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가 있는 서재9. <선녀와 나무꾼>
자유에 대하여
선녀와 나무꾼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개는 어린 시절 동화책으로 만났을 것이고, 선생님이나 어머니를 통해서도 숫하게 들어왔을 이야기다. 오래 전 김창남이라는 가수는 같은 제목의 노래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가수는 ‘하늘의 뜻이었기에 서로를 이해하면서 행복이라는 봇짐을 메고 눈부신 사랑을 했죠.’ 라고 노래했는데, 선녀와 나무꾼은 정말 그들의 만남을 하늘의 뜻으로 알고 눈부신 사랑을 했을까?
어느 깊은 산골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나무꾼 총각이 있었다. 그는 나이가 먹도록 장가를 가지 못했으며, 그런 아들을 어머니는 안쓰러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총각 역시 하루빨리 결혼을 해서 어머니께 효도하고 싶었지만, 그저 마음뿐 가난한 나무꾼에게 아내를 얻는 일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무꾼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총각이 여느 때처럼 나무를 하고 있는데, 사냥꾼에게 쫓기던 사슴 한 마리가 달려와서 자신을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나무꾼은 위기에 빠진 사슴을 숨겨주고 뒤쫓아 오던 사냥꾼에게는 엉뚱한 곳을 가리켜주었다. 사슴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나무꾼이 고마워서 소원을 한 가지고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나무꾼은 장가가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고, 사슴은 한 가지 방법을 일러준다.
“보름달이 뜨는 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이 연못에서 목욕을 할 때 옷 한 벌을 감추세요. 날개옷이 없으면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니, 그 선녀를 집으로 데려가 살면 됩니다.”
그리고 사슴은 선녀가 아이 셋을 낳을 때까지는 절대로 날개옷을 보여줘서는 안 된다고 간곡하게 당부하였다. 나무꾼은 그러겠다고 굳게 다짐했지만, 끝내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보름이 되어 연못에 이르자, 과연 사슴의 말대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이 그곳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나무꾼은 그녀들이 목욕하는 장면을 숨어서 지켜보다가 날개옷 한 벌을 몰래 숨겼다. 저 멀리 동쪽 하늘에서 새벽빛이 비치기 시작하자 목욕을 마친 선녀들은 하늘로 올라갔다. 그러나 한 선녀만은 옷이 없어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엉엉 울고 있었다. 이때 나타난 나무꾼은 선녀들 데리고 집으로 갔다. 너무나도 쉽게 아내를 얻은 셈이 되었다.
선녀와 나무꾼은 부부의 인연을 맺고 결혼을 했지만, 선녀의 마음속엔 하늘나라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구해준 부지런하고 착한 남편을 보면서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아이도 둘이나 낳았다. 선녀는 이러한 생활에 점차 익숙해졌다.
보름달이 환하게 뜬 어느 날 나무꾼은 아내, 아이들과 함께 달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선녀의 눈가에 이슬이 촉촉하게 맺혔다. 하늘나라 생각이 났던 것이다.
“아! 내 날개옷은 어디에 있을까?”
이 소리를 들은 나무꾼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슴과의 약속이 생각났지만, 아내가 너무 가엾게 느껴져 나무꾼은 그만 자신이 숨겨두었던 날개옷을 보여주고 말았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날개옷을 입은 아내가 두 아이를 품에 안고서 하늘로 올라간 것이다.
내 기억 속에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만, 다시 펼쳐본 동화책에서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아내를 잃은 슬픔으로 하늘만 쳐다보던 나무꾼에게 사슴이 다시 나타난다. 사슴은 보름날 연못에 가면 하늘에서 두레박이 내려올 것이니, 그것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면 아내와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고 일러준다. 나무꾼은 사슴이 알려준 대로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아내,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나무꾼은 홀로 두고 온 어머니가 생각나서 하늘 생활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남편의 마음을 알게 된 아내는 하늘을 나는 용마를 타고 어머니를 만나고 오라고 말한다. 절대로 용마에서 내리면 안 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용마를 타고 온 아들을 만나자, 어머니는 너무 반가워 아들이 좋아하는 호박죽을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나무꾼은 그릇이 너무 뜨거워서 호박죽을 용마의 등에 떨어뜨렸고, 이에 놀란 용마가 펄쩍 뛰는 바람에 나무꾼은 그만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용마는 하늘로 올라갔고, 땅에 남은 나무꾼은 슬픔에 잠겨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 나무꾼의 넋은 수탉이 되어 매일 아침마다 하늘을 쳐다보며 ‘꼬끼오!’ 하면서 목 놓아 울었다.

