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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장초임지에서 전 직원의 화합을 위해서 '여수와 순천'을 의욕적으로 찾은 행사이다.
그러나 실시과정에서 옥의 티라 할까 술자리에서 주사들끼리 주먹다짐이 있어서 조금은 후유증이 남은 일정이 되고 말았다.
세상에는 별의 별 사람이 있다.
40여년 교직생활 중에 겪었던 '특별한 사람들'얘기는 보너스로......
☞ 2012년 10월 19(금) ~ 20(토) 여수와 순천
♣ [탐방코스]
8시에 ‘경주시민운동장 출발’ → 포항 시청 앞 ‘고속버스 승강장’에서 포항 팀 합류 → 팔공산 IC에서 대구팀 합류 → 구마고속도로(영산휴게소 휴식) → 남해고속도로(사천휴게소 휴식) → ‘순천만’ 부근 [대대선창집]에서 [짱둥어탕]으로 중식 → 순천만 갈대 체험 → 여수 [죽림초등학교] 전원학교 밴치 마킹 → [한일관] 회식 → [달링하버 펜션] 1박 → ‘아쿠아리움’ 체험 → 선암사 → ‘포항해물탕’ 석식
▶ 1일차 : 19일(금)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친목회에서 주관하여 연 1회씩 직원여행을 다녀온다.
그러나 그 여행의 참여자는 대부분이 교원들이다.
행정실 근무자중 정규직원은 물론 참여 한다.
하지만 급식소를 비롯하여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참여를 하지 않는다.
요즘에야 이들도 대부분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이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비정규직이 많았다.
그래서 이들은 친목회원으로 가입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나는 부임 후 처음으로 실시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소외되는 사람이 없이 모두가 참여하는 행사를 고민하게 되었다.
행정실장과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아보았다.
직원들 부담이 없는 방법으로 예산을 학교에서 부담하는 행사로 진행을 하였다.
직원들을 위하여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학교 예산을 파악하여 최대한 지원을 하였다.
‘전원학교’와 ‘창의경영학교’ 운영비중 워크아웃 경비와 ‘시도교육청평가시상금’을 활용하니 해결이 되었다.
그리하여 외부용역업체에서 파견 나온 ‘청소도우미 여사님’을 비롯하여 급식소 근무 ‘조리종사원’까지 거의 대부분의 직원이 성황리에 참여를 하였다.
8시에 경주시민운동장에서 출발하는 팀들이 승차를 하다.
포항에서 출퇴근 하는 직원이 8명이나 되므로 포항으로 경유를 하였다.
포항 시청 앞 ‘고속버스 승강장’에서 포항 팀이 합류를 한 관광버스에 '팔공산 IC'에서 대구에 거주하는 교감과 행정실장이 승차를 하였다.
구마고속도로를 달리는 중간에 ‘영산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는 ‘남해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오랜만에 일상에서 벗어난 홀가분함에 버스 안에서는 아침부터 잘도 들이킨다.
꾼들은 버스뒷자리에 진을 치고 않아서 연신
“한병 더, 한병 더!”
를 외치며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이정도 분위기가 되면 흥에 겨워 노래를 시작하고 마이크 차례를 기다리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요즘은 운행 중인 관광버스에서 노래를 하는 것이 불가하므로 꾼들은 죄 없는 술병만 비워대고 있다.
도중에 ‘사천휴게소’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한 우리들은 드디어 전라도 땅에 들어섰다.
‘순천만’ 부근 [대대선창집]에서 [짱둥어 탕]으로 중식을 해결하였다.
고기이름이 ‘짱둥어’라서
‘어떤 고기일까?’
‘맛은 어떨까?’
하고 잔뜩 기대를 하고 맛을 보았다.
그런데 고기 이름보다는 맛이 별로다.
고추장을 풀어서 끓인 ‘추어탕’이랄까?
민생고를 든든하게 해결한 일행들은 이어서 ‘순천만’ 갈대를 체험하였다.
♣ [순천만]은?
전라남도 남해안 순천시에 접해 있는 만이다.
‘여자만’의 북쪽에 이어져 있는 만으로 순천의 ‘동천’과 ‘이사천’의 하류가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몇 천 년 동안 형성된 넓은 갯벌과 갈대숲이 유명하다.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 등 많은 동식물이 서식하여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일대에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린 이래 자연과 생태 보존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2008년 명승 제41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지난해 안강제일 근무시절에도 직원여행으로 들린 곳이다.
