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정선 이야기2
깨친 정선, 갈반지의 가르침이 있는 정암사
<깨우침, 그리고 시공을 넘나든 정선사람들 >
삶에 대한 끝없는 사유와 깨우침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깨우친 사실을 실천하고, 또 새롭게 깨우치는 과정이 이어져야 합니다. 바로 이런 깨우침과 실천을 정선사람들은 끝없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왜냐고요. 바로 정선에 있는 고찰 정암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정선사람들은 마음에 품은 생각을 소리를 통해 밖으로 표출할 줄 알았습니다. 바로 정선아라리이지요. 정선아라리야말로 최고의 삶 풀이이고 삶의 철학이지요. 정선아라리가 나온 배경도 정선사람들이 일찍부터 삶에 대한 사유와 깨우침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 고리를 오늘은 정암사를 창건한 자장율사의 일대기를 따라가며 풀어보겠습니다.
정암사는 정선군 고한읍에 위치한 천년 고찰입니다. 선덕여왕 때 활동한 자장율사가 창건한 절이거든요. 그런데 정암사에는 참 많은 전설이 있습니다. 바로 정암사가 창건되고 수마노탑이 세워지고 자장의 지팡이가 고목이 된 사연을 담은 사찰연기설화(寺刹緣起說話)입니다. 특히 수마노탑은 마노석으로 쌓아 벽돌 같은 모양[모전석(摸塼石)]에 각각의 돌 색깔이 달라 독특합니다. 2020년 6월 25일에는 우리나라 국보 제332호로 지정됩니다. 그럼 함께 이야기를 따라 여행을 해 보겠습니다.
정암사 사찰연기설화는 자장율사로부터 시작합니다. 왜냐면 자장율사가 창건주이기 때문이지요. 자장(慈藏, 590~658)은 신라 진골 출신으로 속명은 김선종(金善宗)이었습니다. 자장은 부모를 일찍 여의고, 살던 집을 원녕사(元寧寺)로 바꾸고, 그곳에서 수도(修道)를 합니다. 정선과 인연이 된 것은 선덕여왕 5년(636)에 당나라 오대산에 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하면서입니다. 그때 부처님의 가사와 사리를 문수보살로부터 얻어 신라로 돌아와서 활동합니다. 643년(선덕여왕12)에 자장은 문수보살과 만나자고 약속한 태백산 갈반지(葛盤地)를 찾아 석남원(石南院)을 짓습니다. 석남원은 훗날 정암사로 바뀝니다.
자장이 갈반지를 찾을 때였습니다. 눈 덮인 태백산에서 이리저리 산세를 보면서 다니고 있었지요. 자장과 같이 다니던 스님 일행이 소리를 칩니다.
“아, 뱀이다!”
듬성듬성 칡넝쿨이 솟은 위에 커다란 구렁이가 몇 마리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주변에는 흰 눈이 소복이 쌓여 있는 한겨울에 말입니다. 구렁이는 수도를 게을리하여 업보를 받은 전생의 스님들이었지요. 자장은 그곳에서 스님들의 업보를 소멸하여주고 극락왕생을 빌어줍니다. 그러자 구렁이는 허물을 벗고 어디론가 사라지고요. 구렁이가 깔고 앉았던 칡넝쿨이 갑자기 자라 줄기를 뻗기 시작합니다.
“스님, 칡이 세 갈래로 자랍니다. 어, 개울을 건너갑니다.”
그랬습니다. 칡은 순식간에 세 갈래로 뻗어 쑥쑥 자라더니, 자람을 멈추었지요. 자장은 느낀 바가 있었습니다. 자장은 세 개의 칡 줄기가 뻗어나가 멈춘 곳에 각각 다르게 정암사 절터, 적멸보궁, 수마노탑을 세웠습니다. 이 때문에 정암사를 갈래사(葛來寺)라 하기도 합니다. 정암사(淨巖寺)는 훗날 그 위치가 ‘멀리 세속의 티끌이 끊어져 정결’하다고 하여 지은 이름입니다.