자유라는 날개옷
대개 동화에는 교훈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 이야기의 하이라이트는 나무꾼이 사슴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아내에게 날개옷을 보여줬으며, 그로 인해 선녀가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이다. 그래서 이 동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착하게 살면 복을 받지만, 자신이 그 복을 잘 지키지 않으면 모든 일이 물거품이 된다는 것 정도였던 것 같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이 동화와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는 교훈을 연결시키는 것은 어째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물론 나무꾼이 사슴과의 약속을 잘 지켰다면 이 이야기는 행복한 결말로 끝났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나무꾼의 입장에서만 생각한 것이다. 선녀의 처지에서 본다면 불행도 이런 불행이 있을 수 없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무꾼이 아내를 얻은 방법 역시 결코 정당하거나 바람직하지 않다. 날개옷을 숨긴 것은 폭력만 사용하지 않았을 뿐 납치나 다름없다. 선녀에게 날개옷은 하늘에 올라갈 수 있는 권리이자 자유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나무꾼은 부정한 방법을 통해서 선녀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은 것이다.
언젠가 모 고등학교에서 인문학 특강을 한 적이 있다. 특강을 하기 전에 학생들의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서 미리 몇 가지 설문조사를 하였다. 설문내용 중 하나는 ‘나는 지금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 질문에 대해 많은 학생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답했다.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를 듣고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자신들은 꿈을 꿀 자유나 권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던 것이다.
과연 꿈이나 자유, 권리가 누군가로부터 주어지거나 혹은 빼앗을 수 있는 것일까? 물론 사회적 약속이라 할 수 있는 법을 어겼을 경우 국가가 법을 어긴 사람의 자유나 권리를 제약할 수는 있다. 그런 경우를 제외하면 자유와 권리는 성별이나 인종에 관계없이 태어날 때부터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이러한 자유와 권리를 빼앗거나 양도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 자유나 권리를 빼앗으려 한다면, 이는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일이다. 인류의 역사는 일부에 의해 부당하게 빼앗긴 자유와 권리를 찾는 과정을 통해 발전해왔다.
선녀에게 있어서 날개옷은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상징한다. 동화에서는 부지런하고 착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지만, 나무꾼은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이다. 그에게 선녀의 자유를 빼앗을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부당한 방법으로 선녀의 자유를 빼앗은 삶이 행복했을까? 그랬다면 나무꾼은 정말 나쁜 사람이다. 그러나 나무꾼은 양심이 있는 인물이었다. 자유를 빼앗긴 아내의 슬픔에 마음이 움직였던 것이다. 날개옷을 선녀에게 내어준 것은 양심의 발로이자,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시인이었다.
날개옷을 받아든 선녀도 처음에는 고민했을 것이다. 자신이 원한 것은 아니지만 시어머니와 남편, 아이들과 함께 했던 삶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과의 이별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녀에게는 이곳에 남을 것인지, 아니면 하늘로 올라갈 것인지 선택이 주어졌다. 선녀는 자신의 자유의지대로 날개옷을 입고 하늘로 올라갔다. 익숙한 삶이 아니라 자유를 택한 것이다.
혹자는 사슴과 나무꾼을 자본주의 체제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또한 자유를 빼앗긴 줄 모르고 점점 나무꾼에게 길들여가는 선녀는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오늘의 우리 모습을 많이 닮았다고 지적하였다. 어쩌면 우리는 자본이 주인인 시스템에 너무 길들여져 돈의 노예로 전락한 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선녀와 나무꾼은 노래 가사처럼 결코 행복이라는 봇짐을 메고 눈부신 사랑을 나눈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하늘의 뜻도 아니다. 이 동화는 자유와 권리에 관한 이야기다. 잊지 말기로 하자. 자유와 권리는 내게 주어진 고유한 가치이지, 누군가 내게 선물로 주거나 빼앗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학생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도 바로 이것이었다.