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면서 좀 행동해라." / 강유선
얼마 전에 내가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하면서도 몹시 조마조마했다. 과연 맞게 했는지 내 자신을 돌아봤다. 평소 난 왠만해선 이와 같은 거친 표현은 잘 쓰지 않는다. 듣고 살아본 적도 없거니와 생각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일 뿐이지. 나도 교수님께 똑같은 말을 들었다. 너무 속상했다. '불러일으키다'가 사람 주어인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도 나름의 그간 쌓인 지식을 바탕으로 얘기한 것인데 생각하며 행동하라는 거친 표현을 들으니 짜증이 너무 났다. 삼일 밤낮을 잠을 못 잤다. 게다가 공개적인 자리에서까지 들은 거라 수치스럽기까지 했다.
가르침을 이유로 어떠한 폭력적인 언어와 행동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키는 작아도 덩치 큰 옆반 남자 선생님이 아침 7시 50분에 우리반 남자 아이를 손목시계까지 풀어가며 뺨과 몸을 사정없이 때리는 걸 보았다. 이 친구는 부모님이 이혼을 했고 아버지는 합기도 관장님이었다. 이 일로 학교가 소란스러워지지는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21세기 민주화 된 사회에서 쌍팔년도 때나 일어날 법한 사건이 생겼다는 게,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교장 선생님까지 넘어갔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당시는 2000년도였고 연구기관으로 지정될 만큼 교육청 지원도 많이 받던 곳이었다. 그런데도 위와 같은 상황이 발생됐다는 게 너무 수긍이 안 간다.
시대는 달라졌고 매해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기성세대와는 다르게 세상을 바라본다. 어른들과 비슷한 맥락의 경험을 했떠라도 깨닫는 건 다를 수 있다. 그들의 생각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흔히 자기말만 앞세우는 사람을 꼰대라고 한다. 늙든 젊든 상관없이 "늙은 꼰대", "젊은 꼰대"라고 부른다. 그만큼 개방적인 사고를 중시한다. 또래나 비슷한 연배에서도 모든 걸 다 아는 것마냥 굴면 뒤에서 욕을 먹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30대 중반의 여자셨다. 아무리 남학생들을 잡기 힘들더라도 보호해야 될 의무가 있는 분이 막아주지도 않고 일말의 항의도 하지 않은 것은 비열하기 그지 없다. 나도 기억이 별로 안 좋은데 악몽 꿀 때마다 나오신다.
참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도 복이다. 지훈(가명)이에게는 같이 느낀점 쓰기 연습을 하고 다시 한 번 혼자만의 힘으로 적어보게 하는 건데 단면에 적어야 될 것을 양면에 적어 "선생님이 다섯번째 얘기하는 건데 지훈(가명)아, 생각 좀 하고 행동해라."라고 말했다. 이제까지 5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치며 내 기준에서 너무 심하게 내뱉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써봤다. 속으로는 '이게 이렇게까지 말할 일인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정말 아이를 생각해 한 말인지, 나 화 풀자고 표현한 건지 죄책감이 꽤 들었다. 가고 나서도 한동안은 여러 방면으로 또 생각해 봤다. 그러다 지훈(가명)이에게 생일이 몇 월인지 물어보게 됐다. 12월이라고 했다. 어릴수록 한두달 늦게 태어난 차이가 크다. 그리고 남아일수록 유아기적 사고를 여전히 하고 있는 걸 종종 보게 된다.
지훈(가명)이는 수업을 늦게 시작하거나 빨리 끝내는 건 괜찮아도 태권도 학원은 늦거나 1분이라도 빨리 끝나는 건 못 참는다. 매일 오면 친구들과 약속 있다고 한 시간 땡하면 읽던 책도 정리하고 집에 가게 해달라고 떼를 쓴다. 이 문제로 어머니랑 얘기도 해봤지만 아직 놀고만 하고 싶어하는 태도는 쉽게 바꾸기 어려웠다. 그나마 위인전 전집을 읽게 해 인생의 방향, 목표를 설정하고 가치관을 정립해 나가고 있다. 또 우리 조카에게 문해력 지도를 하다가 조금 어려운 게 나오니까 빨리 포기해버리길래 "홍철(가명)아, 좀 더 생각해 봐라. 공부하기 싫다고 안 하지 말고 뭐가 됐든 열심히 해라. 그래야 미래가 보장된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다른 걸 더 많이 떠올리고 있는 아이에게 왜 너는 이걸 하지 않냐고 나무라봤자 소용이 없다.
