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에게 물을 주었습니다. 대문 안에 있는 수도와 연결된 긴 호스로 주면 되는데, 그조차 귀찮을 때가 있습니다. 그럼 물통에 받아서 물을 주게 되는데, 문제는 물통이 커서 저에겐 버겁다는 겁니다. 그걸 알면서도 저는 한꺼번에 물을 가득 채워서 물을 줍니다. 욕심이지요. 무거운 물통을 들고 물을 준 날엔 어깨와 허리, 갈비뼈 부분이 뻐근해집니다. 그럴 땐 물통을 3분 1정도만 채운 다음, 한번이 아닌 몇 번에 나눠서 왔다 갔다 합니다. 뭔가를 할라치면 예전엔 완벽하게 다 채워야만 하고, 한 번에 많은 양의 일을 해내야만 그 다음 일이 수월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만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주어진 일을 해내고 빨리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일을 할 수 있는 제 역량의 한계를 인정하는 게 더 중요하단걸 깨달은 겁니다. 누가 알려주었을까요. 작은 길의 성녀 소화 데레사입니다. 그 분은 제 삶에 많은 영감을 주시며, 크고 특별하고 거창한 길만을 찾아 헤매온 저에게 하느님의 아이가 되어 작고 평범한 길을 한걸음씩, 자분자분 걷는 인생도 있다는 걸 안내해주셨습니다.
4년 전, 남편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에 나섰습니다. 프랑스 생장으로 가기 전에 소화 데레사 성녀가 태어나고 자란 프랑스 알랑송과 리지외에 들러서 3박 4일 피정을 했습니다. 오랫동안 바친 기도의 응답이었던 걸까요. 리지외에 머무는 동안 저희는 말로만 듣던 작은 길의 영성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버스 정류장의 유료 화장실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20센트짜리 동전을 넣었는데 열리지 않는 겁니다. 청소부에게 물어보니 10센트짜리 동전만 넣으랍니다. 암만 뒤져도 10센트는 없었습니다. 100유로, 10유로짜리 지폐가 있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10센트 동전은 쓰임새가 없다고 여겨서 소홀했던 거지요. 간신히 잔돈을 바꿔서 10센트를 넣으니 바로 열렸습니다. 아무도 열지 못한 화장실 문을 작은 동전 한 개가 연겁니다.
작음이 뭐가 문제일까요. 꼭 큰 물통에 물을 가득 담아서 낑낑거리며 줄 일이 뭐냔 말이지요. 제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무게로 나눠서 조금씩 주다 보면, 꽃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저 역시 작고 평범한 행복감을 맛볼 수 있을 텐데요. 리지외에서 체험한 동전 사건덕분에 저는 800킬로미터나 되는 산티아고 길을 한 번에 무리해서 걷지 않고, 한걸음씩 천천히 걸으며 너무 작아서 흔히들 지나치는 들꽃과 바람과 하늘의 맑음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하여 그 힘들다던 피레네 산맥은 제게 한걸음의 기적을 맛보게 해준 작은 길이었습니다. 커다란 물통에 물을 다 채우고픈 욕심이 날 때마다, 소화 데레사와 작은 동전을 떠올립니다. 이처럼 저는 크고 특별하고 위대한 것만이 소중하다고 여긴 과거의 생각들을 떨쳐 버리면서, 어린 아이처럼 작고 평범하고 약한 존재가 되어도 괜찮다고 알려주시는 성녀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중입니다. 잘 되지는 않지만, 한 걸음씩 해보는 겁니다. 천천히 말이지요.
첫댓글 박지현 요셉피나님
서울교구 주보글
공유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