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친 글] 세상 밖으로 나오는 길 [목포 문학 기행 (Ⅱ)] / 정희연
‘일상의 글쓰기’ 벗의 인생 질주는 참 멋지고 대단하다. 작년에 선생님 네 분이 수필집을 냈다. 그 후로 그림책 세 권과 수필집 한 권이 더해졌다. 어디 그뿐이랴, 박선애, 최미숙, 양선례 선생님이 각각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함께 책을 냈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가란도로 향했다. 여러 번 압해도를 지나갔지만 가란도는 처음이다. 압해도 동북쪽에 있는 1.6㎢의 작은 섬이다. 주민은 백 명이 조금 넘는다고 한다. 목교로 연결되어 있어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다. 성인 남자 셋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지나갈 수 있는 넓이로 ‘가란대교’라 불렀다. 바다를 가로질러 뭍으로 나가는 길인 만큼 그렇겠다 싶다. 식사 시간 함박눈으로 가득한 하늘이 이제는 바람이 매우 세차다. 섬과 섬 사이로 모이는 곳이라 그 기세가 더욱 드세다. 몸이 날아갈 것 같은 강한 칼바람이다. 오후 한 시경 조수가 바뀌어 전세가 역전되는 울돌목 명량해전을 잠시 떠올렸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다. 가란도 뭍 안쪽으로 들어선 다음에서야 안정을 찾았다.
마을 주민의 자가용인 카트차가 오고갈 수 있을 정도의 아스팔트포장 길이다. 동백나무 가로수가 띄엄띄엄 서 있고, 오가는 사람이 없어 고즈넉하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둘레길을 걷는다. 한 시간 쯤 걸었을까 돌아오는 길 다시 한 번 해전을 펼친다. 몸이 얼었다. 황급히 차에 올라 목포로 향했다. 따뜻한 곳이 필요했다. <나 글쓰는 여자야>에 등장하는 커피숍으로 간다. “돈 없다고 징징거리면서도 매일 꼬박꼬박 갔다”는 조미숙 선생님의 참새 방앗간이다. 따숩다. ‘커피 볶는 칼디’ 이름도 예쁘다. 고풍스러움과 현대적 감각이 조화를 이룬다. 우아하면서 세련미가 넘친다. 자리를 잡고 몇 번 숨을 고르니 굳었던 몸이 녹는다. 그래도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맛과 시원함을 같이 해결할 수 있어 짧은 시간 머무를 때 좋다.
양선례 선생님이 선물 보따리를 꺼낸다. 두 권의 책을 선물로 받았다. 그중 하나가 학생과 선생님이 함께 쓴 <용돈은 이제 한물갔지>다. 올해 봄, 담임들에게 추천을 받아 열 명이 넘은 학생들과 ‘글쓰기 부’를 만들었는데,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 빠져나가듯 하나둘 나가 결국 한 학생만 남았다고 한다. 전남 고흥 동강의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윤수현 학생은 경제 사정이 안 좋은 부모님 밑에서 또래 친구보다 일찍 철이 든 열세살 소녀다. 그와 함께 책을 낸 것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만들어 낸 결과라 더 애틋하게 다가왔다.
학생은 스물아홉 편의 글을 썼다. 그중 ‘아빠와 언니가 다툰 날’은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언니가 돈을 펑펑 써 화가 난 아빠와, 밤늦게까지 코피를 흘려 가며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있는 언니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아빠에게 참지 못하고 울며 대들었던 이야기다. 그 가운데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폰만 붙잡고 있었고, 다툼이 끝이 나고서야 언니가 좋아할 만한 음료수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기도 하고, 언니 옆에 있는 게 방해가 될 것 같아 아빠 방으로 갔지만 둘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화해가 될까 생각하며, 화난 아빠와 우는 언니 사이에서 어색한 ‘나’를 이야기했다.
문학 기행이 끝났다. 강의도 숙제도 없다. 그동안 쓴 글을 본다. 알에서 깨어 세상으로 나온 윤수현 학생의 글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글이 있다. 꺼내기 부끄러운 것이지만 내 이야기로 그려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을 것이다. 「굼벵이처럼 느려도 멈추지만 않으면 돼, 질투가 준 선물, 뭘 그렇게 걱정하는가 그냥 해 부러, 그래 성장하고 있는 거다」 등 여러 편의 글이 있다.
나는 지금 세상 밖으로 나오는 길목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