저마다의 소우주를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데 어떤 이유로든 파괴시킬 권리는 우리 모두에게 전혀 없다. 오늘도 나는 학교에서 글쓰기 때문에 고통받고 책이 정확히 안 읽어져 힘들어 하다가 학원에 온 아이들을 만날 것이다. 그래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 온 것이기 때문에 너무 까부는 것이 아닌 이상 소리는 안 질러야겠다고 결심한다. 책상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큰 노력이니 인적, 물리적 환경을 잘 조성해 더욱 쉽게 실력을 쌓아갈 수 있도록 방법을 거듭 연구해 많이 도와줄 것이다. 유아교육 공부를 하면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말이 있다. '교사가 편하면 아이들이 힘들고 교사가 수고스러우면 아이들은 좋아한다.' 정말 대학교 때 밤새 교구 만드느라 30분만 자고 강의 들으러 간 적도 있다.
현장에서는 거의 공장에서 제작된 학습도구는 잘 사서 쓰질 않는다. 다 선생님들이 상황에 맞춰 아이들의 눈높이에 따라 만든다. 손이 너무 많이 간다. 보통 체력으로는 버티기 힘들다. 나는 막 가고 싶어서 간 과가 아니였던지라 실습하는 한 달동안, 그리고 길지 않은 유치원 근무 기간에도 목이 매일 부어 콧물이 걸려 약을 달고 살았다. 하지만 이 시기의 경험이 내게는 큰 교훈을 주었다. 나도 아이들에게 진짜 힘들 때는 험한 말을 쓰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든다. 그러나 꾹 누른다. 왜냐하면 미처 내 능력이 부족해 제대로 지도를 못 해주고 있는 것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배울 때는 뛰어난 선생님들은 확실히 다르다. 진짜 연구를 열정적으로 하셨던 교수님이 계셨는데 마치 대학원생 수업 같이 자세히 알려주셔 언어지도의 원리, 교육 연구 및 설계 과목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진심어린 가르침 덕에 지금도 독해력, 글쓰기 지도해주는 게 전혀 버겁지가 않다. 참 은인이시다. 나는 아이들이 나와 공부하는 시간이 낭비되지 않길 바란다. 하나라도 더 친절하게 알려주려고 노력했던 선생으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고민을 많이 한다. 내가 좀 쉽게 가자고 윽박지를 것인지, 행동의 이유를 정확히 물어 같이 건설적인 방향으로 발 맞추어 나갈 것인지를 말이다. 편하게, 빠르게 가고자 어른의 방법으로 아이를 대하는 게 아니라 조금은 힘들더라도 무릎을 꿇고 학생의 선택을 존중해나가는 것은 필요하다. '너를 위해서 혼낸거야, 소리지른 거야..'라는 씨알도 안 먹히는 핑계 따위는 접어두어야 된다. 애정과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누구에게든 거친 언사를 쏟아내고 고성을 지를 권리를 하늘은 우리에게 주지 않았다. 이 점은 누구나 명심해야 될 것이다.
첫댓글 좋은 글입니다. 거친 말을 듣고 기분이 좋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할 권리도 없고요. 직장에서도 그런 말 하면 갑질이지요. 다시 한 번 명심하겠습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달라서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서 오해가 생기기도 하는 거 같아요. 저도 제가 잘 하고 있는건지 불안할 때가 많은데 이웃들과 어울리면서 충고도 많이 들으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모두들 저를 위해서 하는 말이니까요.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은 좋은 교사라고 생각합니다. 늘 고민하고 갈등하지요.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