댓글 💌 주먹 쥔 손을 펴 상대에게 내밀면 악수가 되고, 두 손을 펴 모으면 기도가 됩니다. 그런 화해와 염원의 새해이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