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요새 글쓰기 수업을 다니고 있는데, 다음 시간 주제가 ‘양육자(엄마)’야. 엄마에 대한 글을 써내야 하는데 도저히 한 글자도 못 쓰겠더라고. 그렇다면, 이참에 엄마한테 물어보고 싶은 거나 실컷 물어보는 건 어떨까 싶어 편지를 쓰게 됐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안 해도 괜찮아. 얘가 이런 게 궁금하구나, 하고 읽어주기만 하면 돼.
간단한 질문부터 시작할게. 엄마 오늘도 거실 소파에서 자고 있어?
누가 엄마를 그려보라고 하면 나는 이 장면을 그릴 것 같아. 거실에 티브이가 켜져 있고 엄마는 이불도 못 덮고 웅크린 채 한 팔은 소파 밖으로 내놓고 곯아떨어진 모습 말이야. 독립해서 다른 집에 살기 전까지 엄마한테 매일 저녁 말한 것 같아. “엄마, 방에 들어가서 자.” 그러면 엄마는 벌떡 일어나서 발만 후루룩 씻고 침대로 갔잖아.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어. 우리 엄마는 왜 매일을 꽉꽉 채워서 사는 걸까? 어째서 피로도가 100%에 도달해야지만 하루가 끝났다고 인지하는 걸까?
엄마가 퇴직하고 처음 한 게 대학에 입학한 거잖아. 그때 무슨 마음이었어?
이제 출근도 안 해도 되니까 더 푹 쉬고, 더 신나게 놀 수 있는데, 바로 학교로 달려갔잖아. 60대에 20대 아이들과 함께 학교 다니는 엄마가 과제할 때 힘들어하던 모습을 기억해. 근데 왜 나는 졸업식에도 안 갔을까? 엄마에게 무관심해서 미안해. 졸업식에 가서 물어봤어야 했는데. 대학에 다녀보니 어땠어? 기대만큼 많이 배웠어? 엄마는 배우는 게 재밌어?
엄마가 나를 만나기 전의 모습이 궁금해.
어릴 때부터 헤어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어? 중학교를 다니다가 할아버지가 학교를 그만두라고 했을 때 기분은 어땠어? 학생이던 엄마가 어떤 소망을 가지고 무엇이 되어 어떤 삶을 살고 싶었는지 자세히 이야기해 본 적이 없네. 할 수만 있다면 어린 시절의 엄마를 만나보고 싶어.
유치한 질문도 하나 할게. 엄마는 나랑 동생 중에 누구를 더 편애해?
사실 엄마의 속마음을 알고 있거든. 그래도 엄마한테 "너네 둘 다 똑같이 사랑한다"는 말을 굳이 듣고 싶나 봐. 엄마가 남동생을 더 편애한다는 것을 자주 느껴. 애들은 다 아는 법이잖아. 하지만 그게 엄마가 자란 시대의 한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이제는 하고 있어. 그리고 내가 딸을 낳아 키워보니 첫째만이 누리는 온전한 애정의 시간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니 엄마, 이제 내 눈치 보지 말고 동생을 더 예뻐해도 괜찮아.
(갑자기 훅 들어가서 미안하지만) 정말 짐 싸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은 없었어?
친적들이 전부 엄마가 도망갈 거라고 했다잖아. 아빠가 사업한다고 부도를 11번이나 내고 가정은 나 몰라라 한 채 일 중독이 돼버렸으니까. 그런 아빠가 그 와중에 친척들한테 계속 돈 빌려 오라고 닦달할 땐 어떤 기분이었어? 도대체 어떻게 버틴 거야? 나 기억나. 이불장에 숨겨둔 나랑 동생의 청약통장을 아빠가 공장 기계 산다고 들고나가던 새벽 말야. 엄마가 “그건 안돼.”라고 말하면서 맨발로 좇아 나갔어. 엄마는 옛날 일은 기억 안 난다고 하지만, 이날은 분명히 기억할 것 같아.
내가 국민학교 1학년이던 봄. 그때 엄마랑 나랑 둘이 살고 있었잖아. 하루만 나 혼자 잘 수 있냐고 엄마가 물어보고, 그날 밤에 오지 않았어. 그때 어디 갔었어?
어른이 되면 말해준다고 했는데 답을 못 들었네. 아직도 말하기 어려운 거야? 그날 밤에 혼자 자는 게 무척 무서웠나 봐. 그때 반지하 창문 밖으로 지나다니는 시커먼 다리들이 아직도 생각나. 그쯤 아빠는 어디에 살고 있었어? 국민학교 5학년이 돼서야 아빠랑 다시 같이 살게 되었잖아. 엄마는 아빠가 사우디에 일하러 갔다고 했는데 돌아온 아빠 얼굴이 하나도 검게 타지 않아서 의아했거든. 엄마가 말하기 힘들면 비밀로 간직해도 괜찮아. 엄마 고생하는 걸 코앞에서 목격한 나는 엄마가 더 이상 그 시절 때문에 힘들어하는 걸 보고 싶지 않으니까. 근데 내가 말 했던가? 그다음 날 아침 학교갈 때 내가 눈독 들이던 엄마 카디건을 입고 학교에 갔다고? 담임 선생님이 왜 엄마 옷을 입고 왔냐고 하면서 날 신기하게 바라봤어.
아빠 사업 돕는다고 서울 올라오면서 미용실 정리할 때 서운하진 않았어?
엄마가 무려 20년 동안이나 했던 일이잖아. 종아리 핏줄이 다 터지고 매일 눈이 맵다고 했지만, 일할 때 엄마는 즐거워 보였어. 전화받던 목소리도 생기 넘쳤어. “네, Y 미용실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일을 하는 엄마가 자랑스러웠어. 중학교 때 학교 선생님들이 전부 엄마에게 헤어 스타일을 맡기는 모습을 보며 우리 엄마가 일을 잘하시나 보다 싶기도 했거든. 그런 일을 그만 둘 때 기분이 어땠어? 나였으면 서글펐을 것 같아.
환갑 기념으로 나랑 유럽 여행 중 터키에 갔을 때 내가 이스탄불 시장통에 있는 생선 구이집에 데려 갔었잖아. 간이의자에 앉아 저녁을 먹다가 엄마가 플라스틱 포크를 탁 하고 내려 놓으면서 말했어. “내가 가난을 벗어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니가 나를 다시 이런 곳으로 데리고 와?” 그때 정말 놀랐어. 엄마에게 가난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거든. 내가 평생 엄마 곁에 있었는데 엄마를 하나도 모르는 것에 더 놀라기도 했어. 그래서 묻고 싶어. 환갑까지는 가난을 벗어나자는 목적으로 살았잖아. 그럼 지금은? 엄마에게 어떤 소망이 있어? 이제 엄마는 어디로 가고 싶어?
작년에 칠순을 맞은 나의 아름다운 엄마, 다음 달에 칠순 여행 잘 다녀오자. 환갑 여행 때처럼 자주 다투지 말고.
팔순에도 구순에도 내 곁에 있어줘.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