드넓은 갈대밭과 갯벌에 지천으로 서식하는 ‘짱둥어’와 ‘작은 게’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을 자세히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또한 장관이다.
일출은 동해안이라면, 일몰시의 명장면은 남해와 서해안에 좋은 곳이 많다.
갈 길을 재촉한 일행들은 여수시에 위치한 [죽림초등학교]로 향하다.
우리학교가 ‘전원학교’ 시범학교를 운영 중이라서 이곳에서 벤치마킹을 하기 위해서이다.
연말에 실시한 ‘전원학교 평가’에서 우리학교는 ‘전국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음은 물론이다.
수고하신 직원여러분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다.
다음 코스는 여수 시내에 위치한 [한일관]이란 유명 한식집에서 인당 거금 3만원인 한식을 곁들여 회식을 하다.
전라도 음식은 워낙 유명하다.
여행을 출발하기 전부터 직원들은 3만 원짜리 전라도 한식에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과연 엄청나게 차려진 반찬과 진기한 산해진미는 평생을 통 틀어도 자주는 접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알딸딸하게 취기가 오른 직원들은 부근에 위치한 노래방으로 이동하여 한껏 끼를 발산하며 여흥을 즐기다.
여수는 ‘오동도’가 유명하다.
숙소로 이동하여 버스에서 내리니 펜션 앞 밤바다는 잔잔한 파도가 밀려와서 가을밤의 정취를 한층 돋우고 있었다.
때마침 펜션에서는 버스커 버스커의 ‘여수 밤바다’가 조용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아마도 멀리 경상도에서 온 우리들은 위하여 펜션 측에서 준비를 한 것 같았다.
♩♪♬ ~ ♩♪♬ ~
일행들은 오동도가 마주 보이는 [달링하버 펜션]에서 1박을 하였다.
나는 내일 구경에 지장이 있을까봐 교감과 함께 배정된 방으로 취침을 위하여 일찍이 퇴근을 한 후 잠을 청하였다.
일행 중에서 꾼들은 마무리를 해야 한다면서 방에서 또 술판을 벌렸다.
그러다가 기어코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술이 취한 한편이 다른 일방을 폭행 한 사건이다.
일행들이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자 나와 교감이 함께 사용하는 방으로 일방적으로 당한 계약직 기사를 분리하여 데리고 왔다.
술이 취했지만 차마 그곳까지는 쫓아오지 않아서 일단락이 된 사건이다.
정규직 기사의 폭행 사건은 엄청 큰 사건이었다.
그렇게 그날 밤이 지나갔다.
▶ 2일차 : 20일(토)
아침이 되었다.
지난밤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펜션 앞 여수앞바다는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는 평화로운 모습이다.
항상 해오던 습관처럼 새벽에 일어나서 펜션 앞 해변을 1시간여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
펜션 앞에 거의 도착할 무렵이다.
행정실장이 다급히 와서는,
“교장선생님! 큰일 났습니다. 문제가 커질 것 같습니다.”
라고 사정을 얘기한다.
내가 산책을 하는 사이에 어제 밤에 폭행을 당한 기사가
“도저히 억울해서 안 되겠다. 고소를 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
하고는 노선버스를 타고 집으로 출발했다고 한다.
주변에서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이거 낭패다.
전 직원의 화합을 위하여 애를 쓰며 추진한 일이 사건화가 되면, 매스컴을 탈 것이고 여러 가지로 문제가 복잡 해 지는데…….’
이미 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기사에게 전화를 하였다.
“일단 잘 알았으니 우리가 학교에 도착할 때 까지만 기다려 달라. 나와 얘기해서 해결을 하자.”
하고 통화를 해서 겨우 진정을 시켰다.
그 와중에도 아침식사는 해야겠기에 식당으로 갔다.
전쟁 중이라도 일단 민생고는 해결을 해야 했으므로…….
숙소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나오는 재첩 국으로 해결했는데 맛이 일품이다.
음주 후 속풀이로는 아주 적당했다.
식사도중에 또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00기사는 왜 안보이지?”
“예, 어제 밤에 너무 과하게 마신 술로 인하여 아침은 못 먹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더러 먼저 가라고 해서 우리만 왔습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가 보세요!”
잠시 후 다녀온 결과는 우와?
이 양반도 피해자가 내려간 사실을 알고는 자기도 노선 버스를 이용하여 경주로 내려가는 중이란다.
