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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고양이 가다
강 심 원
“어험! 어험!”
심심하던 차에 향나무 할아버지가 지나가는 치즈태비 고양이를 보고 반가운 듯 헛기침을 합니다.
“그래, 어디 가누?”
온 종일 낮잠을 자며 지루했던 향나무 할아버지가 치즈태비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반가워 묻습니다.
“어험! 어허~ 고앵이! 어디 가누?”
할아버지의 헛기침 소리를 들었지만, 치즈태비 고양이는 모른 척 그냥 지나치려 합니다.
“어엇! 어디 가누?”
묻는 말에도 치즈태비가 그냥 지나치려하자 재차 물어봅니다.
“고등어, 고등어태비 고양이 찾으러~”
어쩔 수 없다는 듯 향나무 할아버지의 질문에 치즈태비고양이가 대답을 합니다.
향나무 할아버지가 더 이야기 하고 싶어 했지만 치즈태비 고양이는 천천히 걷다가 뒤를 돌아보다 다시 길가에 앉았다가 일어서서는 그냥 측백나무 울타리를 빠져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학교 이곳저곳에는 참으로 많은 식구들이 살고 있습니다. 가끔 청설모도 나타나고, 참새들로 측백나무 열매를 쪼아 먹느라 푸드덕 거리며 날아다닙니다. 또, 은행나무, 벚나무, 측백나무, 그리고 향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의 나무 중에 가장 나이 많은 터줏대감 나무는 향나무 할아버지입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길고양이도 아이들과 늘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들 동물들을 좋아한답니다. 학교에 오는 고양이들은 길고양이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그 고양이들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고양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관찰한 사람들은 고양이의 존재를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저 관찰 없이 보기만 하는 사람들은 볼 수가 없는 법이지요. 학교를 지키는 당직아저씨와 학부모회 임원들, 그리고 학교를 관리하는 사람들은 고양이가 학교에 나타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아이들을 사랑하는 까닭이지요. 혹시라도 병원균을 퍼뜨리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고양이가 쥐를 잡기도 하지만, 쥐잡는 모습을 본지도 오래되었습니다. 놀이터 모래바닥에 오줌이라도 싸지 않을까, 멀리서 병원균을 가져오거나 털이라도 빠지면 피부병이 걸릴 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였어요. 하지만, 아이들은 모든 걱정거리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아이들은 모든 동물들을 좋아할 뿐입니다.
“어험! 어허~ 저녁 나들이 가누?”
저녁에 고양이들이 함께 지나가는 것을 발견한 향나무 할아버지가 반가워서 물었습니다.
턱시도 고양이는 향나무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빙긋 웃습니다.
“할아버지! 심심하세요?”
“그럼, 그럼, 오늘도 무척 심심했단다. 바람도 불지 않고 구름도 오늘은 쉬잖아.”
“저희는 늘 여기에 살고 있는 데, 사람들은 나를 유령 취급해요.”
턱시도 고양이가 말했습니다.
“그럴 리가? 멋진 턱시도를 누가 유령 취급해?”
“정말이라니까요. 나의 멋진 턱시도를 몰라보고 다들 유령처럼 여긴단 말예요.”
턱시도 고양이가 자신의 턱시도 모양의 털을 만지며 말했습니다.
“멋진 턱시도를 송이와 미연이 등 여러 친구들이 다들 좋아하잖아.”
“그 아이들만 좋아하지 딴 아이들은 우리의 존재조차 몰라요.”
“허~허~ 시간이 되면 다 알게 되는 거야. 익숙해져서 뵈지 않는 것이야.”
향나무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학교에 사는 고양이는 고등어태비 고양이, 턱시도 고양이 그리고 치즈태비 고양이가 살고 있지요. 학교나무 중 가장 어른인 향나무 할아버지가 턱시도 고양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빙긋이 웃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어와 교정의 향나무 냄새가 가득합니다. 턱시도고양이는 킁킁 할아버지 향나무 냄새를 맡으며 말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불만도 없으세요? 아이들이 툭하면 할아버지에게로 와 매달리고 밀고 당기고 별짓을 다하는 데... 귀찮지도 않으세요?”
치즈태비 고양이가 곁에서 웃고 있는 향나무 할아버지를 보고 말했습니다. 향나무 할아버지는 그저 웃기만 하십니다. 아이들이 와서 놀아주는 것만 해도 늘 행복해 하는 향나무 할아버지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놀러오는 것만으로 늘 즐겁고 행복했답니다.
“더군다나 아이스크림 먹고 쓰레기를 마구 던져놓고 가버리는 데...밉지도 않아요?”
고등어태비 고양이도 치즈태비 고양이의 말에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향나무 할아버지는 ‘어험!’하며 미소를 짓습니다. 향나무 할아버지는 누구에게나 휴식처가 되어주고, 고민도 덜어주는 해결사이기도 합니다. 언제나 말없이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학교를 지키는 학교지킴이였습니다. 향나무할아버지는 고양이들의 이야기들을 잘 들어주는 유일한 존재였습니다.
