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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 없이 오늘을 사는 비법
"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케 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
잠언 12:25
1. 성경은 근심이 사람의 마음을 짓눌러 사람의 생활을 무기력하게 한다고 말한다.
Webster사전 (Webstre’s II New Reverside Desk Dictionary. Boston:Houghton Mifflin Company,1988,s.v “ansiety”) 에는 “불안하고 걱정하는 상태, 즉 구체적인 이유가 없는 비정상적인 두려움의 상태” 라고 정의 했다. 다음과 네이버 사전에는 “ 해결되지 않은 일 때문에 속을 태우거나 우울해 함” 이라고 쓰여 있다. 잠언에서는 이렇게 권면한다. “(염려하는 생각과 불길한 예감에 의해) 고난 받은 자는 그날이 다 험악하나 (환경이나 처지에 상관없이)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잠15:15:The Amplified Bible)
때로는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항상 큰 문젯거리를 찾아내어 삶에 적용하거나, 항상 어느 상황을 일정하게 설정하여 설정되어진 상황이 되지 못하면 그것으로 우리를 괴롭히곤 한다.
항상 끊임없이 염려하고 근심하고 괴로워하며 산다. 모든 일에 대하여 지나치게 심각하거나 상황이 풀리지 않는다고 아무문제가 없어도 스스로 문젯거리로 삼는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요 14:1)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두려워 하지도 말라”(요 14:27) 고민에 빠지거나 동요할 때. 정신이 산만해 지도록 허용하기를 중지하고 안정감을 잃도록 허용하지도 말라고 권면 한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보자 “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온유하고 안정된 심령은 ..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벧전 3:4)라고 베드로 사도가 권면하셨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마음가짐은 근심하거나 흥분하지 않고 평화로운 마음가짐을 가지라는 것이다. 베드로라! 베드로가 젊었을 때라면 이 말을 들은 독자는 실소를 금치 못했을 것이다. 다혈질에 불만 투성이였던 그가 노년에 쓴 이글은 뭔가 큰 교훈과 반향을 준다.
성경이 의미하는 근심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해답은 빌립보서 4:4, 6,7 절에 주어졌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모든 것이 완벽하게 된 후에야 기뻐하는 삶을 산다면 많은 즐거움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힘든 상황에서도 삶을 즐기는 것을 배우는 것이 영적인 성숙을 이루는 것이다.
어느 부모들은 자녀들이 어느 단계로 성장할 때까지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즐기기를 미룬다,
“입덧이 심해 아이를 낳으면 좋를 거야‘ ’ 얘가 손끝에서만 놀아 스스로 잤으면 좋겠어‘ ‘우리 아기가 기저귀를 떼거나 돌아 눕기만 하면 좋을 거야’‘ 유치원에 들어가 스스로 밥먹으면 좋은거야’ ‘ 학교에 다니며 스스로 머리 빚든지 목욕만 해도 훨씬 아침에 전쟁이 안 나고 편할 텐데’ ‘대학가면 한 시름 놓을 거야’ 그러면서 부모는 각 단계에서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 채 항상 더 좋은 때만 기다리다가 즐겁지 않게 보낸다. 모든 것이 완벽할 때까지 뒤로 미루고 기다리지만 알다시피 세상에서 그런 때는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또 하나의 심각한 오류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어떤 특별한 일을 행하셔야만 나는 기쁠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그 하나의 일이 이루어져도 이루어지지 않은 또 하나의 다른 일 때문에 기뻐하지 못한다. 잘못 하다간 그런 사람들은 기뻐 할 수 있는 언젠가의 또 다른 때를 기다리며 평생을 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언젠가 행하실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행하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것에 대하여 즐거워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쁨으로 충만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그 상황 너머에 있는 기쁜 조건을 찾아야 한다. 이 세상에는 기쁜 상황 보다 우리를 즐겁게 하지 못할 상황과 사람으로 가득 찼다. 우리를 기쁘게 하는 사람들이나 일조차도 단지 일회성이거나 짧은 기간에 불과하다. 그리스도인, 우리교인, 우리식구들 조차 여러 번 조만 간, 그리고 매일 우리를 실망 시킬 것이고, 미안하게도 상황들은 항상 우리들 기대에 역행한다. 바론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행복 즐거움을 외부가 아닌 우리 안에 계신 주님으로부터 찾아야 한다.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기가 훈련 될 때 모든 이해를 초월한 평강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마태복음6장 31~34절)
우리는 이방인이 아니다 이방인의 성서적 개념은 사상과 관점과 추구하는 이상에서 그리스도를 떠난 생각을 가진 자를 말한다.
염려하거나 걱정하거나 안달할 기회는 항상 우리 바로 곁에 널려 있다.
"해야 할 일들을 스스로의 손으로 처리하고 성공을 얻기 위하여 자신의 지혜를 의지할 때는.하나님께서 맡기지 않으신 짐을지며 그분의 도움이 없이 그것을 나르려고 애쓰고 있다. 하나님께 속한 책임을 우리가 짐으로서 사실상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에 두는 것이다(We are
taking upon ourselves the responsibility that belongs to God, and thus are really
putting ourselves in His place.) 우리가 걱정하고 위험과 실패를 예측하는 것은 당연하다.왜냐하면 그런일이 우리에게 분명히 닥쳐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유익을 주고자 하신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을 때는 장래를 위하여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아이가 사랑하는 부모를 의지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뜻에 삼켜지기 때문에 근심과 걱정이 사라질 것이다.
(Then our troubles and torments will desappear, for our will is swallowed up in the will of God)" 산상보훈 보급판 P78.)