참으로 난감하네…….
일단 다시 통화를 하였다.
“앞서 내려간 ○기사가 정식으로 사건 접수를 하기 전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과를 하고 문제를 해결하세요.”
‘나 원 참 40여년을 직원여행 다녔지만 별일도 다 있네…….’
상세한 이야기는 글 뒷면에 이어지는 [보너스 스토리]에서 ⇒
조식 후에는 [아쿠아리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지난해 ‘여수엑스포’ 기간 중에 개장을 한곳으로 엄청 유명한 곳이지만 지난해는 너무 복잡해서 오지를 못했다.
그런데 다행히 엑스포가 끝난 지금도 개관중이어서 구경을 하였다.
다양한 수중생물과 해양생물은 돈을 들인 만큼 볼거리도 많았다.
'오동도'를 못 본 사람이 있다는 얘기에 당초에는 그 곳도 들리려고 했으나, 시간관계상 그 곳은 생략하였다.
다시 향한 곳은 [선암사]다.
선암사 주차장 부근에서 ‘산채정식’으로 중식을 해결하였다.
지난해 들린 적이 있는 [길상식당]에서 1만 2천 원에 판매하는 메뉴이다.
관광지 주변 음식이 가격에 비하여 대부분이 별로인데 이곳은 생각 외로 실속이 있었다.
지난해 안강제일 친목 행사 때 들러보고 괜찮은 곳이라서 금년에도 이곳으로 정했는데 직원들 평이 괜찮았다.
식후 선암사로 향하다.
지난해 방문 시에 연등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절 풍경이 고즈넉한 멋이 사라져서 무척 아쉬웠는데 금년에는 그렇지가 않아서 좋았다.
귀가 길에 오른 일행들은 돌아올 때는 갈 때의 역방향으로 왔다.
저녁은 포항 이동에 위치한 [포항해물탕]…….
5만원하는 大를 시켰더니 4인이 먹기에는 너무 양이 많아 다음에는 4만 원짜리 중자를 시키면 적당할 것 같다.
특히 경주사람들이 음식의 질과 양에 아주 만족하였다.
경주에 비하여 해물의 싱싱함과 맛이 더 좋은 것 같다며 아주 좋아하였다.
석식을 끝으로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1박 2일 워크아웃도 끝이 나다.
☞ 보너스 스토리 : [내가 경험한 특별한 사람들!]
평생을 머물 수 있을 것 같았던 40여년의 교직생활을 마무리 하는 교직 후반기가 다가왔다.
교장 발령을 앞둔 시점에서 생각해보았다.
대학동기를 비롯한 지인들은 모두가 포항에 발령을 받는 것이 좋지 않으냐고 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분석을 해보았다.
이번 정기인사에서 발령이 되면 남은 정년퇴임까지 만 4년을 근무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이번에 발령이 나지 않는다면 6개월을 더 기다려야 하므로 3년 반 근무를 할 수 있다.
희망대로 생활근거지인 포항에 발령이 나면 다행이지만, 자칫하면 포항에서 멀리 떨어진 봉화나 문경 같이 먼 곳에 발령이 날 수도 있다.
발령 후 1년 반 동안은 안정적인 학교경영을 위하여 규정상 이동이 금지된다.
다행히 1년 반 후에 포항으로 들어온다면 정년까지의 잔여임기는 2년 반이 된다.
그런데 1년 반 후에 포항으로 꼭 전입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발령 당시의 인사 상황에 따라 전입시기를 확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포항에 들어와도 신규전입자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포항끝자락에 있는 대보 같은 곳에 발령이 날 수도 있다.
집이 가까운 시내로 이동하려면 또다시 일정 시간이 지나야 가능하다.
게다가 운이 없으면 교감이 배치되지 않는 학교에 발령이 날 수도 있다.
교장이 교감역할에, 더 운이 없으면 교무부장 역할까지 겸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리저리 고민이 되었다.
고민 끝에 때마침 정부에서 확대하여 시행중이던 [공모교장]을 생각해보았다.
공모교장의 임기 4년과 남은 정년이 4년이므로 내게는 딱 맞아 떨어졌다.
이 제도를 활용하면 이동 할 때마다 신경을 쓰는 부담 없이 퇴임을 할 수 있으니 매력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리저리 알아본 결과 경주에 내가 원하는 조건에 맞는 곳이 있었다.
이곳은 교사들의 승진 시 필수요소인 벽지학교 부가점이 있는 분교장이 있는 곳이다.