“야, 인석아! 하지 말라 했잖아?”
어디서 나타났는지 학교당직 할아버지가 소리치자 한 여자아이가 쏜살같이 달아납니다. 달아난 아이는 2학년 송이였습니다. 고양이 밥을 매일 주는 것을 학교를 지키는 당직할아버지는 매우 싫어하셨습니다. 학부모님들께서도 고양이가 학교에 돌아다니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떤 아저씨는 강아지를 끌고 와 운동을 하시다가 학부모님들과 심한 말다툼이 일어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학교당직할아버지의 고함소리에 고양이들도 놀라 줄행랑을 칩니다. 향나무할아버지는 그 모습을 보며 ‘허 허 허’ 소리내며 빙긋이 웃습니다.
학교운동장에 고양이나 동물이 들어오면 애꿎게도 당직할아버지가 동물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지 못했다고 한 소리 듣기 때문에 당직할아버지는 고양이에게 늘 밥을 가져다 주는 송이를 야단쳤습니다. 송이는 2학년 여자아이입니다. 송이는 치즈태비 고양이, 고등어태비 고양이, 턱시도 고양이 모두를 아껴주고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자주 고양이들 밥을 가져왔는 데, 고양이 밥을 못주게 하는 어른들이 미웠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어른들 중에는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개와 고양이가 학교에 들어오면 건강에 좋지 않아. 예방접종도 되었는지, 안되었는지 어떻게 알아...쯧쯧!”
당직할아버지는 도망가는 송이와 고양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습니다.
교정에 꽃이 활짝 피었다가 질 무렵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마스크를 쓰고 등교했다가 하교하는 진 풍경이 그것입니다. 아침 등굣길에는 체온계로 발열체크와 손소독을 하는 듯 전에 보지 못하던 이상한 풍경이 벌어져서 사람들도 고양이도 어리둥절하였습니다. 가끔 들리던 학교 옆 시장에도 손님들이 팍 줄어들었고, 사람들의 표정도 겁에 질린 듯 무척 슬퍼보였습니다. 당연히 고양이들의 먹을거리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아이구! 배고파! 먹을거리도 점점 줄어드네.”
치즈태비 고양이가 울쌍을 지었습니다. 상인들이 장사가 잘 되지 않자 팔 물건들을 조금만 준비해 고양이들이 먹을거리도 그 만큼 줄어들었습니다.
“메르스가 뭐야?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놈인가?”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메르스, 메르스 하며 이야기하는 것을 고양이는 들었지만, 보이지 않으니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쁜 녀석이네. 사람들이 다 무서워하고 마스크까지 하는 것을 보면...”
고양이들의 걱정도 점점 늘어만 갔습니다. 다행히 송이가 가져다 주는 밥이 가장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이상한 소문이 학교에 떠돌았습니다. 메르스를 전파시키는 것이 고양이라고 하는 소문이 떠돌았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 이야기를 잘 믿지는 않았지만, 어른들 사이에서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습니다. 보건선생님은 그 이야기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사람들의 소문은 진실과 거짓을 따지지 않고 고양이들을 미워하는 쪽으로 흘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양이를 학교에서 쫒기 위해 어른들이 만들어낸 소문이란 말도 있었습니다. 학교에 고양이가 다니는 것을 알고 있는 부모님들도 놀라 절대 고양이가 학교에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고양이를 좋아했지만,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은 고양이들을 학교에서 쫒아 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학교에 오는 고양이를 모두 쫒아버려야 해!”
“아예, 잡아버려야 해. 지난번에 누런 고양이가 째려보기에 내가 돌을 던져 쫒아버렸어.”
“3학년 애가 학교 숲 풀 섶에 들어갔다가 온 몸에 부스럼이 생기고 구토도 하고, 고열로 시달렸다잖아!”
“거봐, 내가 보니까 고양이가 늘 학교 숲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리며 다니더라고! 그러니까 고양이가 퍼뜨린거야. 어른들의 말이 맞어.”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양이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아이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아냐! 고양이와 메르스는 아무 상관이 없어.”
송이친구 미연이가 메르스와 고양이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미연이도 송이처럼 고양이를 좋아했습니다. 보건선생님도 메르스와 고양이는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셨는 데도 근거없이 고양이에 대해 나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3학년 아이는 풀 숲의 벌레가루가 묻어 고열이 났다고, 고양이에게 엉뚱하게 누명씌우지 말고..“ 송이가 말했습니다.
어른들과 아이들에게까지 고양이에 대한 나쁜 소문이 퍼지자 고양이들은 더 이상 학교 주변을 다닐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눈치 빠른 고양이들은 교정에서는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습니다. 향나무 할아버지도 고양이를 잘 아는 송이와 미연이 그리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아이들도 갑자기 고양이가 사라지자 매우 슬퍼졌습니다.
