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8장 4절 - 13절 기쁨이 넘치는 곳
아주 오래 전에 예배에 참석했었던 교회가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예배 시간 내내 마음이 따뜻해짐을 경험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따뜻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분위기가 포근한 느낌을 주는 교회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예배 시간 내내 영혼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영혼의 생명이 따뜻한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한 이유는 기쁨이 넘치고 보기에 좋았더라와 같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는교회되기를 기도합니다.
보기에 좋고 기쁨이 은헤가 넘치고 위해 천지를 창조 하셨습니다.
그래서 에덴은 무슨 뜻인가 = 바로 기쁨이란 뜻입니다.
즉 기쁨이 넘치는곳 우리가 하나님의 세계에 들었왔다는 것은 기쁨이 넘처야된다는것과 같습니다. 우리네 삶을 살아도 기쁨이 있어야 삶을 살아갈 의욕이 있고 행복해 집니다.
무엇이 만들어지면 기쁨이 있는 것이 아니고 기쁨을 내가 느낄 때 좋은일들이 이루어 진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즉, 긍정적인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축복의 통로가 된다는건 기쁨이 넘칠 때 통로가 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기쁨을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사마리아 성에는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원래부터 기쁨이 있는 성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심을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며 기도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시몬이라는 마술사의 지배를 받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마술사 시몬이 행하는 거짓 표적과 이적에 속아서 그의 말을 들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두려움으로 마술사 시몬의 말에 청종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울하던 사마리아성이 큰 기쁨이 있는 성으로 변했습니다. 어떻게 변할 수 있었습니까? 이를 살펴보면서 예배드릴 때에 어떻게 하면 기쁨이 있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지에 대하여 교훈을 받으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사마리아성에 찾아온 기쁨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말씀 속에서 마음의 기쁨을 발견하고 있었습니다.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서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빌립집사님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마리아 사람들은 들었습니다. 그 말씀 속에서 그 동안 기다려오던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사마리아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들은 것을 다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큰 기쁨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의 마음을 따듯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예배드릴 때에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듣고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늘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들을 아멘으로 들을 수 있을 때에 예배시간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포로에서 귀환했던 이스라엘백성들은 힘들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학사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백성들은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며 들었습니다. 그 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그 읽어 들인 말을 밝히 앎이니라”(느8:12)
큰 즐거움이 찾아왔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대답하는 것에서 마음에 기쁨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증거를 경험해야 합니다.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무리가 빌림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사마리아사람들은 빌립이 행하는 표적을 경험했습니다. 그 표적의 모습을 7절에서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더러운 귀신들이 소리를 지르며 나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걷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런 표적들을 경험하며 사마리아성에는 큰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이 표적은 마술사 시몬이 행하던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마술사 시몬이 행하는 능력들은 시몬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마술사 시몬의 권위를 높여주는 이적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빌립집사를 통하여 경험하는 표적들은 빌립집사를 높여주거나 그의 권위를 인정하게 하는 일들이 아니었습니다. 표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들이 진리임을 증거하는 표적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에 귀신들린 사람들이 온전해지고 중풍병자가 일어나는 놀라운 일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들이 온전해지는 기적을 경험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에 경험해야하는 것은 바로 표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움직이고 있음을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죄에서 용서받았음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 나라가 있음이 믿어지는 경험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할 때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음에 대한 감사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받은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바로 표적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경험을 하고 있습니까? 영적인 경험들이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기쁨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중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경험하는 사람은 기쁨이 있는 예배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3.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사마리아사람들은 빌립이 전하는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13절 후반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마술사 시몬처럼 빌립이 행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며 따라다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는 말입니다. 성령의 역사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표적들로 인하여 기뻐할 수는 있으나 계속될 수는 없습니다.
15절을 보면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받기를 기도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성에 내려와서 성령받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기도로 말미암아 사마리아사람들은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술사 시몬은 이에 속하지 못했습니다. 표적을 보고 따라다니던 마술사 시몬은 성령충만할 수 없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말씀에 순종하던 사람들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느끼고 있었던 큰 기쁨이 계속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 기쁨이 있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에 우리는 큰 기쁨이 있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기쁨이 있습니까? 아니면 마음의 근심과 걱정이 남아있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시30:11)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겪었던 슬픔과 아픔 그리고 걱정과 근심들을 벗어던지게 하시고 기쁨의 옷을 덧입혀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화답하며 들으시고 말씀들이 우리에게 현실로 나타나는 경험을 하시고 성령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예배드릴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큰 기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살전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모든 걱정과 근심들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