경주 유일의 ‘다벽지 분교장’을 보유하고 있어서 승진을 하려는 유능한 교사들이 근무하는 곳이라서 학교경영의 부담이 적은 곳이다.
오랜 교직생활 경험의 결과 사사건건 학교경영에 간섭을 하는 극히 일부의 과격한 직원들로 인하여 학교경영에 많은 애로를 겪는 것을 수차례 보았다.
물론 문제되는 행동을 하는 경영자들에게는 올바른 건의가 정당한 일이다.
그러나 상황 고려 없이 세를 과시하기 위하여 무조건 억지 주장을 하는 극히 일부의 직원들이 가끔은 있기 때문에 그 점이 문제다.
집에서 거리가 조금 먼 것이 부담이 되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니 그 점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포항에 발령 받아도 출퇴근 거리가 먼 곳에 발령 받을 수가 있다.
평생을 집에서 출퇴근을 했으니 학교장 관사를 [별장]개념으로 생각을 해봤다.
주중에는 별장에서 전원생활을 즐기고 주말에는 포항으로!
때마침 낡은 사택을 헐어내고 신축한지 2달밖에 되지 않은 사택이 눈길을 끌었다.
관사 안에 심어진 감나무와 매실 등 각종 과일나무가 있는 넓은 면적의 텃밭은 평소 취미생활의 일환으로 해오던 농작물 재배를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별장 같은 신축관사가 멋지다.
우리도 별장에서 생활하면 어떨까?”
하고 아내의 의견을 구하니 아내도 OK!
그리하여 분교장을 포함하여 전체 교직원 44명인 이곳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런데 막상 근무를 하고보니 일반직 인력관리에 예상하지 못한 애로사항이 많았다.
통상 학교에는 교원들은 교감이, 일반직은 행정실장이 관리를 한다.
물론 최종적인 관리는 학교장이 하지만…….
교사들은 벽지학교에서 [벽지부가점]을 받아서 승진을 해야 한다는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는 사람들이라서 별다른 특이사항 없이 근무를 잘했다.
관내에 단 1곳 있는 ‘다벽지’분교장이 있는 곳이라 그야말로 경주시에서 날고 긴다는 엘리트들이 모여 든 탓이다.
그런데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일반직 중에서는 정말로 특별한 사람들이 있었다.
나와 함께 근무했었던 6급 행정실장들은 정말로 능력이 있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주변사람들이 나를 보고
“이교장은 행정실장 인복이 많은 사람이다.”
라고 부러워할 정도였다.
그러나 통학버스 4대를 비롯하여 2곳에 산재한 분교장, 인근 중고등학교에 급식까지 책임지는 일을 추진하는 행정실장 업무는 이만 저만 힘이 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누구를 폄훼하려는 의도가 아니고 퇴임을 한지 7년째로 접어든 시점에서 교직의 마지막을 되돌아보는 의미로 함께 근무를 했었던 사람들 중에서 ‘특별한 사람들’ 정리를 한번 해보았다.
예전 '주사님'들로 불리던 시절에 기능직은 비교적 결재라인에서 지시를 하면 잘 따르고 자기본연의 일을 잘 하는 편이었다.
요즘도 대부분 잘 하고 있지만, 그 중 일부는 그렇지가 않다.
그 이유는 우선 그들도 평균학력이 높아지다가 보니
‘나도 대학을 나왔는데 나는 왜 이런 일을 해야 하지?’
하는 자격지심이 작용한 경우가 가끔씩 있다.
우리 학교에는 6급 행정실장에 8급 차석이 정규직이며 업무가 많은 학교의 특성상 계약직 직원까지 3명의 행정실 근무자가 있다.
그러함에도 바깥일을 해야 하는 주무관중 한명은 아예 ‘행정실’에서 내근만 하려고 한다.
행정실에 붙박이로 박혀서 공문출력이나 복사 등의 일을 도우며 내근직원 행세를 하고 있었다.
‘교육행정직’ 공채를 통해서 임용된 정규직들이 분명히 있음에도 그 일을 하고 싶어서 본연의 업무인 바깥일은 정말로 관심이 없고 시켜도 잘 하지를 않는다.
그는 오래 근무한 지방 사람이고 실장보다는 연령이 높다가 보니 실장이 얘기를 해도 듣지를 않는다.
