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채공
채공 소임은, 바쁘기도 하고 참 재미있기도 하다.
처음 소임을 지정받을 때.. (단어들이 도무지 낯설어) 무슨 소임을 할까 망설이던 많은 행자님들은..
결국, 맨 끝에 남은 채공, 공양주 소임을 우르르 떠맡게 되었다.
원래, 절집에서 공양주 소임은 공양(밥) 준비를 책임지고, 채공 소임은 주로 나물 등 반찬 준비를 맡는다.
하지만 (수행자들을 배려하시어) 대부분의 공양 준비는, 공양간 보살님들과 자원봉사자 분들이 대신해 주셨다.
따라서 채공은 (아침, 점심) 발우 공양 찬상 준비와 (저녁 소임 시간) 주로 채소 다듬는 소임이 되었고,
공양주는 발우 공양이 끝난 후의 뒷정리와 설거지를 담당하는 소임이 되었다.
찬상 준비는 차라리 재미있다.
새벽 시간, 백팔참회문 중간에 살짝 나와야 하는 것은 약간의 아쉬움..
점심 준비로, 사시예불 올리는 동안 먼저 나올 수 있는 특권은 오히려 즐거움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양 후 뒷정리와 설거지는 만만치 않다.
힘든 일이야 보람이려니 여기면 위로가 되지만, 도반들과 같이 포행할 수 없음은 무엇보다 큰 안타까움이다.
설거지를 씩씩하게 잘 하시던 공양주 무행님^^은 특히 포행을 많이 아쉬워 하셨다.
자기 소임도 아닌데 설거지에 함께 애쓰시던 범일님.. 그리고 여러 채공/공양주 소임 행자님 등등..
뽀얀 김 속에 아지랑이처럼 떠오르는 그 예쁜 얼굴들이, 지금도 참 많이 그리웁다.
(이번 글은 조금 길어질 것 같습니다.)
채공 소임을 맡고 있던 일법 행자님이 허리 통증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
수행 중간 중간에 옆에 앉아 등짝을 가끔씩 두드려 드리고는 하였는데,
증상이 더 심해져서 이제는 채공 소임 조차 힘겨워 보인다.
(비교적 쉬운 소임인) '수광전 지전'을 맡고 있던 행자님과 역할을 맞바꾸신다 한다.
공양간 책임이던 내게 말씀하시길래, 선나스님께 가서 전해드리고, 그렇게 바꾸기로 했다.
다음날 새벽.. 새로 오신 행자님이 누군가 싶어 궁금했더니, 바로 그 덧버선 행자님이다.
"채공으로 오셨네요?" 이 쪽에서 반갑게 인사 건네는데..
고개를 얼릉 숙이고는 저리 도망가 버린다.
저녁 소임 시간, 공양간 바닥을 대걸레로 이리저리 밀고 다니다 보니..
자원봉사 선배님(2기 자각님^^)과 덧버선 행자님이 상 위를 행주로 닦으며 잠시 한담을 나눈다.
"진주요? 내는 경남 고성인데, 반갑네~ 중학교 선생님요? 보기엔 딱 고마 중학생인데.."
갈 길을 서두르는 듯 시간은 흘러... 어느덧 졸업식 날이다.
한 달이란 시간은 역시 너무도 짧았다.
(교무스님께 미리 말씀드린대로) 나는 두어달 남아 자원봉사를 더 하기로 했다.
여행자님들은 여럿이 남는데, 남자는 나 혼자다. --;;
졸업식을 마치고, 이리 저리 어울려 사진도 같이 찍고..
반장 행자님이, "대관령 목장 근처에 같이 가서 함께 회식을 하자" 하신다.
(주봉스님께 말씀드리고)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열심히 봉사하기로 하여
몇몇 도반들과 오랜만의 외식 나들이를 즐거웁게 다녀왔다.
(서울 올라가는 도반님의 차를 얻어타고) 매표소 지나 일주문에 내려달라 부탁하여,
아스팔트 길을 걸어 터벅터벅 오른다.
금강교 앞 주차장 매점을 지날 때 쯤..
저 앞에 그 덧버선 행자님이 버스를 기다리며 서 계신다.
반가운 마음에 종종 걸음으로 달려가 인사를 드렸다.
"가시는 길에 이렇게 또 뵙게 되네요."
어? 대뜸 눈길 위에서.. 내게 갑작스레 삼배를 하신다.
버스정류장에서 두 남녀의 기묘한 맞절..
"행자님~ 참.. 고마웠어요.." (이번에는 그래도 말씀을 잘 하신다.)
"함께여서, 저도 참 좋았습니다. 우리 인연 되면 다음에 또 만나요~"
버스가 도착하자, 덩치 큰 가방을 차에 올려드리고는
떠나가는 버스를 보며 합장 반배 하고,
찬 공기 한 숨 가득히 들이마시며.. 나는 이내 월정사로 발걸음을 향했다. ()
4. 채공
채공 소임은, 바쁘기도 하고 참 재미있기도 하다.
처음 소임을 지정받을 때.. (단어들이 도무지 낯설어) 무슨 소임을 할까 망설이던 많은 행자님들은..
결국, 맨 끝에 남은 채공, 공양주 소임을 우르르 떠맡게 되었다.
