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수관도예전시관
남원의 춘향테마파크내에는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1598년 정유재란 때 남원성에 머물고 있던
80여 명의 양민과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가 일본에서 '사스야마키'라 불리는 조선 도자기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심수관家의 도예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심수관도예전시관이 위치하고 있다.
2011년 12월15일 개관한 이 전시관에는 정유재란의 도자기전쟁과 남원, 사쓰마 도자기의 기원,
사쓰마 도자기의 역사, 12대 심수관부터 15대까지 심수관가의 기증작품 13점 전시코너와 영상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심수관家의 도자기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정유재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남원 도공의 후예로서
현재 일본 사쓰마도자기를 대표하는 심수관 도자기!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1598년 정유재란에 대한 설명
일본은 조선침략의 결과로 조선으로부터 금속활자에 의한 인쇄술을 처음으로 도입하게 되었고
포로로 잡아간 도자기 기술자에 의해 획기적으로 요업(窯業)을 일으키게 되었으며,
약탈하여 간 많은 서적은 성리학(性理學) 등 그들의 학문에 크게 기여하였다
사쓰마도자기의 뿌리는 남원
조선의 사기장들이 사쓰마에 뿌리내리게 된 결정적 사건은 정유재란이었다.
정유재란 당시 심수관가의 납치과정을 디오라마로 구성해 놓았다.
가고시마 미야마(美山)는 사쓰마도자기로 이름난 곳이다. 이곳의 심수관가(家)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의 도공 심당길(沈當吉)이 가마를 짓고 도자기를 구워내던 곳이다.
그의 12대 후손인 심수관에 이르러 사쓰마도자기로 빛을 보게 되는데,
이 도자기는 일본의 3대 도자기이자 세계 도자기의 명품으로 알려지게 된다.
심수관가는 그를 기리기 위해 그때부터 '수관'을 가문의 세습명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현재는 15대 심수관이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조선도공의 숨결이 살아있는 큐슈지역의 6대 도자기 비교
다까다(高田)도자기
가라쯔도자기
다카도리(高取)도자기
아리따(有田) 도자기
금란수(긴란데)도자기란?
금채를 사용한 도자기를 특히 긴란데(錦襴手)라고 한다
.심수관가의 도자기를 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에 널리 각인시킨 것은 금채를 사용한 금란수 혹은 긴란데라
불리는 화려한 장식의 도자기이다. 이들 도자기는 빈이나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되어 서구인들을 매료시켰고
국내외에 사쓰마도자기의 확고한 지위를 부여했다.
금채기법은 화병 뿐 아니라 향로 인형상 다도구와 일상용품에도 폭넓게 사용되었다.
금수동방삭입상
약간 중국풍이 느껴지는 이 도자기의 심수관가에서 기증한 작품이다.
사쓰마도자기의 계보
사쓰마에서 재현된 조선 백자를, 'Satzuma Ware(사쓰마 자기)'라고 하는데
전시관에는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는 계보가 있었다.
일본에 상륙한 초기의 조선도공 작품이다.
심수관家의 도자기 계보
1598년 정유재란시 조선 도공이 피랍이 되었고
초대 심당길로부터 11대까지는 번에 소속되어 개인 가마를 갖는것이 불가능 했기 때문에 현존하는 작품이 적으며
정작 초기인 17세기에 도기 기술을 바탕으로 다도구와 일상용기등을 제작한걸로 보인다.
18세기 들어 점차 시로사쯔마 계열의 찻잔과 사발 성형백자등을 선보였고 흑유도 제작하였으며
19세기 들어서는 조선식 기술을 찾아보기 어렵고 가마와 도자기 양식 모두 일본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사쓰마도자기를 꽃피운것이 12대 심수관 부터이다.
1873년 오스트리아 빈만국박람회에서 긴란데대화병 출품으로 호평을 받고(일본제국훈장 수상)
유럽과 호주 러시아 미국등 세계 각국에 수출의 길을 열고 사스마웨어를 일본 도자기의 대명사로 만든다.
가장 큰 변화는 메이지유신의 영향으로 1875년 번요가 폐지되자 현재의 미야마에 사재를 털어 개인가마를 설치하여
사쯔마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금채 중심의 긴란데등 심수관 가마만의 독창적인 미의식이 돋보이는 도자기를 생산하였다.
13대 심수관은 태평양전쟁의 영향으로 자원조달의 어려움과 지역주민들의 시기로 인하여 작품이 많이 없다고 한다.
14대 심수관은 소설가 시바료타로의 <어찌 고향을 잊으랴>라는 작품의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젔으며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에 대화병을 출품하며 전국에 심수관전을 개최하고 있다.
또한 도자기를 통하여 한일 양국의 문화교류와 친선에 많은 공헌을 하였고
1988년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명예총영사로 임명되었다.
15대 심수관은 1999년부터 지금까지 전통의 가마를 지켜나가고 있다.
심수관도예전시관
첫댓글 수고햇씁니다...ㅎㅎ
수 많은 우리 조상들이 일제에 의해 당한 고생을 생각하면 치가 떨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