대놓고 얘기하기가 곤란하니 불편하지만 참고 견디다 보니 아예 자기가 행정실 내근직원인줄 착각을 한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바깥 잡무를 처리해야 하는 외근직원이다
젊은 행정실장이
“아무개 때문에 행정실 분위기가 억망입니다.”
하고 몇 번인가 하소연을 한다.
교장실에 불러서 좋은 말로 얘기를 해도 잘 먹혀들지가 않는다.
그렇다고 학교장이 일일이 싸울 수도 없고 고민이다.
만약에 싸워서 문제가 된다면 당장에 매스컴에서는 크게 보도가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세상 사람들은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교장과 기능직이 싸웠다.’라는데 포인트를 두는 것이 세상인심이기 때문이다.
다행이 인사이동이 되는 바람에 그와의 인연은 오래가지 않았다.
참 나!
그렇게도 그 일이 하고 싶으면 자기도 죽자 살자 공부해서 ‘교육행정직’ 공채 시험에 합격하고 발령을 받으면 될 일이 아닌가?
어느 조직이나 능력과 보직에 따라서 각자가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
우리학교는 면소재지 중심학교이다 보니 예전에 골짜기마다 있었던 학교가 폐교가 되는 바람에 그곳으로 4대의 통학버스가 운행이 되고 있다.
운전기사 4명에 승차도우미 4명 관리문제가 정말로 심각하다.
그들은 등하교시 2차례 운행을 마치면 마땅히 할 일이 없다.
물론 학교장이 분장한 업무를 하도록 되어 있지만 마땅히 시킬 일도 없고 그러다 보니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냥 쉬도록 둔다.
그런데 학부모총회를 하는 자리에서 ‘운전기사’문제가 민원으로 등장했다.
이전부터 전화 민원이 계속되어 왔었는데 학부모총회에서 정식으로 대두가 되었다.
“운행 중 과속을 한다.”
“아이가 승차지점에 약간 늦게 도착했는데 기다려주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
“아이들에게 심하게 소리를 지른다.”
“일과시간 중에 시장통에 있는 자기누나 가게에서 판매를 하면서 일을 도운다.”
등등이다.
그런데 일과시간 중에 근무지를 이탈하여 자기 누나 가게 일을 도운 다는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평소에도 있어왔던 민원이라 행정실장을 통하여 수시로 교육을 시키고 때로는 학교장이 직접 교육을 시켜도 잘 지켜지지 않았다.
다시 한 번 교장실로 불렀다.
알아듣게 얘기했지만 그의 얘기는
“교장선생님!
선생님들은 승진 때문에 이곳 벽지학교에 희망을 해서 찾아 오지만, 경주시가 거주지인 우리들은 이곳이 유배생활을 하는 곳입니다.
우리들은 이곳만 벗어나면 영전입니다. 그러니 처분대로 하세요!”
우와?
정말로 대책이 없는 친구다.
이 친구가 '여수-순천' 직원여행시 계약직운전기사를 폭행한 문제의 기사다.
원인은 일반직의 인사권이 학교장에게 있지 않고 시교육청에 있기 때문이다.
문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인사조치를 하는 등 강력하게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므로 알아듣게 말로 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렇다고 교장이 운전기사와 매일 싸울 수도 없고…….
운전기사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 사람은 정말로 [특별한 사람]이 아닐까?
그러던 어느 날 정규직이 이동한 자리에 계약직운전기사를 채용하게 되었다.
이런 저런 사정을 이해한 나는 1명을 뽑는 자리에 5명이나 지원한 희망자 중에서 가장 성실해 보이는 1명을 최종 면담하는 자리에서,
“운전기사들은 등하교시 운행을 한 후에는 마땅히 할 일이 없다.
그런데 기능직은 그에 비하면 엄청나게 할 일이 많다.
일상적인 일은 몰라도 큰 나무를 베는 작업이나 가지치기 같은 작업을 할 때는 같이 도와주면 좋겠다.”
하고 특별 당부를 하고 채용을 했다.
그리하여 그는 정말로 성의껏 기능직을 도와서 열심히 근무를 했다.
물론 좋은 평판을 얻어야 재임용이 되는 탓도 있었지만 그는 바탕이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다른 기사들이
“왜 당신은 이제까지 운전기사들이 하지 않던 일(기능직 주사를 도와주는 일)을 해서 교장에게 잘 보이려고 하느냐?”
고 압력을 넣는다는 사실을 행정실장이 전해왔다.