<자장의 또 다른 깨우침, 세상의 중심>
자장은 세 갈래 칡 줄기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문수보살이 왜 태백산 갈반지에서 만나자고 했는지를 생각합니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상징이잖아요. 자장은 칡 줄기를 보면서 사람에 비유해 봅니다.
“그래 바로 그거야. 문수보살이 나에게 또 일러 준 거야. 칡 줄기가 각각 뻗어나가고 멈춘 장소가 다르듯 사람도 각자 재능이 다르고, 할 일이 다름을 보여 준 게지.”
그랬다. 문수보살은 칡을 통해 사람은 각자 ‘세상의 중심’임을 보여주었다. 자장은 갈반지(葛盤地)를 다시 새겨보았다.
“칡 갈(葛)자, 소반 반(盤)자, 땅 지(地)자라. 한 뿌리에서 칡 줄기가 각각 다르게 크듯 밥을 올릴 소반은 자기가 꾸리기 나름인 게야.”
자장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를 다시 음미했다.
“문수보살은 나를 초심으로 돌아가게 했구먼. 사람은 각자 재능이 다르니, 각자 마음먹기에 따라 나를 가꿀 수 있음을 갈반지를 통해 보여 준 게야.”
갈반지를 찾은 자장은 그곳에 석남원(石南院)을 짓고 수도를 이어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해진 옷을 입은 늙은 중이 칡으로 만든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지고 와서 자장을 찾았지요. 미친 사람이라 여겨 쫓았는데, 그 중은 강아지를 사자로 변하게 해서 타고 갔습니다. 물론 늙은 중은 문수보살의 화신입니다. 이때 문수보살은 “자만심이 많아 남을 업신여기는 자가 어찌 나를 알아보리오.”라는 말을 남깁니다. 참으로 큰 깨우침을 마지막으로 주신 것이지요. 자신이 어느 위치에 이르렀다고 함부로 권력을 쓰면서 힘없는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못살게 굴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깨우친 정선사람들의 끝없는 정진>
자장은 정암사를 창건하고 나서 불사를 이어갑니다. 당나라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받은 부처님의 가사와 사리를 봉안할 탑이 필요했지요. 그때였습니다. 자장의 귀국을 도왔던 서해 용왕이 탑을 세울 재료로 서해에 있는 마노(瑪瑙)를 울진포에 가져다 놓습니다. 자장은 불력으로 울진포에 있는 마노를 정암사로 옮깁니다. 서해에서 가져온 마노라 해서 물 수(水)자를 넣어 수마노(水瑪瑙)라 합니다.
자장은 정암사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수마노탑을 세우고, 적멸보궁을 세워 사람들이 정진하게 하지요. 정선사람들이 깨우침을 이어가는 상징물입니다.
정암사 탑 이야기에는 금대봉의 금탑과 은대봉의 은탑도 나옵니다. 금탑과 은탑은 물욕이 있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후일담까지 있지요. 사람은 누구나 무엇을 이루고 나면 자만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를 경계하여 나온 이야기라 보면 됩니다. 금탑과 은탑은 여러분 마음속에 있습니다. 금은의 보석처럼 좋은 마음, 착한 마음으로 이웃을 위하고 사랑하면 언제든 금탑과 은탑을 볼 수 있습니다. 개인의 물욕(物慾)을 버리면 볼 수 있다고 했잖아요.
탑은 아주 많은 상징을 지니고 있지요. 그중 탑의 상륜부는 사람의 눈과 마음에 해당하여 지혜를 깨우치는 의미를 띱니다. 탑의 상륜부는 또 다른 깨달음을 향해 높이 솟아 있습니다. 정말 탑 상륜부를 산으로 비유하면 높은 산이 우리의 목적지를 막고 있지요. 산이 높으면 고갯길이 높고 험하겠지요. 그렇다고 목적지가 고개 너머 있는데 우리는 가지 않을 수 없지요. 정선아라리 후렴에서 말하잖아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나 주게.” 혼자 갈 수 없으면 여럿이 넘으면 되지요. 산은 넘으라고 있는데, 고갯길이 험하고 높으면 그 나름으로 넘는 재미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