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노트 45 < 수행 노트는 1996년도부터 미얀마 마하시 명상원의 수행지도 스승과 한국인 수행자들의 수행면담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참고는 수행자를 돕기 위한 묘원의 글입니다. >
2. 질문 : 앎이 사라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답변 : 앎이 사라지고 의식이 돌아왔을 때 제일 먼저 느낀 것이 있다. 이때 처음에 느낀 것이 무엇인지 자세하게 알아차리고 보고하라.
< 참고 >
수행자가 앎이 사라진 것은 도과(道果)의 지혜가 난 것을 뜻합니다. 도과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번뇌가 불탄 열반을 말합니다. 이때의 열반은 죽음이 아닌 몸을 가지고 체험하는 유여의 열반입니다. 하지만 스승이나 수행자는 절대 도과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습니다. 오직 ‘앎’이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정신세계에서의 불문율입니다. 이 단계는 무아의 지혜가 났기 때문에 이르는 상태라서 내가 무엇을 성취했다거나 이르렀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만약 이런 말을 하면 가장 천박하게 봅니다.
부처님께서 내가 도과를 성취했다고 하면 내 제자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드러내고 있는 뜻은 깨달음이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말하는 것이며 수행자의 교만을 방지하기 위한 뜻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단계에 이르렀다고 해도 아직 가야할 길이 멀기 때문입니다. 도과를 성취할 때 완두콩알 만한 유신견이 있어도 안 된다고 말합니다. 유신견은 내가 누구라는 자아입니다. 내가 무엇을 성취했다는 것 자체가 유신견이라 도과와 상치됩니다. 궁극의 깨달음은 무아를 완전하게 알아서 모든 집착이 사라진 것을 말합니다.
스승과 제자가 말하는 인터뷰는 하나의 표현일 뿐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특히 정신세계는 증명할 수 없는 것이라서 말만 듣고 명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 스승은 수행자의 말을 듣고 몇 가지를 점검합니다. 앎이 사라진 뒤에 깨어나서 의식이 돌아왔을 때의 상태를 묻습니다. 이 대답의 결과에 따라 바르게 앎이 사라진 것으로 판단을 합니다. 만약 바르게 수행을 한 것으로 인정하면 다음에 해야 할 수행 주제를 줍니다. 스승은 이렇게 조금씩 단계적으로 이끌어 갑니다.
도과에 대한 것은 수행자의 말 한마디로 평가하는 데는 무리가 있습니다. 열반이 아니면서 수행자가 착각하기 쉬운 유사열반이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오직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야 합니다. 이미 도과를 경험을 한 스승은 수행자가 어떤 상태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수행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위빠사나 수행은 칠청정과 16단계의 지혜의 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도과도 16단계 안에 있기 때문에 면밀하게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 하는 것도 수행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위빠사나의 지혜를 몇 단계도 경험하지 못한 스승은 수행이 무엇인지를 큰 틀에서 이해하지 못해 바르게 이끌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잘못하면 수행을 왜곡해서 바르지 못한 길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지도자가 큰 악업을 짓는 것이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경전에 의하면 사리불 존자도 이런 실수를 한 예를 보더라도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바른 스승을 만나는 것도 자신의 선업의 공덕이 있어야하고 도과를 얻는 것도 선업의 공덕이 있어야 합니다.
3. 질문 : 좌선을 하는데 옆에서 다른 수행자가 내는 소리 때문에 장애가 일어나 수행을 하기 어렵습니다.
답변 : 수행을 할 때 자기 소리를 남에게 들리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남이 내는 소리를 듣지도 말아야 한다.
< 참고 >
위빠사나 수행은 자기 몸과 마음을 알아차려서 내면을 통찰하는 수행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자기 몸과 마음만 알아차리는 것은 아닙니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가지고 사는 인간은 감각대상이 있기 마련이라서 밖에 있는 대상을 알아차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대상도 있지만 들리는 소리도 있습니다. 특히 소리에 대해서 민감할 때는 수행의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이때 소리도 몸의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처럼 알아차릴 대상의 하나라고 알아야 합니다.
소리가 들려서 방해가 될 때는 먼저 소리를 싫어한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런 뒤에 호흡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마음이 소리를 싫어했으면 싫어하는 마음 때문에 바르게 집중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소리 때문에 싫어한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진정시킨 뒤에 몸으로 와서 호흡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여기서 소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내가 수행을 하는데 다른 소리가 나를 방해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수행을 할 권리가 있지만 다른 사람이 내는 소리도 그 사람의 권리입니다. 내 권리만 있고 남의 권리는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오히려 이런 장애를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마하시 명상원에서 소리가 날 때 알아차리는 방법은 ‘들림’ ‘들림’하고 알아차려서 소리를 객관화합니다. 이렇게 알아차리면 소리가 하나의 대상으로 바뀝니다. 그러면 나를 방해한다는 것 때문에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방법 외에 소리가 나서 방해가 될 때는 먼저 소리로 인해 방해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이때의 알아차림도 ‘앎’입니다. 소리가 나는 것에 대해 싫어한 것을 아는 마음입니다. 그런 뒤에 호흡을 돌아옵니다. 또 다른 방법은 소리를 대상으로 알아차립니다. 소리도 알아차릴 대상이므로 소리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립니다. 그러면 의외로 이 소리가 빨리 사라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소리도 있지만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명한 호흡도 있기 때문입니다. 소리를 싫어하는 마음이 없을 때는 소리는 이내 들리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고 소리에 반응해서 계속 싫어하면 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들립니다. 이런 경우는 내가 소리를 싫어해서 오히려 소리가 사라지지 못하도록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는 격입니다. 그래서 소리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소리가 들리고 들리지 않는 것도 내 마음가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다른 사람이 내는 소리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서 소리에 관대함이 생기면 자신이 내는 소리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이게 됩니다. 소리도 알아차릴 대상의 하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