그러던 중에 직원여행을 가게 되었고 술을 마신 문제의 운전기사가 평소에 마음에 들지 않았던 계약직운전기사를 폭행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운전기사만 문제가 아니다.
'승차도우미' 또한 특별한 사람이 있다.
당초 통학버스에는 운전기사 한사람이 모든 책임을 지고 운행을 했었다.
그러다보니 전국적으로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 대책으로 교사들이 윤번제로 안전요원으로 탑승을 하여 운행을 하였다.
그러니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담임교사가 운행을 나간 사이에 교실에 남아있는 아이들 관리문제가 부각되었다.
그래서 생긴 제도가 [승차도우미]를 별도로 채용하여 승·하차 시에 책임지고 도움을 주도록 하였다.
일의 대가를 받는 근무자라면 기본적으로 근무지까지 출근을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그중 한명이 학교까지 출근을 하지 않고 자기 집 앞에서 차량에 탑승을 한다는 사실이 보고되었다.
예전에 근무하던 기사의 집안 형수이다가 보니, 당시의 기사가 도움을 준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도우미의 집 앞에까지 통학버스가 가서 태운 후 운행에 나서니 별도로 시간이 더 소요 되었다.
부족한 시간만큼 과속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승차지점에 약간만 늦게 나타나도 학생을 태우지 않고 지나쳤다.
분명히 잘못된 일인 줄 알면서도 후임 기사들이 바로잡지를 못했고, 관례처럼 되풀이 되어온 일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도우미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동들의 승하차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채용을 한 것이다.
차량왕래가 빈번한 도로상에 정차를 하면 도우미는 반드시 하차를 해서 주변 상황을 살피고 아동을 하차시키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이 도우미는 직접 내리지를 않고 버스 안 자기자리에서 말로만
“조심해서 내려라!”
이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끝까지 불성실하게 근무를 하면서 사고를 유발할 우려가 있는 근무자는 교체를 하면 간단하게 해결이 된다.
그렇지만 이미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이 된 그들은 신분이 보장되어 있으니 별다른 방법이 없다.
행정실장과 교감, 때로는 직접 교장실에 불러서 철저히 교육을 시키고 수시로 확인을 하였다.
그 후 대부분은 잘 지켰지만 그중에도 [특별한 사람]이 있었다.
고민 끝에 실장과 협의하여 차량내부 사정을 확인할 수 있는 [블랙박스]를 설치하였다.
당시만 해도 공립학교 통학버스에 블랙박스 설치가 되어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물론
“인권이 침해될 소지가 있다.”
느니 하면서 그들은 반발했다.
그러나
“만약에 사고가 났을 때 당신들의 잘못이 없다는 것을 입증 해 줄 수 있는 장치”
라고 역으로 그들을 이해시키면서 추진을 하였다.
불만이 많았지만 그들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그 얼마 후 나는 딸아이 결혼식을 치르게 되었다.
그들 중 한명은 이 조치에 대한 불만으로 부조를 하지 않았다.
부조를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통상적인 관례상 직속상사 혼례에 모른 척 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으므로 보복이라고 이해를 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그로부터 1년 후에는 자기 집에도 아들결혼식이 있었다.
‘어떻게 하는지 한번 살펴보자!’
하고 지켜보고 있었더니 자기가 부조를 하지 않은 것은 까먹었는지 당당하게 내게로 청첩장을 전해온다.
똑같이 대응을 하면 나도 똑같은 사람이 되니 성의를 표할 수밖에…….
그러므로 나는 이 사람도 [특별한 사람]이라고 칭한다.
조리사로 성실하게 근무하던 직원이 정기인사로 이동이 되었다.
후임으로 영천에서 전입을 한 조리사가 부임을 하였다.
교장실에서 부임인사를 나누던 중에 대뜸
“저는 사정상 이혼을 하고 지금은 혼자 영천에서 살고 있습니다.”
라고 한다.
‘묻지도 않는 말을 처음 보는 자리에서 왜 저렇게 하지?’
하고 궁금했지만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실장으로부터 수시로 보고가 올라온다.
“영천에서 문제근무자로 낙인이 찍혀서 강제 전보가 된 사람입니다.”
한다.
지켜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후부터 급식소는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영양사는 실장에게 해결을 해달라고 얘기를 하고 실장이 나섰고 그래도 되지 않자 교감이 나섰지만 되지 않으니 마지막으로 교장에게 까지 보고가 되었다.
사정을 들어보았다.