원래, 절집에서 공양주 소임은 공양(밥) 준비를 책임지고, 채공 소임은 주로 나물 등 반찬 준비를 맡는다.
하지만 (수행자들을 배려하시어) 대부분의 공양 준비는, 공양간 보살님들과 자원봉사자 분들이 대신해 주셨다.
따라서 채공은 (아침, 점심) 발우 공양 찬상 준비와 (저녁 소임 시간) 주로 채소 다듬는 소임이 되었고,
공양주는 발우 공양이 끝난 후의 뒷정리와 설거지를 담당하는 소임이 되었다.
찬상 준비는 차라리 재미있다.
새벽 시간, 백팔참회문 중간에 살짝 나와야 하는 것은 약간의 아쉬움..
점심 준비로, 사시예불 올리는 동안 먼저 나올 수 있는 특권은 오히려 즐거움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양 후 뒷정리와 설거지는 만만치 않다.
힘든 일이야 보람이려니 여기면 위로가 되지만, 도반들과 같이 포행할 수 없음은 무엇보다 큰 안타까움이다.
설거지를 씩씩하게 잘 하시던 공양주 무행님^^은 특히 포행을 많이 아쉬워 하셨다.
자기 소임도 아닌데 설거지에 함께 애쓰시던 범일님.. 그리고 여러 채공/공양주 소임 행자님 등등..
뽀얀 김 속에 아지랑이처럼 떠오르는 그 예쁜 얼굴들이, 지금도 참 많이 그리웁다.
(이번 글은 조금 길어질 것 같습니다.)
채공 소임을 맡고 있던 일법 행자님이 허리 통증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
수행 중간 중간에 옆에 앉아 등짝을 가끔씩 두드려 드리고는 하였는데,
증상이 더 심해져서 이제는 채공 소임 조차 힘겨워 보인다.
(비교적 쉬운 소임인) '수광전 지전'을 맡고 있던 행자님과 역할을 맞바꾸신다 한다.
공양간 책임이던 내게 말씀하시길래, 선나스님께 가서 전해드리고, 그렇게 바꾸기로 했다.
다음날 새벽.. 새로 오신 행자님이 누군가 싶어 궁금했더니, 바로 그 덧버선 행자님이다.
"채공으로 오셨네요?" 이 쪽에서 반갑게 인사 건네는데..
고개를 얼릉 숙이고는 저리 도망가 버린다.
저녁 소임 시간, 공양간 바닥을 대걸레로 이리저리 밀고 다니다 보니..
자원봉사 선배님(2기 자각님^^)과 덧버선 행자님이 상 위를 행주로 닦으며 잠시 한담을 나눈다.
"진주요? 내는 경남 고성인데, 반갑네~ 중학교 선생님요? 보기엔 딱 고마 중학생인데.."
갈 길을 서두르는 듯 시간은 흘러... 어느덧 졸업식 날이다.
한 달이란 시간은 역시 너무도 짧았다.
(교무스님께 미리 말씀드린대로) 나는 두어달 남아 자원봉사를 더 하기로 했다.
여행자님들은 여럿이 남는데, 남자는 나 혼자다. --;;
졸업식을 마치고, 이리 저리 어울려 사진도 같이 찍고..
반장 행자님이, "대관령 목장 근처에 같이 가서 함께 회식을 하자" 하신다.
(주봉스님께 말씀드리고)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열심히 봉사하기로 하여
몇몇 도반들과 오랜만의 외식 나들이를 즐거웁게 다녀왔다.
(서울 올라가는 도반님의 차를 얻어타고) 매표소 지나 일주문에 내려달라 부탁하여,
아스팔트 길을 걸어 터벅터벅 오른다.
금강교 앞 주차장 매점을 지날 때 쯤..
저 앞에 그 덧버선 행자님이 버스를 기다리며 서 계신다.
반가운 마음에 종종 걸음으로 달려가 인사를 드렸다.
"가시는 길에 이렇게 또 뵙게 되네요."
어? 대뜸 눈길 위에서.. 내게 갑작스레 삼배를 하신다.
버스정류장에서 두 남녀의 기묘한 맞절..
"행자님~ 참.. 고마웠어요.." (이번에는 그래도 말씀을 잘 하신다.)
"함께여서, 저도 참 좋았습니다. 우리 인연 되면 다음에 또 만나요~"
버스가 도착하자, 덩치 큰 가방을 차에 올려드리고는
떠나가는 버스를 보며 합장 반배 하고,
찬 공기 한 숨 가득히 들이마시며.. 나는 이내 월정사로 발걸음을 향했다. ()
첫댓글 인연.. 그저 이루어지기도 하고 만들기도 하지만 떨어뜨린 것을 줍기도 한다.(김성진님의 '시')...돌이켜지지 않는 '기적의 마음길'....좋으네요^^*
덧버선으로 발만 댑혀 드린게 아니라 마음까지 따듯하게 데우셨군요..선일님의 덧버선님에 대한 마음 표현도 해주세요... 부끄러워 마시구용~~ ㅎㅎ
ㅎㅎㅎ빨리 좀 올려주세요 ㅎㅎㅎㅎㅎㅎ
재밌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