고양이가 있을 때는 몰랐지만, 고양이가 사라지자 아이들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시무룩해졌습니다.
“엉, 엉~ 고양이들이 불쌍해!”
“고양이들이 누명을 쓴 게 분명해!”
송이와 미연이는 공부시간에 훌쩍훌쩍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공부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학교에서 쫒겨난 고양이들만 생각했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고양이가 잘못된 헛소문에 의해 쫒겨났다며 쫒겨난 고양이들을 불쌍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어허! 오늘도 고앵이들이 나타나지 않는 구먼! 밥이라도 제대로 먹을까?”
향나무 할아버지도 늘 같은 시간에 지나다니던 고양이를 볼 수 없자 걱정스러워 했습니다. 향나무할아버지도 아이들도 고양이들이 학교에 오기를 기렸지만 고양이들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송이와 미연이도 향나무 할아버지가 사는 곳 근처에 고양이 밥을 주러 왔지만 고양이들이 밥을 먹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놀라서 더 이상 오지 않나봐!”
“어디가서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
송이와 미연이는 고양이들이 잘못되었을까봐 걱정이었습니다.
향나무 할아버지도 시무룩해하는 송이와 미연이를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허! 좀 더 기다리면 나타나겠지. 기다림의 시간은 길고 아프겠지만...’
향나무 할아버지는 송이와 미연이가 쓸쓸히 돌아서는 모습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송이어머니가 송이와 미연이를 데리고 학교를 찾아오셨습니다.
“선생님! 우리 송이가 말을 잃고 슬퍼합니다. 도대체 어쩐 일지요?”
“네에? 무슨 말씀이신지?”
“학교에서 쫒아낸 고양이 때문에 공부도 못하고 늘 저렇게 시무룩하게 지내고 있으니 도대체 어찌해야 할까요?”
송이 담임인 양선생님은 송이어머니의 말씀에 큰 고민이 빠졌습니다. 고양이나 개가 학교에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는 부모님도 많이 계시고, 또 그것 때문에 민원도 많아 솔직히 고양이가 사라져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도 어른들도 고양이 때문에 슬퍼하고 있고 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슬퍼하고 있으니 어떠한 방법이라도 찾아보아야하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송이 어머니가 양선생님께 방법을 찾아볼 수 없냐고 여쭈었습니다.
“그럼 한번 학교 뒷산 쪽으로 가서 함께 고양이들을 찾아보기로 합시다.”
한참 고민하던 양선생님이 찾아보자고 하자 송이어머니와 송이, 그리고 미연이도 좋아하며 함께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양선생님과 송이어머니 그리고 송이와 미연이 학교 뒷산으로 고양이를 찾으러 떠났습니다.
“치즈태비야! 치즈태비야”
송이가 치즈태비고양이를 애타게 불러봅니다.
“턱시도야, 턱시도야. 어디있니? 어서 오렴!”
선생님과 송이 어머니 그리고 송이와 미연이가 학교뒷산 이곳저곳을 다니며 고양이들을 찾기 위해 고양이들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습니다.
“치즈태비야! 고등어태비야? 턱시도야? 어디 있니? 어서 돌아오렴!”
“......”
“고, 고앵이~. 고만 어이 돌아와~”
할아버지 향나무도 학교 숲에서 고양이들을 애타게 불렀습니다. 그러나 고양이들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학교 뒷산에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시간이 오래 지나도록 고양이들을 애타게 불러보았지만 고양이들은 아무런 기척이 없었습니다. 어느 덧 밤이 깊어지고 먼동이 틀 무렵이었습니다. 학교뒷산 계곡 쪽에서 고요한 침묵을 깨고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야~, 야~옹, 야, 야옹~”
아침 잠 없는 향나무 할아버지가 고양이들 소리를 듣고 반가운 듯 미소를 짓습니다.
[참고]
1. 치즈태비 고양이: 주황빛 노란 컬러에 진한 줄무늬(태디)가 있는 고양이로 치즈색 같아 치즈태비고양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2. 턱시도 고양이: 대개 머리의 역 Ⅴ자 무늬부터 검은색이 시작해서 가슴을 제외한 등, 꼬리가 검은색인 고양이로, 턱시도를 입은 것 같다고 해서 턱시도고양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3. 고등어태비 고양이: 흰색바탕에 검은색, 회색, 갈색 줄무늬가 온 몸을 덮고 있는 고양이로 무늬가 생선 고등어 무늬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문학미디어경인지회장, 문학미디어 작품상 수상(2008)『눈이 큰 아이』
저서-시집 『패랭이꽃(1987)』, 공저『눈부신 바다』외 다수
교육학 박사, 현) 수원 매산초 교장
첫댓글 오랜만에 동화를 읽었습니다.^^
동화는 어른의 마음을 순수하게 해주네요.
아이들과 생활해서 그럴까요?
품달 선생님의 글에서 아이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봅니다.
늘 건필하세요.
감사합니다. 늘.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