2. 염려를 덜어 버리는 삶은 지금(오늘)의 삶이다
예언의 신 중에서 "그리스도인 마음과 품성과 인격, 정신적 영적 건강에 관한 지침들 제 2권 123쪽에 이렇게 언급되었다.
오늘만을 생각하는 것은 중요한 원칙임 -"오늘의 의무를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이 내일의 시련을 위하여 가장 잘 대비하는 것이다.내일의 부담과 염려를 모두 모아서 오늘의 짐에 첨가하지 말라." 치료봉사 481(1905)
"내일의 짐들로 인하여 우리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지 말자 용감하게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오들의 짐들만 지라,오늘의 삶을 위한 신뢰와 믿음을 가져야 한다.그러나 우리는 오늘 너머까지 생각하며 살라는 요구를 받지 않는다. 오늘을 위한 힘을 주시는 분은 내일을 위한 힘을 주신다" ST, 1902.11.5(HP.269)
염려(念慮): “우리의 현재 있는 곳을 정신적으로 떠나서 과거나 미래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
하나님의 바라시는 것 : “하나님은 현재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신다.”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6:2)( 이사야 49:8 인용 "I tell you, now is
the time of God's faver , now is the day of salvation. NIV)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날(today) 너희가 그 음성을 듣거든, .. 성경이 일렀으되 오늘날(today)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시 95:7)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을을 강퍅케 하지 말라 ” (히3:7,15)
“오랜 후에 다윗이 글(시 95:7)에 다시 어느 날(a certain day)을 정하여 오늘 날(today) 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걍퍅케 하지 말라" (히 4:7)
우리가 삶에서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집중하기가 어려운 이유의 대부분은 지금보다 어제나 내일 일에 골몰하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마6:34) 죄지은 우리 인류의 일상생활에는 내일에는 내일의 희망과 기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일에는 틀림없이 내일 나름대로의 문제가 있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오늘에 내일 일까지 소급해서 염려하지 말라는 뜻이다. 우리가 어찌 할 수도 없고 맘대로 조종할 수도 없는 어제나 내일 일을 염려하여 오늘을 망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 들 중 내가 결코 손대지 말아야 할 일을 손을 대고 간섭하지 말아야 할 것에 낭비하는 것이 99%이다. 소중한 오늘을 더 이상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는 일을 즐겨하시고 그 분의 모든 사역의 100%를 우리의 오늘 일에 마음을 쓰신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려서 삶을 즐기려 하다가 우리의 인생을 낭비하지 말자. 하나님이 주셨던 과거로부터 배우고 하나님이 준비시키는 미래를 기대하되 하나님이 주시는 현재에 살라. 명심하자 하나님은 지금 주신
다.
"우리가 내일 일을 오늘 질 때, 그리스도께서는 도움을 약속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린도후서 12장 9절)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광야에서 만나를 주신 것처럼, 그분의 은혜는 그 날의 필요를 위해 매일 주어진다. 순례 생활 중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도 아침마다 그 날에 필요한 양만큼 하늘의 떡을 공급 받을 수 있다.
우리에게 속한 것은 한 날 뿐이며,(다른 번역에는 오직 하루만이 우리의 것이며) 이날 동안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 이 한 날 동안, 우리는 성실한 봉사를 통해 우리의 모든 목적과 계획을 그리스도의 손에 의탁하며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겨야 한다. 그것은 그분께서 우리를 돌봐 주시기 때문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예레미야 29장 11절).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이사야 30장 15절).
매일 주님을 찾는 가운데 회개하고, 하나님 안에서 영적 선택을 자유롭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며, 그분의 영광스러운 초청에 기쁜 마음으로 응하여 그리스도의 멍에 곧 순종과 봉사의 멍에를 멘다면, 모든 불평이 없어지고, 모든 어려움이 제거되며, 현재 직면하고 있는 모든 복잡한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산상보훈 보급판 p78.
예수님은 그의 추종자들을 삶의 현장에서 지금 만나신다. 물질적인 문제로 염려하지 말고 이방인들이나 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하신다. 이방인은 자신을 돌보는 하늘 아버지가 안 계신 것처럼 여기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문제를 논하지 말고 해결책을 찾자. 첫째,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것이다. 대부분 염려는 그릇된 방향을 걷고 있을 때 발생한다. 정말 걱정해야 할 일은 하나님과의 관계인데 우리는 물질적인 것을 갈구하고 그것 때문에 걱정한다,걱정을 극복하기 위한 두 번째 전략은 하루씩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마 6:34).
1871년에 걱정이 많은 어느 의대생이 다음과 같은 글 한 토막을 읽고 삶이 바뀌었다.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먼 곳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것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분명하게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 말을 삶에 되새김으로 윌리엄 오슬러 경은 당대에 가장 존경받는 의사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각 사람은 과거와 미래라는 영원한 두 영역의 사이에 위치한다. 우리는 오직 현재에만 존재한다.
소중한 글이 인터넷에 있어 퍼온다.
“일 년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입학시험에 떨어진 학생들에게 물어보십시오.
일 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알게 될 것입니다.
한 달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미숙아를 낳은 산모에게 물어 보십시오.
한 달의 시간이 얼마나 힘든 시간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한 주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주간잡지 편집장에게 물어 보십시오.
한 주의 시간이 쉴새 없이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루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아이가 다섯이나 딸린 일일노동자에게 물어 보십시오.
하루 24시간이 정말로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한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약속 장소에서 애인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물어 보십시오.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정말로 길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일 분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기차를 놓친 사람에게 물어보십시오.
일 분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일 초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간신히 교통사고를 모면한 사람에게 물어보십시오.
일초라는 그 짧은 시간이 운명을 가를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어제는 이미 지나간 역사이며,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신비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present)를 '선물(present)'이라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