“조리사는 직접 조리를 하는 것이 아니고 조리원들을 관리 감독만 하면 된다.”
“나보고 직접 일을 하라면서 영양사는 왜 서류만 만지고 지시만 하느냐?”
는 등 정말로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영양사를 비롯한 동료들과 수시로 말썽을 일으켰다.
그래서 인사기록카드를 확인해 보니, 영천에서도 같은 학교에 1년 이상 근무한 적이 없고 1년 단위로 다른 학교로 옮겨 다니다가 결국은 경주로 강제이동이 된 사람이다.
이 사람도 대학출신이다.
자기도 대학출신인데 자기보다 젊은, 대학 나온 영양사가 지시하는 것에 배알이 틀린 점도 있었으리라!
그렇다면 자기도 열심히 공부해서 '영양사'자격을 취득하면 되는데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시비를 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능력과 자격'에 따라서 합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 민주사회의 기본이지 모든 사람들이 모두가 똑같은 대접을 받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아무리해도 해결이 되지 않아서 결국은 담판을 지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
외진 급식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서 우리는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급식소에 상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 모든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CCTV를 설치하겠다.”
하고 인권침해 다툼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그에게서 동의서를 받았다.
결국은 ‘제 버릇 남 못준다.’고 또다시 사건이 벌어졌고 약속대로 정말로 설치를 하였다.
이후부터는 CCTV영향인지 잠잠했고 다음 인사이동 때 그의 고향인 영천으로 이동이 되었다.
물론 고향으로 보내기 위하여 실장이 엄청 노력을 한 덕분이다.
이 또한 [특별한 사람]이 아니던가?
요즘은 학교에도 [청소도우미]가 근무한다.
이들은 대부분이 외부용역업체 소속으로 파견형태로 근무를 한다.
보수도 물론 외부업체에서 받는다.
엄밀하게 따지면 우리 직원이 아니지만 근무를 학교에서 하니 같이 어울릴 뿐이다.
이들 중에도 [특별한 사람]이 있다.
어느 날 계약제로 들어와서 성실하게 근무를 하는 기능직이 면담을 요청해 왔다.
소속 직원들의 근무 상 애로사항을 들어보고 조치를 취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서 자리를 마주하게 되었다.
“교장선생님! 청소도우미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여서 이 일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입니다.”
하면서 하는 얘기인즉,
그녀는 파견 나온 입장이면서 자기보다 나이도 어린데 학교근무기간이 오래 되었다고 텃세를 부린다는 것이었다.
‘우와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있었네. 이 사람들 세계엔 이런 일도 있구나!’
싶어서 관심 있게 들어보았다.
청소를 하러 온, 자기의 주 업무가 청소인 사람이 자기 일을 하지 않고 계약직인 기능직을 부려먹으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급식소부근 청소도 하지 않고 청소를 해주는 댓가로 급식비를 내지 않고 점심을 공짜로 얻어먹는단다.
그러니 '계약직기능직'인 자기도 형편이 어렵고 하니 무료급식을 좀 하게 해달라고 사정을 한다.
“아니 그런 일이 있었어요? 무료급식을?
규정에 맞지 않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
학교장인 저도 급식비를 내고 식사를 하고 있고 영양사도 급식비를 내고 있습니다.
내가 알아보고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하고 나서 영양사를 불러서 사실을 확인했다.
사실이었다.
청소도우미는 지방 사람이고 이동이 없어서 평생을 그곳에서 근무를 했다.
반면에 영양사를 비롯한 조리사는 이동을 하는 사람들이라서 어쩌다가 한번 그렇게 진행된 일이 아무런 비판 없이 그대로 답습이 된 결과였다.
영양사에게 [무료급식대장]을 만들어서 행정실장 결재를 철저하게 받도록 조치하고 당연하게 자기 업무인 급식소부근 청소를 시키고 무료급식은 중단시킨 일이 있다.
청소도우미입장에서는 분명히 야속할 것이다.
이제까지 잘 넘어가던 일이었으므로 엄청난 불만이겠지만, 학교전체를 보면 그렇지 않다.
원칙이 무너지면 계약직인 기능직도 공짜로, 돌봄도우미도 공짜로, 학교에 근무하는 계약직들이 모두가 형평성을 얘기하며 무료급식을 요구하는 결과를 생각해야 한다.
이 결과로 퇴임할 때까지 나는 그녀로부터 따뜻한 시선을 받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그녀 역시 '특별한 사람'이 아닐까?
여담으로 경기도 광명시에서 6급 정규직으로 근무하던 시청공무원이 운전기사에 채용되어 우리학교에 부임한 일이 있었다.
그와의 면담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은 그는 조금만 더 근무하면 5급 사무관도 바라볼 수 있을 정도의 유리한 조건을 가진 시청 공무원이었다.
그런데 그 일을 그만 두고 먼 곳까지 와서 운전기사로 근무하게 된 사연은 민원인들의 등쌀 때문에 받은 업무스트레스 때문이었다고 한다.
맡은 일이 건축파트였는데 퇴근 후 잠잘 시간에도 민원전화가 얼마나 많이 오는지 도저히 그 일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과감하게 사표를 제출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이 일이 보수는 더 적지만 마음이 편해서 세상 살맛이 난다고 한다.
내가 겪어본 계약직 근무자들은 대부분이 근무의욕이 넘친다.
물론 재계약을 염두에 둔 것 일수도 있다.
그에 비하면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규직중 일부는 근무에 태만한 경우가 있다.
어떤 사람은 노조활동에만 관여하여 기회만 되면 자기일은 뒷전이고 출장을 가려고 한다.
분교장에 근무할 때는 본교로 출장갈 기회만……,
이웃학교에 근무하는 죽이 맞는 동료들과의 긴밀한 업무협조로 그쪽 학교에서 인력지원이 필요하다며 출장신청 공문요청을 받아낸다.
‘또 다른 출장건수가 없나?’
하면서…….
물론 일부의 문제지만 자기학교의 일은 뒷전이고 남의 학교에 업무 지원한다며 출장건수만 챙기려는 일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
아무튼 세상은 많이 변했다.
이렇게 급변하는 시기에 나는 40여년의 공직생활을 무사하게 마칠 수 있음에 감사를 드린다.
학교장이란?
최종적인 결정을 해야 하므로 때로는 외로운 자리이다.
폭우가 내릴 때나 한겨울 결빙이 되면 차량 4대를 운행하는 입장이라서 신속한 결단을 해야 한다.
시시각각으로 버스 운행 결정을 해달라는 연락이 오기 때문이다.
운동회 등의 큰 행사를 앞두고 비가 오려고 하면 이 또한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으로 결정을 해야 한다.
잘못된 결정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그 결정의 도움을 얻기 위하여 나는 항상 기상청 앱을 끼고 생활했다.
'블랙박스와 CCTV'를 설치하는 과정에서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했다.
요즘엔 인권이 워낙 중시가 되니 함부로 설치 할 수도, 그렇다고 말로 해서 좋게 해결이 되지 않는 사안에서는 정말로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일탈 행위를 모른척하고 방치하면서 결단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모른 체 하고 덮어두면 물론 나도 편한 줄 안다.
당사자와 얼굴 붉힐 일도 없다.
그렇지만 호미로 막을 일을 삽으로도 막지 못하는 결과가 올 수도 있다.
피해는 학생들과 성실하게 근무하는 다른 구성원들에게 돌아가니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었다.
문제 당사자에겐 다소간 손해가 있더라도 전체를 위하는, 원칙에 맞는 결정이 필요하였다.
40여년 교직생활을 하면서 마지막 4년은 최종결정을 할 수 있는 위치에서 근무를 했으므로 참으로 보람이 있는 생활이었다.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교육철학이라 할까?
단위학교의 최종 결정권자가 된다면 꼭 해보고 싶었던 사업이나 교육철학을 실천 해 볼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 보람을 느낀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나는 큰 대과없이 대한민국 훈장(홍조근정훈장)으로 교직을 마무리 할 수 있었음에 항상 감사함을 느낀다.
첫댓글 송이골님
읽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이렇게 지난시간을 올리시는데 노고를 아끼지 읺으셔서 교직생활 40여년을 영화처럼 볼수 있어 감개 무량 이옵니다.
세상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총 망라된 글에서 교직이 천직인 모습을 보며 아름답게 회상 할수 있음도 보람이고 행복임을 봅니다.
가지런한 인생 여정에 이제는 취미생활 맘껏 하시며 건강하고 행복한 일들만 기다리고 있음도 눈에 보입니다.
송이골님 인생에 응원의 박수 드립니다.
접종이 시작되는 코로나 백신이 엄청난 효력이 발휘되기를 기대하며 항상 많은 관심을 가져주심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